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66
#365화
‘이런 느낌이었나.’
초절정. 하늘에게 선택받은 위대한 무인들의 영역.
나는 지금껏 허락되지 않았던 그곳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고, 끝없는 자유를 느꼈다.
지금 이 기분은 뭐랄까…….
‘끝내주네.’
어느새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띠링. 띠링. 띠링.
– [열화신공]의 경지가 팔 성으로 상승했습니다.
– [화룡신창]의 경지가 팔 성으로 상승했습니다!
– [염화일로]의 경지가……!
각종 무공의 상승, 그에 따른 레벨업과 업적 달성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전신 깊숙한 곳에서 용암과도 같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나와 적천강을 향해 덮쳐 오는 어둠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죽어엇!”
비명과도 같은 외침.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사람 좋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던 중년인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살심(殺心)에 사로잡힌 괴물만이 있을 뿐이다.
슈와아아악!
광폭한 살기에 휩싸인 묵빛 검강이 낙뢰처럼 내리꽂혔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도사린 파괴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너도 사람이었구나.’
지금의 서천마군은 부상과 피로로 이미 지쳤고, 필요 이상의 분노는 마음을 흩트려 놓았다.
마음이 흔들리면 기운도 흔들리는 법. 바늘로 바위를 뚫을 수는 없어도 모래 알갱이 사이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스윽.
단 한 걸음. 발끝이 지면을 밀자 공간이 사라졌다.
어느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내 뒷모습에, 적천강이 다급한 음성을 토해 냈다.
“이 녀석, 당장 물러…….”
적천강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백염의 투명한 창날 위로 솟구친 청백색의 기운 때문이었다.
극양(極陽)의 열기가 실린 그것은 실타래가 엉키듯 서로를 향해 이어지고, 뭉쳐졌으며 마침내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름답고도 파괴적인 공력의 집합체. 위대한 무인들의 전유물.
‘강기(罡氣).’
드디어 여기까지 이루었다.
나는 환희로 몸을 떨며 덮쳐드는 어둠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쉬익-!
허공에 그어지는 한 줄기의 선. 화살처럼 쏘아진 청백색의 불꽃이 어둠과 맞닿는다.
천격(天格).
화룡의 발톱이 묵색 강기를 찢어발겼다.
콰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 사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흩어지는 어둠. 그리고 분노와 경악으로 일그러진 서천마군의 얼굴을.
강기가 깨져 나간 여파로 내상을 입은 놈의 입가에서 핏물과 고함이 쏟아져 내렸다.
“네놈이, 네놈이 감히-!”
“뭐, 씹새꺄.”
넌 이제…… 뒤졌어.
나는 환하게 웃으며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그런 나보다 한발 앞서 서천마군을 향해 쏘아지는 누군가의 신형이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 잠시 흐트러졌던 기운을 수습한 적천강이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들으마.
짧은 전음이 뒤를 이었다.
– 우선 저 쌍노무 새끼부터 족치고.
좋아요를 누르고 싶어지는 댓글, 아니 전음이었다.
* * *
서천마군은 경악했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일백여 년의 세월. 수 갑자의 공력.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부정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이십 대에 불과한 핏덩이에게!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서천마군의 뇌리를 스친 것은 의문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괴력난신(怪力亂神).’
약관을 갓 넘긴 청년이 강기를 구현해 냈다. 그뿐인가, 거인의 힘과 바람의 빠르기를 지녔다.
실로 귀신의 도움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죽는 것은 너희가 될 것이다.’
으득, 이를 악문 서천마군의 발이 땅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서 강대한 기파가 넘실거리며 터져 나왔다.
“오너라!”
서천마군은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아니, 그는 실제로 상처 입은 호랑이가 맞았다. 오랜 전투로 누적된 피로와 소모된 공력. 한쪽 손목은 뽑혀 나갔고 발목은 부러졌다. 한순간의 오판으로 인해 핏덩이를 상대로 내상마저 입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다.
“나는 천주의 충직한 종, 그분께서 함께하시는 한, 죽음마저 피해 가리라!”
장렬함마저 느껴지는 서천마군의 외침 뒤에, 늙고 젊은 두 개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이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암천이 아니라 암천지 같은데요. 야, 이만의 개새끼 해 봐.”
적천강과 진태경.
바람처럼 쇄도해 온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팔을 뻗었다.
꽈아앙!
굉음과 함께 가공할만한 기파가 휘몰아친 다음 순간, 한 사람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쿨럭.”
엄청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낸 서천마군의 신형이 작게 휘청였다.
평소였다면 모를까,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에게 있어 두 초절정 고수의 합공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서천마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한 놈부터 쓰러트린다.’
귀신의 도움을 받아 힘이 넘치는 젊은 제자와 부상의 여파에 시달리는 늙은 스승.
서천마군이 선택한 쪽은 당연하게도 후자였다.
“죽엇!”
서천마군의 다리가 채찍처럼 휘둘려졌다.
퍼엉!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날아든 발길질을 손으로 막아 낸 적천강이 침음성을 흘린 그 순간이었다.
“감히 누굴 건드려.”
뻐억! 으적!
번개처럼 턱을 올려친 창대에 눈앞이 번쩍인다. 호신강기로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엄청난 힘에 턱이 다물려지고 혓바닥이 잘려 나갔다.
고통과 충격을 느끼며 붕 떠오른 서천마군을 기다리는 것은 화염에 휩싸인 두 손이었다.
“노부가 화왕이다. 이 호로새끼야!”
적천강이 걸쭉한 욕설과 함께 화염신장을 내질렀다.
퍼벙!
안 그래도 위태롭던 호신강기가 흩어졌다. 극양의 열기는 어느새 거미줄처럼 금이 간 흑룡갑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불에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솟구쳤다.
“쿠웨에에엑!”
내장 조각이 섞인 검은 핏물이 뿜어졌다. 그리고 핏물이 바닥에 닿기도 전, 짧은 파공성이 서천마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쉬쉬쉬쉬쉭!
“……!”
실핏줄이 터져나간 서천마군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수십 개의 창영(槍影).
허공을 종횡으로 태우며 날아드는 청백색 불꽃에 서천마군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츠츠츠츠츠!
검신을 타고 솟구친 묵빛 검강이 창영과 부딪쳤다. 일격, 일격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가 지하 뇌옥을 뒤흔들고 서천마군의 내부마저 진탕시켰다.
“크허업……!”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눈팔 겨를이 있느냐.”
서늘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적천강의 멸염신권(滅炎神拳)이 서천마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우직, 콰드드득!
십왕(十王) 중에서도 제일이라 불리는 화왕 적천강이 전력을 다해 펼친 일권이다.
막대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흑룡갑의 일부가 호신강기와 함께 깨져 나갔다. 살이 타고 뼈가 으스러졌다.
“크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서천마군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남아 있는 모든 공력을 끌어 올려 사방에 퍼부었다.
쾅! 콰과과광!
지면, 천장, 기둥과 암석. 유형화된 묵빛 강기는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쏘아졌다. 강기에 닿는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그러나 정작 목표가 되어야 할 두 사람은 강기의 그물을 찢고 서천마군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서걱!
투명한 창날에 맺힌 강기는 서천마군의 상반신을 비스듬히 갈랐고, 화염에 휩싸인 두 손바닥은 무너지려는 서천마군의 가슴을 후려쳤다.
퍼벙! 꽈앙!
“……!”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던, 아득한 고통과 함께 포탄처럼 튕겨 나간 서천마군의 신형이 단단한 암석을 부수고 벽면 깊숙이 처박혔다.
“끄억, 꺽.”
서천마군은 기괴한 신음과 함께 눈을 깜빡였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서천마군은 멍하니 생각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강자로 군림했다. 약자를 짓밟고 그들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며 즐거워했다.
평범한 무림인은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지만, 서천마군은 아니었다.
천하에 그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과 유일하며 존엄한 존재, 천주(天主)뿐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감히 네놈들 따위가 내 종을 죽이려 드느냐.”
피에 젖은 입술 사이로 사막의 모래알처럼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천마군의 목소리에는 어떤 고통도, 이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한 혈광(血光)을 띤 두 눈동자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서천마군의 것도 아니었다.
“이 몸이 하늘로부터 지상에 임하니, 가장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무릎을 꿇어라.”
그 순간, 적천강과 진태경이 벼락같은 외침을 토해 냈다.
“설마……!”
“천주!”
드드드득!
서천마군, 아니 잠시 서천마군의 몸을 빌린 그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가공할 기운이 땅과 천장을 뒤흔들었다.
뽑혀 나간 팔의 단면에서 묵색 기류가 촉수처럼 일렁이고, 폭포수 같은 피를 쏟아내는 상흔을 조금씩 메우고 있었다.
“나를 받들라. 전능한 권능 앞에 복속하라.”
투둑, 툭.
서천마군의 몸뚱어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의 등 뒤로 유형화된 공력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모든 것이 정지했다. 진동도, 바람도, 흩날리던 먼지와 공기의 흐름조차도.
그렇게 모든 것이 정지된 세상 속에서, 한 줄기의 어둠이 쏘아졌다.
사아아아!
소리조차 없이 다가온 어둠이 두 사람을 집어삼킨다.
아니, 집어삼켰을 것이다.
찰나를 쪼개고 쪼갠 시간의 흐름을 가르고 뻗어 나온 창날이 아니었다면.
고오오오옹-
바람과 기운이 창날을 중심으로 응축되고, 이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청백색 화염을 머금은 창날은 모든 것은 지우며 나아갔다.
일섬(一殲).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 * *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며 찾아온 것은, 전신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과 탈력감이었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다.’
팔과 다리, 손가락과 한 가닥의 근육까지. 내 신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초인적인 힘으로 버텼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놈보다 먼저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좀 뒈져라, 시벌놈아.”
나는 고개를 들어 서천마군, 아니 서천마군의 몸뚱어리를 빌린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까맣게 타들어 간 전신과 뻥 뚫린 가슴을 확인한 놈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푸스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가 되어 흩날리는 손가락.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놈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진다.
그러나 남의 몸을 빌린 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웃음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나는 간신히 중지를 치켜올렸다.
“좆이나 까 잡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흩날리는 잿가루 너머, 퀘스트 성공과 레벨업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싸움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아니, 이미 쓰러지는 중이다.
덥석.
그런 내 어깨를 붙든 것은 주름진 누군가의 손이었다.
화왕 적천강. 그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자, 문득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어땠습니까?”
“뭐?”
“일섬. 끝내줬죠?”
걱정으로 가득하던 적천강의 얼굴이 스르륵 풀렸다. 이내 잔잔한 미소가 맺힌다.
“그래, 끝내줬다.”
그거면 됐습니다.
나는 새어 나오지 않는 대답과 함께 눈을 감았다. 지하 뇌옥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