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37
#436화
장강(長江).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장강의 규모, 특히 길이는 대륙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사천, 중경, 호북, 안휘, 마지막으로 강소까지. 총 다섯 개 성을 가로지르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이번 여정에서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우선 장강의 지류를 타고 호북(湖北)으로 간 뒤, 배에서 내려 육로로 하남까지 이동할 계획입니다.”
대강의 설명을 끝낸 진위경이 나를 포함한 일행들을 천천히 훑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 하나가 번쩍 올라갔다.
손 드는 속도만 보면 학문적 열의로 가득 찬 우등생이 따로 없지만, 정작 손의 주인은 무림에서도 전국구 깡패로 통하는 초절정 고수다.
“아까 전부터 노부가 궁금한 게 있는데.”
“세이 경청하겠습니다. 적 대협.”
“그러니까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이…….”
적천강이 오만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이 염병할 장강에서 늙어 뒈지란 소리처럼 들리는데. 착각인가?”
역시 화왕이야. 아주 롸끈하지.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들이받는 적천강식 화법에 진위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적 대협. 단지 회의를 통해 나온 일정일 뿐입니다.”
“회의?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이따위 일정을 짰어? 호북까지 가는 데에만 아무리 빨라도 칠 주야는 걸리겠다!”
“가장 위로는 검성 매종학 대협이 계시고, 그 아래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됐어.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네.”
“예?”
“구파일방, 오대세가 놈들은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찬 놈들이니 신경 쓸 것 없고, 매종학이한테는 노부가 잘 설명할 테니 지금이라도 일정 바꾸게. 온종일 물만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주화입마가 걸릴 것 같아.”
한 줄 요약하자면, 배 째라는 소리다.
적천강이라서, 적천강만이 부릴 수 있는 강짜. 지금 이 자리에서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 한 사람 있긴 하구나.’
적천강도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음이 틀림없다.
슬쩍 고개를 돌린 그와 문경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흘리는 문경을 바라보던 적천강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마, 눈을 왜 그렇게 떠?”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확 그냥. 눈깔을 콕 찍어서 먹물을 쪽 빼 버릴라.”
이제 아주 대놓고 갈구는구나.
문경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실체를 아는 나로서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달랐다.
장강 찍먹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던 혁무진과 궁기방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애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문경이 떠는 것 좀 보세요. 얼마나 심성이 여린 앤데……”
“저야 떠돌이 황구도 잡아먹고 그러지만, 문경이는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녀석입니다.”
“…….”
개미 죽일 시간에 사람을 죽였겠지.
지금까지 살성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들만 천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검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다녔어도 심성이 여리다는 소리를 들을 클라스가 아니다.
“네놈들…… 아니다. 됐다. 그냥 그렇게 살아라.”
어이가 없어 한 소리 하려던 적천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돌연 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네 녀석은 왜 아무 말도 없느냐?”
“뭐가요?”
“뭐긴. 계속 이 지긋지긋한 물 위에 떠다니고 싶냐는 거지.”
“아, 그거요.”
잠깐 턱을 긁적이며 생각하던 내가 대답했다.
“전 나쁘지 않은데요.”
“뭣이!”
“막내야!”
적천강과 진위경의 희비가 엇갈렸다. 하지만 진위경을 도우려고 한 말이 아니라, 이게 내 진심이다.
“수뇌부들이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뭐, 보고 있으니까 풍경도 좋고.”
환경 오염이 없는 세상이다. 새벽녘만 되면 강을 뒤덮는 어스름하게 안개, 끝없이 펼쳐진 맑은 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적천강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잠시라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사해 봐야 할 일도 있고.’
두 세상에서 발견된 의문의 문양과 기호.
그에 따른 짐작이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림과 현대를 오가며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육로로 이동하게 되면 그럴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나는 적천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살살 구슬렸다.
“어차피 며칠 차이잖아요. 노야, 아니 스승님 몸도 생각하셔야죠. 무리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무리는 무슨. 누굴 다 죽어 가는 노인으로 보는 게냐?”
“……그럼 뭐. 이팔청춘입니까? 낭랑 십팔 세에요?”
“이놈이!”
적천강이 쌍심지를 켠 그 순간,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무공! 무공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한 대 후려갈길 것처럼 올라왔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말을 이었다.
“근래에 얻은 깨달음이 있는데, 육로로 이동하게 되면 가르침을 받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르침이라…….”
“저로서는 도저히,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을 해 봐도,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실이냐?”
“예. 오직 천하에서 단 한 분. 스승님만이 알려 주실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이죠.”
적천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육로로 경신법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며칠은 더 빨리 하남에 갈 수 있는데?”
“그게 가르침을 받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있지. 일전에 네 녀석이 그러지 않았느냐. 검성 매종학이 노부보다 더 강할 것 같다고. 네 말대로라면 하루라도 빨리 하남에 도착해서 검성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
놀리려고 슬쩍 던진 말인데 그걸 기억하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잘못 들으신 것 같은데요. 저 혹시 그때 만취 상태였습니까?”
“아주 취랄을 하는구나.”
“저한테는 스승님이 늘 최곱니다.”
“그래?”
힐끗 문경을 곁눈질한 적천강이 물었다.
“그럼 살성에 비교하면 어떠하냐?”
“예?”
“살성 말이다. 삼성(三星)중에서도 사람 죽이는 것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살성. 노부와 비교하면 어떻겠냐는 말이다.”
느껴진다. 내 대답을 흥미롭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이.
그리고 누군가가 흘려보낸 은밀한 살기가.
‘에라, 시벌. 모르겠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입을 열었다.
“좆밥이죠.”
“흠. 뭘 좀 아는 녀석인가?”
“제가 또 무잘알 아닙니까. 척 대보면 각 나와요.”
“커흠.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했나,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아부를 늘어놓는구나. 노부가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줄 아느냐?”
“……그런데 왜 웃고 계세요?”
무림 조커인가.
입꼬리가 귀까지 걸려 있던 적천강이 정색하며 얼굴을 굳혔다. 웃음을 참기 위해 움찔거리는 입가까지 감출 수는 없었지만.
“노부가 언제?”
“아닙니다. 어쨌건 그냥 이대로 쭉 가시죠.”
적천강도 내가 중단전을 개방한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맛을 다셨다.
“옘병할. 아무리 그래도 물은 질색인데. 늘그막에 고생하게 생겼군.”
“…….”
아니 뭐, 전생에 불 포켓몬이었나. 이쯤 되면 별호를 화왕이 아니라 리자몽으로 고쳐야 하지 않나 싶다.
“뭐냐, 그 불손한 눈빛은?”
“제가요? 언제요?”
“됐다.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니고. 너 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 예의범절을 기대한 노부가 잘못이지.”
끌끌 혀를 찬 적천강이 진위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 들었지?”
“예. 불편함 없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장강을 타고 호북에 가서 어쩔 셈인가? 괜히 이런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겠지?”
“긴한 볼일이 있습니다.”
“볼일?”
“추후에 다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적천강은 눈매를 좁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진위경이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사람의 이목이 적을수록 좋은 기밀이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적천강은 눈치를 안 볼 뿐이지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알겠네. 그럼 할 이야기는 끝났나?”
진위경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모임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자, 잠깐. 그럼 우리 수룡채의 쾌조선을 타고 호북까지 가시겠다는 말이오?”
배 주인, 무송의 말에 진위경이 대답하려던 그때. 적천강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뭐 문제라도 있느냐?”
“저, 적 대협. 호북까지는 너무 멉니다. 바람을 잘 타도 칠 주야가 넘게 소요될 터인데…….”
“그렇게 오래 수채를 비워 둘 수는 없다?”
“예, 예. 바로 그겁니다!”
“몸통과 팔다리는 붙어 있는데 머리가 없어져서야 쓰나. 그럼 곤란하지.”
“그 말씀은……?”
“사천까지만 가.”
무송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배는 놓고.”
“예?”
“노부가 조각배 타고 가리? 수부(水夫)는 가는 길에 구하면 해결될 테니, 쾌조선인지 뭔지는 놓고 돌아가게.”
잠시 침묵하던 무송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왜?”
“다시 생각해 보니 저와 제 수하들이 물심양면으로 모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허참,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미 배도 한 척 태워 먹어서 미안한데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되는지 모르겠군.”
“……불만 지르지 말아 주십시오.”
“그건 자네 하는 것 보고.”
이게 바로 대기업의 횡포인가.
살다 살다 수적이 안쓰러워 보이기는 처음이다.
슬픈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고 물러나는 무송에게, 조용히 다가간 청풍이 손에 든 만두를 내밀었다.
그새 또 뭘 저렇게 많이 처먹었는지, 이미 양 볼은 터지기 직전이다.
“으에오.”
“……먹으라고? 지금 나 주는 건가?”
“에!”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낀 무송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맙네. 청 소협.”
그리고 식은 만두를 한입에 쑤셔 넣은 그를 향해, 입 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킨 청풍이 활짝 웃어 보였다.
“맛있죠?”
“정말 그렇군. 근래 먹어 본 만두 중 가장 맛있었네. 다음에도 종종 얻어먹어야겠어.”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마지막 남은 만두를 내게 주다니. 청 소협 그대는 도대체……!”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요.”
지금까지 저 자식 혼자서 처먹은 걸 생각해 보면 개소리처럼 들리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무송은 적잖이 감격했다.
“고맙네, 청 소협. 대화도 몇 번 나누지 못했는데 이리 신경 써 주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크흑.”
그리고 무송이 느낀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는요,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마지막 만두를 먹은 사람이 다음 만두를 사 와야 한다고요!”
“……?”
“……?”
“하루만 더 가면 광안(廣安)이라는 곳이 나오는데요, 그곳 시장에서 파는 만두가 정말 맛있어요. 제가 일 년 동안 천하를 유람했을 때 그 만두 때문에 달포 동안이나 머물렀, 아.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께서 그곳은 꼭 들러야 한다고 하셨어요! 만두를 마지막으로 먹은 사람이 잔뜩 사 와야 한 대요!”
“…….”
“…….”
무서운 새끼.
이제는 할아버지까지 팔아서 만두를 처먹으려고 하는구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궁기방은 훌륭한 개방도가 될 거라며 중얼거렸고, 광안 만두 맛집을 들르게 생긴 무송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소.”
“와아! 할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거에요!”
저게 사람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인성에 경악하고 있던 그때였다.
“몸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잠깐 진료를 봐 드려도 될까요?”
좆밥. 아니 문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 숨겨 둔 대침을 내 허리에 바짝 댄 채.
“어. 아냐. 아냐. 난 아무렇지도 않…….”
“몸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잠깐 진료를 봐 드려도 될까요?”
“진짜 괜찮…….”
“몸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잠깐 진료를 봐 드려도 될까요?”
“…….”
쪽팔리지만, 방금 살짝 지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