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33
#532화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군가가 사 놓은 만두를 꾸역꾸역 삼켰던 것? 아니면 살살 아려 오는 배를 무시하고 호법을 서다 깜빡 졸았던 것?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콰앙!
측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울려 퍼진 굉음이, 그의 모든 것을 끝장냈다는 사실 말이다.
“아아, 따뜻해…….”
언젠가 조장님이 그랬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 말이 맞았다. 쾌감은 황홀했고 그의 하반신에서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볼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걸까.
‘왜긴. 씨바.’
쌌다. 싸 버렸다.
그것도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대로변에 위치한 대형 객잔의 측간에서.
돈푼깨나 있는 이들만 출입하는 고급 객잔이기에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한줄기 위안이었지만, 이 꼴로는 죽어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켰다가는 끝장이다.’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자존심과 무공을 빼면 가죽만 남는 것이 바로 무림인이다.
지금 이 모습이 발각되어 소문이 퍼지느니, 차라리 잔혹한 마두와 목숨을 건 생사결을 펼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어떡하지?’
일생일대의 고민.
하의와 속곳은 당연히 버려야 한다. 얼마 전 큰맘 먹고 장만한 가죽신도 이미 회생 불능이다.
그럼 이걸 모조리 벗고, 상의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 온 힘을 다해 뛴다면…….
‘죽겠지.’
덜렁거리며 필사적으로 대로변을 가로지르는 놈이 있다면 당장 쳐 죽여도 무림에서는 합법이다.
지나가던 무림인들이 죄다 뛰쳐나와 병장기를 휘둘러 댈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암천의 마두보다 더한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는데. 점소이라든지.’
이건 그나마 낫다. 점소이를 불러 적당히 은자를 쥐여 주면 몸을 닦을 만한 면포와 옷을 가져다줄 테니까.
혹시 점소이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추가 비용이 들겠지만, 장례식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조장님이나 궁기방, 그 인간들한테는 절대 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혁무진은 굳게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그와 동행한 이들은 집요하기로는 독사보다 더한 종자들이었다. 이런 약점을 잡혔다가는 십 년은 기본이고 이, 삼십 년까지 놀려 댈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혁무진이 임종하기 직전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진아…….’
‘아이고, 혁가 놈아!’
‘허허, 때맞춰 오셨군요. 조장님. 그리고 궁 대협.’
‘흑흑. 당연히 때맞춰 와야지! 넌 그날 늦어서 바지에 똥을 지렸지만 난 늦지 않아!’
‘혁가야, 이제 편히 쉬어라. 이제 병풍 뒤에서 마음껏 똥 냄새를 풍겨도 괜찮아.’
‘……제발 그만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비참한 최후다.
잠깐 점소이를 시켜 처소에 남아 있는 청풍을 부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제 무덤을 파는 격이었다.
‘와아, 저 바지에 똥 지린 사람 처음 봐요! 처음에는 뱀인 줄 알았어요! 미미와 닮은 천년 똥각사예요!’
‘잠깐. 청 소협! 잠깐만요!’
‘기다리고 계세요. 다른 분들을 불러올게요! 저기요! 거기 지나가시는 무당파 도사님! 여기 제가 아는 분이 똥을 지리셨는데…….’
‘야, 이 개새끼야!’
차라리 목에 ‘똥 지린 놈’이라고 푯말을 걸고 다니는 편이 백배 낫다.
뇌리를 가득 채운 끔찍한 상상들로 등골이 서늘해진 혁무진이 몸을 떨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기척.
눈이 번쩍 뜨인 혁무진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커흠. 큼.”
문밖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기침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커흐흐흠! 거기 누구. 콜록, 없나. 콜록!”
“음?”
드디어 반응이 왔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혁무진은 억지로 근엄한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점소이인가?”
혁무진의 물음에 문밖의 누군가가 대답했다. 젊고 부드러운 사내의 목소리에는 자연스러운 하대가 배어 있었다.
“점소이를 찾는 모양인데, 안타깝지만 그쪽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네. 당신도 들었으니 알겠지만 제법 큰 소란이 일어났거든.”
모를 수가 없다. 그 빌어먹을 굉음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라 다들 수습에 바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측간에 들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지.’
혁무진이 내심 중얼거린 그때였다.
“그럼 욕보게.”
무심하게 건넨 한 마디와 함께 서서히 멀어지는 인기척.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혁무진이 외쳤다.
“자, 잠깐! 잠깐만!”
“음?”
“미안하지만 나 좀 도와줄 수 있소? 꼭 도움이 필요하오.”
“글쎄. 나도 바쁜 몸이라.”
“그, 아주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렇소.”
“사소한 문제라면 알아서 해결해야지.”
“잠깐만! 형님! 아버님! 은인!”
짧은 침묵 후, 재차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지렸나?”
지렸나. 지렸나. 지렸나……
메아리치듯 귓가를 파고드는 한 마디. 혁무진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흑. 그렇소.”
“큰 거? 작은 거?”
“…….”
“허어. 둘 다?”
“크흑. 흐으윽.”
문밖의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큰일을 처리하면 작은 일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더니.”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지나가는 길에 점소이를 보면 언질 정도는 해 두지.”
“지, 지금 가져다 주면 안 되겠소? 그때가 되면 말라 버릴 수도 있단 말이오.”
“……더럽군. 그럼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만.”
“자, 잠깐!”
다급해진 혁무진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나, 나는 혁무진이라는 사람이오! 보아하니 형장도 무림인 같은데, 한 번만 도와주고 함구한다면 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소!”
“혁무진이라면. 혹시 열화신룡의 새끼발가락이라는?”
“……그렇소. 그리고 새끼발가락이 아니라 오른팔이오.”
혁무진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문밖의 사내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짐작했지만, 이렇게 단박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릴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떠나려는 상대의 발길을 붙잡고자 하는 의도로는 성공적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군. 재미있어.”
“……?”
펄럭.
혁무진이 의아해하던 그때, 의미를 알 수 없는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비단 장포가 훨훨 떨어져 내렸다.
엉겹결에 장포를 받아든 혁무진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고, 고맙소.”
“적당히 닦고 나오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줄 테니.”
“그. 혹시, 우리 조장님과 아는 사이…….”
“초면일세. 하지만 열화신룡도 딱히 날 박대하진 않을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신의 새끼발가락, 아니 오른팔을 도와준 은인 아니겠나.”
“……!”
혁무진은 깨달았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뭔가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은 상황. 혁무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러려고 장포를 던져 준 거요?”
“왜. 마음이 바뀌었나? 그럼 장포를 도로 던…….”
“기왕 이럴 거면 입을 만한 옷도 좀 구해 주시오. 지금 닦는다고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오.”
“…….”
* * *
고월루(古月樓).
그것이 호화로운 삼 층 객잔의 이름이었다.
큰 규모만큼이나 말썽도 자주 일어나는지,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주인장이 십여 명의 고용 무사들을 거느리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험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제아무리 강호의 소협들이라 하셔도 보상은 치러야…….”
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잘랐다.
“우선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수리비 얼마 나옵니까?”
“뭐요?”
“수리비.”
“……이백 냥쯤 나올 것 같습니다만.”
“그럼 이것저것 피해 보상까지 합쳐서 삼백 냥으로 합시다.”
“예?”
끽해야 삼 층의 난간과 벽 일부가 좀 무너진 정도다.
큰맘 먹고 이백 냥을 불렀는데 삼백 냥으로 응수했으니 주인장 입장에서는 뭐 하는 놈인가 싶을 거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금액을 불러 놓고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단, 황보세가 이름으로 달아 놔요. 돈 받으러 갔는데 거기 소가주라는 놈이 지랄하면 진태경이 시켰다고 하고.”
“그 말을 제가 어떻게…… 잠깐. 진태경?”
수상쩍은 눈빛으로 나를 훑던 주인장과 고용된 칼잡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지, 진태경이면. 태원진가의 그 진태경?”
“헉, 열화신룡! 열화신룡이다!”
“나, 강림.”
하남 대로변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객잔을 운영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월루의 주인장은 확실히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진태경 대협께서 방문해 주시다니, 일생의 영광입니다!”
“기왕이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세요. 그나저나 아까부터 목이 깔깔한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올리겠습니다! 다들 뭣 하는가!”
역시 화를 가라앉히는 데에는 금융 치료가 최고지.
언제 그랬냐는듯 초롱초롱해진 눈망울로 외친 주인장이 칼잡이들을 이끌고 사라지자,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간지러워지는 웃음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요?”
은비화(隱匕花) 주화란. 그녀가 물망초 같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냥, 지난번 일이 생각나서요.”
“지난번이라면. 아.”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용봉표국과 종남파 간의 분쟁.
적천강의 치료를 위해 사천으로 향하던 나는 우연히 그 일에 끼어들었고, 힘으로 내리찍으려는 태을무정검을 꺾은 뒤 협상 과정에까지 참여했었다.
‘그때 종남파 기둥뿌리 두세 개 정도는 뽑았지.’
주화란은 지금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것이 분명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났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신기하네.”
정작 신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 대화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왜 시선을 피하세요?”
“사시입니다. 지금 똑바로 보고 있는 거예요.”
“풋.”
“왜, 왜 웃어요.”
무슨 말이라도 잘못했나?
당황하는 나를 보며 주화란이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참 여전하시네요, 진 대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주 소저도…… 여전하십니다.”
무심코 튀어나오려는 말이 있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건 옆에서 가늘어진 눈매로 이쪽을 바라보는 몇 쌍의 눈동자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기침을 하는 척하며 은밀히 전음을 흘려보냈다.
– 기방아.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냐. 명치 뚫리고 싶니?
– 크흠. 큼.
한 놈 클리어.
하지만 아직도 무려 세 놈이나 남아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놈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 어이.
곤륜운룡 학우, 성라대연 예선 당시 내게 정수리를 밟혀 추락한 곤륜파 최고의 후기지수다.
어째서인지 원형 탈모가 생긴 그가 내 시선에 흠칫 놀라며 전음을 보냈다.
– 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진 도우.
– 별건 아니고.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 으응?
– 솔직히 말해 봐. 지금 바쁘잖아.
– 무량수불. 안 바쁘오만.
– 아닐걸. 당장 급한 일이 생각나서 가 봐야 할걸.
– 사문에는 이미 오늘 약속에 관하여 허락을 받았소. 급한 일 같은 거 없…….
– 어이, 학 씨.
– 무량수불?
– 가라고. 머리털 죄다 뽑히기 싫으면.
– ……!
탈모인들에게 머리카락이란 목숨만큼이나 소중하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먹은 학우가 울상이 된 얼굴로 주화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어. 주 소저.”
“응? 왜 그러세요?”
“빈도가 급한 일이 생각나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 소저께는 참으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니에요. 전 괜찮으니 어서 가보세요.”
“하지만 그래도 실례인…….”
“멀리 못 나가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잠깐만요.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 주시…….”
“다음에 또 뵐게요!”
지금 보니 주화란은 은근히 성격이 급한 모양이다.
눈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나와 주화란을 번갈아 바라보던 곤륜운룡 학우가 사라지자, 아직 처리하지 못한 두 사람에게 자연히 시선이 쏠렸다.
“미리 말해 두는데, 난 안가. 소국주 직속 호위라서.”
검 한 자루를 품에 안고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던 표사. 송일섬의 한마디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가라고도 안 했다. 그럴 생각도 없고.”
“흠. 믿어 주지.”
송일섬의 표면적인 신분은 주화란의 호위지만, 극소수만에게만 알려진 숨겨진 신분은 따로 있다.
바로 정마대전 당시 마교에 의해 멸문당한 철혈의 무가, 광동진가의 마지막 후예이자 과거 추혼객(抽魂客)이라는 별호를 지녔던 불패의 낭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놈은 똑같네.’
그때의 나도 유명했지만, 지금의 명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송일섬은 변함없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덤덤하고 까칠한 기색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한 놈은…….
“배고프다. 밥. 너무 늦다.”
“…….”
저 뻔뻔한 태도 뭔데.
정체불명의 거한. 이 자식은 왜 따라온 걸까.
하지만 이유는 몰랐어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 녀석의 정확한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기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레벨과 이름 정도다. 사문이 어디인지, 누구와 얽혀 있는지는 대화로 파악해야 했다.“많이 배고픈 모양이네.”
“맞다. 나, 많이 배고프다.”
거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 여섯 끼밖에 못 먹었다. 죽을 것 같다.”
“…….”
여섯 끼 실화냐.
사문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이놈 식비로 기둥 몇 개는 뽑았다는 것에 혁무진 손목을 걸 수도 있다.
‘어, 잠깐만. 혁무진?’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은 똥 싸러 간다고 사라지더니 왜 안 나타나?
이제야 혁무진의 빈자리를 눈치챈 내가 주위를 둘러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조, 조장님!”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이 잔뜩 서린 외침.
하지만 내 시선은 마침내 나타난 혁무진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녀석의 등 뒤, 이쪽을 향해 빙긋 웃고 있는 낯선 사내와 눈이 마주친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저건 또 누구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