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45
#344화
띠링.
– 연계 퀘스트, [만독지환(萬毒指環)]이 생성되었습니다!
–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 당신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시스템 알림과 동시에 눈앞을 가득 채우는 홀로그램 창을 바라봤다.
퀘스트
[만독지환(萬毒指環)]천하의 그 어떤 독도 흡수한다는 만독지환은 사천당문의 신물이자 무림에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입니다.
소유자도, 실존 여부도 확실치 않으나 현재로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등급 : 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만독지환] 획득 (미완료)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실패 : 적천강의 죽음
“어떤 독도 흡수한다는 신물이라.”
내 중얼거림에 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게 만독지환이 가진 효능이지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소유자도, 실존 여부도 불분명하다는 거겠지.”
“예, 심지어 사천당문에서도 만독지환의 존재를 여러 차례 부정한 적이 있습니다.”
신의가 무거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서 전설인 게지. 너무 오래되어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뇨. 있습니다.”
“음?”
“만독지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단지 감춰져 있을 뿐이에요.”
“어찌 그리 확신하시오?”
신의는 물론이고, 처음 만독지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문경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그거야 당연히…….”
시스템 때문이지.
이건 적천강의 치료를 위한 연계 퀘스트다.
만독지환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지금 같은 퀘스트도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정신병자 취급받기 딱 좋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 신물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천당문은 무림에서도 외골수로 유명한데, 당연히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었겠죠.”
동전 한 푼, 만두 하나로 살인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하물며 만독지환 같은 신물이라면 얼마나 많은 날 파리들이 꼬일 것인가.
대충 둘러댄 말이지만 설득력 있는 추론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사실 본 방에서도 만독지환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많은 조사를 해 본 결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여는 궁기방을 바라봤다.
“됐고. 뒷이야기는 여기 남아서 무진이한테나 해 줘라.”
“응? 남아? 혁무진이랑 여기 남아 있으라고?”
“조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씀이긴. 들은 그대로지.”
나는 어안이 벙벙한 두 녀석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혁무진, 궁기방은 여기 남는다.”
“왜! 어째서!”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제발 이 포악한 거지와 저를 남겨 두지 마세요!”
“뭐라! 이런 개뼉다구 같은 놈이!”
빡! 빡!
역시 이럴 때는 매가 약이다. 나는 동시에 정수리를 감싸 쥐는 녀석들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헛소리하지 말고 남아서 묘령사태나 지키고 있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궁기방, 네가 바로바로 연락하고.”
“연락? 여기에 사천당문으로 가는 전서구가 있나?”
“뭔 거지발싸개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일 생기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와야지.”
“그게 무슨!”
“싫으면 하나 길들이든가. 저기 꽃밭에 나비 많더라.”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냉정한 분석 끝에 나온 결론이다.
우선 무공, 특히 신법이 가장 뒤떨어지는 혁무진을 남기고 혹시 모를 대책으로 궁기방을 붙여 놓는다.
나름 쓸 만한 절정 고수인 데다, 눈치만큼이나 발이 빠른 녀석이니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결정에 불만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 즉시 거수.”
“……그 주먹이나 내려놓고 물어봐라.”
“……전 그냥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그때, 한 사람의 팔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 청풍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은인, 저는요?”
“청 소협은 나랑 같이 사천당문으로 가는 거지.”
“왜요?”
“남겨 놓으면 뭔 사고를 칠 줄 알고. 당신은 촌각이라도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 알겠어?”
“네에…….”
풀죽은 청풍의 대답에 신의가 안쓰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뭐라 하지 마시구려. 순진한 청년 같아 보이는데.”
“순진하죠. 산불 내서 여기 홀랑 다 태워 버릴 만큼.”
“허허, 설마하니 그러겠소.”
“며칠 안에 초가삼간 다 태워 먹고, 집 잃은 동 노인께서 개방 입문 한다에 무진이 왼쪽 손목 걸겠습니다.”
“……!”
청풍을 경계 어린 표정으로 훑어본 신의가 대답했다.
“함께 가는 게 좋겠구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경아, 너는 어찌 하겠느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문경도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아미파의 여스님은 휴식만 취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 주면 고맙고.”
사실 지금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신의다. 하지만 늘 스승의 곁에서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문경이 있다면 더더욱 좋다.
애초에 만독지환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도 녀석이고.
‘남은 건 만독지환을 어떻게 얻어 내느냐는 건데.’
만독수라 당사독. 사천당문의 주인인 그와 대면한다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을 끝마친 나는 청풍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청 소협, 지게랑 밧줄 두 개씩 챙겨. 크고 튼튼한 걸로.”
“은인, 지게와 밧줄은 왜요?”
“최대한 빠르게 가야지. 가다가 떨어트리면 큰일 나니까 밧줄로 꽁꽁 묶고.”
내 말을 들은 신의와 문경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어두운 대전(大殿). 노인의 입이 열린 것은 중년인이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 후였다.
“오십여 년 전,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본가는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알고 있느냐?”
노인, 만독수라 당사독의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당시 약관이었던 노부는 그 모든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사방에서 가솔들이 죽어 나가고, 병기창은 불탔으며 전각은 무너졌지. 우리는 그렇게 패자가 되어 사천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장장 십 년간 이어진 대전쟁은 정파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당문은 사천으로 돌아와 가문을 재건했지만 그때의 상처는 모두의 가슴 깊숙이 새겨졌다.
“한데, 한데 어찌하여!”
당사독의 두 눈동자에 녹색 광채가 번뜩인 순간, 그의 전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독기(毒氣)에 중년인이 숨을 삼켰다.
“흡.”
“어찌하여 또 다시 이런 수모를 겪을 수 있단 말이냐!”
치이이익!
자글자글 주름 잡힌 손이 탁자를 짚었다, 아니, 녹였다.
나무는 물론이고 모서리에 장식한 철까지 새카만 독액이 되어 흐르는 광경에 중년인이 부복했다.
“고정하십시오, 가주님!”
중년인의 만류에도 당사독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그가 보이는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버지인 독왕 당사문을 해친 흉수를 찾기는커녕, 헛물만 켠 끝에 청성파의 급보를 받고 돌아와야 했으니까.
“감히 어느 놈이……!”
청성파가 보낸 전서의 내용은 짧았다. 그리고 독왕의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단신으로 아미파의 경천신니와 세 장로를 모두 죽이다니.’
그것도 개인을 노린 암습이 아닌, 정면 승부였다고 했다.
경천신니는 십왕(十王)의 말석이나마 노려볼 수 있는 초절정 고수. 함께 동석하고 있던 세 장로 역시 경륜 있는 절정 고수들이었다.
흉수는 일파의 수뇌부를 홀로 쓰러트린 뒤 유령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 정도의 고수가 둘일 리는 없다. 필시 아버님을 해한 것도 그놈이 분명해.’
서서히 가라앉는 분노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경계심이었다.
그는 아들이 아닌 사천당문의 가주로서 귀환을 결정했고, 한편으로는 흉수를 추적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녹영대(綠影隊)는 어찌 되었느냐?”
“다섯 명씩 열 개 조로 나누어 성도를 중심으로 청성, 아미, 익산, 삼합 등으로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녹영대는 사천당문 내부에서도 첩보와 요인암살에 특화된 이들.
정마대전 직후 수많은 마두들을 척결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었지만, 당사독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수문각 방비를 철저히 하고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이만 나가 보아라.”
조심스럽게 돌아서는 중년인을 바라보던 당사독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수문각주는 다른 이에게 넘기고 내당(內堂)으로 자리를 옮기거라.”
“가, 가주님?”
“가주가 아니라 숙부로서 하는 말이다. 네 나이도 곧 지천명을 바라보는데, 하나뿐인 조카를 언제까지 수문각에 남겨 둘 줄 알았더냐?”
“가, 감사합니다. 숙부님.”
당사독은 소매를 펄럭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잘나지도 않았지만, 딱히 못난 구석도 없는 조카다.
세월에 무뎌져 오랫동안 잊고 살았건만…… 정마대전 도중 목숨을 잃은 형님이 생각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저도 늙은 모양입니다. 아버지.”
홀로 남은 당사독의 작은 독백에, 그의 가슴께가 들썩이더니 뭔가가 스르륵 고개를 내밀었다.
쉬쉭. 쉭.
눈처럼 새하얀 몸통과 푸른 눈. 세모꼴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그것은 한 마리의 뱀이었다.
무림에는 천년독각사(千年毒角蛇)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영물이자 포악하기로 악명 높은 그것은 길쭉한 혀를 내밀어 당사독의 뺨을 핥았다.
“녀석…….”
딱딱하게 굳어 있던 당사독의 얼굴이 스르륵 풀어졌다.
신경질적인 성격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그였지만, 이 천년독각사에게만큼은 예외였다.
아버지인 독왕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 자식이 없는 그에게는 무엇보다 애틋한 존재였다.
“어허, 간지럽다. 인석아.”
희미하게 웃으며 뱀의 재롱을 바라보던 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새하얀 몸통이 황급히 당사독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가주님, 접니다.”
떠난지 얼마되지 않은 조카의 목소리에 당사독이 짐짓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 일로 다시 왔느냐?”
“그게, 일전의 그자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자들?”
“산서잠룡 진태경과 화산신룡 청풍 말입니다.”
“분명 노부가 출입을 금하라 말했을 터. 불허한다.”
“한데…… 그들 중 신의(神醫)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 신의?”
이번만큼은 당사독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의가 누구인가, 의술로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자. 장구한 세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 아닌가.
‘바로 그 신의가 어찌하여 본가에?’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사독의 입술 사이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라 해라.”
* * *
“그대가 신의요?”
노빠꾸 상남자식 화법 보소.
우리는 보는 척도 안 하고 느닷없이 묻는 당사독의 모습에 신의가 허허 웃었다.
“이 늙은이의 이름은 동봉이라 합니다.”
“신의가 아니라는 거요?”
“세상 사람들이 과분한 이름을 붙여주었지요.”
“맞는 모양이군.”
“쉽게 믿으시는군요.”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닌 한, 노부의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는 없소.”
“…….”
거 되게 설득력 있네.
순간 할 말을 잃은 우리를, 당사독이 특유의 녹색 안광이 맴도는 눈동자로 찬찬히 훑었다.
“신의라…… 천하가 찾아도 털끝 하나 보이지 않던 그대가 무슨 연유로 나를 찾았소? 그것도 무림의 후기지수들과 함께.”
“그건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나와 당사독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해 보거라.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 한 줌 혈수가 될 각오를……”
“만독지환 좀 빌려주십시오.”
노빠꾸 상남자식 화법에 당사독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