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14
#413화
후우웅, 쾅!
거대한 대검이 지면을 박살 낸다. 정확히 반 뼘 차이로 공격을 피해 낸 우헤이싱의 신형이 번개처럼 솟구쳤다.
푸푹!
오우거의 턱 밑을 파고든 검날이 정수리 위로 삐죽 솟아올랐다.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일격. 박혀 있는 검을 뽑아낸 우헤이싱이 쓰러지는 오우거의 어깨를 밟으며 몬스터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손에 들린 검은 허공에 무수한 선을 그려 내고 있었다.
‘십이혈라검(十二血羅劍).’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을 두고 혹자는 천인공노할 행위라며 손가락질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마오쩌둥의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우헤이싱의 조부는 화려하게 비상하며 천문학적인 재산을 착복했고, 홍위병이었던 아들을 징검다리 삼아 각종 문화재와 고서(古書)를 빼돌렸다.
우헤이싱이 익힌 십이혈라검 역시 당시 수중에 넣은 수많은 고서 중 하나였다.
쉬쉬쉬슁!
열두 갈래의 그물이 펼쳐져 사방 십여 미터를 뒤덮는다.
붉은 오러의 그물이 피부와 살을 가르고 뼈를 잘랐다. 수십여 마리의 상위 몬스터가 조각나며 허물어졌다.
실로 S급 헌터다운 무위. 잔뜩 고무된 우헤이싱이 소리쳤다.
「홍위방(紅衛幇)은 뭘 하고 있나! 전부 쓸어 버려라, 이 개자식들아!」
「옛!」
강렬한 마나가 실린 외침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우헤이싱의 가문에서 직접 창설하고 사병으로 육성시킨 삼백여 명의 정예 헌터들은 망설임 없이 빈틈을 비집고 달려들었다.
쉬쉬쉬쉭! 퍼걱!
쐐액! 서걱!
– 크륵, 커흐윽!
「으아아악!」
사방에서 인간과 몬스터의 비명, 핏물이 뒤섞였다.
우헤이싱이 마지막까지 아껴 둔 홍위방의 헌터들은 분명 강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적 역시 상위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정예 몬스터들은 짙은 안개 사이를 누비며 헌터들을 상대했다. 수준을 떠나 서너 배에 달하는 머릿수.
그러나…….
「이 더럽고 냄새나는 놈들이 감히!」
푸푸푸푹!
우헤이싱이라는 S급 헌터의 존재는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비록 방탕한 행실과 성격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는다고는 하나, 그는 최고의 환경에서 성장한 한 사람의 천재였다.
게다가 우헤이싱은 처음 전선에 투입되었을 때와는 달리 더욱 노련해졌고,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을 겪으며 실력 역시 진일보한 상태였다.
‘할 수 있다! 나는 우헤이싱이다!’
우헤이싱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고양감을 느끼며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수만에 달하는 몬스터 군단.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거나 지치면 고가의 포션을 물처럼 들이켰고, 홍위방 헌터를 방패 삼아 몸을 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붉은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누구도 나를 무시 못 하게 만들어 주마. 레이페이. 빌어먹을 빵즈 놈. 그 누구도!’
우헤이싱이 치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갈던 그 순간.
쐐애애애액! 뻐억!
눈부신 속도로 날아온 한 자루의 창이 서너 명의 헌터들을 꼬치처럼 꿰며 지면 깊숙이 틀어박혔다.
지금과 같은 전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3m 길이의 돌격창.
황급히 고개를 돌려 적을 확인한 우헤이싱이 눈을 부릅떴다.
「데스나이트(Death Knight)!」
두두두두!
해골마에 올라 전장을 가로지르는 그것은 분명 데스나이트였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두 기.
새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데스나이트가 마상에서 창을 치켜세웠다.
「모두 주의……!」
쐐애애애액! 뻐엉!
경고를 내뱉기도 전에 허공을 찢으며 쏘아진 두 번째 돌격창이 한데 뭉쳐 있던 헌터 예닐곱을 관통했다.
최고급 갑옷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격에 팔다리가 솟구치고 상반신을 잃은 몸뚱어리가 털썩 쓰러진다.
난데없는 데스나이트의 등장. 이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홍위방의 헌터들이 굳어 버린 그때였다.
– 다.크. 바.인.(Dark Vine)!
쇠로 긁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가 퍼져나감과 동시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쩌쩍, 콰드드드득!
단단하던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부터 검은 넝쿨이 솟구쳤다.
마력을 머금은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인간의 팔과 다리를 붙잡거나, 혹은 갑옷으로 가리지 못한 빈틈을 파고들며 꿰뚫었다.
쉬리리릭! 푸푸푹!
「크아아아악!」
「흑마법! 흑마법이다!」
「당황하지 말고 넝쿨을 끊어라! 당장 범위에서 벗어나!」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외침.
우두둑. 몸을 휘감아 오는 검은 넝쿨을 파 뿌리처럼 뽑아 내팽개친 우헤이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휘하 헌터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일련의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리치(Lich)……!」
우헤이싱의 짐작은 정확했다. 모두의 머리 위, 잿빛 하늘을 배회하는 거대한 와이번의 머리에 올라탄 죽음의 마법사가 해골과 뼈로 이루어진 스태프를 들어 지상을 가리켰다.
– 컨.퓨.징(Confusing)!
스아아아!
음산한 외침과 함께 먹구름처럼 쏟아져 내린 마력이 일대를 뒤엎었다.
검은 넝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헌터들은 난데없이 찾아온 환각과 환청에 몸부림쳤고, 그런 그들은 주위에 도사린 몬스터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 취이이익!
– 그워어어어!
퍼걱! 콰드드득!
「크륵, 컥!」
「사, 살려 줘!」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돼요. 어머니!」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는 이. 죽어 가면서도 환청과 환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부짖는 이.
하지만 그중엔 강인한 정신력으로 마법의 영향을 벗어난 이들 역시 있었다.
「가셔야 합니다!」
「도련님!」
주위를 둘러싼 A급 헌터들의 외침에도 우헤이싱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한 가지 물음만이 맴돌았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늘에는 리치가, 지상에는 두 기의 데스나이트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상황.
후퇴할 수 있을까. 만일 후퇴 한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두 기의 데스나이트는 홀로 상대할 수 있겠지만, 리치의 마법과 일대를 물 샐 틈 없이 포위한 저 수많은 몬스터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일이…….’
으드득.
우헤이싱이 부서질 듯이 이를 갈던 찰나.
쉬이이익, 파앙!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파공성와 함께, 저 멀리 지상에서 솟구친 한 줄기의 섬광이 허공을 스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를 잃은 와이번의 거체가 힘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건.」
우헤이싱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모두가 상황을 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서서히 속도를 더해 추락하는 와이번의 몸뚱어리와 한때 리치라 불렸던 검은 뼈 무더기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이건 말도 안 돼.」
리치가 죽었다. 그것도 단 일격에.
겹겹이 두른 수십 개의 방어 마법을 뚫고 공중에 있는 놈을 정확히 요격한다?
S급 헌터라 할지라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우헤이싱은 저만큼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이 벌인 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투창을 하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확실히 예전 같지 않군.”
그의 뒤에 철탑처럼 시립해 있던 사내가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훌륭하셨습니다.”
“음. 아닐세. 무뎌진 것 같아.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평소와 같은 경호팀장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그가, 아니 이정룡이 부드럽게 웃었다.
“데스나이트가 보이던데.”
석고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총 두 기더군요.”
“우헤이싱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데스나이트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석고준은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주위에 몬스터만 없다면 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렵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
“흑마법의 영향이 사라졌다지만 이미 병력 피해가 상당한 반면에,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있는 힘껏 발버둥 쳐야 할 테고.”
“아주 치열하고, 힘든 싸움이 되겠지요.”
“허어, 그렇다면 도와줘야겠군.”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정룡이 짐짓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어릴 적부터 이정룡의 가르침을 받은 석고준은 이 모든 순간들이 스승의 시험이라는 것이 안다. 자신이 해야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도.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더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제자의 대답을 들은 스승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덩달아 말투도 바뀌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전부터 홍위방은 골칫거리였지요.”
“참 웃기는 놈들이지. 인민이니, 공산주의니 부르짖는 놈들이 뒤에서는 헌터로 사병 집단을 꾸리다니.”
“하지만 홍위방을 후원하는 태자당은 저희 쪽에 우호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홍위방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늘 나무 그늘에 앉아 햇빛을 피했는데, 나무가 뿌리 뽑혔으니 어찌하겠느냐?”
“다른 나무를 찾든가, 양산을 사야겠지요.”
“우리가 새로운 나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겠지.”
고개를 끄덕인 석고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하거라.”
“우헤이싱을 이번 작전에 참여시키신 이유가…… 진태경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까?”
그건 석고준이 계속해서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제아무리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저런 얼간이를 어째서?
‘놈은 엄청난 강자다. 설령 스승님이 우헤이싱을 이용하신다 하더라도, 어떤 쓸모가 있을까?’
간혹 그럴 때가 있다.
스승의 생각과 행동에 익숙해졌다 싶었다가도, 그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정룡은 늘 뜻 모를 미소를 짓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석 팀장.”
말투도,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레스 길드의 경호팀장으로 돌아간 석고준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예. 부길드장님.”
“자네가 나설 때가 온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나?”
고개를 든 석고준은 이정룡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치열한 접전을 확인했다.
엄선해서 뽑은 홍위방의 정예들은 몬스터에 의해 죽어 가고 있었고, 우헤이싱은 데스나이트 두 기 중 하나를 막 쓰러트린 찰나였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모쪼록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게.”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석고준은 준비되어 있던 아레스 길드원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몬스터를 향해 돌격하는 그들은 함성을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압도하고도 남는 기세가 있었다.
콰드드드득! 서걱!
몬스터 군단의 한 축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광경을 기껍게 바라보던 이정룡은 문득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서쪽으로부터 불어온 바람. 그리고 기다리던 한 사람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때맞춰 왔군.”
작게 뇌까린 이정룡은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기운을 끌어올리자 면도날처럼 예리해진 감각에 한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 시벌, 다 죽여! 그리고 아까부터 에에에 하는 새끼는 진짜 한 번만 더 하면 몬스터로 간주한다. 알겠냐?
낮은 웃음을 흘린 이정룡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저 어딘가에 있을 진태경을 향해 손아귀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