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28
#427화
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의 겨울밤이었다.
분명 평소보다 맑은 날씨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거리를 바삐 오가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고, 기상청은 당황했다.
“뭐야. 뭐가 문제야?”
“분석 중입니다. 분명 이럴 리가 없는데.”
“우박만 한 눈이 쏟아지는데 이럴 리가 없기는, 흰소리 늘어놓지 말고 자료를 가져와. 실시간 관측 현황 있을 거 아냐!”
“지, 지금 살펴보는 중인데…… 아, 중국 쓰촨 지역에서 마나 급등으로 이상 현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예상 적설량이 장난 아니에요.”
“쓰촨? 빌어먹을. 아크 리치라는 놈이 이제는 날씨까지 조종하나?”
대격변 이후 각종 마법을 도입하여 예언에 가까운 일기예보를 내보내던 기상청이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재관측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뒤, 기상청은 전국에 대설주의보를 발령했다. 약 3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릴 거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나 있는 번화가. 그 중심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때문이었다.
– 오늘 같은 날.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늙은 동양인 남성이었다.
그의 뒤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속한 각국의 지도자들이 앉아 있었고, 중화 인민공화국의 주석은 붉어진 눈가와 축축한 목소리로 수많은 마이크를 향해 입술을 뗐다.
– 아크 리치가 소멸했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승리.
그 한 단어로 족했다. 약 한 달. 정확히는 34일 동안 이어진 사상 초유의 몬스터 웨이브.
쓰촨성을 넘어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던 대전쟁이 막을 내렸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고, 이내 거대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잠깐! 잠깐만요. 저 못 들었어요.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
“……났대요!”
“예?”
“자막! 자막 보세요!”
“아크 리치 소멸…… 어어, 진짜네! 으와아아아악! 시발 예비군 끌려가는 줄 알았는데!”
삼십 분에 걸친 샤오 양 주석의 발표도, 이후 마이크를 이어받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대변인의 추가 설명도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크 리치가 소멸함으로써 수많은 언데드 군단 역시 힘을 잃고 궤멸 되었고, 마침내 모두가 바라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엄마, 난데. 어어. 뉴스 봤어? 안 봤어? 빨리 봐 봐. 응, 응!”
“안 되겠다. 김 대리, 우리 3차 가자!”
“3차요? 내일 서버 업데이트 날인데요. 노 과장님이 지랄할 텐데.”
“노 과장도 온대. 법카 들고.”
“하, 그 인간 얼굴 보기 싫은데. 좋습니다. 일단 가시죠.”
“단결. 예, 대대장님. 저 대위 이준범입니다. 저 휴가 하루만 더 연장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애써 불안함을 무시하며 밖을 오가던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술집으로 달려갔고, 제2의 대격변을 예견하며 집에 있던 이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 분위기에 동참했다.
자정이 지나도 환호는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이 기념비적인 승전보에 전 세계는 숯불 위 가마솥처럼 들끓었고, 연일 각국의 언어로 새로운 기사를 쏟아냈다.
오죽했으면 사흘 내내 한국에 내렸던 폭설보다 이번 승리에 관한 뉴스와 기사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미국 뉴욕 타임즈, ‘위대한 승리, 새로운 영웅.’] [영국 더 타임즈, ‘새롭게 떠오른 동방의 별. 필릭스 왕자와의 친분?’] [일본 아사히 신문, ‘진태경은 아시아의 자랑. 하지만 일본의 1군 헌터들이라면 그를 뛰어넘을 수 있다!’] [중국 인민 일보, ‘수많은 인민을 구한 한국의 젊은 협객. 그리고 중화가 낳은 천재 우헤이싱의 비통한 죽음.’] [중국 청년 소식지, ‘진태경은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후손. 그에게는 틀림없는 중화의 핏줄이 흐르니 머지않아 귀화할 것,’] [한국 고려일보, ‘아레스 부 길드장, 이정룡 헌터(68세). 사망 유력…….’] [한국 다스 패치 관계자, ‘몇 달 전부터 진태경에 대해 총력을 기울여 조사했지만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의 여자관계는 놀랍도록 깨끗했다.’ 많은 연애를 했음에도 깔끔하게 헤어진 거냐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 그게 아니라 모태솔로라고.’ 일축.]각종 언론 매체에 있어 진태경의 존재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렸고 그에 관한 온갖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이른바 ‘겨울 전쟁’이라 명명된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 관련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있었던 과거 행적과 사소한 사생활까지 뉴스 거리였다.
평소였다면 기레기라며 욕을 한 바가지씩 처먹었을 찌라시성 기사도 흥미를 끌었다.
그만큼 전 세계의 관심은 이 위대한 승리를 견인한 새로운 영웅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관심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철통같은 내부 보안에서 조금씩 새어 나간 정보들에 의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종전 후 4일. 그날, 위대한 승리의 뒷면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었을까. 진태경을 둘러싼 의문점들.] [이정룡 사망 추정. 우헤이싱의 미심쩍은 죽음. 두 S급 헌터의 죽음과 새로운 영웅의 비상.] [당신 현장에 있던 연합군 수뇌부 비밀리에 증언, ‘치열한 전투라고 하기에는 발견 당시 진태경의 신체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포션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 중. 그가 의식을 회복한다면 모든 정황이 확실해질 것.’]비록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조금씩 등장하는 음모론에 인터넷에서는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와 같은 찌라시성 기사는 악플과 신고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사라졌으나 몇몇 대중들에게 의문을 심어 주었고, 마침내 사람들의 이목은 한 가지에 집중되었다.
진태경.
과연 그가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서.
* * *
삐빅. 삑.
최신식 의료기기가 기계음을 토해 냈다.
극소수만이 드나들 수 있는 병실의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누워 있는 진태경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진 선생의 상태는 어떻소?」
샤오 양 주석의 물음에 최민우가 대답했다.
「항상 같습니다.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 이상하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더군요.」
「두 사람 모두 그렇게 말했소?」
「예. 원인을 모르겠답니다.」
「허어. 그렇다면 틀림없을 터인데…… 도대체 어째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건지.」
샤오 양 주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앞서 말한 두 사람이란 치료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는 이들이다.
한 사람은 화타의 현신이라 불리는 민간 의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탑 클래스의 힐러였다.
진태경의 임시 주치의로 초빙해 온 두 사람이 그리 말했다면 틀림없었다.
「가족분들께서 와 계시다고 들었소만.」
「저희 평화 길드 측에서 잘 모시고 있습니다. 다행히 안정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구려. 혹 잠시라도 뵐 수 있겠소?」
「음. 여쭤보긴 하겠지만 가족분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지라…….」
「이해하오. 피가 섞인 가족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누군들 다르겠소. 그저 늙은이의 주책이라 생각해 주면 고맙겠소.」
「아닙니다. 주석님. 그리 생각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니, 그런 말씀 마시오. 진 선생이 아니었다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났을 터. 내 비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지만, 이 감사함은 무덤까지 갖고 가겠소.」
샤오 양 주석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날로부터 4일이 흐른 지금,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가 참가한 조사단은 아크 리치의 본거지였던 도시를 샅샅이 수색했고 게이트 발생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엄청난 마력의 잔재와 함께 유추해 낸 게이트의 예상 규모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다.
「그날 진 선생이 아크 리치를 막지 못했더라면, 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전체가 전쟁터가 되었을 거요. 아니, 어쩌면 전 세계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지요.」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대부분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최민우는 굳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어차피 자신을 향한 공치사도 아니니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고, 10억이 넘는 인구를 지닌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진 고마움을 깎아내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상대방이 가진 마음의 빚은 더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니까.
「그런데 주석님. 근래 들어 진태경 씨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들려오는 것 같던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안의 일이오, 아니면 밖의 일이오?」
「안의 일입니다. 공산당 수뇌부, 아니 태자당 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군요.」
샤오 양 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소.」
우헤이싱의 죽음에 관련된 문제다.
조사단이 발견한 그의 시신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데, 이에 관한 음모론이 안팎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는 상황이었다.
「진태경 씨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처음 우헤이싱과 마주한 회의 자리에서 약간의 언쟁이 있었던 점. 그리고 처음 진태경 씨를 발견했을 당시 별다른 상처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요.」
이 부정적인 추측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평소 우헤이싱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던 진태경이 그를 죽인 뒤 아크 리치의 소행으로 위장했다는 것.
둘째, 실종, 혹은 사망으로 추정되는 이정룡과 함께 우헤이싱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그 틈을 타 아크 리치를 처치했다는 것.
이에 관한 이야기는 샤오 양 주석 역시 알고 있었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늙은 정객은 최민우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터무니없는 비방과 음모론일 뿐이오.」
「믿어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좋은 반응이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최민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태자당의 영수(領袖)는 주석님과 생각이 달라 보여서 말입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나라 망신시키지 말라며 욕먹는 음모론이지만, 자식을 잃은 아비에게는 신빙성 있는 가설로 들렸다.
우헤이싱의 부친은 중국 공산당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태자당의 우두머리다.
주석과 비견되는 정치 거물인 그는 본격적으로 소문을 확산. 그에 그치지 않고 단독 조사단을 꾸려 일을 파헤치고 있었다.
「어차피 진태경 씨가 의식을 회복한다면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트리는 것에 고위 정치인이 앞장선다는 건…….」
말꼬리를 흐리는 최민우를 향해, 샤오 양 주석이 희미하게 웃었다.
‘거리낌 없군.’
아무리 큰 전공을 세웠다고 해도 자신과는 살아온 인생과 위치가 다르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완급 조절까지 해 가며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나.’
문득 최민우의 신상정보를 떠올렸던 샤오 양 주석은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좋소. 내 설명이 부족했던 듯싶으니 다시 말하리다.」
「듣고 있습니다.」
「나와 내 동지들은 이미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알고 있으며, 만반의 준비를 끝내 두었소.」
「만반의 준비라면……?」
「아들의 죽음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요.」
이번 전쟁에서 쓰러진 것은 아크 리치뿐만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리, 부패가 드러났고 그걸 감당하려면 태자당은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
최민우는 그제야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대답이 되었소?」
「충분합니다.」
오늘의 대화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잠시 후,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샤오 양 주석이 자리를 뜨자, 홀로 남겨진 최민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군요.”
그리고 한 사람이 번쩍 눈을 떴다.
“어휴, 시벌.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