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41
#440화
진태경이 탄 전용기가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한 그 날, 전 세계의 카메라는 대한민국을 향했다.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수많은 플래시는 해 질 녘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였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인근을 가득 메운 수십 만의 인파가 기다리던 영웅의 귀환에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선 한 사람은, 자신의 예상을 훌쩍 벗어난 규모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다 뭐여, 시부럴.”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최고의 장비를 투입한 세계 각국의 언론사는 이 젊은 영웅이 무심코 흘린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What the sibu-leol?”
“Que veut-elle dire par là?”
“Was meint sie damit?”
대한민국의 욕설이 통역기도 버벅거릴 정도로 다채롭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
시부럴의 찰진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서구권 기자들은 멈칫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온갖 기상천외한 욕설을 섭렵한 한국인 기자들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기사! 빨리 기사 올려! 우리가 제일 먼저 올려야 해!”
“이, 이걸로 말입니까?”
“인마, 지금 진태경은 숨만 쉬어도 특종인 거 몰라? 헛소리할 시간에 욕하는 입 모양이랑 오디오 따서 당장 올려!”
“네, 넵! 그런데 선배님. 이거 괜히 문제 되진 않을까요?”
“문제? 무슨 문제?”
“아무래도 저희가 진태경 까는 것처럼 보이면 역풍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태경 욕설 파문, 뭐 그런…….”
고참 기자는 후배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저놈이 이제 2년 차던가, 3년 차던가? 이쯤 굴러 봤으면 생각이란 걸 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리바리하기 짝이 없다.
고참 기자는 눈앞의 얼간이가 국장의 외조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간신히 욕설을 참았다.
“야. 홍 기자야.”
“예.”
“진태경은 쌍욕을 해도 돼.”
“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욕하면 천하의 죽일 놈이 되지만, 진태경이 시벌거리면 좋아 죽으려고 한다고. 알아듣겠냐?”
“예, 옙!”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후배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고참 기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아이튜브에서 진행 중인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의 채팅방은 이미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부럴.
시벌좌…… ‘그’가 돌아왔다.
불알좌도 있음. 아까 중국 뉴스에서 불알 건다는 거 보고 미친 듯이 웃었는데 진짜ㅋㅋㅋㅋㅋ
킹태경.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도 인터뷰 다 좆 까고 공식 기자 회견 30분으로 끝내 버린 놈…….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놈…….
최소 천만 명이 시청하는 중국 공영방송에서 판돈 대신 불알을 거는 놈…….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시부럴거리는 놈…….
킹태경, 한없이 따뜻하지만 미친놈…….
ㅋㅋㅋㅋㅋㅋ이 정도면 헌터가 아니라 기인 아니냐.
ㄴㄴ시부럴좌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부럴좌 괜찮네.
ㅋㅋㅋㅋㅋㅋㅋㅋ안 그래도 킹태경이 전에 했던 인터뷰 중에 그런 거 있더만. 시벌좌라고 부르는 거 좀 자제해 주면 안 되겠냐고.
그래? 알겠어, 형! 오늘부터 시부럴좌라고 부를게!
시벌좌가 싫어? 그럼 지금부터 시부럴좌 해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
시벌좌+불알좌=시부럴좌.
빌드업 보소ㅋㅋㅋㅋ이 정도면 노린 거 아니냐.
안녕. 모두들 진 선생이 명나라 장군이었던 진취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중국은 크고 위대한 나라니까 만약 그가 귀화한다면 더욱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아, 참고로 나는 한국인이야.
??????
아니, 여기서 갑자기 짜장을 끼얹네…….
왕 서방 조심히 들어가고.
저 새끼가 한국인이면 난 아스가르드인임. 어제 토르랑 발할라에서 맥주도 마심.
헤에, 역시 중국인. 멍청해서 바로 티가 나는 걸wwwww 물론 진태경도 멍청하지만 말이야. 나도 한국인이지만, 오늘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런 상스러운 말을 하는 건 모두에게 민폐라고 생각해. 최소한 민족성만큼은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배울 점이 있어.
????
짜장으로도 부족해서 와사비까지 끼얹네…….
헤에 ㅇㅈㄹㅋㅋㅋㅋㅋ 킹태경 보고 부들거리는 일본 우익 같은데 왜 이렇게 멍청하냐.
??? : 매그도나르도. 쌍큐!
제발 너희 나라 방송 봐라. 한국 공식 채널 와서 어쭙잖게 한국인 흉내 내지 말고.
wwwww 현실 부정하는 게 웃기네. 나 진짜 한국인 맞아.
너 어디 사는데.
서울시 부산구.
하…….
괜히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무슨 좌청룡 우백호도 아니고 좌짜장 우와사비여.
북쪽에는 악마의 열매 능력자도 있음.
??? : 고모부고모부 총난타!
님들 이상한 애들한테 어그로 끌리지 말고 방송 보세요. 이제 막 카 퍼레이드 시작하려고 함.
진짜네. 형들 쓸데없이 화내지 말고 킹태경이나 보자.
지상파와 케이블 및 종편 방송. 거기에 더해 아이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각국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청자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태경과 그 일행을 실은 대형 리무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욱 커지는 환호와 번쩍이는 플래시. 그리고 상공을 가득 메운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와, 미쳤다. 카메라가 사람들을 다 못 담을 정도임 ㄷㄷ;
올림픽 개최 때보다 더한데. 도대체 드론이 몇 개냐.
많을걸?
아니 그건 나도 알지…….
버스 출발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 돋았다. 가슴 웅장해지는 거 실화냐.
진태경과 그 일행을 실은 리무진 버스는 시속 10km로 움직이며 인의 장막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폭죽이 쉼 없이 터져 나왔고 사람들이 뿌린 꽃잎이 바람을 타고 휘몰아쳤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굳은 채 상황을 바라보던 진태경도 이내 웃으며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반년 전의 진태경은 백사장의 모래알 같은 존재였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한바탕 파도가 지나가면 쓸려 나가는,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F급 헌터.
그랬던 자신에게 오늘 같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죽지 않고 은퇴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너무나도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죽음이 사방에 깔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지만 중간중간 매달려 있는 과실은 달콤했다. 상상도 할 수 없던 힘과 막대한 부, 명예까지.
그리고…….
“고생했어. 우리 아들.”
“나도 진태경 씨가 무지 자랑스럽긴 한데, 지금 눈이 부셔서 얼굴도 잘 안 보여. 저 기자들은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거래?”
언제나 함께했던 가족들.
등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에 울컥하고, 플래시로 인해 오만상을 찡그리는 동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저보다는 엄마가 더 고생하셨죠. 하연이 너도.”
“나도 알거든. 엄마랑 오빠가 더 고생한 거.”
“인간 언저리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구나.”
“와, 말하는 것 봐.”
“웃어. 인마. 지금 찍고 있는 카메라가 몇 대인데.”
농담 같은 한 마디와 함께 두 사람을 끌어안은 진태경은, 가족의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태경 씨.”
“최 팀장님도요. 저야 힘만 센 무식한 놈이라 팀장님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고요.”
“무서운 말씀을 웃으면서 하시네.”
“알고 계시잖습니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더욱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위태로운 가시밭길을 지나온 진태경이다.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었다.
발이 피투성이가 되고 고통으로 쓰러지더라도 성큼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때로는 함께 힘을 합치고, 자신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잘 부탁할게요. 앞으로도 쭉.”
진태경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 팀장의 입가에 보조개가 움푹 팼다.
“네. 언제까지나.”
두 사람이 손을 굳게 맞잡은 그때,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진태경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아주 잘들 노는구나.
‘아직도 삐져 있냐?’
– 삐지긴 누가! 위대한 왕으로 거듭난 이 몸이 그런 하찮은 인간의 감정을 느낄 것 같은가!
‘삐진 거 맞네.’
– 아니라고!
사정상 인벤토리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관종, 아니 스켈레톤 킹은 아까부터 단단히 토라진 상태였다.
슬쩍 웃은 진태경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야.’
– 말 걸지 마라!
‘지금까지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 흐, 흠.
헛기침을 내뱉은 스켈레톤 킹이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 그렇게까지 말하니 고려해 보도록 하지.
‘뭘 고려해?’
– 너, 간악한 인간과 함께하는 것 말이다.
‘아, 그건 고려할 필요 없어.’
– 응?
‘너 무조건 평화 길드 들어와야 해. 이미 계약서 작성해 놨으니까 가서 지장 찍어. 아니다, 지문 조회해 봤자 나오지도 않으니까 두개골로 찍어야겠다.’
– 이 무슨! 자유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응. 아냐. 노예처럼 골수까지 뽑아먹을 거야.’
– 당장 이 몸을 내보내라! 차 돌려!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은 진태경이 운전석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대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을까요?”
“예?”
화들짝 놀란 운전기사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사, 사전에 전달받은 지시와는 다른데요.”
“안 돼요?”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정말 안 돼요?”
“아무래도…….”
“진짜, 정말 안 돼요?”
운전기사가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평화 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가 주세요.”
운전기사는 자신의 상관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몇 계단을 거쳐 보고를 받은 상부는 당황했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3천여 대에 달하는 드론은 끝나지 않는 카 퍼레이드를 따라 이동했다.
드론은 진태경 일행을 실은 리무진 버스가 평화 길드의 길드 하우스 앞에서 멈추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과 조우하는 모든 장면은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 곳곳으로 송출됐다.
그렇게 자정이 지나고, 날이 저물어 많은 이들이 고대하던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왔음에도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쟁하듯 꺼져 가는 불길에 새로운 장작과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진태경이라는 이름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것은 아직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 금일 오전, 미국의 S급 헌터 매직 존슨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평화 길드와 모종의 협약을 추진 중…….
쾅!
홀로그램 TV속 아나운서의 얼굴이 사라졌다. 기계를 박살 낸 사내가 비명처럼 울부짖었다.
“진태경, 진태경, 진태경!”
쾅! 콰과광!
벌겋게 충혈된 눈. 난폭하게 휘두르는 주먹 끝에서 쏘아진 강대한 기운이 주위를 박살 내고 가루로 만든다.
누구보다 증오스러운 그 이름.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공포를 알려 준 그의 이름!
“으아아아아!”
사내, 석고준이 초토화된 공간에서 울부짖던 바로 그때, 작은 인기척과 함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티,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