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60
#559화
순간이동. 소위 텔레포트(Teleport)라 불리는 공간 이동 마법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고난도로 악명 높다.
좌표라도 잘못 찍으면 골로 가는 건 한순간이요, 마나 소모도 극심하여 장거리 이동이라도 할라치면 뒷목 잡고 쓰러지기 딱 좋다고 했다.
‘이른바 극강의 똥성비.’
하지만 그게 뭐든 간에, 결국 ‘누가’ 하느냐의 차이다.
초절정 고수의 손에서 펼쳐지는 삼재검법이 여느 신공(神功)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70억 인류를 통틀어 셋밖에 존재하지 않는 대마도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퍽킹 코리아.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오는 길에 멀미가 날 뻔했다고.」
투덜거리는 검은 피부의 대마도사, 매직 존슨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대륙 간 이동에 멀미 정도면 싸게 먹힌 거죠. 다른 마법사였다면 삼도천에서 뱃멀미 하고 있을 텐데.”
「샘-두-천? 그게 뭐지? 서울의 청계천인가 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조금 다르긴 한데. 예. 뭐, 넘어갑시다.”
단번에 서울을 지옥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매직 존슨이 방 내부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헤이, 왓섭 게이즈! 다들 오랜만이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소수자 1위’의 인사에, 최 팀장이 세계에서 가장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이즈입니다, 미스터 존슨. 게이즈가 아니라.”
「최, 이렇게 나오면 섭섭해. 네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직접 와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보안 메일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한 거 아냐?」
“제 기억으로는 우리가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진태경 씨?”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존슨이야 국가장 때도 왔었으니까.”
이번에 치러진 국가장의 규모는 엄청났다. 백만에 달하는 국민들의 조문과 함께 전 세계 각국의 유력 인사들이 방한(訪韓)한 것이다.
이정룡이 생전 지녔던 영향력을 알려 주듯, 조문객 중에는 한 나라의 대통령들도 제법 있어서 어느 언론에서는 ‘정상 회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거물 중에는 미합중국의 상징 중 하나인 매직 존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헤이, 진. 이렇게 나올 건가? 그건 자네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추모의 뜻이었잖아.」
“추모요?”
「그래. 옛 전우를 배웅하는 길에 온 것뿐이었다고.」
“그런데 이태원 게이바는 왜 가셨어요. 그것도 환영 마법으로 얼굴까지 바꾸시고.”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지?」
“존슨이랑 같이 게이바 갔던 놈이 말해 주던데요. 아주 결정적인 증언이었습니다.”
처음 반가워하던 기색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날의 피해자, 스켈레톤 킹이 분노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몸의 엉덩이에 뭔가가 닿았을 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빌어먹을 인간이 날 속였어.”
「이 은혜도 모르는 몬스터 머더 뻐커…….」
표정 봐라.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난폭한 성소수자 1위’라고 해도 믿겠다.
험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매직 존슨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재빨리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오해하지 말게. 단지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려고 간 거였으니까.」
“옛 전우를 위한 추모는 이베이에 팔아먹었습니까?”
「진, 이러지 마. 영결식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추모는 끝났어. 자네야말로 미스터 리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잘 알잖아.」
알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리고 매직 존슨은 아크 리치의 본거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다.
「어쨌든 다시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거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름이…… 로빈훗이었지?」
불행하게도 통역 아이템을 소지하지 않은 한국의 로빈훗, 임꺽정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나야 당연히 괜찮지. 하지만 지금부터는 썩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군.」
슥.
매직 존슨이 한숨 섞인 말과 함께 내민 것은,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메모리 칩이었다.
그것을 받아 살피던 최 팀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부탁드렸던 정보입니까?”
「그래. 알아보느라 오랜만에 힘 좀 썼지.」
“감사 인사는 자료를 살핀 후로 미루겠습니다.”
「얼마든지.」
툭. 솨아아악.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최 팀장이 테이블 밑 어딘가를 두드리자, 개인 사무실 내부의 모든 창문과 틈새가 가려지고 보이지 않는 마나가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마법?’
나도 알아차린 것을 대마도사인 매직 존슨이 모를 리 없다. 그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중첩 마법이 일곱 개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보안이 철저하군. 이 정도 수준의 마법사는 우리 길드 내에서도 몇 안 되는데…… 누구 솜씨지?」
“어린 시절부터 제 손발이 되어 주셨던 분입니다.”
아직 김 집사와 매직 존슨은 서로를 마주한 적이 없다.
짤막하게 대답한 최 팀장이 메모리 칩을 스마트폰에 삽입하자, 곧 화면 위로 어떤 홀로그램 영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 콰가가가각!
생생한 굉음과 함께 반경 수십여 미터에 달하는 지면이 뒤집히고, 모래 알갱이가 사방으로 튄다. 흡사 지진이라고 부를 만한 광경.
여러 인종이 뒤섞인 백여 명의 헌터들이 욕설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 Fuck!
– 산개! 즉시 산개해라! 놈들이 온다!
– 힐러! 힐러어!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현장. 메마른 나무와 사방에 가득한 모래 언덕 사이에는 무너져 내리는 수 채의 건물들이 보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임꺽정의 눈이 커졌다.
“모,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정답이다. 게이트 내부에 현대식 건물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
모든 게이트는 최소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고, 등급은 각 게이트가 품고 있는 마력의 총량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해당 게이트의 등급을 훌쩍 뛰어넘는 몬스터가 출현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이 변이(變異) 게이트.’
변이 게이트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렇게 등장한 상위 몬스터의 존재로 인해 게이트가 수용할 수 있는 마력의 총량을 넘어선다면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몬스터 웨이브.’
견고한 댐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무너진다면, 가둬 놓았던 물은 흘러넘치는 법.
지금 홀로그램을 통해 보이는 광경이 바로 그와 같았다.
– 쉬리리릭!
기묘한 울음소리를 흘리는 거대한 전갈이 무려 십여 마리.
모래 깊숙이 파고든 놈들의 꼬리가 지면 위로 솟구치고, 비명과 핏물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 크아아아악!
– 조셉! 조셉을 구해!
– 일제 사격 개시잇!
콰드드득!
인간과 몬스터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몸을 날리던 그 순간.
핏.
사무실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던 홀로그램 영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영상 송출을 중지시킨 최 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 있었던 일입니까?”
매직 존슨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흘 전. 장소는 모하비 사막. 사막 지대가 여러 주에 걸쳐져 있지만, 애리조나주 쪽에 가까운 곳이었지. 정확한 좌표까지는 알지 못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나흘 전이라고요?”
「그래, 나흘 전.」
“그 정도라면 이미 공식 발표가 나왔어야 할 텐데요.”
게이트는 희박한 확률로 터지는 시한폭탄과 같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게이트에 늘 주의를 기울인다.
이른바 ‘폭탄 제거반’이라 불리는 국가직 헌터들을 각 지역에 배치하고, 정해진 법에 따라 일정 시일 내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잠잠하지?’
변이 게이트도 드문 현상이지만 몬스터 웨이브는 그보다 수십 배는 더 희박한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
이 정도면 언론에 대서특필 되어 화제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이렇게 큰일을 근래 들어 곳곳의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는 나나, 최 팀장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남은 답은 하나뿐이다.
“공식 발표는 없겠군요.”
내 중얼거림에, 매직 존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국방부가 나서서 모든 걸 깔끔하게 덮었지. 몬스터에 의해 뒤집혔던 저 사막처럼.」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 왜 이래, 진. 이건 미합중국의 국방부가 기밀리에 처리한 일이야. 차라리 뭐가 불가능하냐고 물었어야지.」
매직 존슨이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스물두 명이 죽고 서른다섯 명이 다쳤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 기지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은폐하기에도 쉬웠겠지.」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은폐잖습니까.”
「맞아. 대격변 이후 대대적으로 수정된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지. 하지만 가끔은 차가운 진실보다 선량한 거짓말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는 법이야.」
“……!”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역시 지금 존슨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암천(暗天).’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들은 어느 날 찾아온 진실에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무림에서 암천의 존재가 바로 그러했고, 나 역시 놈들의 정체가 알려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뒤통수가 얼얼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막연히 짐작했던 불안감이 실체로 드러난 것에 대한 충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몇 번째입니까?”
주어가 없는 물음.
그러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매직 존슨의 안색은 내 질문의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증거였다.
“존슨.”
「……Fuck.」
한숨처럼 욕설을 중얼거린 그가 최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 내가 준 칩에 저장된 영상이 몇 개지?」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던 최 팀장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서른두 개.”
「그래. 그중 두 번은 몬스터 웨이브였고, 나머지는 변이 게이트였지. 중요한 건, 내가 입수한 자료만 그 정도라는 거야.」
매직 존슨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위상, 그리고 영향력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막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합중국의 국방부의 정보력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존슨이 입수한 자료만 서른두 개라니.’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일이 벌어졌을까.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린 듯, 나와 최 팀장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문 그때였다.
“잠깐. 잠깐만.”
손가락으로 열심히 뭔가를 셈하던 스켈레톤 킹이 화등잔만 해진 눈동자로 매직 존슨을 바라보았다.
“더는 고맙지 않은 인간이여. 지금 네가 한 말에 따르면, 하루도 안 거르고 그런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 아니냐?”
「거기 입 싼 몬스터, 상황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는 것 아닌가?」
“응?”
그 뒤에 이어진 매직 존슨의 한 마디는, 차라리 안 듣는 편이 나을 뻔했다.
「한 달이 아니라. 최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
“……!”
순간 사방을 짓누른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존슨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
“…….”
앤 유는 개뿔이, 홀리 쓋이다. 시부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