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08
#407화
다니엘 이노우에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네이비 씰(Navy SEALs) 대원이었던 그는 서른 살의 나이에 A급 헌터로 각성, 전역 후 민간 군사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용병 일은 그럭저럭 이노우에의 적성에 맞았다. 한 해의 절반을 중동과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머물러야 했지만 엄청난 보수와 장기간의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이번 중국에서 터진 몬스터 웨이브에 참여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헤이, 닌자. 무슨 생각해?」
불쑥 말을 건네는 동료의 질문에 이노우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닥쳐, 샘. 그놈의 닌자 타령은 지겹지도 않냐?」
「뭐 어때. 이쯤 되면 네가 익숙해져야지.」
「지긋지긋해서 그런다. 너도 일곱 살 때부터 닌자, 사무라이라고 불려 봐.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
「왜, 난 좋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양키 자식.」
「그렇게 불러 주면 고맙지. 난 양키스 팬이거든.」
자그마한 체격의 백인이 이노우에의 투덜거림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제 받아들이라고. 이 정도면 운명이야. 네가 가진 능력도 완전히 닌자잖아.」
「……제기랄.」
이노우에는 작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동료의 말마따나 그가 각성 후 부여받은 능력은 은신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첩보와 요인 암살의 스폐셜 리스트가 되었지만, 닌자라는 이미지까지 완전히 굳혀져 버렸다.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며? 아기 이름은 나루토 어때?」
이노우에는 계속해서 깐죽거리는 동료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네 아들 이름을 사스케로 하면 생각해 보지.」
「오, 나쁘지 않은데?」
두 사람의 대화에 주위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금 전만 해도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풀어지자, 이노우에와 그의 동료도 서로를 향해 슬쩍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이미 수년째 호흡을 맞춰 온 단짝이다. 방금의 대화 역시 임무 시작 전 긴장을 풀어 주려는 꽁트에 가까웠다.
‘긴장이 너무 과하면 오히려 실수를 연발하기 마련이지.’
전투도 마찬가지지만 지금과 같은 첩보 작전은 더더욱 그렇다.
통신도,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미지의 땅. 더군다나 상대는 멍청하고 잔인하기만 한 반군 지도자가 아니라, 전대미문의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아크 리치(Arch Lich)였다.
‘전황이 아무리 유리하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야.’
내심 뇌까린 이노우에가 스무 명의 첩보 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 2인 1조로 나누어 침투한다. 의사 전달은 수신호로, 위급할 시 소지한 신호탄을 쏴. 각자의 목적지와 루트는 모두 빈틈없이 숙지했겠지?」
「예.」
「좋아, 그럼…… 세 시간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해산.」
작전 개시를 알리는 이노우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첩보 대원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본 파트너, 샘이 턱짓했다.
「슬슬 우리도 가 볼까, 닌자?」
「그래. 이 속 편한 양키 놈아.」
「너무 그러지 말라고. 네 실력은 최고야. 세 시간 후면 아크 리치가 입고 있는 팬티 색깔까지 알아낸 다음 복귀하고 있겠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나직한 한숨을 내쉰 이노우에는 걸음을 내디뎠다. 쑤이닝시 전역을 뒤덮은 희끄무레한 안개가 축축하게 그의 전신을 감싸 왔다.
* * *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다섯 개 전선의 진격이 멈췄다.
아크 리치가 있는 쑤이닝시에서 200km 떨어진 지점. 재정비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우리에게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한국 친구들, 그동안 잘 지냈어?」
주위에서 상당한 기의 파동이 느껴진다 싶더니, 역시 그였다. 나는 매직 존슨과 주먹을 부딪치며 대답했다.
“그럭저럭요.”
「진. 사랑스러운 미라클 보이. 보고 싶었어.」
“죄송한데 사랑스러운, 은 빼 주실래요?”
「그럼 크레이지 보이로 할게. 미친 짓을 벌인 건 사실이니까.」
매직 존슨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더할 나위 없이 영웅적인 행동이기도 했지. 여기 있는 최도 마찬가지고.」
[영웅의 혼]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있던 최 팀장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미스터 존슨.”
「최, 너무 그러지 마. 딱딱해지잖아.」
“……!”
“……!”
「물론 분위기가.」
매직 존슨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 정도면 우리의 반응을 즐기는 게 확실하다. 덩치에 안 맞게 장난기가 넘친단 말이지.
뭐, 우리도 이제는 모든 것이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매직 존슨을 만날 때마다 항상 케겔 운동을 하던 최 팀장도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총사령부로부터 긴급 호출. 중요한 사안이야.」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데자뷰 같은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전개 아니에요?”
「걱정할 것 없어, 진. 지난번과 같은 일은 없을 테니까.」
지난번과 같은 일이란, S급 헌터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본진이 개 털리는 상황을 뜻한다.
뭐, 지금은 전선 간의 간격이 좁혀진 덕분에 모여봤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서 괜찮겠지만.
‘굳이 통신으로 하지 않는 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거겠지.’
연합군의 연이은 승리와 몬스터들이 물러날수록 아크 리치의 권역은 쑤이닝시까지 축소되었고, 현재 지점에서는 통신과 마법 모두 원활한 수준이다.
“뭐 때문에 모이는 건지 알고 계세요?”
「아니. 하지만 장담컨대 그리 유쾌한 사안은 아닐 거야. 내 목숨을 걸지.」
“…….”
아니, 제발 그딴 걸로 목숨 걸고 장담하지 마. 우리에게 좀 더 희망을 심어 줘.
하지만 세상 당당한 매직 존슨은 나와 최 팀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쨌든 이미 모두 모여 있어. 너희가 마지막 손님이야.」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존슨.”
최 팀장은 별 망설임 없이 손을 맞잡았고, 이미 매직 존슨표 텔레포트를 겪어 본 나는 눈꺼풀을 떨며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제발 안전 운행 부탁드립니…… 갸아아아아악!”
쏴아아악.
전신이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는 새로운 공간으로 내팽개쳐 졌다.
“갸아아아아…….”
“…….”
“…….”
젠장. 하필이면 여기냐.
말없이 나를 응시하는 십여 쌍의 눈동자. 황당함이 담긴 S급 헌터와 중국 고위 장성들의 시선에, 나는 비명을 멈추고 슬그머니 빈 자리에 앉았다.
“회의 시작 안 합니까?”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웨이펑후 국방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소.」
이어진 회의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주제는 하나. 바로 첩보대의 유일한 생존자가 전해 온 정보였다.
「첩보대를 맡은 다니엘 이노우에는 예정된 작전 시간을 훌쩍 넘긴 여덟 시간 만에 쑤이닝시에서 탈출했고, 3만여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 군단을 발견했다고 전했소.」
3만이라…….
엄청난 대병력이긴 하지만, 예상했던 범위 안에 충분히 들어가는 수치다.
아크 리치의 몬스터 군단은 일주일 전 패퇴한 것을 시작으로 속절없이 물러나기만 했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병력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국방부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구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웨이펑후 국방부장에게 저렇게 편하게 하오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리고 이정룡은 나와의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는 사람이다.
「이 선생이 하신 말씀이 맞소. 직접 목격하여 산출한 것으로만 추정 3만이며, 실제 숫자는…….」
“두 배,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군.”
「그렇소.」
“……음.”
곳곳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을 위해 비축해 놓은 힘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 정도였을 줄이야.
웨이펑후는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몬스터가 중, 하급일 거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웨이펑후.」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파이 첸의 한 마디에 필릭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병력이 아군에 합류하긴 했지만, 승리를 확신하긴 어렵지.」
「빌어먹을. 그놈의 몬스터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군.」
우헤이싱의 투덜거림에 나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왜 웃지?」
“웃기니까 웃지. 인마.”
「뭐?」
“누가 들으면 네가 엄청 열심히 싸운 것 같잖냐. 일주일 전 몬스터 군단 습격 때 일찍 가면 위험할까 봐 우회하려고 했던 새끼가.”
“……!”
표정이 볼만하다.
모를 줄 알았나 본데, 이미 우헤이싱의 추태는 모든 전선에 소문이 쫙 퍼진 상태였다.
“너도 고생한 건 알겠는데, 나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징징거리진 마라. 보면 짜증 나려고 하니까.”
「이익……!」
“자영업자신가. 왜 이렇게 자꾸 이익거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우헤이싱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지만, 놈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패배의 뼈아픈 기억은 오래 간다.
평생 남들에게 떠받들어졌던 온실 속 화초는 찬바람에도 시들기 마련이다.
물론 전혀 다른 종류의 화초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 내 옆자리에 있는 최 팀장이라든지.
“두 분 다 그만하시지요.”
차분한 목소리로 만류하는 최 팀장을 바라본 우헤이싱이 눈깔을 부라렸다.
「지금 나한테 명령한 거냐?」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유감입니다, 우헤이싱.”
「너…….」
자신의 기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하는 최 팀장의 모습에, 우헤이싱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앉아.”
「……!」
송곳처럼 쏘아 보낸 기세에 놈의 신형이 덜컥 굳었다.
놀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다른 S급 헌터들의 시선도.
나는 깊게 가라앉은 이정룡의 눈빛을 힐끗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착각할까 봐 말하는데, 명령 맞아.”
「너, 너……!」
“앉아. 이게 마지막이다.”
쏴아아악!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파에 우헤이싱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놈은 무림에서도 천재 축에 드는 놈일지도 모른다.
아니, 맞다. 30대에 S급 헌터가 됐다는 건 그만한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반쪽짜리지.’
각성은 불로소득이다. 놈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스무 살이 되자마자 뛰어난 능력을 부여받았고 마나를 얻었다.
거기에 무림인들처럼 공력을 쌓고 초절정의 무공을 익힌다?
글쎄…… 무공을 익힌다면 기술적인 측면이 보완되겠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떨어져 나갈 게 분명하다.
가진 바 재능에 비해 노력과 의지는 삼류 수준이니까.
“그만하지.”
팽팽한 분위기를 무너트린 것은 이정룡의 부드러운 중저음이었다.
환갑이 훌쩍 넘었음에도 미중년의 모습을 한 구렁이가 웃음기 띤 얼굴로 나를 응시한다.
“성장한 게 실력뿐인 줄 알았더니, 살기(殺氣)도 짙어졌군.”
나는 무감각한 눈으로 마주보며 대꾸했다.
“이곳저곳에서 구르다 보니 독기가 생기더라고요.”
“서부 전선이 유독 치열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서부 전선 오쉴?”
“정중하게 거절하겠네. 오죽 치열했으면 셋밖에 살아남지 못했을까.”
“……!”
“늙을수록 겁이 많아져서 탈이야. 허허.”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다.
그날의 참혹했던 전장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어느샌가 내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아군끼리 적대하는 것보다 생산적인 고민을 해 보세. 마지막 전투에 대한 대책이 좋겠군. 진태경,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나직하게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이정룡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맞다, 지금은 당장 코앞까지 닥친 전투를 대처해야 할 때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결사대.”
“결사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누군가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불안한 표정이다.
하지만 내 이성과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피해를 최소화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최정예를 모아 머리를 칩시다.”
아크 리치가 소멸하면, 언데드 군단은 허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