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21
#420화
처음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놀라움, 공포, 두려움, 당황?
잘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엄마 뱃속이 아니라 아버지 쪽에 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그 역사의 현장에 있던 이들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숱한 전설과 신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악마.’
놈을 본 순간 뇌리를 스친 단어였다. 3m에 이르는 거체. 검은 광택이 흐르는 뼈. 인간과 흡사한 체형을 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
스아아아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악마의 날개처럼, 놈이 걸친 로브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펄럭였다.
등장만으로도 세상을 어둡게 만든 악마, 아니 아크 리치의 붉은 안광이 스산한 빛을 뿌렸다.
– 너, 인간이여.
단 한마디.
주위의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인벤토리 안에 존재하는 스켈레톤 워로드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 언데드의 군주…….
짙은 공포가 배어 있는 목소리. 힘의 법칙은 몬스터에게도 적용된다.
그래, 스켈레톤 워로드의 말처럼 아크 리치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언데드 몬스터의 군주일 것이다.
– 인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켈레톤 워로드의 말이 맞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고, 충분한 기회가 남아 있었다.
‘놈을 막을 수 있는 기회. 말이지.’
이 거대한 면적의 대도시가 하나의 게이트로 돌변한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갈 테고 아크 리치의 힘도 한층 강해질 것이다.
‘지금뿐이야.’
크게 심호흡한 나는 손을 뻗었다. 허공섭물로 끌어당긴 백염의 창대가 손아귀에 잡힌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넘어 터덜터덜 밖으로 나오자, 짙은 안개만이 자욱한 폐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 취소. 한 놈이 있었지.
“만나서 반갑다. 이 시벌 놈아.”
이십여 미터 위. 허공을 밟고 선 채 나를 굽어보던 아크 리치가 안광을 빛냈다.
– 역시. 마계의 언어를 할 줄 아는군.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어.
“예습 복습 철저히 했지. 근데 너, 나 아냐?”
– 나는 수백의 눈과 귀를 가진 존재. 줄곧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줄곧?”
– 그렇다. 전장에서의 활약이 대단하더군.
패밀리어 마법이군. 내심 중얼거린 나는 내색하지 않고 혀를 찼다.
“이거 몰카충 새끼였네. 혹시 우리 집 화장실에 설치해 둔 건 아니지?”
– 몰카충이라, 뜻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인간이여.
“하긴. 화장실 몰카로 봤으면 이미 놀라서 소멸했겠지. 내 거대한 블랙 아나콘다의 눈을 보고 살아남은 놈은 없으니까.”
– 바실리스크(Basilisk)를 말하는 것인가?
바실리스크라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석화(石化)의 저주를 내린다는 신화 속 괴수다.
대격변 당시에 딱 한 번 모습을 나타냈던 네임드 몬스터이기도 했다.
“뭐, 비슷하지.”
적어도 놀라서 굳어 버린다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은 아크 리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 그것 때문이로군. 왠지 모르게 네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뭐?”
– 너, 인간이여. 네게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짙고 어두운, 나와 같은 기운이.
“……!”
나는 내심 놀랐다. 아크 리치가 말하는 죽음의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놈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어떤 존재.
‘스켈레톤 워로드.’
아무리 네임드 몬스터라 해도 스켈레톤 워로드 역시 언데드다.
그동안 녀석과 함께하며 내 몸에 밴 냄새를 맡은 걸까, 아니면 인벤토리라는 또 다른 미지의 공간마저 꿰뚫어 본 걸까.
만약 후자라면…… 놈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기감]을 일으켰다. 시스템 알림과 함께 푸른 선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동시에 해골 사이로 일렁이던 아크 리치의 안광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 재미있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아크 리치의 전신으로부터 뻗어나온 검은 마력이 푸른 선을 후려쳤다.
삐빅!
– [???]이 강력하고도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 [기감]이 실패했습니다! 지정한 대상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얼굴이 굳은 나를 굽어보던 아크 리치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 흥미로운 인간이로군. 진심으로. 어쩌면…… 내 짐작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무슨 짐작. 네가 곧 뒤질 거라는 짐작?”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언데드의 군주. 저 나약하고도 멍청한 인간들과는 다르니.
아크 리치는 검은 광택으로 이루어진 손을 들어 숨이 끊긴 우헤이싱과, 검은 잿가루로 변한 이정룡을 가리켰다.
–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며 실로 오랜만에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생물인지 알 수 있게 도와준 네게 감사를 표하마.
“꺼져.”
– 분노는 인간을 강하게 만들지. 너도 그러한가?
스아아아.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가 허공에 그려 내는 그림처럼, 안개는 어떤 풍경과 형상을 만들어 냈다.
폐허가 된 도시. 핏물이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처럼 쌓인 참혹한 전장의 중심에서,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는 한 사내.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크 리치의 나직한 목소리가 허공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 레이페이.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
– 크고 빛나는 영혼을 가진 자였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탐이 날 만큼 눈부셨지.
이어지는 작은 손짓에 안개가 스르륵 움직이며 새로운 장면을 그려냈다.
아크 리치를 향해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는 레이페이, 미처 닿지 못한 채 무릎을 꿇는 레이페이, 분노와 원통함이 서린 얼굴로 하늘을 노려보며 숨을 거둔 레이페이.
그리고…… 아크 리치에 의해 타락한 존재로 거듭나 새로운 주인에게 무릎을 꿇는 레이페이.
아니, 데스나이트 로드.
스아아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안개가 흩어졌다. 아크 리치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 알고 있나? 고결한 영혼을 지닌 인간은 타락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정말이지 최고의 재료였는데…… 아쉽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게 되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지껄여 봐.”
– 새로운 재료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더욱 강하고, 거대한 영혼을 지닌 너, 인간이여!
서늘한 음성이 천둥처럼 울려 퍼진다. 아크 리치의 전신으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먹구름처럼 하늘을 가리고 도시를 어둡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불길한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 안광.
말없이 선 채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이제 다 지껄였냐?”
뱃속이 뜨겁다. 놈을 만나기 전까지 쌓아 두고 억눌렀던 분노가 고개를 든다.
화산지대의 용암처럼 울컥 솟구친다.
“하고 싶은 말 다 지껄였으면…….”
머릿속에서 뚝. 하고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결사대를 이끌며 겪은 수 시간의 전투와, 이정룡과 우헤이싱을 상대하며 쌓였던 정신적인 피로마저 이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이제 내려와. 이 씨벌놈아.”
앞서 울려 퍼진 아크 리치의 목소리가 천둥이었다면, 내 외침은 용암이었다.
활화산처럼 들끓는 수백 개의 혈도를 타고 화룡이 내달렸다. 백염의 투명한 창날을 뒤덮은 푸른 화염이 초고온의 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쐐애애애애액! 퍼엉!
온 힘을 다해 쏘아 보낸 불의 창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먹구름을 터트리고 어둠을 찢었다.
* * *
쿠구구구궁! 화악!
땅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눈부시도록 푸른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수 킬로미터 밖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인간과 몬스터는 순간 자신들의 상황조차 잊은 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크르르륵.
“저건…….”
짙은 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도시에서 터져 나온 빛은 어떤 것보다 따스했고, 눈이 부셨다.
적어도 우뚝 선 채 도시를 바라보는 한 사람. 최민우에게는 그랬다.
‘진태경 씨.’
그다. 바로 그였다.
진태경을 제외한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었고, 아크 리치와 전투를 치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와.
‘이정룡. 우헤이싱.’
다른 사람들은 섣부른 우려이며 누명이라 하겠지만, 최민우는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겪은 이정룡이라는 사람은 그랬다.
그리고 동시에…… 진태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강합니다. 제가 아는 누구보다.’
언젠가 그는 진태경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다.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최민우는 진심이었다.
그 어떤 S급 헌터도, 심지어 자신의 외할아버지이자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쓰러트린 천태민조차 진태경보다 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고, 누구의 오러가 더 크고 강하느냐의 영역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진태경을 겪은 이들만이 간직한 무언가였다.
‘믿음.’
진태경은 최민우에게 믿음을 주었다.
인류를 구한 영웅인 천태민은 부모를 잃은 어린 손자를 관심 밖으로 밀어냈지만, 진태경은 아니었다.
부와 명예를 속삭이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평화 길드에 남아 주었고, 어떤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사람들을 지켰다.
그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상대는 아레스 길드예요. 위험한 길이 될 겁니다.’
‘내가 또 가시밭길 전문이라.’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이요.’
‘팀장님.’
‘네?’
‘가끔은 솔직해져도 괜찮습니다.’
‘……!’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늘 곁에 있던 김 집사는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나, 확신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최민우는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었다.
‘계속……평화 길드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거지.’
씩 웃던 진태경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계약서라고 부르는 종이 몇 장으로 이어진 길드원이 아닌,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얻은 그 날을.
‘이런 것이었나.’
늘 혼자였다. 고립되었고 외로웠다. 아주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그는 모든 것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만난 아이들은 그를 경계했고, 어른들은 수군거렸다.
상처를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이든 김 집사만이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최민우는 문득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저 멀리, 짙은 안개와 어둠을 뚫고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다시금 검을 쥐었다.
서걱!
눈부신 오러와 함께 몬스터의 몸뚱어리가 쪼개졌다.
짧은 순간 내려앉았던 정적과 고요가 깨짐과 동시에, 최민우의 입술 사이로 거대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쳐라-!”
검을 치켜들며 몬스터를 향해 달려나가는 그의 모습은, 수십 년 전 이정룡이 보았던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