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11
#510화
선화아(船火兒) 무송은 태생부터 뱃사람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의 부모는 근방에 유명한 잉꼬부부 수적이었고, 외가와 친가의 가계에도 수적이나 어부가 수두룩했다.
그야말로 뼈대 깊은 수적 집안.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송은 육지보다 배에 있는 시간이 훨씬 좋았다.
빽빽한 숲과 들판을 보면 극독을 먹은 것처럼 손발이 저리고 숨이 막히는데, 탁 트인 강과 바다만 보면 생기가 도는 것이다.
그뿐인가. 수적 질로 한몫 단단히 잡은 다른 채주들이 그럴듯한 장원을 매입하고 기루에서 주색잡기를 즐길 때, 그는 배를 꾸미고 그물을 엮어 만든 침대에 누워 장강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무송이 늘 하는 생각이 있었다.
‘천하가 온통 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럼 평생 배에서만 지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무송은 멍하니 장강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씨바. 배 존나 느리네. 빨리 내리고 싶다…….”
“……!”
“……!”
순간 싸해지는 분위기.
주위에 있던 수룡채의 수적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눈짓을 주고받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잘못 들었나 보네!’
‘그거 맞다. 단체로 귀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두목께서 그런 말을 하실 리 없지.’
무송이 어떤 사람인지는 수룡채의 최고참부터 막내까지, 아니 장강수로맹에 있는 수적 전부가 아는 사실이었다.
뜨거운 뱃사람의 상징! 스승인 해상왕보다도 더 장강을 사랑하는 남자!
그런 사람이 제 목숨만큼이나 아끼는 쾌조선을 느리다며 욕하고, 육지로 가고 싶다고 말할 리가 없…….
“이 짓거리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개 같아서 진짜.”
“……!”
“……!”
보이지 않는 충격이 갑판을 휩쓸었다. 갑작스러운 무송의 은퇴 의사 표명과 수룡채 해체 위기에 조용해진 사방.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을 깨트린 건 넋이 나간 어느 수적의 어깨에서 미끄러진 술통이었다.
쿵, 콰직!
술이 가득 담겨 있던지라 무게도 상당했다. 떨어진 목제 통이 박살 남과 동시에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제야 자신만의 상념에서 빠져나온 무송이 눈을 부라렸다.
“이게 무슨 짓거리냐.”
안 그래도 흉악한 면상의 소유자인 무송이다. 술통을 떨어트린 수적은 사색이 되어 넙죽 허리를 굽혔다.
“죄,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술 귀한 줄 모르고 확 그냥. 거꾸로 매달아서 그 뭐냐. 장강, 장강…… 그래, 찍먹형에 처할까 보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것만은…….”
“조심해라. 가뜩이나 기분 거지 같은데 초치지 말고.”
“예, 옙!”
“됐고, 원상복구나 시켜 놔. 술도 도로 하나 가져다 놓고.”
“예? 하지만…….”
“이놈이 미쳤나. 어디서 감히 토를, 어서 움직이지 못할까!”
“조, 존명!”
필사적인 복명복창과 함께 멀어지는 수하의 뒷모습에, 무송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군.’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 그랬다.
호재만 이어져도 부족할 판국에 안 좋은 일만 잇따라 계속되고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본거지인 사천을 떠나 호북에 왔고, 얼마 전에는 친혈육 같았던 장강일도 황충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에 대한 은원(恩怨)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태경 일행을 하남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반로환동 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정체불명의 노고수.
어린 의생의 탈을 쓴 그 맹수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음을 알아차려 버렸다.
‘괴물 같은 늙은이.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간 무송이 면밀하게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함께 이동하고 있는 일행 중에서도 극소수였다. 기껏해야 화왕 적천강과 진태경 정도?
어디로 튀는지 알 수 없는 청풍도 문경 앞에서는 조용해지는 걸 보면, 저놈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다른 배를 타는 건데.’
현재 하남으로 향하는 수룡채의 쾌조선은 총 두 척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인원을 나눠서 타자는 건 적천강의 강요에 의해서였고, 무송에게는 감히 화왕의 뜻을 거스를 용기가 없었다.
백여 장 앞에서 앞서가고 있는 또 다른 쾌조선에서 편안히 가고 있을 부채주를 생각하자 배가 아플 지경이다.
‘여기에 비하면 저쪽은 꽃밭이지, 꽃밭.’
적어도 다른 배에는 말이 통하는 인물들이 모여 있다.
궁기방의 냄새도 잠깐만 숨을 참으면 해결될 문제고, 청풍이 미미라고 부르는 괴상한 뱀의 묘기를 보는 것도 제법 재미가 쏠쏠했다.
반면 이쪽은?
‘열화신룡 진태경. 화왕 적천강. 그리고 정체를 숨긴 또 다른 노괴.’
그야말로 괴물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무늬만 후배인 진태경은 무송에게 존댓말이라도 써 주고, 적천강도 자주 보다 보니 그럭저럭 사람 취급은 해 주는데 마지막 한 사람이 문제였다.
‘그 눈빛…….’
문경의 서늘한 눈동자를 떠올린 무송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두목의 이상 행동을 주목하던 고참 수적 하나가 다가와 슬쩍 물었다.
“채주. 괜찮으십니까요?”
“괜찮아 보이냐?”
“전혀 아닌뎁쇼.”
“그럼 뭘 물어봐. 어차피 사정 다 아는 놈이.”
“거참 걱정을 해 줘도 뭐라 하시네. 그나저나 그 노괴(老怪)가 도대체 무슨 겁박을 했길래 안색이…… 읍!”
빛의 속도로 손을 뻗어 수하의 입을 틀어막은 무송이 긴장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들은 사람이 없다는 걸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분노가 솟구쳤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죽고 싶어서 환장했느냐?”
“읍읍, 푸하!”
간신히 입막음에서 벗어난 고참 수적이 말을 더듬었다.
“죄, 죄송합니다요. 저도 모르게 그만.”
“내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너와 다른 녀석들 모두 그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마라. 알겠느냐?”
“예에.”
고참 수적은 문경의 정체를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수적 중 하나였다.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그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무송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까 내가 내린 지시 사항. 모두 철저히 숙지시켜 놨느냐?”
고참 수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믄입쇼. 채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후미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뒀습니다요.”
“의심하는 놈은 없었고?”
수적들의 머릿수만 수십이다 보니, 멍청하고 눈치 없는 한두 놈은 꼭 끼어있기 마련이었다.
“있었지요. 춘삼이. 채주의 명이라고 했는데도 세 번이나 캐묻길래 식겁했습니다요.”
무송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내 그 새끼일 줄 알았지. 춘삼이 그놈 지금 어디 있느냐?”
“장강에 푹 담갔다가 건졌는뎁쇼. 지금 아래에 처박아 뒀으니 다시는 그런 말 안 나올 겁니다요.”
“후우, 잘했다. 앞으로 내가 자리를 비울 때도 애들 단속 철저히 해. 까딱하면 쾌조선이랑 같이 싸그리 장강에 수장(水葬)되는 수가 있다.”
무송의 낯빛은 어두웠다.
화왕 적천강이라는 괴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반로환동 한 정체불명의 노괴까지 끼어 버렸다. 차라리 그 사실을 몰랐던 때가 그리워질 지경이다.
하늘 같은 채주의 약한 모습에 고참 수적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러다가 두 번 다시 사천으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가뜩이나 벌써 두 달 가까이 수채를 비웠는데, 이대로 영영 빌까 걱정입니다요.”
“재수 없는 소리.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그건 호랑이고, 반로환동 한 초절정 고수한테는 정신을 골백번 차려도 안 될 것 같은디…….”
생각해 보니 저 말이 맞다.
말문이 막힌 무송이 조용히 입을 다문 바로 그때였다.
“술통을 가져왔는데, 어디에 두면 되겠습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 상황에서 술통 운운할 놈은 한 사람밖에 없다.
짜증이 솟구친 무송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벌컥 성을 냈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아까부터 저 폐급 새끼가……!”
“지금 제게 폐급 새끼, 라고 하셨습니까.”
“……어?”
억겁과도 같은 촌각의 시간.
자신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입을 딱 벌린 고참 수적의 모습에, 무송은 단단히 좆 됐음을 직감했다.
더불어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아, 여분의 술통을 후미(後尾)에 놔뒀었구나.’
어쩐지 다시 가져오라 할 때 뭔가 말하려다가 말더라니.
무송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천령폭의 와류에 휘말렸을 때도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식은땀으로 멱을 감아도 될 정도다.
“무송 대협.”
한차례 눈을 질끈 감은 무송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어, 어어. 문경이로구나. 무, 무슨 일이니?”
“별일은 아닙니다.”
그 나이대의 소년처럼 빙긋 웃은 문경이 대답했다.
“후미에서 장강을 구경 중이었는데, 수하 분께서 오셨지 뭡니까. 듣기로는 무송 대협께서 술통을 가져오라 명하셨다던데…….”
“내, 내가 말이냐?”
“아닙니까?”
“그, 글쎄,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린 기억이…….”
그때, 문경의 등 뒤에서 술통을 어깨에 진 수적이 나타나 빠릿빠릿하게 외쳤다.
“채주님! 명하신 대로 술통을 가져왔습니다!”
무송은 저놈의 주둥아리를 당장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명령을 내린 기억이…… 나는구나. 맞아. 그런 명령을 내리긴 했다. 명백한 실수였지.”
“실수라. 네.”
무송은 자신의 몸 곳곳을 차례차례 응시하는 문경의 시선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사혈(死血)을 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건 단순한 착각일 거다. 착각이어야 한다.
다행히 그의 필사적인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곧 시선을 거둔 문경이 입을 열었다.
“진노하신 적 대협께서 길길이 날뛰셨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각오하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적천강은 길길이 날뛰지도, 저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무송은 저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할 만큼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 알겠다. 적 대협께 명심하겠다고 전해라. 그런데 다만…….”
“말씀하십시오.”
“어쩔 수 없이 꼭 가야 할 일이 있다면 어찌해야겠느냐? 뱃일에 필요한 일이라거나, 식사 문제도 그렇고.”
잠시 생각하던 문경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적 대협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무송 대협 홀로 와서 팔요한 일을 해결하고. 후자의 경우에도 직접 식사를 전하라고 말입니다.”
“……나 혼자 그걸 다하란 말이냐?”
“싫으십니까?”
무송이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내 일생의 소원이었다. 너무 좋아.”
“그렇군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석식 때 뵙지요.”
무송을 남겨 두고 다시 후미로 향하던 문경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아, 그리고.”
“또, 또 뭔가 할 말이 남았느냐?”
“식사는 이 인분이면 됩니다. 하남에 도착할 때까지 쭉.”
“으응?”
“진 공자님은 당분간 입맛이 없을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될 듯합니다.”
하남에 도착하려면 족히 열흘은 남았다. 아무리 입맛이 없다 해도 열흘을 꼬박 굶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호기심이 도진 무송은 용기를 쥐어짜 내어 물었다.
“그, 혹시…… 진 후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아.”
문득 문경의 입가에 보조개가 패였다.
그것은 그를 괴물로 여기는 무송조차 순간 천진난만한 소년이라고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지금쯤 바쁘실 겁니다. 아주 많이요.”
* * *
간혹, 인간 스마트폰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는 한다.
배터리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알려주는 경고 메시지처럼, 내 눈앞에는 비슷한 내용의 시스템 창이 떠 있었다.
삐빅.
– [공력]의 대부분이 소진되었습니다.
– [운기조식]으로 공력을 보충하십시오. 체내의 공력이 완전히 고갈된다면 상태 이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당장 공력이 모두 소진되면 이 광활한 장강 한복판에 가라앉을 텐데, 위기감보다는 의문이 더욱 크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저 멀리서 다가오는 어떤 것의 존재 때문임이 확실하다.
스으윽.
아주 은밀히 가까워지는 커다란 몸뚱어리. 수면 위로 삐죽 솟은 지느러미는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아니, 시발.’
상어가 왜 장강에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