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17
#416화
수만에 달하는 군세가 얽힌 치열한 전장을 가로질러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휘몰아쳐라. 블리자드(Blizard)!」
「존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대격변의 전쟁 영웅이자, 세계 최고의 워 메이지와 궁사가 엄청난 위력의 광역 마법과 낙뢰와도 같은 화살을 퍼붓고.
「여왕 폐하를 위하여!」
“Long Live The Queen!”
혜성처럼 등장한 S급 헌터이자 영국의 왕자가 최정예 왕실 기사단을 이끌고 돌격한다면.
「포메이션 J! 모조리 쓸어버려라!」
“Fucking Jonna fight!”
“에에에에! 이꾸요잇!!!”
숭고한 희생을 각오하고 이 자리까지 온 수백의 결사대가 한 몸이 되어 나아간다면.
콰아아아아아!
콰드드드득! 서걱!
길은 열린다.
그것은 단 세 사람을 위한 길.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활로(活路)였고, 그들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수만의 몬스터를 가로질렀다.
촤아아아악!
두 개의 검과 한 자루의 창에서 뿜어져 나온 휘황한 빛무리가 몬스터를 휩쓸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이댄 라이칸스로프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6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의 보스 몬스터, 트윈 헤드 오우거의 사지가 분리되었다.
각기 군단을 지휘하던 데스나이트 다섯 기가 나타나 막아섰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 군. 주. 의. 이. 름. 으. 로.
– 죽. 음. 을. 내. 리. 노. 라.
진태경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둘, 둘, 하나. 괜찮죠?”
이정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잠깐. 그게 뭐……!」
우헤이싱이 반문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달려나가고 있었다.
단 두 걸음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들은 망설임 없이 손에 쥔 검과 창을 휘둘렀다.
쾅!
일 합. 채찍처럼 휘어진 강기(罡氣)를 막아낸 데스나이트의 신형이 휘청인다.
마력을 뿜어내던 검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에,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부릅떠졌다.
– 어. 떻……!
쾅! 퍼걱!
이 합. 삼 합. 그리고.
서걱!
끝을 알리는 번개 같은 일격.
갑옷과 함께 잘려나간 상반신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깊게 눌러쓴 투구 사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일렁이던 안광이 사라졌다.
각자 맡은 데스나이트의 신형이 땅에 닿기도 전에 진태경과 이정룡은 또 다른 적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도 있다!」
거기에 더해 한발 늦게 합세한 우헤이싱까지.
남아 있던 세 기의 데스나이트는 운명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휘관들의 소멸을 목격한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물러났다.
‘더, 더, 더.’
서걱! 촤아아악!
진태경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베고 부수며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없다.’
끝없이 앞길을 가로막던 몬스터는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망가진 도로와 양옆으로 늘어선 광야.
그 끝에는 짙은 안개에 휩싸인 도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나와 이정룡. 우헤이싱은 아크 리치가 있을 도시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나아갔다.
– 간악한 인간이여. 본 사령관에게는 오랜 소원이 있다.
뭔데.
– 그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너 기억 없어서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잖아.
–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아, 미안하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고향이 어딘데.
– 내가 처음으로 정신을 차린 곳. 바로 한국이다. 나는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기로 했다.
“…….”
도시를 향해 달려가던 나는 멈칫했다.
‘미친놈인가.’
몬스터 주제에 국적 취득이라니. 게이트를 통한 불법 밀입국자 언데드 주제에 못 하는 말이 없다. 이렇게까지 하는 의도야 뻔하지만.
– 그러니까 제발 돌아가자.
싫은데.
– 아까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신기하네. 나도 너랑 대화할수록 비슷한 증세가 일어나는 것 같은데.
– 아직 안 늦었다! 제발 멈춰! 저곳으로 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아니지.
‘이미 늦었어.’
나는 내심 중얼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도시로 진입하자 불길하리만치 짙은 안개와 싸늘한 공기가 가장 먼저 반겨 준다.
동시에 지금까지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하지만 무언가 다른 기운이 전신을 스쳤다.
“이건…….”
끈적하고 불쾌한 기운. 내가 그것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건 이정룡과 우헤이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 선생님.」
“그래, 그렇군.”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이정룡이 입술을 뗐다.
“게이트(Gate)야. 어디서 그 많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나 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이정룡의 짐작은 틀렸다. 정확히는 절반의 정답이라고 해야겠지. 작게 고개를 저은 나는 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아직 게이트화가 완전히 진행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마른침을 꿀꺽 삼킨 우헤이싱이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냥. 느낌상.”
「뭐?」
“못 믿겠으면 말고.”
「……뭐 이런 놈이.」
내 예상대로 우헤이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정룡은 달랐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서린 감정은 분명 의심과 놀라움이었다.
“자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계셨습니까?”
“방금 떠올렸지. 아주 오래전, 대격변 시절 북미에서 느꼈던 감각이었네.”
“그렇군요.”
“하지만 대격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일세. 어떻게 알았나?”
“말씀드렸다시피, 그냥 감입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럴 것 같았다라…….”
단호한 대답에 이정룡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어차피 사실을 말해 준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시스템창을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도시에 진입하자마자 눈앞에 생성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띠링.
– ???급 게이트, [어둠에 잠식된 도시]에 진입했습니다!
– 당신은 [아크 리치]의 본거지에 침입했습니다!
– 마력에 잠식된 도시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게이트로 변화 중입니다. 모든 일의 근원인 아크 리치를 처치하여 도시의 변화를 멈추고, 앞으로 일어날 재앙을 막으십시오.
– 퀘스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생성되었습니다!
– 퀘스트가 종료되기 전까지 [로그인] 기능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게이트화(化)라니.’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과거의 사건이다. 이정룡은 짙은 안개 너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게이트화는 대격변 때도 드문 현상이었지.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강력한 몬스터가 주축이 되어 마력을 뿌리내려야 하니 말일세.”
매우 강력한 몬스터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 나는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크 리치.”
“그래, 놈이 틀림없어. 이 도시를 마력으로 오염시켜 하나의 거대한 게이트로 만들고 있는 거겠지. 지금껏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이 분명해.”
지금까지 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숫자만 하더라도 20만에 달한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재앙이나 다름없었는데, 만약 게이트화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면?
‘끝장이야.’
분명 최후의 승자는 인간이 되겠지만,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고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막아야 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내 말에 이정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급적이면 몬스터를 피해 이동하도록 하지. 놈을 상대하려면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야 할 테니. 우헤이싱, 자네도.”
「……예.」
우리는 짙은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레이페이와 일전을 벌였던 소도시와 달리 아크 리치가 본거지로 삼은 이곳은 열 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했고, 번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너진 고층 빌딩의 숲. 한때 도시에서 가장 화려했을, 하지만 이제는 황폐해진 번화가…….
우리는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감각을 한껏 곤두세운 채 이동하기를 한참,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이정룡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거 알고 있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야 모르죠. 그리고 스무고개를 하기에는 딱히 좋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요.”
즉각 내뱉은 내 대답에 이정룡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요즘 유난히 자네에 대해 생각하고는 하네.”
“지금 저한테 고백하시는 겁니까? 이것도 타이밍이 별론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뭐랄까, 자네가 언젠가 날 뛰어넘으리라는. 그런 생각 말일세.”
“별로 신경 안 쓰셔도 될 텐데요. 어차피 십 년이 지나도 저는 부길드장님 발끝도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뇨. 그냥 듣기 좋으시라고 던져 봤습니다.”
“변함없이 솔직하군. 처음 자네를 만났던 그때처럼.”
“확실히 첫 소개팅 자리치고는 분위기가 영 별로였죠.”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지만, 그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정룡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리는 악연(惡緣)으로 시작되었지.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누군가의 팔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화로 풀었다면 나름대로 훈훈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요.”
“박지훈, 그 아이가 혈기에 실수를 저질렀어. 내 사과함세.”
“그게 어디 제자만의 잘못이겠습니까.”
“허허, 그렇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는 게지.”
나는 앞서 나가는 이정룡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표횰한 움직임으로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그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나직하게 웃음을 흘리던 이정룡이 말을 이어 갔다.
“민우. 그 아이와는 많이 가까워진 것 같던데.”
“그럭저럭 친합니다.”
“의외로 죽이 맞는 모양이군.”
“돈을 많이 주거든요.”
“비즈니스 관계라, 듣던 와중에 반가운 말일세. 그럼 나도 자네와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한 7년 전쯤인가? 헌터 훈련소에서 간식으로 단팥빵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먹으니까 별로더라고요. 그 후로는 잘 안 먹습니다.”
“이제는 배가 부르다?”
“이미 몇 대가 놀고먹을 만큼 벌었습니다. 이미 배는 꽉 찼는데, 꾸역꾸역 넣어 봤자 뭐 합니까. 배 터져서 죽지.”
“틀렸네. 사람은 언제나 배고픈 동물이야. 아무리 쑤셔 넣어도 만족할 줄을 모르지. 왜 그런지 알고 있나?”
“음. 혹시 폭식증을 앓고 계십니까?”
이정룡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탐욕 때문이야. 더 많은 돈, 명예. 혹은 이성. 끊임없이 욕심내고 갈구하지.”
“부길드장님처럼 말입니까?”
“그렇지. 나처럼.”
이정룡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제법 커다란 웃음소리가 짙은 안개 너머로 퍼져 나갔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웃으면 복이 오긴 하는데, 이 경우에는 몬스터가 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근방에는 몬스터가 없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뭐, 좀 더 주의하자는 말입니다.”
쉬이이익!
악취가 섞인 바람이 전신을 스쳤다.
빌딩에서 빌딩으로. 이십여 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은 우리는 계속해서 달렸다.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보이는 건물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지금부터는 속도를 줄이도록 하지.”
“어둡네요. 좁고.”
“조금만 참게. 그보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뭐든지요.”
“민우, 그 아이가 이번 작전에 대해 뭐라 하던가?”
“별말은 없었고…….”
나는 이정룡과 우헤이싱을 번갈아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 하더군요.”
“정확히는?”
“못 믿을 사람들과 가지 마라. 뭐 그런 거였죠.”
이정룡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짙어졌다.
“자네도 나와 저 친구를 의심하나?”
“아뇨.”
“그럼?”
“그보다는…….”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는…… 확신이죠.”
“확신?”
“예.”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씨벌 새끼들이 아크 리치보다는 내 뒤통수에 더 관심이 있구나. 뭐 그런 확신이요.”
이정룡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