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48
#347화
사천당문의 지하 뇌옥은 어둡고 축축했다. 동시에 사람의 등골의 서늘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하 뇌옥이 만들어진 이래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테니까.
“마실 것 좀 드릴깝쇼?”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게 낡은 호리병을 내미는 노인은 지하 뇌옥의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나는 이 왜소한 곱사등이 노인이 지금까지 몇 명을 해치웠을까에 대해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러시다면야, 뭐.”
꿀꺽, 꿀꺽.
호리병을 기울인 궁 노인이 옷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해진 옷소매에는 핏자국으로 보이는 검붉은 얼룩이 가득했다.
“크어, 좋다.”
복도에 감도는 피비린내 사이로 섞여 든 독한 주향(酒香)이 코끝을 맴돈다.
근무 중에 음주라니. 태원진가에서는 시말서 감이지만, 사천당문의 지하 뇌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규칙인 모양이다.
“무림에서 난다 긴다 하는 후기지수시라고 들었습니다만.”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명백했다. 청풍과 당사독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사라졌고, 신의와 문경은 뇌옥을 치료실로 바꾸기 위한 정화 작업에 한창이니까.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난다 긴다 하는 정도는 아니고, 방귀 좀 뀝니다.”
“들리는 말은 아니던뎁쇼. 화왕의 후인이라, 구파일방 현판에 오줌을 갈겨도 되겠더구먼요.”
궁 노인이 죄다 썩어 들어간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그런 짓을 저지른 놈이 여기 갇혀 있습지요.”
“그런 짓이라니, 뭐가요?”
“구파일방 현판에 오줌을 갈긴 놈 말입니다. 거기가 아마 곤륜파(崑崙波)였든가, 그랬지 아마.”
“……정말 별의별 놈들이 다 있군요.”
“클클. 한때는 마교의 마두 중에서도 알아주던 놈입지요. 지금은 형틀에 묶여서 피똥만 줄줄 흘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오시는 길에 보셨을 텐데?”
“글쎄요.”
사천당문의 지하 뇌옥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굽이진 구조였는데, 오면서 본 바에 의하면 수십 개의 뇌옥과 십여 명의 죄수가 갇혀 있었다.
‘아마 곤륜파 현판에 오줌을 갈겼다는 그놈도 그 죄수 중 하나였겠지.’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자들이다. 일말의 동정심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이렇게 긴장이 될 줄은 몰랐는데.’
뇌옥에 들어온 후부터 특유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몇 년 전 어머니가 수술실에 들어가던 날, 조용한 복도에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던 그때 그 마음이다.
‘잘되겠지. 잘될 거야.’
내심 중얼거리던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뇌옥의 문이 열리며 각종 청소 도구를 든 십여 명의 하인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을 향해 물었다.
“끝난 겁니까?”
신의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진 사이,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뇌옥은 제법 그럴듯한 치료실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아직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졌소.”
“그럼…….”
“그렇소. 지금부터 시작이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한빙지에서 캐낸 스물네 가지의 약초를 배합하여 만든 각종 약재 등도 이미 가져온 상태. 치료실도 마련됐으니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궁 노인을 포함한 사천당문의 인물들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품에 손을 넣었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텅 비어 있던 손아귀에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안전상의 이유로 잠시 갖고 있었던 만독지환을 신의에게 건넸다.
만독지환을 받아 손가락에 낀 그가 뇌옥 안으로 들어가며 손짓한다.
“환자를 옮겨 주시겠소?”
어깨에 짊어진 지게를 풀었다. 아주 미세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체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리로.”
나는 적천강을 품에 안은 채 뇌옥으로 발을 디뎠다. 깨끗해진 바닥, 그러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악취가 코끝을 맴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적천강의 무게에 유난히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많이 약해지셨네요.’
하남의 무림맹을 떠나 여정에 오른 지 어언 한 달하고도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신의를 찾아 치료를 맡길 수 있게 되었지만, 적천강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스윽.
조심스럽게 중앙에 마련된 희고 매끈한 바위에 그를 눕혔다.
그것은 당사독이 특별히 내어준 한빙석(寒氷石)이라는 물건으로, 신의는 한빙석이 적천강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잘 주무시네.”
누워 있는 적천강의 얼굴은 수척했으나, 한편으로는 평온했다.
나는 주름과 검버섯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보면 볼수록 묘한 놈일세. 어디 문하라고?’
나는 일 년 전, 장태보의 집에서 마주친 어느 성질 더러운 노인을 똑똑히 기억한다.
‘지붕이 낡았군. 비가 새.’
혈육처럼 아꼈던 못난 제자를 막지 못했음에, 멀쩡한 지붕을 탓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한 스승의 모습 역시 기억한다.
‘그놈 죽이면, 너도 죽어.’
‘열화문의 신물(神物)을 저 녀석에게 맡겼다.’
‘내 모든 것을 전수해 주마.’
산서에서 하남, 하남에서 안휘. 그리고 구화산에서의 일 년까지.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적천강은 나를 태원진가 밖으로 이끌었고, 나는 그를 따라 드넓은 천하로 나왔다. 우리는 늘 함께였다.
‘어떠냐, 내 말대로지?’
‘뭐가 말입니까?’
‘화신귀무. 끝내주지 않았느냐?’
피를 토하면서도 희미하게 웃던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달이 휘영청 밝았던 어느 날, 애써 퉁명스럽게 건넨 한마디까지도.
‘스승은 무슨. 노야라고 부르거라.’
“노야.”
소리 내어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알면서도 부르게 되는 것은, 그가 들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해 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거 아세요?”
모른다, 이놈아!
어디선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나는 적천강의 주름진 손을 힘주어 잡으며 속삭였다.
“늘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사승(師承)이라는 두 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진 공자. 때가 됐소.”
신의의 말에 나는 적천강의 얼굴에서 눈을 뗐다.
이어 침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노 의원과 그의 어린 제자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스승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공수(空手)로 응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소.”
“저 역시, 스승님을 도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 남은 것은 하늘에 맡길 뿐이다.
하느님, 부처, 알라, 옥황상제.
‘그게 누구든 간에, 한 번만 도와주시면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하늘 위의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믿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를 향해 짧게 기도하는 내게 신의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억하시오. 보름, 보름이오. 그때까지 그 누구도 접근해서는 아니되오.”
만약 보름이 넘는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혀끝에 맴도는 말을 삼켰다. 이제는 두 사람을 믿는 수밖에 없는 상황.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제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 * *
“그게 전부인가?”
중년인은 무감각한 눈빛으로 사내를 내려다봤다.
기형적으로 꺾인 사지와 벗겨진 살갗. 혈인(血人)이 된 사내는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로 헐떡였다.
“내, 내가 아는 것은 이미 모두 말했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지 않나.”
“모르오. 정말 모른단 말이오.”
남아 있는 하나뿐인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이미 피에 흠뻑 젖은 바짓가랑이는 소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사내가 떨리는 음성을 토해 냈다.
“이제, 이제 그만 죽여 주시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사내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중년인이 혀를 찼다.
“보아하니 사실인 모양이군.”
이미 반나절 동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문을 겪은 사내다.
살려 달라는 말이 나왔다면 여지가 있겠으나, 그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튀어나온 이상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지금껏 중년인의 앞에서 거짓을 고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사람, 독왕 당사문을 제외한다면.
“자네의 반나절 짜리 기개(氣槪), 잘 보았네. 이만 쉬게 해 주지.”
쉬익, 퍽!
한 줄기 바람 소리와 함께 피에 젖은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탄지(彈指)에 미간을 꿰뚫린 사내는 편안한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사천당문의 방계이자 녹영대(綠影隊)의 대원으로 활약하던 그의 시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중년인이 손을 뻗었다.
쾅!
굉음과 함께 일 장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어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다섯 구의 시신이 구덩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다시 흙으로 덮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에 불과했다.
“녹영대라…… 날파리 같은 놈들이 붙었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중년인의 시선이 굽이진 산등성이 너머를 향했다. 서쪽, 사천당문이 있는 방향이다.
‘당사독, 그놈이 나왔을 때 죽였어야 했는데.’
패착이었다. 독왕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거셌던 탓에 독기를 몰아내기까지 상당한 시일을 소모했고, 한쪽 팔마저 잃어야 했으니까.
아미파나 청성파라면 모를까, 사천당문은 경계심이 심하고 방비가 철저하다. 팔을 잃은 지금 단신으로 쳐들어가기에는 제아무리 중년인이라 해도 무리였다.
‘허나 명줄이 며칠 더 늘어난 것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천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은 파악한 지 오래다.
아미, 청성, 그리고 당문. 사천에 웅크린 세 마리 호랑이를 사냥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제…… 사냥꾼들을 불러올 시간이다.
쉬이이익!
중년인은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겼다. 한걸음에 거리가 지워지고 풍경이 스쳐나간다.
마침내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산속 깊숙이 위치한 어느 절벽이었다.
“이곳이로군.”
중년인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절벽을 짚은 다음 순간.
우우웅.
공명음과 함께 절벽이 허물어졌다.
아니, 그것은 공간이 일그러졌다고 해야 맞았다. 오랜 세월 풍화된 돌과 바위가 사라지고 감춰져 있던 뻥 뚫린 동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술사들의 기문진(奇門陣)이란. 언제봐도 놀랍단 말이지.’
하지만 이어 중년인이 할 일에 비하면 이 또한 한낱 잡기에 불과했다.
저벅, 저벅, 저벅.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은 동공의 중심부. 바닥에 아로새겨진 기이한 문양의 중앙에 우뚝 선 중년인은 공력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아지랑이가 문양에 닿은 그 순간.
“천주(天主)시여!”
파아아앗!
중년인의 외침과 함께 문양이 빛을 발했다. 어두우면서도 밝은, 형용할 수 없는 검은 섬광이 동공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것은 천둥 같은 고함이었다.
“서천마군(西天魔君)을 뵙습니다!”
“마군을 뵙습니다!”
무감각한 눈빛과 칼날 같은 기세. 새카만 흑의를 걸친 수백의 호랑이 사냥꾼들.
그들을 바라보는 중년인, 서천마군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