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8
#47화
헌터 협회.
삼십여 년 전, 대격변의 종전과 동시에 등장한 이름이다.
피로 얼룩진 대격변에서 살아남은 1세대 헌터들이 깃발을 세웠고, 헌터 협회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엄청난 위상을 지닌 단체로 발돋움했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우뚝 선 협회 건물을 바라봤다. 이 빽빽한 빌딩 숲에서도 눈에 띄는 크기와 높이. 특별한 것 없는 평일에도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이게 몇 년 만이지?’
모든 각성자는 협회의 감독하에 등급 측정을 실시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던 스무 살의 진태경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오……긴 개뿔.
‘막상 오니까 엄청 긴장되네.’
경직된 걸음으로 로비로 들어섰다. 운동장만 한 로비는 인파로 득실거렸다. 곳곳에 설치된 전광판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측정 대기실]창구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수십 명의 인원이 측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쿵. 문 닫히는 소리에 시선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숨 막힌다, 숨 막혀.’
이곳은 공기부터 다르다. 팽팽한 긴장감이 대기실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측정 한 번에 헌터 인생이 결정 나는 거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긴장한 탓에 감독관 앞에서 방귀를 뀐 적도 있으니 말 다 했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진태경?”
등 뒤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그가 있었다.
“설마 했는데, 맞네.”
주먹코에 배불뚝이의 중년인.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김 팀장?’
김상식. 내가 수년간 몸담았던 소풍 길드의 창립 멤버이자 팀장인 그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전(前) 직장 상사.
“이야,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네. 반가워.”
김 팀장이 너털웃음과 함께 손을 불쑥 내민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은 무슨. 며칠이나 됐다고.”
“그 며칠이, 저는 꽤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무림을 떠올리며 한 말이었지만 김 팀장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며칠 전 내게 해고 통보를 한 장본인이니까.
“여름이라 그래. 나도 요즘 하루가 길어.”
“그래요?”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그를 보자 실소가 흘러나왔다.
언제 봐도 재미있는 양반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볼일이 좀 있어서요. 팀장님은요?”
“스카우트차 왔지. 이번에 괜찮은 놈이 있다는 얘길 들어서.”
해고 사유는 구조 조정으로 인한 인원 감축인데 스카우트라.
“그렇군요.”
내가 할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들 아는 뻔한 스토리. 그것도 완결 난 이야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그러는 너는 왜 왔어? 설마 재측정이라도 해 보려고?”
“네.”
김 팀장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거, 시도는 좋지만 너무 돈 낭비 아냐? 재측정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니고. F급 헌터 처지에 부담될 텐데.”
“그래도 해 보는 거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젊을 때 모아 놔야지. 안 되는 거 계속 붙잡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
“글쎄요. 이번엔 좀 다를 것 같아서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팀장님.”
“어, 왜?”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적당히 하시죠.”
순간 김 팀장의 웃음에 실금이 갔다.
“뭐?”
“적당히 하시라고요. 이제 길드도 나갔으니 저한테 신경 끄시고.”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아시잖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
“어쩔 수 없었다.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다 잊고 새 시작 하자. 위로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열심히 쪼아 대셨던데요.”
“너…….”
“길드장님한테 저 자르자고 처음 얘기 꺼낸 것도 팀장님 아닙니까. 제가 모를 줄 아셨어요?”
김 팀장은 한마디로 어중간한 소인배다.
인간성도, 능력도 부족한 인간.
게이트에서도 제 목숨 챙기기에 급급해 길드 내의 평가는 바닥을 기었다.
“저 자르고 그 자리에 누구 넣었습니까? 얼마 받고 꽂아 주기로 했어요?”
“야, 진태경이.”
김 팀장이 내 어깨를 짓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저래 봬도 소풍 길드에서 셋밖에 없다는 D급 헌터다. 이 정도 힘이면 F급 헌터 따위는 한 손으로도 갖고 놀 수 있다.
하지만…….
“손 떼.”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동기화된 것은 시스템뿐만이 아니다. 무공과 능력치. 그리고 강철 같은 근골까지 포함이다.
“셋 센다. 손 떼.”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김 팀장의 손목을 움켜쥔 그 순간이었다.
덜컹.
“다음 분들 들어오세요. 21번부터 30번!”
서류철을 든 협회 감독관의 등장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떨어졌다. 협회에 찍혀 봤자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누구. 내가? 아니면 당신?”
벌겋게 달아오른 김 팀장의 얼굴이 퍽 우습다. 기감으로 파악한 그의 레벨창까지도.
[Lv.24 김상식]“만나서 기분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맙시다.”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받은 대기 번호는 30번. 감독관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더 이상 경직되어 있지 않았다.
* * *
“21번. 앞으로 나와 주세요.”
긴장된 얼굴의 각성자가 측정기 앞에 섰다. A급 마정석을 재료로 만든 등급 측정기는 그의 전신을 스캔, 체내의 마나를 수치로 환산한다.
지이잉-
수치를 확인한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체내 마나 분포량, F급.”
각성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두 번째 기회가 있으니까.
“마나를 움직여 보세요. 최대한 집중해서 측정기로 쏘아 보낸다는 느낌으로.”
마나 컨트롤을 보는 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각성자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 올렸다.
젖 먹던 힘까지 빡!
뿌우웅.
“…….”
“…….”
감독관이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제어 능력, F급.”
“한 번만! 다시 한번만 해 볼게요!”
“안 됩니다. 다음.”
순서가 휙휙 넘어간다.
죄다 E급, F급에 심지어는 비각성자인 놈까지 나왔다.
“이거 사기야, 사기! 저 측정기 중국산이지! 어? 이 새끼들아!”
“처리하세요.”
감독관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 헌터들이 사기꾼을 질질 끌고 나갔다. 아마 저놈은 기적적으로 각성한다고 해도 협회 블랙리스트에 등록될 거다.
“다음, 30번.”
올 게 왔구나.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앞으로 나섰다. 감독관이 손에 든 서류철을 흘끗 보더니 말했다.
“재측정이시네요?”
“네.”
“진태경 씨, 7년 전 F급 취득하셨고…… 재측정은 따로 비용 청구되는 건 아시죠?”
대충 들어 보니 괜히 헛돈 쓰지 말고 기회 줄 때 집에나 가란 소리다. F급 헌터를 보는 흔한 시선들.
‘누굴 거지로 아나.’
익숙한 것과 기분이 더러운 건 별개다. 내가 노려보자 감독관이 피식 웃었다.
“혹시 싶어 말씀드리는 건데 비용은 2백만 원입니다.”
“……가격 올랐어요?”
“몇 년 됐죠.”
시벌, 그걸 몰랐네.
지금 내 통장 잔고가 얼마더라…….
“그럼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이잉.
측정기에서 흘러나온 마력의 파동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15년의 공력이 그에 감응해 부르르 떨었다.
‘몇 급일까?’
C급? 아니, D급만 되어도 좋다. 하지만 십여 초를 기다려도 감독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어어, 이게 왜 이러지?”
“왜요?”
당황한 얼굴로 측정기와 나를 번갈아 보던 그가 헛기침했다.
“오류가 좀 생긴 것 같은데…… 일단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느낌이 좋아.’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스아아.
진가심법의 부름에 따라 솟구친 15년의 공력이 측정기를 향해 쏘아졌다.
* * *
로비 입구.
“잘했다.”
김상식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부로 D급 각성자로 공인받은 전도유망한 젊은이다.
그는 곧 소풍 길드에 가입, 김상식의 팀에 배정될 것이다. 곧 다가올 그 날을 떠올린 김상식은 뿌듯하게 웃었다.
“부자(父子)가 한 팀을 이루겠구나. 역시 내 아들이야.”
“뭘요, 아직 정식 헌터가 된 것도 아닌데. 훈련소도 들어가야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 아버지가 미리 손써 뒀으니까.”
“어, 진짜요? 길드에 자리 없다고 하지 않았나?”
“다 방법이 있지.”
그 과정에서 눈엣가시 같던 최하급 헌터를 잘랐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 주는 푹 쉬고, 다음 주부터 같이 출근…….”
문득 김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래요?”
“……아니다. 먼저 차에 가 있어.”
아들이 떠난 후 홀로 남은 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어느새 검푸른색으로 부어오른 손목을 확인하자 이가 갈린다.
“진태경, 이 개새끼가.”
그 자식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F급 헌터인 주제에 부팀장인 것도, 지금은 죽고 없는 전 팀장과 형제처럼 지내던 모습도 그랬다.
‘저 새끼도 그때 같이 뒈졌어야 했는데.’
2년 전 벌어진 불의의 사고는 김상식에게 있어 천운이었다.
각종 성추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그는 팀장으로 금의환향했고, 며칠 전 진태경까지 내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놈, 정말 재각성인가?’
김상식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때 느낀 힘은 어마어마했다. E급, 어쩌면 D급으로 재각성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지, 재각성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요즘 운동을 안 해서 약해진 건가. 김상식이 복잡한 심정으로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측정실에서 속보 왔습니다.”
“괜찮은 놈 있대?”
“월척 하나 떴답니다. C급.”
“C급? 나쁘진 않은데 월척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잖아?”
“그런데 마나 컨트롤이 A급이랍니다.”
“뭐? A급! 빨대 꽂아, 빨리!”
“예. 상동 길드 최민숩니다. 다름이 아니고…….”
로비 입구를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던 스카우터들 사이로 술렁임이 번졌다.
대부분이 중소 길드에서 파견된 이들이었지만 대형 길드에서 나온 몇몇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C급만 해도 상당한데, 마나 컨트롤까지 타고났어?’
이건 대박이다.
김상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태경에 관한 생각은 저 멀리 내팽개치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어, 김 팀장. 갔던 일은 잘됐고?
수화기 너머 굵은 목소리의 주인은 소풍 길드장이었다.
김상식이 다급하게 말했다.
“길드장님. 지금 여기 난리 났습니다. C급 떴어요. 거기에 마나 컨트롤은 상위 헌터 수준이랍니다.”
– 뭐? 그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와?
“그러니까요. 대형 길드 놈들, 매번 중간에 가로채더니 이번에는 한발 늦은 모양입니다.”
– 좋아, 그렇단 말이지…….
후욱. 훅.
흥분했는지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상식을 부르는 호칭도 바뀌었다.
– 상식아. 너 이거 꼭 붙잡아라. 무조건 원하는 조건에 맞춘다고 해.
“금액 어디까지 됩니까?”
–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놈들 부르는 금액에 듬뿍 얹어 줘. 대형 길드 놈들이야 수지 좀 안 맞는다 싶으면 떨어질 거야. 그것들은 아쉬울 것도 없잖아?
“예, 예.”
– 나 지금 간다. 꼭 붙잡고 있어. 이거 성공시키면…… 알지?
전화를 끊은 김상식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됐다!’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그다. 이제 막 각성한 신출내기 각성자 정도쯤이야 붙잡아 두는 건 일도 아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 아닌가.
‘다른 놈들보다 무조건 두 배. 두 배 부른다.’
그때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측정실이 있는 3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가 로비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온다!”
“아 거, 밀치지 좀 맙시다.”
스카우터 이십여 명이 개미 떼처럼 입구에 달라붙었다. 우악스럽게 선두 자리를 차지한 김상식이 명함을 건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띵.
그리고 마침내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김상식은 넙죽 고개를 숙이며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소풍 길드의 김상식 팀장입니다. 저희는 전통 있는 부천의 명문 길드로서…….”
“소풍 길드가 명문이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 보네.”
“……네?”
익숙한 목소리. 김상식의 고개가 슬그머니 들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단춧구멍 같던 김상식의 눈이 부릅떠진 것도 동시였다.
“너, 너…….”
진태경이 씩 웃었다.
“또 만났네요. 김상식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