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16
#415화
전투의 시작은 빠르게 찾아왔다.
광야를 뒤덮으며 파도처럼 밀려드는 짙은 안개와 수만의 몬스터 앞에서, 허공을 밟으며 우뚝 선 검은 피부의 대마도사는 이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솨아아아아.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막대한 마나. 허공에서 피어오른 다섯 개의 불꽃이 크기를 부풀리고, 이내 포탄처럼 쏘아졌다.
후우우우웅, 꽈앙!
수만의 몬스터로 이루어진 검은 파도가 갈라졌다. 초고온의 열기가 살과 뼈를 태우고 지면을 녹였다.
족히 일천에 달하는 병력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광역 마법.
하지만 몬스터는 멈추지 않았고, 그것은 매직 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워터 블레스터(Water Blaster).」
파이어 캐논의 발현으로 모래알처럼 건조하던 공기가 축축한 습기를 머금었다.
매직 존슨이 양팔을 펼치자 그의 등 뒤로 거대한 파도가 솟아올랐다.
세상의 모든 법칙을 거스르는 광경.
그것은 말 그대로 마법이었고 수많은 마법사 중에서도 최고의 워 메이지(War Mage)가 선보이는 이능, 그 자체였다.
「뒤덮어라.」
늘 유쾌하고 웃음이 끊이질 않던 평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매직 존슨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두 손을 떨쳤다. 수십 미터의 파도가 수만의 몬스터 위로 넓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콰아아아!
마나를 한껏 머금고 덮쳐 온 파도. 엄청난 수압(水壓)에 짓눌린 몬스터의 몸뚱어리가 터지고 조각났다.
파이어 캐논이 남긴 불길이 꺼지고 사방이 물로 흥건했다. 그리고 매직 존슨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리쳐라. 라이트닝 레인(Lightning Rain).」
순식간이었다.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새카만 먹구름이 모여들고, 수십 줄기의 낙뢰(落雷)가 내리꽂힌 것은.
콰광! 파지지직!
– 크워어어어어!
– 캬아악!
낙뢰는 공중과 지상을 가리지 않았다.
새카맣게 그을린 가고일과 그리핀이 허공에서 추락했고, 워터 블래스터의 영향으로 흠뻑 젖어 있던 지면이 전류를 전달했다.
살아 있는 몬스터는 외마디 괴성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며 무릎을 꿇었으며 언데드는 잿가루가 되어 허물어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대마도사…….」
단 세 번의 광역마법이 불러온 결과는 엄청났다.
족히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가 죽거나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고 몬스터 군단의 일각이 무너졌으니까.
하지만 홀로 천재지변을 일으킨 대마도사 역시 극심한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Fuck.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 몇 개만 더 아껴 두는 건데.」
마법의 발현은 까다롭다. 특히 매직 존슨의 주특기인 광역 마법은 파괴력만큼이나 정신력과 마나의 소모가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기에 앞서 전선에서 쏟아부은 마법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한계다.
「미세스 첸. 나도 늙었나 봐.」
「물러나요. 나이 든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지.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병을 내던진 파이 첸이 번개 같은 속도로 옆구리에 매어 둔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텅 비어 있던 활시위에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맺힌다.
「미세스가 아니라 미스 첸이야. 누구 맘대로 유부녀래?」
코웃음을 친 파이 첸이 활시위를 놓았다. 휘황한 광채를 뿌리는 마나의 화살이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쏘아진다. 공간을 지우고, 짙은 안개를 갈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수많은 몬스터 사이에 숨어 있던 데스나이트가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소멸한 것을 확인한 파이 첸이 재차 활시위를 당겼다.
투투투퉁!
눈 깜짝할 사이에 쏘아진 화살들이 빛줄기가 되어 광야를 가로질렀다. 굉음과 폭발. 한 발, 한 발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휩쓸리고 소멸한다.
매직 존슨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마도사요, 최고의 워 메이지라면 파이 첸은 세계 최고의 궁사(弓師)다.
하지만…….
– 그워어어어어!
– 캬우우!
수만에 달하는 몬스터 군단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돌격했다.
수십을 쓰러트리면 수십. 수백을 쓰러트리면 수백이 그 자리를 메운다.
짙은 안개에 휩싸여 돌격하는 그들은 평범한 몬스터보다 강했고, 더욱 흉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전면전뿐.
밀려드는 몬스터 군단을 향해, 두 사람이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아레스 길드. 포메이션 B. 놈들을 돌파한다.”
처처척!
이정룡의 나직한 목소리에, 단 한 사람의 사상자도 없이 이곳까지 도달한 정예 길드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진태경이 서부 전선에서 데려온 결사대를 향해 말했다.
“전원 포메이션 J.”
「옛!」
「포메이션 J! 대형 갖춰!」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결사대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진태경의 뒤에서 한 줌밖에 안 되는 홍위방 헌터를 끌어모으고 있던 우헤이싱이 서부 전선 결사대원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거기 애송이. 포메이션 J가 도대체 뭐지?」
우헤이싱을 알아본 샤오 쉔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형님께서 정해 주신 전투 대형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그냥. JONNA 싸우라는 의미라고 하시던데요.」
「……!」
우헤이싱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이정룡과 진태경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를 필릭스 왕자와 일만의 헌터가 맹렬히 뒤따랐다.
「으아아아아아!」
– 크와아아아악!
인간과 몬스터.
몬스터와 인간.
먹먹한 함성과 살기가 터져 나온다. 눈부신 속도로 광야를 가로지른 그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과 창칼을 들이밀었다.
쐐애애애액, 콰드드득!
대혈전의 시작이었다.
* * *
허리를 젖히고, 어깨에 힘을 실었다. 물 흐르듯 이어진 동작과 함께 있는 힘껏 팔을 흩뿌렸다.
쐐액, 퍼버버버벅!
내 손을 떠나 쏘아진 백염(白炎)이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관통하며 길을 만든다.
순간 뻥 뚫린 공백. 망설임 없이 빈틈을 파고든 나는 닥치는 대로 팔과 다리를 휘둘렀다.
뻑!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지른 일권에 달려드는 라이칸스로프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스러졌다.
놈의 머리에서 흐른 뇌수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나는 솟구쳐 올랐다.
타닥, 쉭!
4m에 달하는 체구. 이미 빛이 사라진 희끄무레한 동공에 내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언데드 트롤이 손에 든 곤봉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 일장(一掌)이 놈의 가슴을 후려쳤다.
퍼벙!
막대한 열기와 함께 언데드 트롤의 칠공(七空)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구친다. 내부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놈은 특유의 재생력을 발휘할 새도 없이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 간악한 인간이여! 뒤!
알아, 인마. 어디서 훈수를.
내심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틀었다. 칠흑빛 마력이 서린 돌격창이 아슬아슬하게 목을 스치며 허공으로 솟구친다.
공중에서 체공할 때를 노린 투창.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적이 간과한 건 나를 너무 얕봤다는 거다.
“시벌. 뭔 놈의 데스나이트가 이렇게 많아. 치킨집도 아니고.”
창을 피해 가뿐히 착지한 나를 향해, 해골마를 탄 데스나이트가 빠르게 돌격해왔다.
– 여. 기. 까. 지. 다!
후우우웅!
외침과 함께 불길한 마력이 서린 검이 휘둘러진다. 비록 S급 헌터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최상위 A급 헌터에 버금가는 기운이다.
아니, 어쩌면.
‘이 데스나이트 역시 한때 헌터였겠지.’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데스나이트의 모습에서 레이페이를 떠올린 나는 문득 씁쓸해졌고, 그런 내 모습에 스켈레톤 워로드는 비명을 내질렀다.
– 피해라, 인간!
푸푹!
검에 서려 있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튀어나온 투명한 창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데스나이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 어. 떻. 게.
“여기까지다.”
앞서 데스나이트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준 내가 수도(手刀)를 내리그었다.
“네가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고생했다.”
서걱, 쿵!
해골마와 데스나이트가 두 쪽으로 갈라져 소멸한다. 앞에서처럼 허공섭물(虛空攝物)로 백염을 끌어당겨 몬스터를 벤 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웬일로 밥 달라고 안 조르냐.”
– 크흠. 사람을, 아니 본 사령관을 뭘로 보고 감히.
촤아악!
“밥벌레. 자칭 평화주의자라면서 이럴 때만 군침 흘리는 노양심.”
– 뭣이!
“왜, 구구절절 맞는 말 아니냐?”
–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건 너, 간악한 인간도 동의하지 않았느냐! 애초에 다른 인간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말할 땐 언제고!
“핑계는. 그래서 저 마력, 먹을래, 말래?”
– …….
퍼걱!
“야. 안 들려?”
– 음. 별로 흡수하고 싶지 않다.
“……뭐?”
쉬이이익!
순간 깜짝 놀라는 바람에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크게 창을 휘둘러 십여 마리를 쓸어 버린 내가 심각하게 물었다.
“왜 그래. 소멸할 때가 된 거 아냐?”
– 으음……. 나도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
“기분?”
– 그래. 나도 언데드다. 가끔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가 있는 법이니 냅두거라.
“……언데드가 싱숭생숭할 때가 어디 있어.”
평소 같았으면 나흘 굶은 개방도 마냥 달려들었을 놈이 왜 이러지?
‘언데드한테도 사춘기가 오나.’
아무리 스켈레톤 워로드가 괴짜 몬스터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 이상 녀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몬스터를 베어 나가던 그때였다.
콰과과과과!
반경 십여 미터를 뒤덮은 오러, 아니 검기(劍氣).
순간 텅텅 비어 버린 전선의 중앙에 한 사람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네. 결사대 전원이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건 무리야.”
나는 이정룡이 하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말인즉슨, 소수 정예로 가자?”
“바로 그거지. 숙이게.”
이정룡의 말에 허리를 젖히자 반월의 검기가 날아와 대형 몬스터 서너 마리를 치즈 케이크처럼 잘라 버렸다.
저 검기가 나를 향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나와 이정룡이 맞붙는다면…….
“자네와 나, 우헤이싱. 이렇게 셋이라면 충분할 걸세.”
나는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대꾸했다.
“그것참 희한하네요.”
“뭐가 말인가?”
“싸워 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 아닙니까. 아크 리치가 얼마나 강한지는 붙어 봐야 알 텐데.”
“S급 헌터가 셋일세. 아크 리치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의 상대는 되지 못해.”
우리, 라…….
참 좋은 말인데 어째서일까. 혀끝에서 굴러가는 발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에 포함된 저들의 면면 때문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이미 결사대 작전을 제안했을 때부터 결심한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이정룡의 제안은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우헤이싱은 어디 있습니까?”
콰드드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몬스터를 헤집고 우헤이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 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한 이정룡과는 달리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형형한 눈빛은 힘이 충분하다는 증거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왔군.”
「후욱. 몬스터 따위가 절 막을 수는 없지요.」
저놈, 한 시간 전쯤에 바로 그 몬스터 따위한테 죽을 뻔하지 않았었나?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우헤이싱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차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진태경 씨!”
저 멀리서 들려오는 최 팀장의 외침.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수백의 몬스터를 너머로 언뜻 최 팀장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번쩍이는 무언가가 허공을 빙글빙글 돌아 근처에 꽂혔다.
‘이건…….’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던 그것은 바로 [영웅의 혼]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 팀장이 외쳤다.
“함께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대신 그 검을 들고 가세요. 그리고…… 조심하십시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나는 말 없이 [영웅의 혼]을 뽑았다.
아직도 눈앞을 가득 메운 수많은 몬스터 너머로, 어둠에 휩싸인 도시가 보였다.
“갑시다.”
이정룡이 부드럽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