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90
#589화
무수히 많은 빛줄기가 뭉치고 뭉쳐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화했다.
공격 마법과 디버프가 머리 위를 덮고, 온 힘을 실어 쏘아 보낸 창과 화살 따위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하지만…….
물러서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도, 저들도.
저벅.
나는 형형색색의 섬광을 향해 나아갔다.
걸음과 동시에 비스듬히 내리그은 백염(白炎)의 창날로부터 초고온의 열기가 터져 나와 사방을 불태웠다.
쏴아아아악!
공간이 일그러졌다. 이글거리는 청백색의 겁화가 모든 마법을 강제로 해제시키고, 마나를 머금은 채 맹렬한 속도로 쏘아지던 무기들을 집어삼켰다.
화아아악!
“……!”
“……!”
끓어오르는 열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 너머로 경악에 찬 수백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모든 공격이 허무하게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은 보안팀장이, 재차 활시위를 당겨 열 발의 멀티 샷(Multi Shot)을 쏘아 보내며 외쳤다.
“포메이셔어언!”
쐐애애애액!
쏘아지는 화살과는 반대로, 바람처럼 움직인 그의 신형은 탱커들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빠른 상황 판단과 정확한 공격은 아레스 길드 소속의 A급 헌터답게 훌륭했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나는 마음속으로 뇌까리며 주먹을 뻗었다. 부드럽게 회전한 어깨와 팔을 따라 내질러진 일권(一拳)이 허공을 후려쳤다.
후웅! 팡!
짧지만 강력한 정권 찌르기.
동시에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며 나를 중심으로 작은 태풍이 휘몰아쳤다. 빛살처럼 쇄도하던 열 발의 화살이 태풍을 만나 휘어졌다.
쉬쉬쉭! 꽈앙!
경로를 이탈한 화살이 로비 곳곳을 강타한 순간, 그보다 먼저 신형을 날린 나는 십여 미터의 거리를 지우고 보안팀장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살살 쐈어야지. 그럼 덜 아프게 때려 줄 텐데.”
“……!”
다시 활시위를 재기에는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보안팀장은 대답 대신 손에 쥔 활을 휘둘렀다. 철컥, 하는 미세한 소음과 함께 활 끝에서 솟구친 칼날이 내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아마 그것은 수천, 수만 번의 연습을 거쳐 숙달시킨 동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속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 눈에 비친 그의 공격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고 형편없었다.
한 손으로도 잡아챌 수 있을 만큼.
턱.
반 뼘의 거리를 두고 멈춘 칼날이 파르르 떨린다.
찰나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만큼 짧은 순간, 나는 보안팀장의 눈동자 위로 숨길 수 없는 경악의 빛이 스치는 것을 보며 활의 중단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콰득!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힘이 무기에 걸린 방어 마법을 부수고, 단단한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진 활을 부러뜨렸다.
애병을 잃은 궁수가 외침을 토해 내기도 전에 내 손바닥이 그의 가슴을 짚었다.
퍼엉!
외부를 쳐서 내부를 훼손시키는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작은 폭발음과 함께 보안팀장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로비의 벽면에 처박힌 그가 핏물을 토해 낸 순간,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 그리고 수많은 공격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쉬쉬쉬쉭, 퍼버벙!
전후좌우(前後左右). 삼십육방(三十六方).
사방에서 쏘아지는 빛줄기를 보며 나는 실소를 흘렸다.
단전으로부터 끌어올린 삼 갑자의 열양지기가 한 마리의 화룡이 되어 창으로 깃들었다.
화룡신창 일초식, 화룡일미(火龍一尾).
화륵! 콰아아아!
부드럽게 신형을 회전하며 휘두른 창날. 동시에 회오리치듯 솟구친 불꽃이 모든 것을 막아내고, 태운다.
망설임 없이 내디딘 발끝에서는 대리석이 모래처럼 바스라졌다.
쉬이이익!
세찬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그 사이로 섞여들었다.
“놈을 막……!”
쾅!
터져 나온 굉음에 이어지려던 목소리가 파묻힌다. 얼어붙은 채 내 앞을 막아섰던 수십 명의 탱커들이 튕겨 나가며 내지르는 비명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커헉!”
“크아아악!”
강철처럼 단단한 몸뚱어리도, 수백 회가 넘는 레이드를 통해 익힌 전투 경험도 이 순간만큼은 무소용이다.
압도적인 힘은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하기에 충분하니까.
하지만 갈등 끝에 적으로 돌변한 로비의 헌터들은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가 반쯤 끊어진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번쩍이며 사방에서 쇄도해 왔다.
파파팟!
뺨, 목, 겨드랑이, 허리와 종아리…….
나는 모든 것을 보고, 느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비단 육체뿐만이 아니다.
예리하게 날 선 감각으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를 받아들인 뇌가 육체로 생각을 흘려보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콰득!
검을 든 누군가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부러트리고.
퍽!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하여 쓰러트렸으며.
탁, 쉬쉬쉭!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을 잡아채어 왔던 곳으로 흩뿌렸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향해 돌아섬과 동시에 짧은 비명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크악!”
“커억!”
이것은 비단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로비 곳곳에서 끊임없이 비명이 흘러넘쳤다.
날아드는 무기를 피하고, 주먹과 발을 뻗고, 창대를 휘두를 때마다 비명과 함께 누군가의 신형이 널브러지거나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머뭇거리지 마라! 싸워!”
쾅! 콰아아앙!
“일거에 쳐라!”
쉬쉬쉬쉭!
이백 대 일의 전투.
아니, 오직 한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펼쳐진 레이드. 그러나 물러서는 것은 내가 아닌, 바로 저들이었다.
마법? 무기?
그 무엇도 내게 닿을 수 없었다. 그들의 중심으로 깊게 파고든 나는 미친 듯이 진형을 휘젓고 파괴했다. 그들의 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그러나 오늘의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내게 달려들 수 없을 만큼의 공포를 그들에게 각인시켰다.
콰드드득!
“크아아악!”
퍼엉!
한 명의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세 명이 쓰러지고, 셋의 비명이 울려 퍼질 때쯤이면 다섯이 쓰러졌다. 저들은 양이었고 나는 한 마리의 대호(大虎)나 다름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살육을 억제하는 인내심이었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괴물이 아니다.’
터질 듯 부푼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마음속에서 쉬지 않고 중얼거려야 했다.
강 저편으로 넘어간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조필이 그러했고, 암천의 무리가 그러했으며, 목적을 위해 괴물의 경계로 발을 디딘 석고준이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헌터였다. 무림인이었다.
언제였던가, 고금제일의 살수에서 천하제일의 의원이 된 한 사람이 해 주었던 말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약자는 살인(殺人)을 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활인(活人)으로도 충분하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지.’
내가 지금보다 힘이 없었다면, 약한 동시에 악했다면 이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괴물이 아닌 사람이었고, 활인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모두…… 비켜라.”
퍼엉!
내뻗은 장력(掌力)에 수십 명이 휩쓸려 튕겨 나갔다.
몇 시간째 쉬지 않고 이어진 전투와 일섬의 여파일까. 한없이 지치고 피로하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느리고 선명했다. 그들의 움직임. 표정. 하나하나 전부 알아챌 수 있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진 타워 실드의 파편 사이로 빛나는 마법사들의 스태프 역시 마찬가지다.
우우우웅!
스태프의 머리 부분에 박혀 있는 마정석이 작게 진동하며 휘황한 광채를 내뿜는다.
그러나 마법이 온전한 형체를 갖추기도 전에, 내 신형은 이십여 명 남짓한 마법사들의 사이로 파고든 후였다.
“매, 매직 실……!”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다.
쉭, 털썩!
황급히 방어 마법을 펼치려던 마법사가 뻣뻣하게 굳은 채로 쓰러졌다.
아니, 쓰러진 것은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열 개의 손가락, 열 줄기의 지풍(指風)이 그들의 혈도를 스친 순간, 그들은 벽이 허물어지듯 널브러졌다.
그러나 이곳은 최고만 가려 뽑는다는 아레스 길드의 본사. 일반 헌터는 잘 마주치지도 못하는 상위 헌터가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었다.
“바인딩(binding)!”
쉬리리리릭!
부서진 대리석 사이, 이름 모를 유화 작품이 걸려 있던 벽면에서 솟구친 줄기가 채찍처럼 발목을 휘감고.
콰득!
텅 빈 허공에서 나타난 마법의 밧줄이 강력한 힘으로 손목을 속박했다.
아마도 마법사들을 이끄는 팀장이었던가. 과거 TV에서 보았던 A급 마법사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죽여.”
그 순간.
쉭!
머리 위, 허공이 일렁임과 동시에 안개처럼 희끗한 그림자가 내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의 정체가 짧은 소검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내심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들 봐라.’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코드 레드의 의미가 표적의 생사 불문을 뜻한다는 것. 그리고 정말 죽이려는 의도로 나를 상대하는 놈들은 굳이 봐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환영이다.
쾅!
짧은 화염이 솟구친 순간, 굉음과 함께 사지가 꺾인 암살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튕겨 날아갔다.
A급 마법사의 부릅뜬 눈동자에 모든 밧줄과 줄기를 태워 버리고, 암살자의 소검은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이 비쳤다.
“뭐 해. 마법 안 쓰고.”
“아, 아이스 블……!”
콰창! 푸푹!
빛살처럼 뻗어 나간 소검이 스태프의 마정석을 부수고, 마법사의 복부에 깊숙이 박힌다. 마나의 역류와 동시에 찾아온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쩌렁쩌렁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퍼엉!
내가중수법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이지만, 마법사나 힐러처럼 직접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큰 파괴력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눈을 까뒤집고 쓰러진 이놈은 살아남는다 해도 마법사 행세하기에는 영 글렀다고 볼 수 있었다.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고 혼절한 마법사를 덤덤하게 바라본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이참에 은퇴하고 싶은 사람 또 있나?”
“……!”
“없으면 잠이나 자라.”
쉬쉬쉭! 털썩!
다시 한번 쏘아진 지풍과 함께 남아 있던 마법사들이 온순하게 쓰러지자, 로비는 침묵에 휩싸였다.
정면에 걸린 시계는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3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으나, 이백여 명에 달했던 헌터들 중 두 다리로 서 있는 이들의 숫자는 십 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위이이이이잉!
끊이지 않는 세찬 경보음 아래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탱커는 벽면에 처박혔고, 딜러는 고통에 헐떡이고 있었으며, 마법사들은 뻣뻣하게 굳은 채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그들을 굽어보는 내가 있다.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다시는 막아서지 마. 두 번은 없다.”
“……!”
“……!”
살아남은 이들도, 쓰러진 이들도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들도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이유가 결코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저벅.
시끄러운 경보음과 침묵에 빠진 사람들 속, 천천히 걸음을 옮긴 나는 로비의 중앙에 섰다.
그리고 삼 갑자의 공력을 실어,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쐐애애액!
세찬 바람과 함께 눈앞에 들이닥친 로비의 천장. 동시에 말아쥔 주먹 위로 청백색의 불꽃이 일렁였다.
멸염신권(滅炎神拳)이 공기를 태우며 터져 나왔다.
꽈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