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30
#429화
「바로 그쪽으로 이동할까요?」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다가온 임시 경호팀장, 아니 샤오 쉔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디 계신지는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시죠.」
샤오 쉔을 위시한 수십 명의 경호원이 나를 둥글게 에워싸고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시에 주위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방송국 놈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미스터 진! 필릭스 왕자 전하와 친분이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 상! 진 상!」
네가 진상이다, 인마.
기자 회견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각국의 기자들이 달라붙었지만, 헌터로 이루어진 경호원들을 뚫을 수 없었다.
아, 기어코 다가와 끈질기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인간도 있긴 했다.
“진태경 씨! 같은 한국인인데 인터뷰 한 번만…….”
어딜 가나 꼭 이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
“아, 예. 같은 한국인인데 좀 비켜 주세요.”
대충 대답해 주고 지나치려던 나는 문득 어디선가 본 얼굴에 멈칫했다. 그러곤 기자를 막아서려는 샤오 쉔을 제지하며 물었다.
“잠깐만. 혹시 다스패치 소속이세요?”
“……!”
“맞는 것 같은데. 제 기사 올렸었죠?”
“아, 아닌데요.”
맞네. 저 시벌 놈.
어디서 봤나 했더니 내가 모태 솔로라는 기사를 특종이랍시고 인터넷에 올렸던 그 기자다. 그 이후로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관련 검색어로 진태경 모쏠이 뜨더라.
“쉔아.”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샤오 쉔이 고개를 숙였다.
「예, 형님.」
“탄압해라.”
「넵.」
씩씩하게 대답한 샤오 쉔이 다스패치 기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선생님, 균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잠, 잠깐만!”
이미 늦었다. 어마어마한 힘에 붕 떠오른 기자가 사람들 사이로 떨어졌다. 몇 개의 카메라가 부서지고 각국의 언어로 욕설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는 쌍욕의 향연에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가 지구촌이로구나.”
「네?」
“아냐. 계속 가자.”
때마침 대기하고 있던 공안들까지 달려와 합세하자 길이 뚫렸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빈틈없는 호위 아래 목적지로 향했고, 잠시 후 VVIP들이 머무르고 있는 5성급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존슨.”
「오, 진. 생각보다 일찍 왔네?」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매직 존슨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꺼운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린 그가 나를 자리로 안내하며 물었다.
「그래. 기자 회견은 잘 끝났고?」
묻는 걸 보니 기자 회견을 직접 보진 않은 모양이다. 나는 존슨이 건네는 캔맥주를 받아 들며 대답했다.
“그냥저냥.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 주고 30분 만에 끝냈죠, 뭐.”
「하하. 기자들이 별로 안 좋아했겠는데.」
“존슨보다는 절 훨씬 좋아할걸요? 전 그나마 기자 회견이라도 했으니까.”
매직 존슨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장 숙소에 틀어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S급 헌터인 파이 첸이나 필릭스 왕자와 달리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일각에선 그의 사망설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 지경까지 가고 나서야 본인의 SNS 공식 계정에 짤막한 코멘트를 하나 남긴 것이 그가 보인 행보의 전부였다.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이번에 거둔 승리처럼 신비롭고 위대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갔겠지만, 나는 그가 말한 ‘새로운 것’의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매직 존슨이 입가를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오, 성공적으로 끝난 모양이네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웃음 참는 거 티 엄청 나요.”
「아닌데? 전혀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기대감에 가득 찬 그의 눈빛에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처음에는 싫어하셨다던데.”
「넌 그때 찾아오지도 않았잖아. 최가 그렇게 말했어?」
“또 누가 있겠어요. 현재로서는 저랑 존슨, 최 팀장님까지 단 세 명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이런. 하지만 최가 전한 말 중에 틀린 게 있어.」
“틀린 거?”
「응. 난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았거든.」
500ml짜리 캔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은 매직 존슨이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법을 날리려고 했지.」
“아하.”
「농담 아냐. 그때 네가 내 입장이었다고 생각해 봐. 아마 객실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을걸?」
“저였으면 호텔을 부쉈죠.”
하지만 객실도, 호텔도 멀쩡할 수 있었던 건 매직 존슨이 ‘대마도사’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라고도 불리지만, 마법사는 호기심 그 자체다. 그 정점에 선 대마도사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제안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의 설명을 듣고,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지. 이건 정말이지…….」
몽롱한 눈동자로 중얼거리던 매직 존슨이 돌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직접 확인해 봐.」
“잘됐네요. 기다리다가 늙어 죽을 뻔했는데.”
반쯤 남은 캔맥주를 내려놓고 일어난 나는, 망설임 없이 걸어가 넓은 스위트 룸 어딘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죠?”
매직 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의 흐름에 민감한 S급 헌터가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맞아. 역시 잘 아네.」
“이 정도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모르겠네요.”
겉보기에는 그저 공간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룸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이것이 모든 소리와 광경을 차단한 마법이라는 것을.
「잠깐 기다려 봐. 내가 바로 마법을 해제할…….」
후웅, 서걱!
매직 존슨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강기에 휩싸인 내 손날이 허공을 내리그음과 동시에, 그가 펼쳐 놓은 각종 마법이 깨끗하게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진. 이게 도대체……?」
아크 리치와의 싸움 도중 중단전을 개방한 덕분에 기의 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부터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나는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마법의 해제와 더불어 한 꺼풀 벗겨지는 공간. 그 너머에 한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아, 에, 이, 오, 우. 안넝하세오. 판캅습니다. 쿡밥충 조아요. 기움치 싸랑해요.”
전신 거울 앞에서 뭔가를 들고 어색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연습하던 금발의 외국인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선다.
기생 오래비 같은 얼굴에 언뜻 웃음이 스쳤다.
“드디어 왔구나, 간악한 인간.”
이 새끼 이런 것만 정확히 발음하는 것 보소.
아주 잠깐, 한 대 때려 줄까 고민하던 나는 이내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못 본 사이에 잘생겨졌다?”
금발의 외국인, 스켈레톤 킹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못 본 사이에 더 못생겨졌군.”
“…….”
“존못.”
“……아니, 시벌 놈이.”
이 자식 한국어 도대체 어디에서 배운 거야.
* * *
「음. 역시 아름답군. 전혀 이질감이 없어.」
매직 존슨은 강남 성형외과 의사처럼 연신 흡족하게 웃었다.
「다시 봐도 희대의 역작이야. 스켈레톤의 뼈.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네임드 몬스터의 뼈에 마법진을 새긴 마법사는 인류 역사상 내가 최초일걸?」
집도의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 그랬다.
윤기가 흐르는 금발에 신비롭게 빛나는 금안(金眼). 190센티에 이르는 체격은 균형이 잡혀 있고 길쭉한 팔다리에는 적당한 체모까지 나 있다.
그뿐인가. 선명한 근육과 핏줄, 호흡이나 침을 삼킬 때마다 보이는 몸의 반응까지.
나조차도 정말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야 이상함을 알아차릴 만큼, 스켈레톤 킹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와, 이게 되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부탁한 거였는데, 이 정도로 완벽할 줄이야.
놀라움에 침을 꿀꺽 삼킨 내가 녀석의 금발을 만져 보려 손을 뻗은 그때였다.
스윽.
한 걸음 물러난 스켈레톤 킹이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더러운 손 치워라. 머릿결 상한다.”
“…….”
“탈모 걸리면 책임질 건가?”
이 새끼 인간 다 됐네…….
어이가 없으려니까 말도 안 나온다. 순간 말문이 막힌 나를 무시한 스켈레톤 킹이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음. 대존잘.”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냐?”
“인터넷에서.”
“인터넷?”
“그렇다. 일주일 동안 오지고 지리게 봤지.”
“너 설마 폰도 있냐?”
“저기 있는 고마운 인간이 하나 사 줬다. 땡큐, 존슨.”
통역 마법을 사용 중인 매직 존슨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인 새 출발을 기원하네. 미스터 킹.」
“땡큐, 존슨.”
땡큐 존슨 같은 소리 하네. 영어 기본 회화는 또 언제 배운 거야.
나는 매직 존슨에게 즉각 따져 물었다.
“아니, 폰까지 사 줬어요?”
「헤이, 진. 뭐가 문제야? 내 막내딸은 다섯 살인데 그 아이도 스마트폰을 써.」
“그건 존슨의 막내딸 얘기고, 쟤는 스켈레톤 킹이잖아요.”
“잠깐. 간악한 인간이여. 대화 도중에 미안하지만, 이 말은 반드시 해야겠군.”
정색하며 끼어든 스켈레톤 킹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스톤-킹이라고 부르거라.”
“이건 또 뭔 돌팔매질 당할 소리야.”
“이 몸의 새로운 이름이다. 스톤 킹.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출생한…….”
나는 두통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죽여 버릴까, 확 그냥.”
“미국 시민을 죽일 셈인가?”
“누가 미국 시민이야, 미친놈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차라리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을 써라. 어떤 놈이 그런 개소리를 해?”
매직 존슨이 수줍게 팔을 들어 올렸다.
「진, 내 연줄이면 충분히 가능…….」
“아! 아악! 아아아악!”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매직 존슨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존슨.”
「음?」
“제가 최 팀장님을 통해 부탁했던 건, 그냥 사람처럼 보이게끔만 만들어 달라는 거였는데요.”
「아, 물론 그랬지. 저 친구가 간절히 원했다며?」
이 모든 일은 내가 처음 깨어난 직후, 스켈레톤 킹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벌어졌다.
자신이 언제까지 답답한 인벤토리에 갇혀 있어야 하냐며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을 참작하여 그만한 보상을 달라는 것이 놈의 주장이었고, 나와 최 팀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당한 요구였다.
‘레이페이와의 전투에서 최 팀장과 샤오 쉔을 지키기도 했고, 녀석 덕분에 아크 리치를 쓰러트릴 수 있었지.’
안 그래도 스켈레톤 킹에 관한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녀석이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면 여러모로 편한 점이 많았다.
더 이상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평화 길드와 계약하여 상부상조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일단 제가 말씀드렸던 동양인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국내에 외국인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눈에 띈다고요. 특히 이런 외모는.”
매직 존슨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스켈레톤 킹이 굳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내가 바꿔 달라고 했다.”
“뭐? 왜?”
“인터넷에서 봤다. 잘생긴 백인 남성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더군.”
“……통하면 어쩔 건데.”
“나도 연애를 하고 싶다.”
“오, 신이시여.”
깊이 한탄하는 내 어깨를 매직 존슨이 두드렸다.
「괜찮아, 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요즘 세상에 SNS가 얼마나 무서운데. 네티즌들이 신상 털었는데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생이 아니라 마계 토박이라고 해 봐요. 말이나 됩니까? 도대체 존슨은 왜 저런 부탁을 들어주신 거예요?”
「내 취향의 얼굴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
“예?”
「저 얼굴이 내 이상형이야.」
아니, 시발…….
순간 할 말을 잃은 내게, 마지막 인내심을 끊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억울한가. 존못.”
“야, 이 개새끼야!”
빡!
순식간에 몸을 튕겨 놈의 정수리에 주먹을 꽂았다.
컥, 하는 신음과 함께 혀를 깨물었는지 스켈레톤 킹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솟구친다.
붉은 피라니. 이것도 환상 마법인가. 구현 진짜 잘했……이 아니라.
“죽어! 죽어!”
“컥! 커헉!”
건장한 떡대 둘이 뒹굴기 시작하자 룸 안이 난장판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에 휩쓸린 책상이 우지끈 무너지고 매직 존슨이 들여다보고 있던 서류 뭉치가 내 얼굴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자, 잠깐! 간악한 인간이여! 눈앞이 안 보인다!”
“넌 오늘 버릇을 고쳐놔……!”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눈앞을 가린 종이 뭉치들 사이로 보이는, 기이하면서도 낯익은 어떤 문양들 때문이었다.
‘이건…….’
스켈레톤 킹을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멍하니 문양이 프린트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사천.’
틀림없다.
쓰촨이 아니라 사천에서 봤던 바로 그 문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