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7
#46화
치이이익.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갔다. 붉고 두툼한, 마블링이 흰 눈꽃처럼 올올이 박혀 있는 최고급 한우다.
형태, 소리, 냄새. 모두 황홀했다.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건 가격이었지만…….
“이걸로 되겠어요? 먹고 더 시키죠. 특수 부위로.”
돈 많은 C급 헌터님이 내는 거니까, 뭐.
‘이게 얼마 만의 한우냐.’
무림의 음식은 맵고 짜고 싱겁다. 그마저도 제대로 못 먹는 날이 더 많았다. 30일간 내 위장은 육포와 벽곡단, 주먹밥으로 혹사당했다.
우걱. 우걱우걱.
소고기의 좋은 점은 금방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대충 익었다 싶으면 그대로 입으로 직행.
한번 씹을 때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이것도, 요것도, 저것도, 하나같이 천국의 맛이다.
“흐어어.”
그런 나를, 최 팀장은 특유의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더 드실래요?”
“아뇨. 과식은 자제해야죠.”
“지금 25인분짼데…….”
“각자 12인분이면 그렇게 많지도 않네요.”
“전 3인분밖에 안 먹었습니다.”
“아, 육회 시켜도 돼요?”
“……네.”
“공깃밥도.”
“…….”
그렇게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난 뒤. 드디어 최 팀장의 입이 열렸다.
“제가 잡았다고 했습니다. 제사장과 대전사, 둘 다.”
“아,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정당한 거래라고 해 둡시다. 오히려 제가 감사한 부분도 있죠.”
정당한 거래라.
맞는 말이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었고, 그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하급 헌터 다섯을 데리고 중급 레어 몬스터를 둘이나 잡았으니까.
그 과정에서 사망자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길드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테고.
‘만약 내가 동기화로 힘을 찾지 못했다면?’
글쎄, 누군가는 죽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군요.”
마냥 괴짜는 아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걸 보면.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서로에게 좋다. 서로에게…….”
중얼거리던 최 팀장이 불쑥 물었다.
“길드 가입하실래요?”
“푸웁.”
식탁보를 들어 물을 막아 낸 최 팀장이 세련된 솜씨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평화 길드 1팀장 최민우]뭐야, 이거. 순간 엄청 당황했다.
“스, 스카우트 제의하신 건가요. 지금?”
“그렇죠. 인재는 항상 필요하니까.”
명함을 받아 든 나는 왠지 감개무량해졌다.
새우처럼 허리 굽히고 다니면서 면접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무려 인재 취급받으면서 스카우트 제의라니. F급 헌터 진태경, 많이 컸다.
“우리 길드가 아직 신생이고 인원수도 적긴 합니다만, 실속이 매우 훌륭합니다. 음, 예를 들자면…….”
최 팀장이 우아하게 와인잔을 흔들었다. 세상에 저건 또 언제 시켰대.
“재정이 굉장히 탄탄하죠.”
“오오, 재정!”
“그렇다 보니 직원 복지도 좋고요.”
“오오,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복지!”
“길드장님은 B급 헌터시고.”
“오오, 탄탄한 재정의 원천인 상위 헌터!”
“구조 조정 걱정은 없습니다.”
“오오, 안정된 직장!”
최 팀장이 부유한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오시겠습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뇨. 그건 좀.”
“……예?”
“제가, 당장은 곤란한 사정이 있어서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계약서에 싸인, 도장, 지장, 키스 마크까지 남기고 싶다.
‘하지만 내일 당장 시스템이 사라져 버리면?’
바로 개털이다.
하루아침에 인재(人才)에서 인재(人災) 소리 듣게 되는 거지.
“혹시 돈 문제입니까?”
돈 문제야 항상 있지.
하지만 이건 더 중요한 문제다. 당장 눈앞의 돈뭉치에 홀려서 덥석 결정할 수 없다.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아쉽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문제가 아닌…….”
“일억.”
“억?”
“순수 계약금만. 나머지는 최소 C급 헌터 조건으로 맞춰 드리죠.”
위험했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어.
그러나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건 진즉 깨닫지 않았나.
먹고 체하는 돈이 될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 팀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 *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았다.
최 팀장, 아니 최민우는 진태경이 떠난 자리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뚜, 뚜, 달칵.
– 이 자식, 귀신이네.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아까 말한 거, 어떻게 됐어?”
– 일단 네 부탁이니까 알아보긴 했는데…… 이 진태경이라는 사람, 뭐 있냐?
“그게 궁금해서 너한테 연락한 거지. 그래서 결과는?”
– 널리고 널린 케이스지 뭐. 7년 전 스무 살에 각성, 측정 결과 F급. 헌터 훈련소에서 수석으로 수료한 기록이 있고…….
수화기 너머로 진태경의 지난 7년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최민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상동역 변이 게이트?”
– 어. 너도 그 사건 알지?
모를 리가 있나. 불과 2년 전의 일이라 최민우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그 사건 유일한 생존자더라고. 그 부분은 나도 확인하고 좀 놀랐다.
최민우는 물잔을 기울였다. 중급 레어 몬스터를 단신으로 잡은 F급 헌터, 그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니 목이 탔다.
“그리고?
– 반년 동안 휴직. 관리청 쪽에서 조사관들 수시로 보내고, 뭐 이래저래 마음도 추스르고 했나 보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사안이 좀 컸으니까.
“그래서?”
– 그게 끝. 다시 길드 복직해서 일 년 반 동안 좆 빠지게 게이트 돌다가 잘렸어. 그게 딱 사흘 전이고.
“잘린 이유는?”
– 일단 구조 조정이긴 한데…… 코딱지만 한 중소 길드가 무슨. 아마 그 사건 영향이 클 거야. 관리청 눈치 슬금슬금 보다가 내보낸 거지. 그쪽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테니까.
“그게 끝이야?”
– 내가 보기에는. 따로 파일 보내 줘?
“바로 보내. 그럼 끊는다.”
– 야, 야!
뚝.
최민우는 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진태경. F급 헌터. 상동역 변이 게이트의 유일한 생존자.
그리고…….
‘최소 C급 헌터.’
말 그대로 최소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C급 레어 몬스터를 혼자, 그것도 압도적인 힘과 기술로 몰아붙이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데 F급이란 말이지.’
둘 중 하나다. 힘을 숨겼거나, 최근 재각성을 했거나.
최민우는 후자라고 짐작했지만, 그것 역시 상식을 벗어난 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평생 승급 한 번 못 해 보고 은퇴하는 헌터가 한둘인가.
F급에서 C급으로의 재각성은, 단언컨대 극히 드문 일이다.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최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좀 더 알아봐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에게 사장이 다가와 계산서를 내밀었다.
“193만 7천 원입니다.”
“…….”
정말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 * *
“시바, 좆 됐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너저분한 분리수거장. 응당 있어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없다, 없어. 내 캡슐이 없어.”
최 팀장과 헤어질 때부터 초조하긴 했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 돼서 누가 가져갈 줄이야. 나는 허공을 향해 부르짖었다.
“어떤 새끼야!”
그리고 대답이 들려왔다.
“나다, 이 십새끼야.”
고시원 건물 옥상. 아침에 봤던 그 자리에서 진호 형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뭔가 아련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낸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10년 동안 울면서 후회하고 다짐했는데…….”
“진짜 울면서 후회하게 해 줘?”
“재미없는 새끼. 너 이 영화 모르지?”
“장난치지 마. 지금 심각하니까.”
“왜, 오늘 허탕 쳤냐.”
“아니.”
나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캡슐.”
“……엉?”
“어떤 새끼가 내 캡슐 가져갔어.”
“콜록, 콜록콜록!”
담배 연기를 잘못 빨아들였는지 미친 듯이 기침하던 진호 형이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 필요 없어서 버린 거 아니냐?”
“그랬지.”
시스템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변하리라곤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만 더 갖고 있을걸.’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 혹시 누가 가져갔는지 못 봤지?”
“어…… 그게.”
진호 형이 머리를 긁적였다.
“봤다면 본 거고. 못 봤다면 못 본 건데.”
이게 말이냐, 똥이냐.
내가 노려보자 그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 뭐냐, 내가 사례금 같은 걸 바라는 건 절대 아니고…….”
사례금을 바라는 게 절대 맞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봤어? 확실해?”
“굳이 따지자면 본 쪽이지.”
“누구? 어디로 갔어!”
“사례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예상 금액은 어느 정도?”
“……10만 원?”
“어이구, 나도 나이가 들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런 시팔.”
“그래, 날 더운데 수고해라.”
“사례금은 십팔만 원입니다.”
금액이 마음에 드는지 진호 형이 환하게 웃었다.
“네 캡슐. 내가 주웠다.”
“……?”
이해하는 데 딱 3초 걸렸다.
‘이런 날강도 같은 인간을 봤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를 쳐?
“근데 마땅히 놔둘 데가 없더라고. 내 방에 놓기에는 너무 좁잖아.”
“그래서?”
“네 방에 다시 놔뒀어. 잘했지?”
저 인간을 어떻게 때려야 야무지게 때렸다고 소문이 날까.
나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 * *
“진짜 있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원룸 절반을 차지한 캡슐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캡슐을 가져간 게 진호 형이라니.
나는 캡슐 뚜껑을 열었다. 낡은 좌석에 던지듯 넣어 놓은 사용 설명서를 집어 들어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주요 기능]–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캡슐! 사용자 등록 시 캡슐이 영구 귀속되며, 이는 사망 전까지 유효합니다.
……에이, 설마.
‘단순한 우연이겠지.’
하지만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사건의 근원인 캡슐을 노려보았다.
‘이거 뭐 하는 물건이야?’
오늘 아침 캡슐을 분리수거장에 버렸던 이유는 다 잊기 위함이었다. 가뜩이나 퍽퍽한 인생, 악몽 한 번 꿨다 생각하고 지금처럼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시스템이 생겼으니까.’
시스템이라…….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나는 캡슐 표면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아이템 확인.”
띠링.
그럼 그렇지. 입꼬리가 올라간 그 순간이었다.
– 해당 아이템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없다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무림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방 안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확인했다. TV부터 볼펜, 심지어는 베개까지. 그때마다 시스템은 정확한 정보를 표시해 줬다.
그런데 딱 하나. 캡슐만큼은 읽을 수 없다.
“와, 이거 골 때리네.”
혹시 싶어 사용 설명서를 집어 들었지만 역시나.
띠링.
– 해당 아이템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나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낡고 누렇게 찌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현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강해졌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신에 올올이 스며든 힘. 단전에서 꿈틀거리는 공력.
동기화를 거침으로써 내게는 힘이 생겼다. F급 헌터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 혼자서 C급 레어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이.
‘길드 가입하실래요?’
난생처음 받아 본 스카우트 제의. 하지만 거절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서서.
‘그럴 만도 하지.’
F급 헌터라는 이름으로 7년을 버텼다. 흙바닥만 기어 다니던 애벌레에게 어느 날 시스템이라는 날개가 생긴 것이다.
두려움은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이 힘을, 시스템을 계속해서 쓸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동시에 지난 7년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친 듯이 노력했음에도 낙인처럼 찍혀 있던 F급이라는 이름. 타인들의 무시와 죄책감과 무력감에 몸을 떨어야 했던 2년 전의 기억까지.
“시발…….”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장 고시원을 뛰쳐나와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헌터 협회 부천 지부로 가주세요.”
헌터 등급 재측정.
F급 헌터.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이 지긋지긋한 족쇄를 끊어 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주먹을 불끈 움켜쥔 내게 택시 기사가 말했다.
“이거 서울 택신데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