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90
#389화
한파가 주춤한 어느 날이었다.
비로소 수능에서 해방된 수험생들은 재수를 준비하거나 놀기 바빴고, 직장인들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을 드리운 채 대중교통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탄이 떨어졌다.
[긴급 속보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중대 발표]30분 남짓 길이의 영상은 무거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샤오 양 주석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9대 국가주석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일원으로서, 쓰촨성에서 벌어진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아시아 전체를 뒤흔들 폭탄이었다.
* * *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난 후에도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대격변 이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에 쓰촨성에서 벌어진 몬스터 웨이브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샤오 양 중국 주석은 공식 계엄령을 선포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하에 평화 유지군이 전선에 투입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
그중에서도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중국과 인접한 아시아의 국가들이었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도 국내 최대 포럼 사이트의 헌터 이슈란은 숯불 위 가마솥처럼 들끓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상황 요약해 준다.
이 중에서 안보리 중대 발표 영상 안 본 놈은 없겠지? 혹시 있으면 나가 뒤져야 됨. 이거 진짜 비상 상황임. 북쪽 수령 놈도 이미 아이튜브로 다 보고 여기 게시판도 눈팅 하고 있을 듯.
아무튼 지들 목숨 걸린 일까지 요약해 달라는 벌레 새1끼들 하도 많길래 참다 참다 쓴다.
1. 쓰촨성에서 원인 불명의 대규모 웨이브 발생. 현재 추정 사상자만 최소 30만.
물론 일주일 전 이야기고 지금은 비교할 수도 없겠지. 사실상 통계가 불가능하다고 봄.
2. 중국 정부가 나섰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미쳤음.
아크 리치라는 놈을 중심으로 최소 수만에 달하는 몬스터 군단 결집.
인민해방군, 공군 개 털리고 공안 무력부 헌터들도 2천 명 넘게 실종(마법 방해로 통신 두절, 인공위성 감시 무력화돼서 생존 여부도 확인 못 함.)
3.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몇몇 국가에 연락, 사태를 조속히 진압하기 위해 몇몇 S급 헌터들 고용. 이틀 전에 UN 평화 유지군까지 전선 투입해서 분전하는 중.
전투 현황은 안보리에서 업데이트하고 있으니까 관심 있는 놈은 여기 들어가 봐라.
(주소 첨부.)
아래부터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읽지 않아도 별 상관없음.
4.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특히 중국 본토는 생지옥임.
쓸 만한 헌터들 끌어다가 전선에 투입하는 통에 관리가 소홀해진 다른 게이트 마력 수치도 불안하고, 모든 방면에서 초인플레이션 현상 일어나고 있음.
이게 진짜 무서운 게, 만약 전선 무너지고 몬스터 군단이 사천 밖으로 진격하게 되면…… 그 뒤는 상상에 맡긴다.
5. 그러니까 다들 ㅈ 되기 전에 마트 가서 비상식량 사 놔라. 물론 사재기로 부당이익 취하란 소리는 아님.
6.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워서 국뽕 추가함.
우리의 시벌좌랑 아레스 길드 정 드래곤이 전선에서 활약 중이란다. 지금까지 빨던 대로 열심히 빨아라.
진짜 끗.
올라온 지 몇 시간 만에 조회수 10만을 돌파한 해당 게시글은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네티즌들의 댓글로 불타올랐다.
(Best댓글) 글 내용대로 심각한 상황은 맞는데, 글 작성자가 너무 분위기 쎄게 잡은 것도 있음ㅋㅋ S급 헌터들에 일반 헌터만 10만 명 참전했다는데 뭐가 그리 걱정임. 그리고 군대는 놀고 있냐?
└ ㅇㅇ걔들 지금 정비대에서 놀고 있음.
└ ……?
└ 뉴스 못 봤냐. 이번에 중국군 장비 죄다 고장 나서 최대 규모 군납 비리 드러난 거. 최소 수십조 원 규모라고 함. 발 묶인 사단이 한두 개가 아니라더라.
└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 같은데.
└ 제발 수통 좀 바꿔 줘라. 이 시팔 샛기들아. 작년에 전역했는데 왜 수통에서 아직도 노르망디 물맛이 나냐. 한 모금 마시면 내 이름이 김철수인지 제임스인지 헷갈리더라.
└ 김 상병님. 오늘 석식 명태 순살 조림입니다.
└ 안 먹어 ㅅㅂ
└ 그나저나 장비 고장 때문에 군대 발 묶인 것도 문제긴 한데, 걔들이야 뭐 남아도는 게 병력이라 ㄱㅊ. 어차피 몬스터한테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헌터들이니까. 사실 그거 말고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음.
└ 뭔데?
└ 몬스터 개체 수 10만 뚫음.
└ ??
└ ?????
└ 무슨 10만이야 ㅅㅂ; 개소리하지마.
└ 개소리가 아니라 유엔 안보리에서 발표한 오피셜임. 게시글 링크 타고 가서 확인해 봐라. 5분 전에 떴다.
└ 와…… 시발.
└ 윗 댓글 반응 보니까 진짠가 보네 ㅁㅊ;
└ 아니. 그냥 죄다 영어라 뭔 소린지 몰라서 그런 건데. 지금 가글 번역기 돌리고 있음.
└ 미친놈인가.
└ 야 근데 진짜 몬스터 10만 뚫었으면 큰일 난 거 아니냐. 지금까지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 최대 규모라고 해 봐야 천 마리 안 넘었던 것 같은데;
└ 당연히 이번 웨이브도 초기에는 이 정도 규모 아니었지. 근데 저쪽에 아크 리치가 있는 게 문제야. 그냥 리치만 나타나도 큰 사건인데, 쟤는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최상위 네임드 몬스터임. 사실상 현재 싸우는 몬스터들 대부분은 아크 리치가 부활시킨 언데드라고 해야 맞다.
└ 아크 리치 : “계왕권 100배.”
└ 그럼 아크 리치만 죽이면 되는 거 아님? 몬스터 대부분이 언데드면 조종자만 죽이면 끝나잖아.
└ ???????
└ 아크 리치를 누가 어떻게 죽이는데, 시벌 놈아. 키보드로 오러 블레이드 쓰는 새끼가 입만 살아 가지고.
치열한 갑론을박.
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고,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종말론과 낙관론이 판을 치는 와중에도 새로운 소식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Best댓글) 안보리 오피셜, 한 시간 전 동서부 쪽 전선 뚫림. 다행히 파이 첸이 지원군으로 와서 피해 확산은 막았다고 함.
└ ㄷㄷ진짜네.
└ 동서부 전선이면 우헤이싱 있는 곳 아님?
└ 맞음. 중국 약쟁이 걔.
└ 근데 왜 뚫려. S급 헌터잖아.
└ 중국산 S급 헌터라 그럼.
└ 아…….
└ 파이 첸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파이 첸은 대격변 출신 웰메이드 헌터라 그런가.
└ 파이 첸은 부모님이 홍콩 국적이라 홍콩산임.
└ 윗 댓글 품질 관리 위원회에서 일하냐? ㅈㄴ 명쾌하네.
└ 그런 김에 한국산 헌터들 소식은 없냐.
└ 정 드래곤은 북부 전선 맡아서 우세 점하는 중이고, 시벌좌는 서부 전선에서 두세 번 승리했다고는 들었는데 그 후로 소식 없는 거 보니까 현상 유지 중인 듯.
└ 음…… 이정룡 실력이야 뭐 다 아니까 걱정은 안 하는데, 시벌좌는 무사하려나. 아직 A급 헌터잖아.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직도 시벌좌를 A급 취급하는 순진한 놈이 있눜ㅋㅋㅋㅋㅋㅋㅋㅋ현직 A급 헌터로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진태경 쟤는 그냥 괴물임ㅋㅋ
야야ㅇ야야야!! 지금 안ㄴ보리에서 서ㅂ 전선 현황 발표함!
└ 오, 시벌좌 소식 오랜만이다.
└ 엄청 다급하네. 서부 전선? 뭐라는데?
└ 뚫렸다는데?
└ 어?
└ 어?
└ 뭔 소리야. 설마 시벌좌 죽었음……?
└ 잠깐만. 이게 뭔 내용이지. 얘들아 나 다시 보고 온다. 메인에 떴으니까 너희도 직접 가서 보셈.
└ 아. 갑자기 개후달리네; 당장 들어가 본다.
└ ㄱㄱㄱㄱㄱ
신나게 댓글을 작성하던 네티즌들은 황급히 유엔 안보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일시적으로 과도한 접속자가 몰린 탓에 트래픽 초과로 기다리길 한참. 마침내 메인 화면에 뜬 발표 자료을 본 그들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몬스터 군단과의 대치 상황을 표시해 놓은 지도. 타원형의 전선을 형성한 그곳에는, 송곳처럼 움푹 파고든 서부 전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방금 확인하고 왔다. 진짜 뚫렸네.
└ 진태경 죽음? 피해 얼마나 됨?
└ 아니, 몬스터 쪽이 뚫렸다고.
└ ??
└ ???
└ 돌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업데이트가 못 따라간 거였음.
└ ……말이 되냐?
└ 입 다물고 셔터 내려라. 오늘 주모 제삿날이다…….
* * *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전장은 혼잡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놈들이 뿜어내는 짙은 살기와 악취가 묻어 나왔다.
“시부럴 거. 많이도 모였네.”
내 중얼거림에 곁에 서 있던 최 팀장이 대답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군요.”
서부 전선에 투입되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지 나흘째. 항상 말끔하던 최 팀장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핏물과 먼지로 뒤덮인 그는 침착하면서도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언제 시작합니까?”
“글쎄요, 그건 우리 꼬마 사령관님 의견을 들어 봐야지. 안 그래?”
마지막 물음표는 최 팀장을 향한 것이 아니다.
줄곧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던 스물한 살의 ‘꼬마 사령관’. 샤오 쉔이 대답했다.
「저는 진 선생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녀석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직도 그놈의 선생님 타령은. 나한테는 먼저 말 놓으라고 하던 녀석이. 차라리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너만 괜찮으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부하들 보는 앞에서 이래도 되는 거냐? 너 이제 소장 진급 한다며?”
샤오 쉔이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혀, 혀, 형님!」
싸울 때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데, 평소에는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지 모르겠다.
나는 뒤에 정렬한 공안무력부 소속의 헌터들을 바라봤다. 자그마치 천여 명에 달하는 숫자.
뜨겁게 달아오른 눈동자에는 강자를 바라보는 선망과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건 샤오 쉔이지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혀, 형님.」
“명령이라.”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독수리가 우리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오늘도 느낌이 좋다.
“따라와.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
“지금 당장.”
나는 대답과 함께 발을 내디뎠다.
쩌저적.
발끝에 실린 만근의 힘에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움푹 꺼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쾅!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나는 빛줄기가 되어 쏘아졌다.
‘염화일로(炎火一路).’
추위를 머금은 바람이 달아오르며 열풍으로 변한다.
땅, 바람,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그때, 등 뒤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격! 돌격하라!」
「중화의 후예여! 인민이여!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
두두두두!
캬우우우우!
천지에 울려 퍼지는 인간의 함성과 몬스터의 괴성. 거대한 진동이 지축을 떨어 울린다.
그 혼란의 입구 속에서, 나는 손에 쥔 백염(白炎)을 힘차게 휘둘렀다.
콰아아아!
창날에서 솟아 나온 극양의 강기가, 막아서는 모든 것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