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83
#582화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최민우, 김화종. 그리고 게이트 밖을 지키고 있던 평화 길드의 정예 헌터 스무 명.
모두가 같은 의문을 품었으나, 그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단지 아연한 눈빛으로 현세에 도래한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 그아아아아아!
하늘을 떨어 울리는 천둥 같은 괴성.
그것은 하마였고, 코끼리인 동시에 소였으며, 코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것은 짐승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면서 강했으니까.
후우우웅. 콰직!
단 한 걸음. 그러나 그 여파는 엄청났다.
반경 십여 미터를 뒤덮은 그림자와 함께 거대한 앞발이 게이트 관리소를 짓이긴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산 밑으로 연결되는 케이블 선이 끊어지며 곤돌라가 추락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화종은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어떤 괴물의 이름을 떠올렸다.
“……베히모스(Behemoth).”
베히모스. 혹은 베헤모스.
히브리어로 짐승을 뜻하는 것에서 유래된 괴물의 이름.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일어난 신화 속 괴물의 흔적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지만.
그러나 성경에 적힌 기록은 틀렸다.
어떤 존재가 저 괴물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베히모스는 풀을 뜯고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평화로운 생명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콰직! 콰드드득!
– 쿠워, 쿠워어어!
게이트가 열리며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베히모스뿐만이 아니었다.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도망치는 이백여 마리의 예티들. 베히모스의 첫 목표는 바로 놈들이었다.
이 거대한 생명체는 동족인 동시에 부하인 놈들을 가차 없이 짓밟고, 씹어 삼켰다.
촤악, 투두두둑!
푸른 핏물이 비가 되어 떨어져 내린다.
신전의 기둥과도 같은 네 개의 다리가 땅을 짓밟고, 코끼리의 상아를 닮은 엄니가 지면을 스칠 때마다 잘려나간 괴물의 사지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덜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이건…….”
보는 것만으로도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광경.
그리고 모두가 얼어붙은 채, 넋 나간 시선으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예티 무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였다.
화아아악!
어느새 주위에 내려앉은 검은 안개 너머로, 눈부신 광휘가 솟구쳤다.
따뜻한 온기가 서린 빛은 안개를 밀어 내며 조금씩,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 갔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 낸 사람들이 광휘의 근원지를 찾았다.
이십여 쌍의 눈동자.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 휘황한 빛을 토해 내는 검을 든 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 빛나는 눈동자를 한 그가 입을 열었다.
“모두, 내 뒤로.”
“……!”
침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 순간, 평화 길드의 헌터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베히모스가 뿜어내는 피어(Fear)의 영향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사람은 전율로 몸을 떨었다.
‘이건.’
더없이 익숙하고, 아련한 기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이제는 흐릿해진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김화종이 중얼거렸다.
“여기 계셨군요.”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지금 김화종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천태민인 동시에 최민우였고, 최민우인 동시에 천태민이었다.
그와 같은 것을 본 송천우는 절망을 느꼈지만, 노집사는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가슴 깊숙이 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홀로 빛나는 청년의 옆에 섰다.
화르르르륵!
길고 맹렬한 불의 채찍이 양손에 잡힌다. 김화종과 시선이 마주친 최민우가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놈을 막아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소리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나온다. 이미 산 아래에서는 이변을 알아차린 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으아, 으아아!”
– 그아아아아아!
이백여 마리의 예티를 도륙 중인 베히모스의 포효에, 산에 쌓여 있던 눈이 파도처럼 쓸려 내려간다.
새된 비명과 함께 언뜻 보기에도 천 명이 훌쩍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천운으로 눈앞의 괴수를 피해 도망친다면, 베히모스의 다음 표적은 저들이 될 것이다.
최민우와 김화종.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평화 길드의 헌터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으로는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도.
“티, 팀장님.”
모두가 상위 헌터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는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괴수다. 누군가의 두려움 섞인 목소리에 최민우가 대답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치세요.”
술렁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자신이 이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를 헌터라고 부를 수 있는지.”
“……!”
흔들리던 눈동자의 떨림이 멎었다. 최민우의 손에 들린 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광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웅의 혼]. 자격을 갖춘 자에게 한하여 영웅에 걸맞은 힘을 부여하는 에고 소드.우웅. 화아아악.
검신이 거세게 몸을 떨었다. 섬광처럼 터져 나온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빛에 담긴 온기가 모두를 감싼다.
어느덧 황금빛으로 물든 최민우의 눈동자에, 마침내 동족을 모조리 먹어치운 베히모스의 모습이 비쳤다.
“우리가 받은 힘은…… 이런 날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까.”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았고, 평범함을 벗어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에는 의무와 사명감이 따른다.
헌터(Hunter).
인류를 지키는 검이고, 위협에서 보호하는 방패이며,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늘 선두에 서야 하는 수호자.
그들이 얻게 된 부와 명예로 퇴색되었을지언정, 그 순수한 본질만은 남아 있다.
“공격 대형. 갖춰.”
저벅.
최민우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빛이 움직이고, 그 뒤를 김화종과 스무 명의 헌터가 따랐다.
그리고 화살과도 같은 공격 대형을 갖춘 채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새로운 세상에서의 첫 번째 식사를 끝마친 괴물의 거대한 눈동자에 비쳤다.
– 그. 아. 아. 아. 아.
괴물, 베히모스는 비웃음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수백의 예티를 먹어치웠음에도 그것은 여전히 굶주렸다.
불쾌한 빛을 뿜어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간들을 짓밟고, 씹어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오. 너. 라. 인. 간. 들. 이. 여.
이 자리에 베히모스의 마계어(魔界語)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의미만큼은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스르릉. 화륵.
무기가 뽑힌다. 발현된 마법이 스태프와 손을 타고 솟구친다.
짙은 어둠 속에서 광휘를 받아 밝게 빛나는 스물두 명의 헌터들.
그리고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진 그들을 쏘아 보낸 것은, 선두에 선 최민우의 외침이었다.
“돌격-!”
귀가 먹먹해질 만큼 거대한 함성과 함께, 그들은 하나의 화살이 되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의 빛. 그 끝에 선 괴수가 심연에서 끌어올린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 콰우우우우!
다음 순간.
꽈앙! 콰드드득!
함성과 괴성이, 빛과 어둠이 뒤섞였다.
* * *
– 키잇!
“아가리 닥쳐. 이 개새꺄.”
뻑!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머맨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굳이 놈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았다. 사체가 쓰러지기도 전에 신형을 튕겨 도망치는 머맨들을 가로막았다.
“똥이란 똥은 죄다 싸질러 놓고, 이제 와서 도망치는 건 어느 나라 상도덕이냐. 안 그래?”
– 키, 키이잇.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가득한 울음소리. 하지만 이미 늦었다. 놈들은 몬스터고, 난 인간이다.
더군다나 부산에까지 기어들어 와서 똥을 싸질렀으면, 그에 대한 변상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백염을 휘둘렀다.
후웅!
창날을 타고 솟구친 불길이 횡으로 뻗어 나간다.
화룡일미(火龍一尾). 막강한 열기가 담긴 화룡의 꼬리가 단숨에 오십여 마리의 머맨을 후려치자,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악취와 함께 괴성이 울려 퍼졌다.
– 끼이이이잇!
애처로운 단말마. 나는 가장 가까운 머맨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서걱. 희미한 절삭음과 함께 놈의 머리가 붕 떠오르는 것이 바짝 곤두선 감각을 타고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이다.
한데 모여 퇴로(退路)를 물색하던 놈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오백여 마리에 달했고, 그것은 곧 내가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할 몬스터의 숫자와 같다는 뜻이었다.
서걱. 서걱. 쉬쉬쉬쉬쉭!
핏물과 함께 몬스터의 사지가 솟구쳤다. 창이 그린 궤적에 걸려든 모든 것이 잘려 나가고, 펼쳐진 손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온 화염신장(火焰神掌)의 장력이 이십여 마리의 머맨을 불태웠다.
화륵, 콰아아아!
뜨거웠다.
초고온의 열기에 녹아내린 아스팔트가 그러했고, 버스의 옆구리를 박은 채 공회전하는 자동차의 타이어가 그랬으며, 엑셀을 밟은 채 죽어 있는 운전자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툭. 투둑.
깨진 유리창을 적신 핏물이 보닛을 타고 흘러내린다.
최첨단 에어백도 운전석 앞 유리창을 뚫고 가슴에 박힌 삼지창을 막아내진 못한 모양이다.
이미 빛이 빠져나간 중년인의 눈동자는 공허했고, 백미러에 부적처럼 매달아 놓은 가족사진은 피에 젖어 있었다.
중년의 부모.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더욱 좆 같은 사실은…… 사진 속의 가족이 모두 차 안에 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웃음을 잃은 채로.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로.
“이…… 개씨발 새끼들아!”
화륵. 콰아아아!
더욱 맹렬해진 불길이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나는 불길이 만든 길을 따라 가로지르며 창을 휘둘렀다. 쉬지 않고 베고, 가르고, 찢고, 부수었다.
뜨거운 열기와 증발하는 핏물 사이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들도 여행을 온 것은 아니었을까. 몇 년 만에 부산으로 떠난 가족 여행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몬스터를 만난 것은 아닐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광안대교를 보며, 이 부자(父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닐까.
퍼걱!
내뻗은 주먹이 단단한 비늘을 뚫고 뼈와 살을 부수었다.
나는 킷, 하고 짧은 신음을 토하는 머맨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손아귀에 닿은 뭉클한 무언가를 그대로 잡아 뜯었다.
푸화아악! 털썩!
손을 빼내기가 무섭게, 녹색 핏물이 얼굴에 튀었다. 끔찍한 악취가 풍겼지만 이미 전신에 핏물을 뒤집어쓴 후라 상관없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쓰러진 머맨의 사체 위로 막 뽑아낸 심장을 떨어트렸다.
툭.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놈의 눈빛이, 원통해하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발로 짓밟았다.
콰득. 펑.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주위에서 덤벼드는 몬스터가 없다는 사실을. 도망치는 놈도, 살아 있는 놈도 없다는 사실을.
내가 녹색 피 웅덩이에서 뜨거운 숨을 뱉어 낸 그때였다.
“……간악한 인간이여. 너.”
“왜.”
고개를 돌리며 묻는 나와 눈빛이 마주친 스켈레톤 킹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니다.”
지금 녀석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묻지는 않았다.
스켈레톤 킹의 등 뒤에 선 백여 명의 헌터들의 눈빛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긴 끝났습니다.”
나 스스로도 남의 것처럼 낯선, 건조한 목소리에 상급자로 보이는 헌터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예? 아, 예. 예.”
“다른 곳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저, 저놈들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병력을 모아 한번에 치려고 했는데…….”
꿀꺽.
마른침을 삼킨 그가 말을 이었다.
“잘 정리된 것 같군요.”
“그럼 다행이고요. 너도 고생했다.”
나는 스켈레톤 킹의 어깨를 툭 친 다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는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사람들 구해야지. 지금도 죽어 가는 사람들.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들.”
피곤하다.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피로가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쉴 수 없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죽음의 공포에 맞선 채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한 사람이라도 구해야 했다.
그리고…….
철벅.
녹색 핏물로 이루어진 발자국이 도심의 아스팔트를 밟은 그 순간이었다.
치직. 치지직.
거슬리는 기계음과 함께, 고층 빌딩의 전광판이 깜빡인다. 노이즈 낀 화면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수 없을 만큼 잘생긴 외모. 바로 최 팀장이다. 동시에 작은 자료 화면과 함께 자막이 떴다.
[평화 길드 최민우 헌터. 평창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에 휘말려…….]이런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