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72
#571화
부산.
대격변 이전에도, 이후에도 국내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인구수를 보유한 대도시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부산으로 가족 여행을 온 어느 잘생기고 똑똑한 초등학생은 밤마다 창문에 들러붙어 있다시피 했더랬다.
‘태경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다리! 반짝거려! 예뻐!’
‘워어, 진짜네. 피팅 모델인가?’
‘……그 다리 아니야. 아빠.’
‘아.’
‘쩌어기 저 다리! 길고 반짝거리는 거!’
‘아하. 광안대교?’
‘광안대교? 광안대교가 뭐야?’
‘저 다리 이름이야. 아까 태경이도 보긴 했을 텐데, 확실히 밤에 보니까 더 예쁘지?’
‘응응! 나 가 볼래! 지금 당장 광안대교 데려다줘!’
떼를 쓰는 어린 아들을, 아버지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이구, 우리 아들. 아빠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자기만 생각하는 것 봐. 누굴 닮아서 이럴까?’
‘그럼 엄마한테 피팅 모델이 뭐냐고 물어봐도 돼?’
‘……내 새끼 맞구나. 가방 챙기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다. 침울해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간 광안대교는 어린 초등학생의 내 뇌리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턱없이 크고 반짝였으며, 옆에는 늘 바쁜 탓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목 디스크를 호소하는 아버지를 협박해 목말까지 타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빠, 우리 다음 주에도, 다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또 오자! 그때도 목말 태워 줘!’
‘하하. 어쩌지? 태경이 말대로면 다음 달에는 못 올 것 같은데.’
‘왜?’
‘이대로면 다다음 주쯤에 아빠 목이 부러질 거거든. 태경이 요새 하루에 밥 몇 그릇 먹니?’
‘요새는 별로 입맛이 없어서 다섯 그릇!’
‘……장하다, 내 새끼. 어쩐지 밤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
행복한 기억이다. 그날 우리는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잔뜩 신이 난 나는 호텔에 남아 있던 어린 하연이와 엄마에게 실컷 자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목을 주무르던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약속했다.
‘하연이가 좀 더 크면, 태경이 네가 중학생이 되면 그때 다시 바다 보러 오자. 알았지?’
‘진짜?’
‘당연하지. 자, 약속.’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두 자식이 커 가며 돈 들어갈 곳은 많았고 무리해서 부업을 하던 아내마저 병을 얻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바빠졌다.
평범했던 어느 날, 평범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아버지는 더 이상 곁에 없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광안대교의 모습은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구구구궁.
내 눈앞에서, 광안대교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탄식.
머리는 당장 죽을 힘을 다해 저곳으로 가라 하지만, 몸은 보이지 않는 손에 붙들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늦었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함께 도착한 스켈레톤 킹도, 우리를 이곳까지 이동시킨 마법사도 탈진한 눈으로 수 킬로미터 밖에서 시작되고 있는 재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이름도 모르는 마법사의 외침은 공허했고,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저건…….’
파도다.
이제는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의 장소를, 하루에도 수천, 수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그곳을 덮친 것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파도였다.
콰아아아아!
엄청난 무게와 힘이 실린 파도는 높이 35m, 길이 7,420m에 이르는 광안대교의 허리 부분을 강타했다.
사방으로 튀는 물보라와 새하얀 포말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파묻히고, 제한된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이동 중이던 수백 대의 차량이 장난감처럼 튕겨 나갔다.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광안대교라 불리는 현수교(懸垂橋)의 주탑과 앵커가 박살 난다.
교량을 지탱하고 있던 수백 개의 케이블은 끊어짐과 동시에 거대한 채찍이 되어 사방을 후려쳤다.
쉬이이이이잉, 꽈앙!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케이블에 휩쓸려 사라졌다.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붉은 핏물이 흘렀고, 연쇄적인 폭발과 천운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미친 듯이 울리는 클락슨 소리가 곤두선 감각을 통해 전해졌다.
빵! 빠아아앙!
– 후진해! 빨리 후진하라고! 이 개새꺄!
– 꺄아아아아악!
– 아이! 아이 좀 꺼내 주세요! 여기 애가……!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몽롱하다.
마법과 과학으로 이루어진 첨단 문명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광안대교가 파괴와 죽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차를 포기하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부르짖으며.
– 살려, 살려 주세요!
– 엄마아!
그리고 그들의 비명이, 석상처럼 굳어 있던 나를 깨웠다.
“아.”
구해야 한다. 이 재앙을 막아야 한다.
멈춰 있던 시간은 고작 수십여 초에 불과하나, 이미 수백이 죽었고 더 이상 망설인다면 수천, 수만이 죽을 것이다.
짝!
두 뺨을 힘껏 후려치자 강렬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돌아온다.
터져 나간 입 안에서 흐르는 피를 뱉은 나는 망설임 없이 스켈레톤 킹의 멱살을 잡아챘다.
덥석!
“어, 어?”
“간다. 정신 똑바로 차려.”
“자, 잠깐만. 어디 가는……!”
스켈레톤 킹의 물음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도움닫기를 끝마친 나는 온 힘을 다해 녀석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아니. 쏘아 보냈다.
콰창! 후우우우웅!
강화 마법이 걸린 통유리가 박살 남과 동시에 스켈레톤 킹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진다.
바람에 파묻히는 녀석의 비명을 들으며, 나도 힘껏 지면을 박찼다.
이미 탈진한 채 주저앉아 있는 마법사에게 한 마디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이름 대고 당장 구조 요청해요. 어디든, 당장!”
지칠 대로 지친 그가 제대로 들었을지, 구조 요청을 어디로 보낼지는 모르겠다.
지금 내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눈앞의 상황이 중요했다.
콰앙!
온 힘을 쏟아부은 발돋움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고층 빌딩이 부르르 떨린다.
까마득한 상공을 가르며 쏘아진 내게 누군가의 분노 어린 외침이 닿았다.
“이 미친 인간아!”
스켈레톤 킹이다. 자신만의 권능으로 뼈로 이루어진 날개를 만든 녀석은 빠른 속도로 날갯짓하며 다가왔다.
아니, 내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뭐?”
“범위가 넓어. 둘로 나눠서 커버한다.”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그것도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부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매직 존슨을 통해 본 영상 속처럼 사막이나 인적이 드문 군사 구역이라면 모를까, 부산은 당장 반경 몇 킬로미터 안에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내가 우선 다리를 맡는다. 너는…….”
“젠장, 알았다.”
시간이 없는 탓에 말이 짧았지만, 스켈레톤 킹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녀석의 시선이 까마득한 아래를 향했다.
비명과 혼란으로 잠식된 도로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사람을 훑던 시선이 문득 파르르 떨렸다.
“빌어먹을, 저건 또 뭐야.”
“뭐겠어.”
짤막하게 대답한 나는 인벤토리에 챙겨 둔 예비용 창 하나를 꺼내어 지상을 향해 겨누었다.
극대화된 안력(眼力)을 통해 보이는 그것의 모습은 여느 괴물들처럼 흉측했고, 전신을 뒤덮은 비늘과 턱까지 내려온 지느러미는 혐오스러웠다.
‘머맨(Merman).’
바다와 같은 환경에 서식하는 수중 몬스터.
남성체 인어(人魚)의 모습을 한 놈은 동화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름답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사람들을 덮쳐 가는 수백 마리의 머맨 무리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 시시시시싯!
– 카룩!
알아들을 수 없는 기성을 토해 내며 내달리는 놈들의 손아귀에서 따개비가 달라붙은 삼지창이 번뜩인다.
그 끝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으아아아앙! 엄마아!”
“민희야!”
아이의 울음. 뒤돌아본 부모의 비명.
그리고 첫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
‘지금.’
나는 몸을 중심을 이동시켰다.
비스듬히 기운 채 바람을 가르며 쏘아지던 신형이 급격히 아래로 향하고, 단전을 타고 흐른 공력이 발끝에서 발출된다.
파앙!
허공답보(虛空踏步)로 허공을 밟으며 시작된 급강하.
그러나 아무리 서두른다 하더라도, 이대로라면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가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가라.’
짧게 호흡한 나는, 지상을 향해 겨누고 있던 창을 흩뿌렸다.
쉬이이잉!
한 자루의 창이 까마득한 높이로부터 벼락이 되어 내리꽂힌다.
바람을 가르고, 공간을 지우고, 필살(必殺)이라는 두 글자를 담아…….
표적을 관통한다.
퍼걱! 콰드드드득!
선두에서 가장 먼저 아이를 향해 달려가던 머맨은 물론, 놈의 주위에 있던 십여 마리의 몬스터가 한 줌 핏물로 화했다.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수백 마리의 인어가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본다.
흉포함과 의문이 절반씩 뒤섞인 눈빛에, 내가 중얼거렸다.
“뭘 봐. 개새끼들아.”
인벤토리 오픈. 소환.
탁. 양손에 두 자루의 창이 잡힌 순간, 내 팔은 이미 지상을 향해 휘둘려지고 있었다.
퍼엉! 콰직!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이 부서지고 지느러미가 찢어진다.
운 좋게 절반의 몸뚱어리만 잃은 한 머맨이 구슬픈 단말마를 토해 냈다.
– 크룩, 크루루룩!
시끄럽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쉬잉! 퍼엉!
해가 중천에 뜬 정오 무렵. 때아닌 폭죽이 터진다.
기울어진 광안대교의 난간을 타고 끈적한 핏물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더. 더. 한 번 더.’
오픈. 소환. 그리고 소환. 또 소환.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시스템의 작동은 즉각적이었고, 내 움직임은 바람보다 빠르고 벼락보다 위력적이었다.
생각과 동시에 뻗어 나간 손은 불과 수 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수십 개의 창을 움켜쥐고, 지상을 향해 흩뿌려졌다.
‘죽어라.’
쉬이이잉, 퍼버버벙!
갈라진다. 터진다.
삼지창으로 막으려 했던 놈들은 삼지창과 함께, 황급히 도망치려던 놈들은 미처 발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그렇게 죽어 갔다.
그로부터 불과 3m 떨어진 곳에서 주저앉아 울던 아이가 딸꾹질을 시작했을 때, 주위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끕. 흡.”
아홉 살쯤 되었을까. 작은 손으로 틀어막은 입에서는 울음 섞인 딸꾹질이 흘러나온다.
큼지막한 그 눈에는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괴물을 무찌른 괴물?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넌…… 나와는 달리 이곳에 좋은 추억은 없겠구나.’
입맛이 씁쓸하다. 사뿐히 지면에 착지한 나는 아이를 달래는 대신 손가락을 까딱였다.
스르륵.
허공섭물. 부드럽게 뻗어 나간 기운이 아이를 밀어 낸다.
저 멀리, 울부짖으며 자식을 향해 뛰어오던 부모들을 향해.
하지만 저 가족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구구구궁.
태양이 떠 있음에도 검게 물든 바다.
다시 한번 솟아오르는 수십 미터의 파도에 숨어 있는 ‘그것’을 응시하며, 나는 백염의 창날을 늘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