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3
#52화
오전 여섯 시.
택시 기사 김 씨는 오늘의 첫 손님을 태웠다. 그리고 10분 만에 후회했다.
‘재수 옴 붙었네.’
겉보기로는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다. 근육질의 듬직한 덩치에 얼굴은 멀끔해서 많이 쳐 줘야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그런데…….
“킁카킁카.”
이상하다. 좀 많이.
“흐어어.”
웬 드링크 박스를 보물처럼 꼭 껴안고, 30초에 한 번씩 슬쩍 열어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뭐에 홀린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떤다.
‘시방 저게 뭐 하는 짓이여.’
김 씨는 뒷골이 싸했다. 10년 넘게 택시를 몰았지만 이런 종류의 진상은 처음이다.
그가 계속해서 옆자리 청년을 곁눈질하던 그 순간.
“아저씨.”
“예, 예?!”
심장 떨어질 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퀭하던 청년의 눈동자가, 야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뒤에 트럭이요.”
“트, 트럭이요? 파란색?”
“네. 아까 사거리에서부터 따라오는 것 같지 않아요?”
“예? 아니 뭐, 그렇긴 한 것 같은데.”
“미행일지도 모르잖아요.”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린가.
김 씨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다가 결국 그가 원하는 듯해 보이는 원하는 대답을 내놨다.
“여, 옆쪽으로 빠지겠습니다.”
청년은 파란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드링크 박스를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뺏어 가기라도 할 것처럼.
“습하. 습하.”
물론 틈틈이 냄새를 맡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건 제대로 미친놈이다.’
차 내부는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부는데, 김 씨의 등허리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첫 개시부터 이 모양이라니.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다.
* * *
부아앙.
요금을 건네고 문을 닫자마자 택시가 총알처럼 튀어 나간다.
누가 보면 뒤에서 몬스터라도 쫓아오는 줄 알겠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나는 쯧쯧 혀를 차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품에는 어제 받은 드링크 박스를 소중히 껴안은 채였다.
‘3억.’
내가 F급 헌터 시절부터 꼬박 3년을 일해서 모은 돈이랑 비슷한 액수다. 물론 지금은 한 푼도 안 남았다.
‘빚 갚는 데 다 썼지.’
그렇게 빚에 허덕이던 때가 있었는데, 이 악물고 하다 보니 점점 나아졌다. 가족을 일산 근처의 안전지대 아파트로 이사 보내기도 했고. 근래 들어서는 뭐, 인생이 롤러코스터 같다.
시스템이 사라지면 추락하는 롤러코스터…….
아니다. 몇 달 만에 오는 집인데 이런 생각은 집어치우자.
‘그런데 몇 동 몇 호였지?’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오는 집이다 보니 늘 이렇다.
나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노려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뒤에야 연결됐다.
딸칵.
– 여보세요?
아직 이른 시각이라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연이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일어나 있었어?”
– 일어나 있어야지.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일곱 시도 안 됐는데.”
– 일찍 일어나야 공부가 잘돼.
내 동생이지만 감탄스럽다. 오전 기상을 7대 죄악쯤으로 여기는 진호 형이 이걸 들었어야 했는데.
– 왜 전화했어?
“내가 지금 집 앞이거든.”
– 응? 집 앞이라고?
“어. 근데 우리 집이 어딘지 까먹었어.”
– ……또? 가지가지 한다, 진짜. 기다려.
끊긴 전화를 붙잡고 몇 분쯤 기다렸을까, 어느 동 입구에서 여자애 하나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날백수 포스. 세상 귀찮다는 그 표정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진하연!”
“소리 지르지 마. 사람들 깨.”
……그래, 이래야 내 동생이지.
“웬일이야? 말도 없이.”
“내가 우리 집 오는데 말하고 와야 되냐?”
“하도 드문드문 오니까 그렇지. 부녀회장이 오빠보다 우리 집 더 자주 올걸?”
“그 정도냐?”
“그 정도지.”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현관문 앞에 선 하연이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고리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
“아들!”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주름진 손과 반쯤 풀린 파마머리. 깜짝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모습.
순간 목이 막힌 나는 턱을 긁적이다가 풀썩 웃어 버렸다.
“저 왔어요, 엄마.”
드디어 돌아왔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 집으로.
* * *
지글지글.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로 한창이다. 기분 좋은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오랜만에 아들 왔다고 아주 신나셨네, 우리 김 여사.”
하연이가 배를 벅벅 긁으며 옆자리에 주저앉았다.
낡은 소파가 푹 꺼진다. 돼지 같은 년.
“요리 많이 준비하고 계셔?”
“어. 완전 진수성찬. 덕분에 잘 먹겠네.”
대답은 하는데, 눈은 핸드폰 화면에 박혀 있다.
“넌 오랜만에 오빠 봤는데 반갑지도 않냐?”
“응?”
“아니, 뭐. 고생했다고 어깨라도 좀 주물러 줄 수도 있고.”
하연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이래, 태경 씨.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말하는 싸가지 봐라.”
이렇게 티격태격 하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괜히 섭섭하다.
나는, 어? 그렇게 죽을 고비 넘겨 가면서 겨우 돌아왔는데!
“지금 울컥했다. 울컥했지?”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학교 갈 준비나 해. 급식충아.”
“응. 오늘 개교기념일.”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당장이라도 저 얄미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지만 그러면 진짜 지는 거다.
“때리고 싶죠? 주먹 부들부들 하죠?”
“넌 여자라서 살았다. 불알만 달려 있었어도…….”
“엄마! 오빠가 나 성추행해!”
“야, 야!”
“오빠가 나한테 불. 읍, 읍!”
입을 틀어 막힌 하연이가 발버둥 친다. 때리고, 꼬집고. 그래 봤자 열아홉 살 여자애라 아프지도 않다.
그러다가 우연히, 녀석이 내뻗은 발이 소파 한구석에 고이 모셔 둔 드링크 박스를 강타했다.
퍽.
촤르르륵.
활짝 열린 박스. 거실 바닥에 쏟아지는 누런 지폐 뭉치.
순간, 하연이의 몸이 굳었다.
“이제 그만들 싸우고 아침 먹……어.”
거기에 부엌에서 나온 엄마까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게 멈춘 거실에, 찌개 끓는 소리만 잔잔하게 깔렸다.
지글지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밥 먹고 말하면 안 될까요?”
“……아들?”
“읍읍읍.”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한참 뒤로 미뤄질 것 같다.
* * *
가족들에게 지금까지의 일들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 주었다.
C급으로의 재각성, 그리고 돈의 출처까지.
“그렇게 된 거예요.”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렇구나.”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그리고.
“증거.”
“…….”
그래, 넌 기대도 안 했다. 나는 한숨과 함께 지갑을 던져 주었다.
“뭐야?”
“확인해 봐.”
하연이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워낙 든 게 없는 지갑이라 ‘그것’을 찾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헐.”
손에 들린 카드 한 장. 이틀 전 협회에서 발급받은 C급 헌터 자격증이다.
“위조된 거 아냐?”
“맞을래?”
“진짠가 보네.”
“그거 위조하면 중범죄야, 인마.”
“저 돈은? 오빠 말대로 그, 최 팀장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이 준 거야?”
“몇 번 말해야 믿을래.”
“350번 정도?”
말과는 달리 이제는 믿는 눈치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C급 헌터 자격증, 차곡차곡 쌓은 3억 원의 돈다발.
전부 이 낡고 좁은 거실과는 동 떨어진 물건들이다.
멍한 눈으로 앉아 있던 엄마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하연이도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허허 웃는다.
“그러게.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너 아직 스무 살도 안 됐거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근데 엄마.”
“으, 응?”
“탄내 나.”
“맞다, 찌개!”
반쯤 풀려 있던 엄마의 눈이 번쩍 뜨인다. 급한 대로 내가 몸을 일으켰지만, 부엌은 이미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뒤이어 따라온 엄마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이걸 어째!”
잔뜩 졸아 버린 국물에 숯덩이가 된 생선. 오랜만에 집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는데…….
뭐, 이런 전개도 나쁘지 않지.
“오랜만에 외식이나 하러 가요.”
평소 같았으면 식당 가격의 부조리를 일장연설 했을 엄마도, 치킨이나 시켜 달라고 했을 하연이도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동생아.”
“네, 오라버니.”
“돈 챙겨라.”
“옛썰.”
하연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돈다발을 쓸어 담았다.
* * *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레스토랑은 복장 규정이…….”
코스 요리 먹는 데 1인당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복장 규정이요?”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진짜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죄다 정장에 원피스, 심지어는 드레스도 있다.
‘시바, 누가 보면 무도회장에 춤추러 온 줄 알겠네.’
여기가 무슨 18세기 프랑스야?
국밥집만 드나들었던 내게는 엄청난 문화 충격이다.
“그냥 다른 데 가자.”
“그래, 하연이가 이 근처 맛집 많이 알더라.”
나보다도 식구들이 더 무안해하는 것 같아 그냥 나왔다.
레스토랑 유리에 우리 셋의 모습이 비친다. 오랜만의 외식이라고 신경 써서 입었을 게 분명한데, 가진 옷이라고는 죄다 시장 메이커에 오래 입은 티가 난다.
‘돈이 부족했나?’
나 먹는 거, 입는 거 아껴 가며 번 돈의 대부분을 집에 보냈다.
F급 헌터였을 때도 남들보다 배로 일하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을 텐데.
“아들, 삼겹살 먹으러 갈까?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은 좀 그런가?”
“삼겹살 좋지. 엄마가 뭘 좀 아네. 친구가 저 앞 사거리 고기집 갔는데 엄청 맛있었대.”
겨우 삼겹살.
지갑에는 C급 헌터 자격증이 있고 가방에는 돈다발이 가득하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걱정 없이 사치 부려도 되는데.
‘내가 일하는 이유가 그건데.’
누가 그랬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고. 행복에는 가격표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그런 소리 하는 놈들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좆 까.’
없어서 못 쓰는 게 돈이다. 그리고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젯밤 내내 고민한 끝에 마침내 결심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쓰기로.
지금, 그 결심이 훨씬 크기를 부풀렸다.
“우리 밥 좀 늦게 먹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미래 백화점이요.”
근방에서 가장 크고 비싸다는 백화점이다. 룸미러 속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화점?”
반면 하연이의 입꼬리는 음흉하게 솟구쳤다.
“좋네. 돈 많은 오빠가 옷도 사 주고.”
역시 눈치 빠른 녀석. 척하면 착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사고 싶은 거 다 사.”
“진짜?”
“엄마 것부터 골라 주고.”
“오케이.”
“효자 아드님 두셨네. 허허.”
기사의 너스레에 비로소 엄마가 웃었다.
* * *
“진짜 다 산다?”
“다 사.”
최종 확인이 끝나자 하연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백화점을 누볐다. 옷을 스캔하는 눈썰미도 매섭고 동작은 또 어찌나 빠른지 각성자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처음에는 옷보단 가격표를 보던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어때?”
“너무 짧지 않니?”
“이거!”
“괜찮네.”
“이것도!”
“예쁘네. 저기 언니, 이 옷 한 사이즈 더 큰 거 없어요?”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나는 신체의 변화를 느꼈다.
‘죽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극심한 호흡 곤란과 다리 통증.
무림에서 조필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무력감이 온몸을 감싼다.
“오빠, 나 어때?”
“못생겼어. 저리 꺼져.”
“아들, 이거 입어 봐.”
“안 입어 봐도 될 것 같아요. 그걸로 살게요.”
그날 우리가 몇 벌의 옷을 샀고, 얼마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쇼핑을 모두 끝내고 돌아갈 때쯤에는 백화점 높은 분이 우리를 배웅했으며.
“어서 오십시오.”
복장 규정이 철저하다던 레스토랑의 지배인은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우와, 나 이런 거 처음 먹어 봐.”
“그러게. 어쩜 요리를 이렇게 예쁘게 하지?”
소곤거리는 엄마와 하연이의 뺨이 불그스름하다.
수십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먹으려고 그 수십 배쯤 되는 돈을 썼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은 날이었다.
“근데 밥 먹고 싶다. 느끼해.”
“여기 왜 이렇게 양이 적니?”
……아깝지 않은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