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74
#473화
푸푹!
변이된 수신룡.
놈의 거대한 눈깔에 백염의 창날을 쑤셔 넣은 순간, 나는 직감했다.
‘단단하고, 깊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에 손을 집어넣은 기분이다.
평범한 인간, 혹은 짐승이었다면 이 일격으로 눈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을 테지만, 놈은 아니었다.
‘뭐 이런……!’
대가리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백염을 끝까지 찔러넣어도 창날에 서린 강기가 내부 깊숙한 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그 안의 뼈와 살은 어찌나 단단한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발력에 당황한 찰나, 변이된 수신룡이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 크롸아아아아아!
회심의 일격으로 끝장을 보진 못했을 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은 아니다.
창날에 실린 열양지기에 의해 놈의 한쪽 눈동자가 녹아내렸다.
끔찍한 고통에 거대한 동체는 몸부림쳤고, 그와 동시에 익숙한 시스템 알림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띠링.
– [Lv.??? 변이된 수신룡]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 [광폭화] 상태에 돌입합니다!
– [광폭화]의 영향으로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단, 순간적으로 이성을 상실했기에 전투에 관한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어?”
시스템 알림을 듣는 순간 내가 이성을 상실할 뻔했다.
‘염병할. 광폭화는 뭔 놈의 광폭화야.’
일 똑바로 해라, 시스템. 안 그래도 괴물인데 여기서 더 강해지면 난 뭐 먹고 살라는 거냐.
하지만 이미 발동된 시스템이요,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수신룡의 눈동자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며 본격적인 광폭화가 시작되었다.
– 캬우우우우우!
천지를 울리는 괴성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전신을 후려쳤다.
눈 한번 깜빡이기도 전에 코앞까지 들이닥친 절벽을 바라본 나는 내심 중얼거렸다.
‘어, 좆 됐네.’
꽈앙!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전신을 덮쳐 오는 거대한 충격파. 순간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지고 눈의 초점이 흔들린다.
수만, 수십만 근의 힘을 실어 절벽에 대가리를 박은 수신룡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후우우웅!
수면 위로 드러난 몸통의 길이만 삼십여 장이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따진다면 현대의 항공 모함과도 비견될 만한 크기.
그런 거대한 괴물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꽈앙, 꽝! 콰과과광!
쉴 새 없이 절벽과 강물에 머리를 처박고, 꼬리를 휘두르며 때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뚱어리를 퍼덕인다.
움직임 한 번에 주위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바위 조각과 풍압이 나를 덮쳤다.
바로 지금처럼.
뻐억!
“……흡!”
빌어먹을, 하필이면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위에 등이 찍혔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격통. 하지만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냈다.
이건 나를 떨어트리려는 수신룡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지금 떨어졌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나는 놈의 눈깔 깊숙이 박아 넣은 백염을 쥔 손아귀에 힘을 더하며, 거대한 동체의 움직임에 따라 미친 듯이 요동치는 몸의 중심을 잡았다.
“이…… 개새끼가!”
고작 이 정도로 떨어져 나갈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한 손으로 창대를 단단히 말아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움켜잡았다.
비록 지금은 공기밖에 없는 텅 빈 허공이겠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거다.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으니까.
‘인벤토리 오픈. 소환.’
스윽, 탁.
명령어와 동시에 예리한 소검의 검자루가 손아귀에 잡혔다.
지금껏 내가 배운 검법(劍法)이라고 해봤자 헌터 훈련소에서 배운 기초 검술이 전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검법이고 뭐고 필요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도마 위의 회 뜨기 명인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네 이름은 활어회다. 아니면 세꼬시.”
나는 엄숙하게 선언하며 청백색의 열양지기에 휩싸인 소검의 검날을 그대로 쑤셔 넣었다.
푹!
비록 검신의 길이가 짧아 깊숙하게 찌를 수는 없지만, 고통의 신호는 확실히 느꼈다.
단단하고 뽀얀 속살이 불에 타들어 가듯 갈라지며 검푸른 핏물이 터져 나온다.
“이 새끼 어울리지 않게 핑살이네.”
– 크르륵!
놈의 아가리에서 튀어나온 신음과 함께 순간 멈칫하는 동체.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재차 소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푹!
– 크르르륵!
푸푸푸푸푹!
– 크라아아아아아!
검법? 그딴 거 없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고 베고 쑤셨다.
한차례 뼈와 살을 부수고 가른 검날이 다시 빠져나오고 재차 나아가는 속도는 섬광보다도 빨랐고, 그럴 때마다 놈의 괴성과 몸부림 역시 거세졌다.
‘아니, 이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초인이라 부를 수 있는 신체 능력도 한몫했겠지만, 인류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USB를 통해 단련된 손목 스냅은 절정의 검수도 한 수 접을 정도다.
‘아아, 이것이 만류귀종(萬流歸宗)…….’
언제였던가. 현자가 된 직후 USB의 파손을 결심한 나를 만류하며 진호 형이 해 주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태경아, 옛 선조들께서 남기신 말을 기억해라. 치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치는 게 남는 거다.’
‘……선조 누구?’
‘그게 중요하니? 지금 네가 국보급 문화재를 파괴하려 한다는 게 문제지. 너 그거 지우면 내가 직접 문화재청에 신고 넣을 거야. 최소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 본다.’
‘미친놈인가.’
치긴 뭘 쳐. 때깔이 곱긴 뭐가 고와.
당시에는 한 대 칠 뻔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명언이 따로 없다.
나는 진호 형에게 깊이 감사하며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린 그녀들을 떠올렸다.
‘고맙습니다. 우에하라, 사랑합니다. 마파두부집 효녀.’
서걱! 푸푸푸푸푸푹!
– 그라아아아아!
아, 비명 스고이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친일 검법이 뻥 뚫린 동공을 후벼 파며 점점 깊숙이 안으로 파고들자, 변이된 수신룡도 저 까마득한 지상에 있는 또 다른 적들에 대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웅, 꽝!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고통으로 거대한 동체가 흔들림과 동시에 지상을 향해 내리 찍히던 꼬리가 엉뚱한 곳을 강타했다는 것을.
이어 솟구치는 흙과 물보라 속에서 표적을 바꾼 은색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취리리리릭!
밖에서 보면 괴이한 광경일 것이다. 괴물이 자신의 수염으로 녹아내린 눈동자를 후비고 있는 꼴이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무리 변이된 수신룡의 눈동자가 거대했다고 해도, 그 공간은 수십 줄기의 수염을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았다.
최대한 몸을 비틀었음에도 흑목조간의 그것처럼 교묘하게 움직인 빛줄기가 화룡갑을 피해 맨살을 베어 냈다.
푸확!
“큭!”
뿜어지는 붉은 핏물과 전신 곳곳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회피와 동시에 공력을 일으켜 최대한 몸을 보호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사지 중 하나는 잘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취리리릭!
재차 날아드는 수십 개의 빛줄기. 나는 빠르게 번져 나가는 고통을 참으며 신형을 틀었다.
무시무시한 절삭력을 지닌 은빛 수염이 털끝 하나의 차이로 빗나가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공간이 너무 좁아. 이대로면 꼼짝없이 당한다.’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내가 멈칫한 사이, 동아줄처럼 꼬여 창날과도 같은 형태를 취한 빛의 창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쉬잉!
“……!”
실로 엄청난 속도.
느려진 세상 속,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날아드는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당장 백염을 뽑아서 휘두른다면. 아니,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 전에 중심을 잃을지도 몰라.’
지금 이 순간까지도 놈의 대가리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다. 만약 지지대나 다름없는 백염을 뽑는다면 나는 아주 잠깐 중심을 잃을 것이고, 그것으로 끝장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분명 더 좋은 방법이…….’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찰나에 불과했고, 황급히 휘두른 소검은 빛줄기와 부딪친 순간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아니, 수백 개의 파편으로 나뉘어 산산조각 났다.
콰창!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저 한 가닥, 한 가닥의 수염에 실린 힘은 비록 강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절정 고수의 검기를 상회하는 수준.
그런 기운이 한데 뭉쳤으니 USB를 통해 익힌 매국노 검법으로 막아설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후웅!
이대로 당하는 건가?
공간을 지우며 눈앞까지 들이닥친 파괴적인 힘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를 움직인 것은, 말 그대로 본능에 가까웠다.
화륵, 콰드드득!
빛줄기가 가슴을 관통하려던 순간, 나는 어느덧 청백색의 화염이 깃든 손으로 빛줄기를 움켜잡았다.
그건 화염신장도, 멸염신권도 아니었다. 그저 전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올려 대항하는 무식한 힘겨루기였다.
그리고 이 격돌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지직, 푸확!
두 개의 강대한 기운이 부딪치며 눈부신 섬광이 눈앞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그 화려한 빛무리 너머로,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는 손아귀와 미세하게 굵기가 줄어든 빛줄기가 보였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명백한 상황.
‘젠장. 품고 있는 기운의 크기가 달라.’
시스템을 이용한 초고속 성장으로 막대한 공력을 쌓은 나지만, 본래는 영물(靈物)로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기를 축적한 놈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콰드드득!
이 벅찬 힘겨루기도 서서히 한계다.
나는 손아귀를 통해 전해지는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이 활어회 새끼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신형을 비틂과 동시에, 업어치기 하듯 놈의 수염을 힘껏 잡아당겼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콰드드드득, 뽁!
“어?”
– 크륵?
나도 당황하고, 변이된 수신룡도 당황했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뿌리째 뽑혀 나간 수십 가닥의 수염이 힘을 잃은 채 나풀나풀 추락한다.
‘뭐야, 시발. 이게 왜 뽑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게 이렇게 뽑혀도 되나. 혹시 얘가 모발에 비해 모근이 약한 건가. 아니 근데 그래도 이게 정말 되는 건가…….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내 힘이, 정말 미친 듯이 세구나.’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강철로 반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인데 그깟 수염 뽑는 게 뭐라고.
제아무리 항공모함 크기의 괴물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비늘, 뼈와는 달리 모근은 내 근력으로도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게 이렇게 되네.’
초인이라 부를 만한 근력을 지닌 나만이 가능한 일.
지금까지 피하고 벨 생각만 했지, 수염을 뜯어 버릴 생각을 못 했다. 나는 큰 깨달음과 함께 백염을 회수한 뒤 발을 내디뎠다.
쐐애애액!
동공을 빠져나오자 당황으로 굳어버린 놈의 거대한 몸뚱어리와 껌뻑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너 이 새끼…….”
나는 환하게 웃으며 놈의 수염을 잡아 뜯었다.
콰드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