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31
#430화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왜 여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서천마군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겨야 했던 사천혈사(四川血史)가 마무리된 직후, 청성파와 아미파 장문인의 인도하에 향했던 어느 이름 모를 절벽의 동굴.
기문진 뒤에 숨겨져 있던 공간은 실로 광활했고, 그 중심부에는 거대한 진법(陳法)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종이에 컬러로 프린트된, 기이한 문양과 기호로 가득한 진법이.
하지만…… 청성과 아미의 장문인들이 이동진(異動陳)이라 이름 붙였던 그것을 더 이상 진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다급히 매직 존슨을 향해 종이를 들이밀었다.
“존슨. 이거, 이거 뭐예요?”
「어, 어?」
“이게 왜…… 아니, 도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당황한 매직 존슨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크 리치가 본거지로 삼았던 도시에서 발견한 마법진이야.」
“마법진이요?”
「응, 마법진.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한창 연구 중이었는데…… 왜 그래, 진? 혹시 어디서 본 적 있어?」
“다른 것도 있어요?”
「물론이지. 네가 들어오기 전까지 보고 있던 종이들이 전부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니까.」
“네?”
그럼 책상 위에 쌓여 있던 그게 전부?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수십여 장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자, 잠깐만 실례할게요.”
「진, 진?」
“드디어 미쳐 버린 것인가. 안타깝구나, 못생기고 간악한 인간이여.”
당황한 매직 존슨의 부름과 스켈레톤 킹의 헛소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프린트된 종이 뭉치를 빠르게 훑어 나갔다.
수십 장의 종이에는 각각의 문양과 기호가 새겨져 있었고, 그 모든 것을 다 살펴본 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틀림없다. 배치와 방향이 다를 뿐, 기이한 문양과 기호는 무림에서 본 그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이 종이들을 퍼즐처럼 한데 모으면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된다는 것도.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지?’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말없이 종이들을 노려보던 내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거, 아크 리치의 본거지에서 발견한 거라고 하셨죠?”
어느새 시가를 문 매직 존슨을 바라보며 묻자, 그가 연기를 뿜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도 처음에는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는데, 조사단 투입 직후에 발견된 것 같아. 이틀째에 연합군을 통해서 전달받았지.」
“전달받았다는 건…….”
「내게 자문을 구했거든. 저쪽에서도 정확히 어떤 기능의 마법진인지 파악하지 못한 거지. 아마 나 말고 다른 두 명에게도 연락이 갔을걸?」
다른 두 명이란 매직 존슨을 제외한 다른 대마도사들일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현존하는 최고의 마법사들이자, 진정한 전문가들이니까.
그리고 그 말은 이 마법진이 지금껏 드러난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구하신 결과는 나왔습니까?”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 마법진의 용도에 대해서는 갈피를 잡았지.」
“용도요?”
「응. 다행히 그쪽에 대해 제법 잘 아는 친구가 하나 있었거든.」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한 사람이 오만한 목소리로 불쑥 끼어들었다.
“바로 이 몸이시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출생한 우주 대존잘 미남. 이름하여 스톤-킹.”
맞다. 왜 저놈을 잊고 있었지?
마계 토박이에 네임드 몬스터씩이나 되는 놈이니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스켈레톤 킹을 다그쳤다.
“개소리하지 말고 아는 거나 빨리 털어놔.”
“앞으로 미스터 킹이라고 부른다면 생각해 보지.”
“미스터 킹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낑깡 같은 새끼가.”
“퍽킹 코리안.”
“시벌 놈이.”
“워어, 워어!”
내가 손을 쳐들자 자신도 모르게 후다닥 물러난 스켈레톤 킹이 황급히 외쳤다.
“알았다! 알았다고!”
“말해, 인마.”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스켈레톤 킹이 입을 열었다.
“생명력 흡수를 위한 마법진인 것 같다.”
“생명력 흡수?”
“그래. 아크 리치가 다른 인간들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축적하는 용도로 쓴 것 같더군. 그렇게 끌어모은 마력이 있으니 수많은 몬스터 군단을 제어하고 게이트를 열 수 있었던 거겠지.”
중국은 광활한 대륙이다.
대격변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냈음에도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5분지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중 쓰촨성에 거주하는 인구는 ‘공식 통계로만’ 약 8천만 명.
이번 몬스터 웨이브가 낳은 사상자는 수백만에 달하고, 아직 공식 집계되지 않은 이들까지 더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난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의 목숨이 마력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겠지. 놈이 벌였던 짓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져.’
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스켈레톤 킹을 향해 재차 물었다.
“확실한 거야?”
“개인적인 유추일 뿐, 장담은 못 한다.”
“어째서?”
스켈레톤 킹이 혀를 찼다.
“간악한 인간이여. 너는 다른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법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나?”
“그건…….”
“당연히 모르겠지. 이 몸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능력에 따라 병사들을 일으켜 세우고 이끌 수는 있어도, 이와 같은 흑마법을 부리지는 못해.”
젠장. 전부 맞는 말이다.
헌터와 몬스터를 각자의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것처럼, 스켈레톤 킹도 딱 그만큼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지만, 아직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럼 생명력 흡수 마법진인 건 어떻게 짐작한 거지? 혹시 이런 문양이나 기호들은 몬스터만 알아볼 수 있는 건가?”
스켈레톤 킹이 이 기이한 문양과 기호를 알고 있다면, 녀석에게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배울 수 있다면 무림에서 본 진법의 정체도 명확하게 밝혀 낼 수 있다.
기대를 담아 스켈레톤 킹을 바라본 나는, 잠시 후 흘러나온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저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른다. 마법진의 용도는 이 몸이 언데드라 가능했던 일이었고.”
스켈레톤 킹이 매직 존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처음 이런 종이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저 고마운 인간과 함께 현장에 가 보니 확실히 느껴지더군.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마도사인 매직 존슨은 물론이고 네임드 몬스터인 스켈레톤 킹조차 알 수 없다면, 당장 저 문양과 기호의 뜻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니까.
‘제기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동굴 중심부에 새겨져 있던 진법, 이번에 발견된 마법진에서 나타난 문양과 기호, 그리고 혈주와 서천마군과의 전투에서 목격한 괴이한 현상들…….
머릿속에 스치는 어떤 불길한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서 애써 부정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운명이라면 난데없이 나타난 이 연결 고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참 동안 말없이 룸 안을 서성이던 나는 불쑥 입을 열었다.
“직접 가 봐야겠어.”
「응?」
“음?”
“존슨. 저 녀석이 가 봤다는 그 현장, 저도 가 볼 수 있죠?”
잠시 고민하던 매직 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밀이긴 하지만…… 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단,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 둘뿐이야. 저 친구는 지난번처럼 아공간 포켓에 넣어 가야 해.」
“그럼 됐어요. 바로 출발하시죠.”
「그래, 그러자고. 진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나와 매직 존슨이 막 발을 뗀 그때, 스켈레톤 킹이 점잖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듣던 중 미안하지만, 인간들이여. 이 몸은 긴한 용무가 있으니 너희끼리 가 보도록 하거라.”
“……?”
「……?」
“호텔 프런트의 여직원이 매우 아름답더군. 비록 인간의 거죽에 가려져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골격의 곡선이 끝내줘.”
나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오늘은 외박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이야기지. 그럼 난 이만 미녀와의 약속을 잡으러…… 그런데 간악한 인간이여.”
“왜?”
“갑자기 창을 꺼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아, 이거.”
나는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백염을 슬쩍 흔들었다.
“별거 아냐. 네가 돌아서면 찌르려고.”
“음. 그렇군.”
“그렇지.”
“…….”
“왜 안 가? 슬슬 직원들 퇴근할 시간인데. 빨리 가서 저녁 식사라도 하자고 꼬셔야지.”
머뭇거리던 스켈레톤 킹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맺혔다.
“생각해 보니까 작업은 천천히 걸어도 될 것 같다.”
“우와, 그럼 시간 비겠네. 그럼…….”
나는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벤토리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장만한 아공간 포켓 하나를 꺼내 들었다.
“후딱 들어와, 새꺄.”
“……으응.”
시무룩하게 대답한 스켈레톤 킹이 아공간 포켓 안으로 모습을 쏙 감췄다.
* * *
마법진을 직접 눈으로 본 순간, 나는 스켈레톤 킹이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녀석의 말을 들은 직후라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는 것과 동시에 압도되었고, 나도 모르게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죽음.’
동굴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크기의 흑마법진.
비록 마력이 끊기고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고는 하나, 한때 숱한 생명을 뺏었던 죽음의 흔적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느낀 전부였다.
「진. 어때? 뭔가 알 것 같아?」
“아뇨. 전혀.”
알 수 없는 순서, 배치로 이루어진 문양과 기호는 여전히 해석이 불가능했다.
앞서 무림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스템은 잠잠했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나는 몇 시간이나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존슨, 그리고 진. 돌아가시는 길에 불편함이 없도록 경호를 준비했는데…….”
“괜찮습니다.”
“예. 그럼 모쪼록 다음에 뵙기를.”
우리는 칼 같은 각도로 거수경례를 올린 보안 책임자와 경비대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매직 존슨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진. 뭔가 알고 있는 것 아니었어?」
“……꿈. 꿈속에서 비슷한 걸 봤나 봐요.”
「흠.」
“존슨. 저 잠시만 혼자 주위를 둘러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금방 돌아올게요.”
나는 천천히 폐허를 거닐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은 깊은 밤이었음에도 도시는 정오처럼 환했고, 수많은 사람과 기계가 폐허가 된 도시를 수습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전쟁에 휘말린 도시 곳곳에서 이와 같은 작업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사천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쓰촨과 사천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뉘어 있다. 무림은 현대의 과거가 아니며, 현대는 무림의 미래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을 잇는 연결 고리가 나타났고, 이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캡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던 고물 캡슐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들로 머릿속이 엉망이다.
“후우.”
내 깊은 한숨에, 아공간 포켓에서 슬쩍 인벤토리로 옮겨 놓은 스켈레톤 킹이 물었다.
– 괜찮나, 간악한 인간?
“지금 걱정해 주는 거냐?”
– 아니. 괜찮으면 빨리 호텔로 돌아가자고. 며칠 전에 존슨한테 들었는데 근처에 물 좋은 클럽이 있다더군.
“…….”
내 감동 돌려 내, 미친놈아.
나는 존슨이 말한 물 좋은 클럽의 정체가 게이 바라는 걸 말해 줄까 하다가 참았다.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 그래서, 언제 돌아가는 건가?
“간다, 이 새끼야. 간다고!”
빡침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딜 그렇게 가고 싶은 건가. 지옥?”
어느 때보다 딱딱하고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는지 비교적 어두운 폐허 너머, 익숙한 얼굴이 무너진 건물을 헤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지옥은 너희 영감님이 가신 곳이고, 만약 내가 죽는다면 천국이지.”
이정룡의 제자이자 경호팀장, 석고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