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63
#562화
그곳은 온 사방이 끝없이 뻗어 있는 황무지였다.
태양은 존재하지 않으나 마력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빛이 감돌고, 수백 마리의 오크가 무리를 지어 떠돌다 헌터에 의해 사냥당하는 곳.
아니, 그랬었던 곳.
쿵. 쿵. 쿵.
지면이 몸을 떨었다. 사방을 잠식한 마력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팽창하며 숨을 옥죈다.
헉. 허억. 가쁜 숨이 흘러나오는 헌터들의 입안에서는 단내가 풍겼다.
동그랗게 등을 맞댄 그들의 주위에는 이미 백여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저 너머에서는 그 열 배에 달하는 몬스터 대군이 밀려오고 있었다.
“티, 팀장님.”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나간다.”
겁에 질린 누군가에게 답하는 팀장의 대답은 목소리는 공허했다.
묻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기적적으로 몬스터 대군의 포위망을 뚫는다 해도, 한 놈만큼은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 크와아아악!
오크 로드.
백만분의 일 확률로 탄생한다는 강력한 변이 개체의 포효에 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은 괴성과 함께 각자의 무기를 부딪쳤다.
– 취이이익!
카캉! 쾅쾅쾅!
그 광경을 바라보는 헌터들의 눈빛에 절망이 스쳤다.
‘끝장이다.’
상대는 오크 로드의 지휘하에 더욱 강력해진 몬스터 대군이다.
강력한 지휘관을 얻은 오크들은 더 이상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다니던 오합지졸이 아니었고, 헌터들의 숫자는 고작 스물도 채 되지 않았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순간 모두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설령 그들이 동급의 헌터들을 압도하는 실력자라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레스 길드라는 자부심도 코앞에 닥쳐 온 죽음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빌어먹을 변이 게이트.”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중얼거림과 함께, 사방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이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오크 로드가 있었다.
– 카르취! 칼립토!
구구구구궁!
알아들을 수 없는 마계어와 함께 쏘아지는 거체.
이를 악문 레이드 팀장이 방패를 들고 마주 달려 나갔다.
뒤에서 그를 부르는 팀원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지만, 오직 눈앞의 적을 향해 모든 신경과 힘을 끌어올렸다.
“와라!”
두려움을 애써 몰아내는 커다란 외침.
그를 발견한 오크 로드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번뜩인 순간, 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가 팀장의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그어졌다.
후웅, 콰아아앙!
단 일격. 그것으로 끝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력한 일격은 굉음과 함께 상급 강화 마법이 걸린 타워 실드(Tower Shield)를 산산조각 냈고, 팀장은 양팔이 부러지는 고통도 잊은 채 눈을 부릅떴다.
후우우웅.
도끼의 날이 닿기도 전이었건만, 벌써 옆구리가 베인 듯했다.
주마등과 함께 느려진 세상 속, 자신의 몸뚱어리를 상하로 분리할 두 번째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아니, 두 번째가 아니라 마지막이겠지.’
팀장은 눈을 감았다.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이 저 못생기고 빌어먹을 몬스터가 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 앞을 가린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날카로운 파공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쐐애애애액, 뻐억!
기다렸던 고통은 없었다.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정말 이게 죽음이란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갈 만큼.
“……?”
뒤늦게 실눈을 뜬 팀장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불과 다섯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 3m에 달하는 오크 로드의 거체가 우뚝 멈춰 있었다.
머리통이 사라진 채로.
“……!”
“……!”
세상이 정지한 듯했다.
인간도, 몬스터도. 움직임을 멈춘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서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드드드득.
오크 로드의 머리를 터트리고, 지면을 관통한 채 부르르 떨리고 있는 한 자루의 창.
그리고 신비롭게 보일 만큼 은은한 빛을 뿌리는 저 창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알고 있었다.
‘진태경!’
벼락처럼 뇌리를 스치는 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지면 깊숙이 박혀있던 창이 솟구쳐 누군가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쐐애애액, 탁.
약속이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변이 게이트를 떠도는 어린 양들이여. 존나게 달려서 내 뒤로 오라.”
코앞에 닥쳤던 죽음의 그림자가, 어느덧 깨끗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 * *
저벅. 저벅.
중년인의 걸음은 당당했고, 막힘없었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빌딩의 내부로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길드원이시라면 우선 출입증을 제시…….”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만.”
“하긴, 이러는 거 보면 신입이겠지. 팀장한테 이야기 못 들은 모양이군.”
중년인을 멍하니 바라보던 보안팀 헌터가 헛숨을 삼켰다.
“헉. 죄송합니다. 미처 못 알아뵙고…….”
“괜찮아. 바쁘니까 이제 길이나 좀 비키지.”
“예, 옛.”
외부인, 내부인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보안 검색대도 중년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보안팀 헌터를 힐끗 바라본 그는 목적지로 이동했다.
간단한 수술을 통해 귀밑에 심어 놓은 초소형 통신기에서는 이미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년인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위치는?”
– A구역입니다.
150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이지만, 설계 지도나 내부 안내판 어디에도 A구역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은 수많은 길드원 중에서도 극소수의 이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니까.
당연하게도 중년인도 그중 하나였다.
“텔레포트 열어 놔.”
– 준비 완료된 상태입니다. 그나저나 보안팀 신입이 부팀, 아, 죄송합니다. 팀장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아직 당사자인 나도 익숙하지 않은데, 뭘.
이어질 뒷말을 내심 중얼거리는 중년인에게, 통신기 너머의 누군가가 말을 이었다.
– 어쨌든 보안팀장에게 통보해서, 해당 인원은 징계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달도, 제안도 아닌 통보다.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그 단어에, 중년인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뭘 또 그렇게까지…….”
– 팀장님?
“……아니다. 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 예. 적당히 처리하겠습니다.
적당히, 라는 의미는 최소가 감봉이며 혹은 좌천이라는 이야기다.
잠깐 자신을 가로막았던 젊은 청년을 떠올린 중년인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속한 길드의, 아니 자신들만의 방침이니까.
‘심지어 그 일이 있었던 뒤부터…… 점점 심해지고 있어.’
길드의 철권 통치는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근 있었던 불의의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신하들로부터 완전히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새로운 왕의 조급함일지도 모른다.
작게 한숨을 내쉰 중년인이 발걸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VIP 현 상황 보고해.”
–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다.
“착각인가? 어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 ……그, 오늘 조간신문을 보시고 그만.
“더 들을 필요도 없겠군. VIP께서 읽고 계신 거 싹 다 긁어서 보내. 지금 당장.”
중년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보안 마법이 걸린 스마트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화면을 가볍게 두드리자 불과 두세 시간 전 인쇄소를 통과한 20여 개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이 빼곡하게 떴다.
[사상 초유의 사태…… 잇따른 변이 게이트 출현이 시사하는 바는?] [불길한 징후. 중국 쓰촨성의 악몽이 한국으로 이어지나.] [청와대 긴급 발표,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평화 길드와 협약 체결, 지금까지의 성과는 고무적.”] [세 번째 변이 게이트. 그러나 사망자는 제로? 평화 길드 긴급 구조팀을 향한 세계인들의 찬사.] [미국의 대마도사 매직 존슨. “평화 길드는 새로운 시대의 등불. 진과 최는 선하고 올곧은 청년들.”] [美 전 대통령 조셉 바이든. “사우스 코리아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헌터 강대국이며, 향후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훌륭한 젊은이들을 품고 있다. 이번에 만난 최 역시 그중 하나다.”] [中 국가 주석 샤오 양, “최 선생은 알려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의 영웅. 우리는 쓰촨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그를 기억한다.”] [日 총리대신 고이즈미 신지로 역시 SNS에 언급. “제가 알기로 최는 한국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이에 따른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 “우리 쪽 병신이 아니라 다행이다.”] [잇따른 거물들의 발언이 불러온 초유의 관심.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최(Choi)는 누구인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평화 길드의 최민우 팀장으로 밝혀져…….] [S급 헌터 진태경. 오늘 아침 대통령과 함께 신년맞이 “국민 소통” 신년 기자회견 참석!].
.
.
“……후.”
기사를 모두 읽은 중년인은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젠장.”
– 다 읽으셨습니까?
“그래. 차라리 안 읽는 게 나을 뻔했지만.”
–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조금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거의 다 왔다.”
저벅.
대답과 함께 중년인은 희미한 빛을 뿌리는 마법진을 밟았다.
지문을 인증하고 마나를 불어넣자, 사용자를 인식한 텔레포트 마법진이 강렬한 섬광을 토해 냈다.
팟!
휘황한 빛무리과 함께 전신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중년인은 눈을 뜸과 동시에 A구역으로의 텔레포트가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새하얀 대리석과 마정석으로 장식된 실내. 얇은 맞춤 정장을 입은 남녀 십여 명이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오셨습니까, 팀장님.”
사람은 여럿인데, 목소리는 하나다.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부하 직원들을 힐끗 바라본 중년인은 천천히 마법진에서 걸어 나왔다.
“VIP는?”
“홀로 개인 집무실에 계십니다.”
“경호 인력 없이? 내가 최소 세 명은 복도에 상주하라고 분명히…….”
쾅!
어디선가 희미하게 울려 퍼진 굉음에 뒷말이 뚝 끊겼다. 대강 상황을 짐작한 중년인이 작게 혀를 찼다.
“내가 가 볼 테니까 한 명만 남고 A구역 비워.”
“예.”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하들을 뒤로 한 채, 중년인은 드넓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침입자를 방비하기 위해 최소 오십 개 이상의 마법 트랩(Magic Trap)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의 목에 걸린 출입 카드에는 이 지뢰밭을 무사히 지나갈 만한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지이잉.
[경호팀장 고세원]붉은 광채가 스치고 가자 사방에서 들끓던 마나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익숙하게 가로지른 중년인, 고세원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똑똑.
“고세원입니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성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고세원은 천천히 문고리를 잡고 밀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난장판이 된 집무실의 정중앙. 소파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붉은 빛이 서린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평소보다 늦었군.”
고세원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널브러진 잔해들 사이로 번쩍이는 명패가 보였다.
[아레스 부길드장 석고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