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54
#553화
내가 아무리 레벨 업을 하고 능력치를 올려도 달라지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사람에게만큼은 여전히 철부지 어린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친애하는 김정희 여사의 손은 모든 방어력을 무시하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뭐 하니, 너희?”
꽉 움켜쥔 주먹. 다른 한 손에는 국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여사님. 깜빡하신 것 같은데, 이 아들이 오늘 생일입니다.”
“그래서?”
“곧 서른이라는 뜻이죠. 남들 앞에서 손찌검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난 내일모레면 환갑이란다.”
“앗, 아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마음 깊이 실책을 인정한 나는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두 달, 아니 얼마 전에는 몬스터와도 악전고투를 치렀습니다.”
“무사히 돌아와서 천만다행이구나, 아들.”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런데 왜 몬스터도 아니고, 여덟 살이나 차이 나는 여동생이랑 그렇게 싸워 대니?”
“어머니. 전 사람과는 싸우지 않습니다. 고로 저것은 제 여동생이 아니라 몬스터입니다.”
“그럼 내가 몬스터를 낳았다는 뜻이구나.”
“……!”
“손바닥, 국자. 뭐가 더 낫겠니?”
외통수다. 더는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달은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손바닥이요.”
“팔뚝? 등?”
“등으로 하겠습니다.”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대답에, 즉각적인 응징이 이어졌다.
“엄마가!”
짝!
“싸우지!”
짜악!
“말랬지!”
짜아악!
“꺅!”
“으헉!”
세상에, 화염신장인가.
등짝을 파고드는 격통에 나와 하연이는 비명을 질렀다.
무림에서는 천무지체(天武地體)라고까지 불리는 완벽한 신체도 지금만큼은 아무 소용 없었다. 이건 영혼에 각인 된 두려움이요, 고통이다.
‘피할 수도 없고.’
피했다가는 괘씸죄가 적용되어 열 배 이벤트가 터질 것이 뻔하다.
결국 나와 하연이는 등에 엄마손 인증마크를 찍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고, 가쁜 숨을 내쉬며 돌아서는 김정희 여사를 바라보는 최 팀장과 스켈레톤 킹의 동공에서는 지진이 일어났다.
“어, 어머님. 전 말리려고 했습니다.”
“아, 아임 아메리칸. 미합중국 시민. 돈 터치. 플리즈.”
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물론 김정희 여사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호, 우리 애들이 좀 말썽이었죠. 미안해요. 아직 둘 다 철이 없어서. 아침 만드는 중이니까 같이 들어요.”
“가, 감사합니다.”
“땡큐. 땡큐 정희.”
뭐, 시벌놈아?
다른 건 몰라도 땡큐 정희는 뒤졌다.
스켈레톤 킹을 향해 눈빛으로 살인 예고를 날린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답게 식당까지의 거리는 상당했지만, 저택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와 단거리 텔레포트(Teleport) 마법진을 사용하면 금방이었다.
“……?”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어이가 없네. 어떻게 저택 내부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냐.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최 팀장을 바라보니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워낙 저택이 넓어서요.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설치해 둔 것으로 압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보통 그런 용도죠. 당연히.”
밥을 먹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뻔한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최 팀장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소시민 집안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
대한민국의 재벌 3세도, 검술 명가 막내아들도 최 팀장에게는 몇 수 접어 줘야 한다.
그의 외조부는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쓰러트리고 인류를 구원한 불멸의 영웅이니까.
‘천태민.’
과거 어느 선지자의 탄생이 기원(紀元)을 전, 후로 나누었다면, 천태민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의 모습을 수천만 명이 보았고 수억 명이 기억한다.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는 무수한 세월이 흐르고 인류가 멸망을 맞이할 그 날까지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천태민이 한때나마 이 저택에 살았었단 말이지.’
지금은 외손자인 최 팀장조차 그의 행방과 생사여부를 모르지만, 그런 것을 떠나 새삼 감동적이었다.
비록 극성인 주변 언론 탓에 잠시 임시 세입자로 신세를 지고 있긴 해도, 천태민이라는 불멸의 영웅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끝내준다.’
그토록 값지다는 A급 마정석을 건전지처럼 박아넣어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저택 내부를 바라보던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후웁.”
그런 내 모습에 최 팀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십니까?”
“기운을 받는다고 해야 하나. 영웅의 체취를 느낀다고 해야 하나.”
하연이가 쓰라린 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변태 새끼예요. 후각 페티쉬가 있거든요.”
“건방진 인간 계집은 조용히 해 줄래?”
“그래? 엄…… 읍!”
“오늘 밤 피살되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
나도 이제 내일모레면 서른인데, 다른 사람 앞에서 더 이상 맞는 모습을 보여 주긴 싫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상함을 느낀 김정희 여사가 뒤를 돌아보기 직전, 한 사람이 나타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원두커피 CF가 자동 재생되는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정리된 포마드 헤어와 깔끔하면서도 중후한 맞춤 정장.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온 김 집사가 가장 먼저 최 팀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편안한 밤 되셨습니까, 도련님.”
최 팀장이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리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 좀 늦게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상태는 나쁘지 않습니다.”
“미스터 존슨 측에서 온 제안 때문이군요.”
“위저드(Wizard) 길드와 체결한 협약 중에 조정해야 할 부분이 생겨서 말입니다. 사안은 정리해 두었으니…….”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던 하연이가 중얼거렸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야, 뭐야.”
“드라마는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웹소설 아닐까.”
웹툰이라면 모를까. 이런 판타지를 드라마로 만들면 제작비 왕창 깨지겠지.
“그냥 넘어가. 어차피 보다 보면 익숙해져.”
“저게?”
“……익숙해지려고 노력 정도는 해 봐.”
사실 아직도 매번 낯설어서 미칠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현대 시간으로 불과 반년 전까지는 순대국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F급 헌터다.
그랬던 나를 언론에서는 최태민의 뒤를 잇는 새로운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미처 바꾸지 못한 낡은 가죽 지갑에는 최상급 마정석을 특수 가공한 S급 헌터 자격증이 꽂혀 있다.
‘슬슬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은근히 잘 안 되네.’
그 이유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당장 현대와 무림. 두 세상을 바쁘게 오가며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
어쩌면 내게 주어진 부와 명성을 온전히 누리며 익숙해지는 것이 더 이상한 거겠지.
“더 자세한 사안은 식사 후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련님.”
“아, 그러시죠.”
때마침 짧은 대화를 끝낸 최 팀장과 김 집사를 따라 걸음을 옮긴 곳은 식당이었다.
아니, 식당보다는 차라리 연회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겠다.
그곳은 그만큼 넓었고, 정갈하면서도 우아했으며 뛰어난 AI 기능이 탑재된 로봇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준비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음.”
“역시.”
나와 하연이를 제외한 모두가 눈을 깜빡였다. 특히 스켈레톤 킹의 속삭임에는 순수한 의구심이 가득했다.
“간악한 인간이여.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말해.”
“무엇이냐. 분명 식사를 하라고 들었거늘, 왜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냐.”
스켈레톤 킹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회장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식기도, 음식도 준비되지 않은 완벽한 백지상태.
내심 짐작하고 있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런 거야.”
“뭐라고?”
“절대적인 규칙. 아니면 종족적인 습성. 뭐 그런 비슷한 거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건 한창 준비 중이라는 뜻이다.
밥 차려 놨으니까 당장 나오라고 한 번을 외치든, 열 번을 외치든 나가 보면 결과는 똑같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하연이는 벌써 식기부터 찾는 중이다.
“죄송한데. 여기 수저 어딨어요?”
“네?”
“수저요. 숟가락이랑 젓가락.”
말없이 눈을 깜빡인 최 팀장의 시선이 슬그머니 한 사람을 향해 옮겨졌다.
“김 집사님?”
순간 칼같이 정돈된 김 집사의 포마드에서 잔털 한 가닥이 삐쭉 튀어나왔다.
“전부 로봇 회로에 적용된 부분이기 때문에, 전부 알아서 가져다주…… 그런데 왜 로봇이 안 움직이죠?”
그때, 국이 끓는다며 일찌감치 국자를 들고 주방으로 달려간 김정희 여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머, 그거 전원 꺼 놨는데.”
“예?”
“네?”
“안 그래도 신세 지게 되어서 죄송한데, 괜히 전기세 낭비하는 것 같아서요. 애들 시키면 금방 하니까 자리에 앉아 계세요.”
“…….”
“…….”
어차피 저택의 모든 로봇들이 전기가 아니라 내장된 마정석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전기비 따위 아낄 필요 없다는 것도 김정희 여사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 뻔하다.
상대는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스럽게 두 남매를 키운 프로 주부다.
할 말을 잃은 채 나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나는 입맛만 다셨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저도 한두 번 말해 본 게 아닌데, 안 통하더라고요.”
지금껏 보내 주었던 생활비도 이 돈을 어떻게 쓰냐며,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어머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은 나는 스켈레톤 킹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빡!
“아니, 왜……?”
“뭐 해, 새꺄. 가서 도와.”
“간악한 인간이여. 이건 부당하다. 미국식도 아니다!”
“그럼 미국 가든가. 당장 입국하자마자 몬스터인거 들키고 옥타곤으로 끌려가겠지만.”
최 팀장이 아연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펜타곤입니다, 진태경 씨…….”
“옥타곤이나 펜타곤이나. 됐고, 최 팀장님이랑 김 집사님도 가서 도우세요.”
“예?”
“함께 먹는 식사잖아요. 다 같이 준비해야죠.”
순간, 최 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함께 먹는…… 식사?”
“제대로 들으셨네. 그럼 얼른 가서 식기부터 놓으세요. 여기서 잘 하나 안 하나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잠시 흔들렸던 최 팀장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감시요?”
“네.”
“그럼 진태경 씨는? 아무것도 안 합니까?”
“전 오늘 생일입니다. 헌터 훈련소에서도 생일인 사람은 자유 시간 줬어요.”
“…….”
“뭐 해요. 미역국 나오기 전에 준비해야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외조부인 천태민마저 잠적한 이후 이정룡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었다고는 해도 귀한 집 도련님은 도련님.
그런 최 팀장으로서는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을 거다.
지금껏 보지 못한 어벙한 얼굴로 김 집사와 함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나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뉴스만 한 게 없지.’
톡. 톡톡.
몇 번의 터치 후, 헌터들만 가입할 수 있는 대형 커뮤니티에 접속한 나는 불과 10분 전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고 문득 손을 멈췄다.
[前아레스 부길드장 이정룡(68세). 내일 국장(國葬) 치러질 예정.] [불멸의 영웅, 천태민은 어디에?] [세계의 관심 속에, 쓰촨성에 남아 있던 아레스 길드원 출국. 故이정룡 씨의 경호팀장이었던 석고준 헌터에게 쏟아지는 세계 각지의 관심……]“석고준이라.”
그래, 이놈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