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59
#358화
콰아아아아!
푸른 화염을 머금은 창날이 한 사람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히는 화룡의 발톱이었고, 막아서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파멸의 힘이었다.
‘이건…….’
찰나를 쪼개고 쪼갠 시간 속, 서천마군은 생각했다.
‘피할 수 없다.’
몇 걸음 물러나는 정도로 피할 수 있는 일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 물음을 떠올리기도 전에, 수많은 생사결을 치른 육신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쉭-!
허리춤에서 솟구친 검붉은 검강(劍罡)이 푸른 화염과 맞닿았다.
* * *
꽈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전신을 휩쓸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숨이 턱 막힌다.
검과 창이 부딪치며 검붉은 섬광이 터져 나온 다음 순간, 나는 누군가 끌어당긴 것처럼 저 멀리 튕겨 나가고 있었다.
쾅, 쾅, 콰광!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벽면은 등에 닿자마자 카스테라처럼 부서졌다.
나는 눈을 향해 떨어지는 종유석을 쳐 내며 신형을 뒤집었다.
지면에 발이 닿음과 동시에 단단한 돌바닥이 밭고랑처럼 패였다.
카가가각!
빌어먹을. 족히 삼 장은 날아온 것 같다.
나는 밑창이 사라져 버린 가죽 신발을 벗어 던지며, 저 멀리 보이는 놈을 노려보았다.
“시벌놈. 좀 한다?”
“…….”
뿌연 먼지구름 속에서도 딱딱하게 굳은 서천마군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반으로 뚝 부러진 검신과 피투성이가 된 손아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놈이 입을 열었다.
“그 창, 신병이기(神兵利器)로군.”
“이기? 이기는 좀.”
“무슨 무공이었지?”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맞고 뒈져라 신공.”
“혈주가 왜 자네를 두고 건방지다고 했는지,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군. 그리고…… 왜 그리 죽이고 싶어 했는지도.”
서천마군의 두 눈동자가 내 전신을 훑었다.
“자네는 위험해.”
“내가 좀 위험하긴 하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자들이 다 날 피하더라고.”
“청풍, 그토록 젊은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 젊은이도 놀랍긴 하지만 자네만큼은 아닐세.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자네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어. 고작 그 정도 경지로 이 몸에 상처를 입혔으니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청풍이 벽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천마군이 내 무공의 경지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거, 칭찬인가?”
“물론. 하지만 너무 기뻐하지는 말게. 나는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거든.”
서천마군이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을 쥐었다가 폈다. 끈적끈적한 핏물이 흘러내려 바위와 모래를 적신다.
“내가 펼친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의 수법은 완벽했어. 그런데도 완전히 흘려 내지 못했단 말이지. 고작 절정에 머무르고 있는 새파란 청년의 일격을 말이야.”
사량발천근. 넉 냥으로 천근의 무게를 다스린다는 무학의 묘리.
그리고 말마따나 서천마군이 펼친 사량발천근은 완벽했다. 허를 찔린 와중에도 침착하고 정확하게 천격을 흘려 내려 한 시도는 내심 감탄할 정도였다.
다만 놈이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내가 보기보다 힘이 좀 세.”
지금 놈이 상대하는 건 단순한 절정 고수가 아니다.
삼류는 이류를 당해 내지 못하고 이류는 일류에게 무릎을 꿇는 법.
경지가 높아질수록 그 간극은 벌어지고 힘의 크기는 아득해져 간다. 그것이 이 세상. 무림의 상식이었으나, 나는 상식을 거스르는 존재였다.
“물리 초절정 고수라고 불러라.”
“물리 초절정 고수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서천마군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알긴 뭘 알아.”
“오래 살다 보니 온갖 경험을 하게 되더군. 내가 아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에 비하면 자네가 보여 준 모습은 조족지혈일세.”
서천마군은 희미한 웃음과 함께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불과 열흘 전까지 외팔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분명 놈이 말하는 괴력난신의 힘에 저것도 포함되어 있겠지.
“모든 것은 지극히 존엄하신 천주의 뜻대로 이루어질 터. 이제 헛된 희망은 버리고 투항하는 건 어떻겠나.”
“투항?”
“그리한다면 내 직접 천주께 청을 올려 중히 쓰도록 하지. 혈주도 감히 자네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
“이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승낙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나?”
“음, 잠깐만. 지금 막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나는 서천마군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런 내용은 결국 권선징악으로 끝나. 암천인지 청계천인지 하는 곳에서 헛지랄하지 말고 정파로 넘어와라. 검성 할아버지한테 잘 말해서 가볍게 써 줄게.”
“허허, 이것 참.”
서천마군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발걸음을 뗐다.
“유감이군. 혈주와 만나게 됐을 때 후회하지나 말게.”
“나한테 그런 말 했던 새끼들, 지금 죄다 염라대왕 앞에서 대가리 박고 있다.”
“젊어서 그런지 혈기가 지나쳐. 혹시 처음 같은 행운을 기대한다면, 고이 접어 두게. 그 일격이 자네의 전력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말일세.”
“그거 올해 들은 것 중에 최고의 개소린데. 혹시 옆집 누렁이한테 개소리 과외라도 받았니?”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서천마군의 말은 사실이었다.
허를 찌르는 기습은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무기가 부러지고 손아귀가 찢어진 정도로는 부족하다.
서천마군은 나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 그런 놈에게 내 전력을 다한 일격을 보여 주고도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못한 건 뼈아픈 실수다.
‘차라리 처음부터 일섬을 날렸어야 했나.’
처음부터 올인(ALL IN)을 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문득 드는 생각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해도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을 테니까.
모 아니면 도밖에 없는 도박은 피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을 때는 더더욱.
‘그리고…… 아직 모든 패를 다 깐 건 아니지.’
저벅, 저벅.
나와 서천마군. 서천마군과 나. 우리는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처음의 격돌과는 달리 둘 중 누구도 지풍이나 비수를 날리지 않았다.
상대와의 거리를 재며, 손과 발을 주시하며 때를 기다릴 뿐이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을.
팟!
먼저 움직인 것은 서천마군이었다.
단 한 걸음으로 삼 장의 거리를 지운 놈의 손이 흐릿해졌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태를 띤 사검(蛇劍)에는 묵빛 검강이 타오르고 있었다.
‘직접적인 격돌은 무조건 피한다.’
시스템으로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면 그건 깨달음의 존재였다.
초절정으로 가는 깨달음을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내 힘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검강과 끊임없이 부딪친다면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후웅! 쾅!
검강이 지면을 가르자, 굉음과 함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양단되었을 것이 분명한 일격.
나는 물러나며 손을 떨쳤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쉬쉬쉬쉭!
정식으로 비도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어마어마한 힘과 속도로 쏘아지는 비수들은 그 자체만으로 위력을 지닌다.
물론 서천마군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서걱!
가로로 그어진 한 줄기의 선. 검신을 타고 튀어나온 묵빛 검기가 비수들을 가르며 나를 향해 쏘아진다.
비스듬히 고개를 꺾자 뜨거운 열기와 검기가 스쳐 지나갔다.
쾅!
나는 뒤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과 진동을 무시하며 지면을 밟았다.
구구국. 콰직!
단단한 돌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진 다음 순간, 나는 섬광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초절정의 신법이라고 생각될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쾌속한 속도.
“역시!”
외마디 탄성과 함께 서천마군이 검을 내리그었다.
주위마저 어둡게 만들어 버리는 묵빛 검강이 내 전신을 가른다.
순간을 쪼개고 쪼갠 찰나의 순간, 그보다 앞서 내가 마음속으로 떠올린 한마디만 아니었다면 필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민첩, 근력에 각각 포인트 삼십.’
스아아아.
변화는 눈부시도록 빨랐다. 전신이 가벼워지고, 밀도와 탄력이 더해진 근육이 모든 힘을 쥐어짰다.
내 신형이 바람을 밟을 때, 묵빛 검강은 허공을 갈랐다.
콰아아아!
크게 뜨여진 서천마군의 두 눈동자가 보인다.
이미 검을 회수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 놈은 황급히 다른 한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다가오는 창을 움켜쥐려 했다.
놀라운 반사 신경이었다. 한 가지 더 놀란 부분이 있었다면, 내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인벤토리 오픈. 수납.’
쉬익!
강기에 휩싸인 서천마군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았던 창, 백염(白炎)은 지금쯤 인벤토리 어딘가에 고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내가 기다려 왔던 순간이다.
‘화염신장(火焰神掌).’
푸른 불꽃에 휩싸인 오른손이 서천마군의 복부를 후려친다.
퍼벙!
엄청난 열기와 함께 놈의 신형이 허공으로 살짝 떠오른 순간, 나는 준비하고 있던 왼손의 주먹을 휘둘렀다.
‘멸염신권(滅炎神拳).’
콰직!
절벽을 무너트린 일격이, 서천마군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타격감. 놈의 신형이 포탄처럼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쾅! 콰과과광!
지하 뇌옥 전체가 몸을 떨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탈력감과 허기가 밀려온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한 공방이었다. 거친 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후우.”
투두둑.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우수수 떨어지는 돌무더기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단단한 암석 깊숙이 처박혀 있던 서천마군이 흐릿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분명 창을 붙잡으려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네가 믿는 괴력난신이랑 비슷한 거지.”
“쿨럭. 그렇군. 그럼 갑자기 빨라진 것도 그 때문인가?”
“그래. 너 때문에 생목숨 몇 개 날아갔다. 어차피 죽어야 할 놈들이었지만.”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 지하 뇌옥이야. 뭐 이상한 거 못 느끼겠어?”
잠시 침묵하던 서천마군이 대답했다.
“……죄수들이 없군.”
“정답.”
“어떻게 한 거지? 혹시 죄수들을 상대로 흡정대법이라도 사용한 것인가?”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군.”
흡정대법이 상대의 기를 흡수한다면, 나는 경험치를 빨아 먹는다는 게 다른 점이겠지만.
‘놈들 덕분에 60포인트나 벌었으니, 신의 한 수였지.’
사천당문은 죄수들의 단전을 폐하는 대신, 공력을 금제하고 구속구를 채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야 오래오래 살 수 있을 테니까. 더 긴 시간 고문을 통해 지옥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 덕분에 천력마를 제외한 십여 명의 죄수들은 내 영양분이 될 수 있었다.
“쿨럭. 흡정대법이라. 그랬군, 그랬어.”
“이제 궁금증이 좀 풀렸냐?”
“물으면, 대답해 줄 텐가?”
“응. 그러니까…….”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서천마군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같잖은 발연기 집어치우고 일어나라. 피도 안 나오는 기침도 좀 작작하고.”
“이것 참.”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던 서천마군의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아무래도 난 이런 것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야.”
“……후.”
시벌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