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71
#470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일 분 일 초가 급한 와중에도 잠깐 멍해진 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청 소협.”
“태어나서 저런 건 처음 봤어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역시 천하는 넓어요! 화산에서 나오길 잘했어요!”
“아니, 천하가 넓은 건 맞는데 저건 그거랑 아무런 상관이…….”
“와아아아! 방금 또 움직였어요!”
“…….”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
청풍이 살짝 맛이 간 놈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
몬스터를 부모님보다 자주 만나는 베테랑 헌터도 저만한 크기의 초대형 몬스터를 마주한다면 저절로 공포심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피어(Fear)의 영향을 받기는커녕 신나서 날뛰는 모습이라니.
나도 모르게 청풍을 과소평가했다. 녀석은 약간 미친놈이 아니라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처럼 벌벌 떠는 것보다 훨씬 낫기는 한데.’
평범한 사람과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존재에 대한 미지의 공포는 청풍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자식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놈이니까.
‘총이 뭔지도 모르는 갓난아이한테 총구를 들이대 봤자, 신기해서 웃기만 하지.’
혁무진의 불알을 걸고 장담하는데, 아마 저런 어마어마한 괴물을 보고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무림인은 천하를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어도 청풍 하나뿐이다.
‘……그래, 차라리 이게 훨씬 낫다.’
궁기방이나 혁무진은 여전히 반쯤 혼이 나가 있는 상황.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국에 피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청풍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잔뜩 위축된 미미쨩과 변이된 수신룡을 반짝이는 눈동자로 번갈아 바라보는 청풍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진화하는 거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사공이랑 동정어옹부터 보호해.”
“은인은요?”
“저놈들 정신부터 돌아오게 해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나간 나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궁기방과 혁무진의 뺨을 후려쳤다.
쫙! 쫙!
찰진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두 개의 신형.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몸을 퍼덕거린 녀석들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허억, 컥.”
“조, 조장님.”
적지 않은 힘을 실어 후려친 따귀다.
방금의 그 한 방으로 입안이 터져 나갔는지 벌어진 입술 사이로 피가 줄줄 쏟아졌지만, 궁기방과 혁무진에게는 고통을 느낄 만한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꿈인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헛것이 보이지?”
“저, 저게 도대체.”
내 도움으로 피어 상태에서 벗어났다 해도,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공포심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법.
두 사람이 넋 나간 눈빛으로 내 어깨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낮고 깊은 괴성이 사방을 울렸다.
– 크라아아아아!
빌어먹을.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저 엄청난 괴물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사실은 알겠다.
등 뒤에서부터 빠르게 가까워지는 무시무시한 파공성의 정체도.
“청풍!”
나는 외침과 함께 궁기방과 혁무진의 뒷덜미를 잡고 몸을 날렸다.
동시에 고작 거대한 무언가가 조금 전 우리가 있던 자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후우우웅, 콰앙!
굉음과 함께 솟구치는 모래와 진흙.
고작 몇 걸음 차이로 빗나간 그것의 정체는 높이만 일 장에 달할 것 같은 기암괴석(奇巖怪石)이었다.
‘……이런 걸 여기까지 날렸다고?’
무게만 따져도 수천 근은 너끈히 나갈 것 같은 바위를 저 멀리에서 날리다니.
그 힘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지만 조준까지 정확하다. 내가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압사(壓死)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제구력 보소. 메이저리그 출신인가.’
내가 질린 표정으로 괴물을 바라보던 그때, 분노에 찬 포효와 함께 익숙한 알림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띠링.
– 돌발 퀘스트, [타락한 영물]이 생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가 강제 수락되었습니다!
–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퀘스트
[타락한 영물]오랜 세월, 깊은 강물 속에서 승천을 기다리던 이 고귀한 존재는 알 수 없는 힘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던 지성과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던 영물은 추악한 악물(惡物)로 변했으며, 그가 불러일으킨 숱한 죽음으로 인해 두 번 다시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이 불행하고도 강력한 악물을 저지해야 합니다.
호북성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내십시오!
등급 : 초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변이된 수신룡] 처치(미완료)
보상 : 연계 퀘스트
막대한 경험치와 명성
???
실패 :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패널티
빛의 속도로 퀘스트 창을 빠르게 확인한 내 소감은 짧고 간결했다.
“……거지 같네.”
최악의 상황에 어울리는 최악의 퀘스트다.
퀘스트 강제 수락에 이어 로그아웃 금지. 거기에 더해 여차하면 도망칠 수도 없게 단단히 못까지 박아 뒀다.
저 엄청난 괴물을 처치하거나, 이 자리에서 죽거나.
지금 시스템은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죽음에 준하는 패널티 부여라니. 도대체 어떤 패널티길래.’
생각하기도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 생각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지.
꽈앙! 후우우웅!
다음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 너머, 저 멀리에서 무너져 내리는 절벽과 까마득한 상공을 가득 메운 채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수십여 개의 검은 점들을.
그 엄청난 광경에 혁무진과 궁기방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거 별인가? 그래. 별이겠지.”
“별치고는 너무 어두운데요. 심지어 점점 가까워지네요.”
“요즘 별들이 다 그렇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조장님이 저한테 항상 선입견을 버리라고 하셨는데…….”
“야, 이 미친놈들아!”
덥석, 쐐애액!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헛소리를 늘어놓는 두 녀석을 붙잡고 몸을 날렸다.
경고를 남기고 재차 혼절한 동정어옹과 늙은 사공을 각각 양 옆구리에 낀 청풍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은인! 커요! 그리고 많아요!”
초등학교 수준의 언어 구사력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에는 차고 넘쳤다. 내 눈에도 이곳을 향해 추락하는 저 기삼괴석들의 개수는 너무 많았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서 있는 좁은 지면을 빈틈없이 뒤덮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후우우웅!
빌어먹을, 피할 곳이 없다. 나는 붙잡고 있던 두 녀석을 등 뒤로 내던짐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읊조렸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잠시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백염이 손아귀에 잡힘과 동시에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기암괴석의 그림자.
망설임 없이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린 내가 힘차게 창날을 흩뿌렸다.
쉬쉬쉬슁!
창날로부터 솟아오른 청백색의 강기가 허공을 찢었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절벽의 일부로 퇴적과 풍화를 반복했을 기암괴석을 향해 쏘아졌다.
‘갈라져라.’
서걱!
강기는 강철도 순두부처럼 베어 버리는 기운의 집약체. 창날이 그리는 궤적에 걸려든 기암괴석들이 조각남과 동시에 추락했다.
꽈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모래와 강물이 솟구친다.
혁무진과 궁기방이 내지르는 새된 비명들 사이로 나와 같은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난 청풍이 보였다.
그러나…….
콰직!
‘젠장. 저걸 깜빡했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나룻배의 파편을 보자 속이 쓰리다.
배의 주인인 늙은 사공이 깨어 있었다면 졸도했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있다가는 놈의 표적밖에 안 돼. 급한 대로 파편이라도 이용해서 위치를 옮겨야……!’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몸이 덜컥 굳었다.
스치듯이 확인한 수면 위, 응당 있어야 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강물과 번쩍이는 낙뢰 사이에 우뚝 서 있던 거대한 존재가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이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적색경보.
눈을 부릅뜬 나는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온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
십여 장에 달하는 물의 장벽이 솟구침과 동시에, 기암괴석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짙고 거대한 동체가 검게 물든 하늘을 가렸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핏빛 동공에 익숙한 얼굴이 비쳐졌다.
– 크르르르르.
타락한 악물(惡物)의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은 소름 끼칠 만큼 차가웠고, 지금껏 봐 왔던 어떤 몬스터보다 거대한 동체가 내뿜은 살기와 위압감은 사방을 짓눌렀다.
‘뭐 이런 괴물이……!’
경악 어린 시선으로 놈을 올려다보던 바로 그때였다.
촤라라라락!!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빛줄기.
단단한 비늘로 둘러싸인 콧잔등 주위를 뒤덮은 수염이 수백 갈래로 나뉘어 내리꽂혔다.
하나하나가 수 장에 이르는 그것들은 일직선으로 쏘아지기도 하고, 살아 있는 생물처럼 휘어지며 사각으로부터 날아들었다.
“……!”
외침을 토해 낼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고 모든 감각이 활짝 열린다. 나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 몸을 비틀었다.
퍼버버버벅! 촤악!
화끈한 통증이 어깨 어림으로부터 번져 나간다. 흙탕물 위로 점점이 흩뿌려지는 핏방울이 누구의 것인지는 보나 마나였다.
그래도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예상치 못한 일격을 피했다면 싸게 먹혔다.
이제는 더욱 비싸게 돌려줄 차례다.
“하압!”
서걱!
기합성과 함께 휘두른 창날에 수십 가닥의 수염이 잘려 나갔다.
화룡일미(火龍一尾)라는 초식 명에 어울리는 긴 화염의 꼬리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허공을 가르며 놈의 턱을 베어 가던 순간.
후우우웅!
귀가 먹먹해지는 파공성과 함께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검게 물들었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한 것처럼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옆으로 날아드는 무언가를.
‘아, 씨발. 꼬리.’
깨달음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휩쓸었다.
꽈앙!
또렷하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일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하늘과 땅이 수도 없이 뒤집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아니, 아니다. 뒤집히고 흔들리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머릿속까지 뒤엉키게 만든 거대한 충격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십여 장의 공간을 섬광처럼 가로지르며 절벽을 향해 처박히고 있었다.
‘젠장. 지금이라도 피해야 하는데…….’
엄청난 힘이 실린 일격에 당한 탓에 쉽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이를 악물며 곧 다가올 이차 충격에 대비했다.
아니, 대비하려고 했다.
퍽. 카가가가각!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가벼운 충격. 그리고 지면을 갈아엎다시피 하며 줄어드는 속도.
눈을 깜빡이는 내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닿았다.
“괜찮으세요, 은인?”
청풍이다.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해 내며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그리고 어째서 이 퀘스트의 등급이 물음표가 아니라 초절정인지 깨달았다.
“야, 이 빌어먹을 뱀장어 새끼야!”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