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28
#527화
세인들이 숭산결의(嵩山決意)라 부르는 그 날 이후로 어느덧 칠 주야가 흘렀다.
수많은 무림 군웅의 함성 아래 무림맹의 깃발은 다시 세워졌고, 수십 년 만에 무림맹이 정식으로 부활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하남을 넘어 천하 무림을 뒤흔들었다.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지.’
처음에는 나까지 바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었지만,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건 무림맹이 결성된 지 불과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깨닫게 되었다.
“조장님. 아래에 손님이 찾아오셨다는데요.”
“찾아오신 것도 아니고 찾아오셨다는데요는 뭐야?”
“청 소협이 만두 사러 다녀오는 길에 만났대요.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는데.”
“갑자기 만두 먹고 싶다. 그리고 안 만날 거야.”
“슬쩍 얼굴만 보고 왔는데, 귀한 분 같아요.”
“난 천한 놈이냐? 귀하게 돌려보내 드려.”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약속 잡고 오셨다던데.”
“뭔 개소리야. 내가 여기 와서 약속을 잡은 적이 없는데. 그리고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건 그러네요. 조장님 친구 없으시잖아요.”
“그래? 넌 목이 없어질 것 같은데.”
“음. 소가주님과 이야기하신 것 아닐까요?”
“이 자식은 이제 쫄지도 않네.”
“혁무진 삼 년이면 목숨이 세 개쯤 됩니다.”
“헛소리 그만하고 돌려보내. 아, 그런데 그 귀한 분이 정확히 누구냐?”
“어, 잠시만요. 물어보고 올게요.”
“그래라.”
그리고 느긋하게 내려간 혁무진은, 미친 듯한 속도로 다시 돌아왔다.
“고, 고, 공동파! 공동파 장문인!”
“당장 모셔! 모셔엇!”
아니, 형이 거기서 왜 나와.
무려 구파일방에 속한 공동파의 장문인을 시작으로, 이른바 무림의 명사(名師)라고 불리는 이들의 방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미 일면식이 있는 남궁세가의 가주는 물론이고 무림을 종횡하며 인연을 맺은 문파 및 세가의 인물들이 연이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새로 안면을 트기 위해 오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저기, 조장님.”
“……이번엔 또 누구야.”
“산동악가요. 가주님이 직접 왔던데요.”
“……정중히 모셔라.”
“귀주 무림에서도 대표로 사람을 보냈는데…….”
“……같이 모셔라.”
“아, 그리고 조장님.”
“……모셔.”
내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고 해야 맞겠다.
그리고 정신없이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 가던 나는 결국 사흘 만에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시벌, 못 해 먹겠다.’
차라리 예쁜 여자와의 소개팅이면 말도 안 하지.
하루에도 열 명이 넘게 찾아오는 아재와 할배들을 상대하다 보니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이야기들도 대부분 엇비슷했다.
“오오, 자네가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열화신룡이군!”
[진태경 대화 공략집].뭐 그런 제목의 책이라도 한 권씩 읽고 오시는지 첫 마디가 하나같이 똑같다.
하지만 말 잘 듣는 어린애도 삐딱해지는 순간이 있는 법.
처음에는 애써 웃으며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던 나도 점점 솔직해졌다.
“자네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네.”
“저도 저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무림에 젊은 영웅이 나타났구먼. 참으로 기쁜 일이야. 허허허.”
“제가 가장 기쁘네요. 하하하.”
“그나저나 내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는데…….”
“제게는 과년한 형이 둘이나 있습니다.”
“어허, 이 사람! 이 자리에서 다짜고짜 딸을 들이밀다니, 제정신인가! 진 소협. 저 친구 말은 너무 귀담아듣지 마시게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귀담아듣지 않아서요.”
“그러니 저 친구 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게.”
“이야, 전개가 이렇게 되네.”
“사실 내게도 딸이 하나 있다네. 자네 마음에도 쏙 들 거야.”
“마음에 안 든다는 것에 혁무진의 불알을 걸겠습니다.”
“무슨 소리! 불알, 아니 미녀를 마다하는 사내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미녀라면…… 혹시 따님이 많이 예쁩니까?”
“그걸 말이라고! 이미 복건 땅에서는 소문이 자자하지!”
“오. 오오.”
“모르는 사람이 없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상관없어. 지금도 충분히 예쁘지만 오 년 후에는 필시 복건제일미가 될 게야!”
“오오오, 복건제일미…… 잠깐만요. 그런데 왜 오 년 후입니까?”
“열두 살일세.”
“나가.”
칠 주야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나를 방문하는 이들 중에는 이미 일면식이 있거나 그저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나나 태원진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무림인이 아닌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장님. 중원상회라는 곳에서 뵙고자 청하는데요?”
“모셔, 가 아니라. 상회가 왜 날 찾아와? 큰형이면 몰라도.”
“글쎄요. 이유는 잘 몰라도 제 안목으로 봤을 때는 그리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습니다. 한번 만나 보시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요.”
“야.”
“예, 예?”
“너 이 새끼 중원상회에서 뒷돈 받았지.”
“헉! 그, 그걸 어떻게.”
“받은 거 싹 다 뱉어 내고 돌려보내라. 좋은 말로 할 때.”
이제는 하다 하다 혁무진에게 뇌물까지 찔러 주는 놈들까지 생겨났다.
지금까지 온 손님 중 대부분은 어지간하면 진위경을 통해 약속을 잡은 거라 울며 겨자 먹기로 만났었다.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진위경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다이렉트로 찾아왔다는 건 보통 두 가지 경우를 의미했다.
‘이미 진위경 선에서 까일 만한 결격 사유가 있거나, 언제 찾아와도 될 만큼 신분이 대단하거나.’
물론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런 이들은 얕은 수작을 부리다가 내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냐. 물론 나는 갑자기 엄청난 관심이 내게로 쏟아지는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깃발 때문이지, 뭐.’
무림맹이 정식으로 선포되던 그 날, 나는 무림맹주로 취임한 매종학과 적천강, 그리고 청풍과 함께 무림맹의 깃발을 세웠다.
나로서도 상당히 감명 깊은 순간이긴 했지만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었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엄청난 컬쳐 쇼크였던 모양이다.
‘하긴, 새파랗게 어린놈 두 명이 다른 어르신들을 다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한가?’
당시 단상 위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명문 대파의 인물들이 즐비했다.
이놈의 무림은 21세기 두메산골처럼 인구 고령화가 극에 치달아서, 단상의 이름을 경로당이라고 붙여도 될 정도다.
어찌어찌 그 자리에 끼게 된 마흔 줄의 중년인들도 보이차 셔틀에 불과한데, 아직 약관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와 청풍이 무엄하게도 그 영광스럽고도 역사적인 순간에 끼어든 것이다.
그 놀라운 광경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저 어린놈들의 실력과 자격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인 반면, 어떤 누군가는 상당히 아니꼽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종남파라든지.’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종남파는 배알이 잔뜩 뒤틀려 있을 거다.
가뜩이나 계속해서 악연을 맺어 왔던 나와 태원진가가 급부상을 시작했으니까.
종남파의 세 얼간이, 종남삼수로부터 시작된 악연은 태원진가의 원단 연회에 찾아와 깽판을 놓던 노호검객이 적천강에게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악화되었다.
그뿐인가. 장문인인 풍운검군과 함께 종남파 최고의 고수로 거론되는 태을무정검(太乙無情劍)이 내게 패배함으로써 아예 정점을 찍었다.
그토록 치욕을 당했으니 내가 주목받는 것을 보고 이가 갈렸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나와 태원진가, 그리고 적천강을 물고 뜯고 씹고 있을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봐 온 종남파의 인물들의 성격상, 설령 암천이랑 손을 잡는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어이, 종남파.’
‘암천 어서 오고.’
‘무림맹도 탄생했는데 왜 이렇게 죽상이야.’
‘진태경이 꼴 받게 하잖아. 싯팔 어린놈의 새끼가.’
‘껄껄. 잠력단 한 대 할래?’
‘좋지. 한 대 말아 줘.’
상상이 간다. 상상이 가.
그래도 구파일방에 속한 유서 깊은 정파 문파인 만큼 미쳤다고 암천과 손을 잡겠냐 싶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근데 억울하네. 다들 왜 나한테만 몰려들어?’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나는 구석에서 미미쨩과 함께 꼼지락거리고 있는 쌀벌레, 아니 만두 벌레를 바라보았다.
“왜요, 은인?”
“세상에, 벌레가 말도 하네.”
“네?”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청 소협. 왜 이렇게 한가해 보여? 사람들도 안 찾아오고.”
“저는 배부를 때는 다른 사람 안 만나요. 맛있는 거 안 가져와도 안 만나고요.”
잠시 생각하던 내가 재차 물었다.
“당신 항상 배부르잖아.”
“네, 그래서 아무도 안 만나요.”
“……어, 그래.”
넌 참 속 편해서 좋겠다.
어떻게 보면 천하 무림을 통틀어 가장 개썅마이웨이를 꼽으라면 청풍이 아닐까.
녀석은 숭산결의가 있던 날에도 무림맹 깃발 처음 세워 본다며 좋아서 방방 뛰었었다.
‘천재인가, 미친놈인가.’
아마 둘 다겠지. 음.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청풍이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가한 거 아닌데요. 지금 수련 중이에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진짠데. 보세요.”
어깨에 두르고 있던 천년독각사, 미미를 내려놓은 청풍이 앉은 채로 신형을 꿈틀거렸다.
“……그, 방해해서 미안한데. 혹시 벌레로 진화 중인 거야?”
“아뇨. 무공이에요.”
“무공?”
“네. 미미의 움직임을 보고 만들었어요.”
그런데 난 왜 전혀 무공처럼 안 보이지. 나는 진심을 담아 물었다.
“무공 이름이 혹시 꿈틀거리기나. 단단해지기. 뭐 그런 건 아니지?”
“아뇨. 보법인데요.”
“……그럼 일어나서 해야지. 이 인간아.”
“아, 그렇구나. 깜빡했어요.”
아니, 이걸 말해 줘야 안다고?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난 청풍이 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내디뎠다고 느낀 순간 녀석의 신형이 사라졌다.
솨아아악!
미세한 소음과 함께, 넓은 방의 끝에 도달한 청풍이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짠. 어때요?”
“……!”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순간 등허리를 타고 소름이 쭉 솟구친다.
그야말로 유령 같은, 아니 한 마리의 뱀과 같은 움직임. 보법이 분명한데, 보법이 아니다.
청풍은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졌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육안으로 간신히 확인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미미의 움직임과 무공 이것저것을 섞어 봤어요. 이렇게 움직이면 저도 미미가 된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섞어?”
“이름은 미미보(美美步)예요! 은인도 한 번 배워 보실래요?”
진짜 미친놈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입을 벌린 채 청풍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싫어.”
“아앗…….”
그리고 청풍이 시무룩해하던 그때, 문밖에서 혁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장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손님? 더 찾아올 사람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