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0
#59화
쉬쉬쉬쉭!
진위경과 위팽. 그리고 세 장로의 싸움은 폭풍 같았다.
평범한 무인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맹한 검격이 사방에서 부딪쳤다.
카가각.
‘막혔다.’
위팽은 판단과 동시에 몸을 뒤집었다. 이장로가 내뻗은 검이 머리카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장로와 삼장로가 한 몸처럼 그를 압박해 갔다.
“이놈들!”
노호성과 함께 달려든 진위경은 일장로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가?”
순간 쭉 솟구친 검기가 진위경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일도양단의 위기. 진위경은 황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그의 검신에도 희끄무레한 검기가 서려 있었다.
쾅!
굉음과 함께 피어오른 먼지구름 속, 한 인영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안색이 창백해진 진위경이 피가래를 퉤 뱉었다.
‘무슨 놈의 공력이…….’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무공과 영약을 섭취해 온 그였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일장로는 일 갑자를 넘게 살아오며 흑심을 감춰 왔던 비열한 노괴(老怪)다.
대장로와 더불어 정마대전을 온몸으로 헤쳐 지나온 산 증인인 것이다.
“염병할 늙은이 같으니라고.”
일장로가 허허 웃으며 대꾸했다.
“소가주, 체통을 지키시게.”
그러나 일장로의 속마음도 생각만큼 편치는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검신과 욱신거리는 손목이 그 증거였다.
‘이 정도일 줄이야.’
저잣거리 왈패들 싸움도 머릿수가 중요한데 고수들은 오죽할까. 그러나 진위경과 위팽의 실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아니, 어쩌면 늙은이의 자존심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야속하구나. 참으로 야속해.’
일 갑자의 세월. 그는 심후한 공력을 얻었지만 육신의 노화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십 년만 젊었다면.’
씁쓸히 자조한 일장로가 진위경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의제(義弟)인 이, 삼장로의 검도 더더욱 매서워졌다.
쉬쉬쉭!
“큭!”
진위경과 위팽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앞서 항산검문의 절정 고수들을 상대한 직후인지라 더더욱 그랬다.
점차 눈앞이 어지러워졌고, 몸에 잔 상처들이 늘어났다. 손발 또한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이대로는 어렵다.’
진위경의 안색이 어두워진 그때였다.
쐐애애액!
거침없이 쇄도하던 일장로의 검기가 불현듯 방향을 틀었다. 다음 순간, 번개 같은 일격이 목표를 갈라냈다.
서걱.
촤아아악.
피보라와 함께 한 사람이 비틀거렸다. 일장로의 옆구리를 겨누던 검은 산산이 부서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고, 가슴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일장로가 혀를 찼다.
“집법당주, 이 미련한 친구야. 그리도 죽고 싶었나?”
“일, 장로.”
집법당주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도, 말을 멈추지도 않았다.
“당신들은, 문내 법규를, 어겼소.”
“허허, 그래서?”
“대태원진가의, 집법당주로서, 명한다. 죄인들은 스스로 무공을 전폐하고, 참회동에…….”
서걱.
일장로는 검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쪽 같은 성정에 비해 무공이 높지 않던 집법당주는 볼 수도, 피할 수도 없었던 일 검이 그의 목을 꿰뚫었다.
진위경의 눈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이노옴!”
이 순간, 분노한 것은 진위경뿐만이 아니었다. 집법당주의 죽음은 태원진가 중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집법당주!”
무인이기 전에 사람이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만큼 이뤄 온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절정 고수의 무위가, 개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집법당주의 당당한 최후는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바로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저 역도들을 쳐라!”
“태원진가의 기개를 보여라!”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 자들이 제일 먼저 앞장서 달려들었다. 소위 장로원 계파에 속하던 중진들이었다.
그들은 배신자를 도운 자신을, 그리고 자신과 가문을 배신한 장로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멍청한 것들.”
서걱. 서걱. 서걱.
세 장로의 검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한 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명백한 힘의 우위. 하지만 장로들의 주름진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놈들이……!’
동귀어진을 각오한 수십 명의 일류 고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장로들은 그들의 무공이 아니라 기세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사이, 빈틈을 놓치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서걱.
“크악!”
삼장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지불식간에 솟구친 위팽의 검기가 그의 옆구리를 베어 낸 것이다.
“아우야!”
수십 년을 함께한 의형제의 비명에 이장로가 흔들렸다. 아주 찰나, 그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뼈아팠다. 일시에 내뻗어진 세 개의 검이 그의 전신을 스쳤고, 황급히 물러나는 이장로를 향해 벼락 한 줄기가 쏘아졌다.
쐐애애액!
서늘한 무언가가 등을 파고든다고 느낀 순간, 이장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푹!
살을 가르고, 뼈를 잘라 낸다. 검기(劍氣)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날뛰며 혈맥을 찢고 태웠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고통인가. 이장로는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내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나, 태원진가의 소가주 진위경이 이장로를 베었다!”
이장로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낸 진위경이 포효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는 삼장로의 목이 떨어지고 있었다. 피를 뒤집어쓴 위팽이 그의 목을 들어 올렸다.
“삼장로의 목이 여기 있다!”
살아남은 이들이 잇따라 외쳤다.
“역도의 무리를 쓸어 버려라!”
“태원진가는 항산검문의 적이 아니다! 검을 거둬라!”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에 태원진가의 무인들이 힘을 얻었다.
수뇌부가 괴멸하다시피 한 항산검문 측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으나, 이내 흑의인들을 향해 병장기를 돌렸다.
“자네 뭐 하고 있나! 태원진가 놈들이 코앞에 있는데…….”
“멍청한 소리 작작 하게. 덤비는 놈이라고는 저 시커먼 놈들밖에 없잖나!”
누군가의 말대로였다. 태원진가의 무인들은 수뇌부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고, 덕분에 항산검문의 무인들은 적이 하나 줄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난데없이 나타난 흑의인들이야말로 공동의 적이었다.
“항산검문의 힘을 보여 줘라!”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인지 몰라도, 다 쓸어 버려!”
양 세력이 힘을 합치자 이제 밀리는 것은 흑의인들이었다.
그들은 혹독한 수련을 거친 정예였지만 두 장로의 죽음에는 사기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짓쳐 드는 칼날에 흑의인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었다.
“으아악!”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놈은 죽음뿐이다!”
그 혼란 속에서도, 일장로는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눈에 닿고, 손이 향하는 곳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서걱.
스물? 서른? 모르겠다. 일장로는 홀린 것처럼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 냈다. 그중에는 한때 그를 어르신이라 부르던 이도 있었고, 약관이나 됐을 법한 어린 청년도 있었다.
‘죽고 사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칼끝에 선 것이 무림인이거늘.’
수십 명의 피를 뒤집어쓴 일장로를 막아선 것은 곰 같은 덩치의 사내였다. 그의 눈빛은 모든 걸 태워 버릴 것 같았다.
“왜 그랬나?”
“부귀영화. 태원진가를 장악하고 산서 땅을 집어삼키기 위해서였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모든 이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한 사람. 진위경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다.”
“그럼 소가주가 대답해 보시게. 내가, 내 형제들과 주공이 왜 이런 일을 벌였겠는가?”
“복수.”
진위경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이 말한 대계는 부귀영화나 일성의 패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야. 그러기에는 이미 많은 기회가 지나갔고, 당신들은 늙었지. 그리고…….”
“그만.”
“대장로에게는 자손이 없다. 이장로, 삼장로,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지.”
그 순간, 잔잔하던 일장로의 눈에서 시퍼런 불똥이 튀었다.
그건 오랜 세월 참아 온 분노였고, 아주 잠깐 떠올랐다 가라앉은 찌꺼기였다.
“왜 그랬나?”
일장로는 대답 대신 검을 들어 진위경을 겨눴다. 아니, 검 끝이 가리키는 건 진위경의 어깨 너머, 어딘가에 있을 한 사람이었다.
“그분께 직접 듣게.”
결국 마지막 열쇠는 대장로가 쥐고 있다.
진위경은 일장로를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지. 일장로, 당신을 베고 난 후에.”
“글쎄,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건가?”
“그게 무슨…….”
눈살을 찌푸리던 진위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경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냇동생이 대장로를 막고 있다.
잠시 잊고 있던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모든 사태를 파악한 진위경의 입에서 서릿발 같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위팽. 일장로를 맡아라.”
“받들겠습니다.”
“남은 분들도 힘을 보태 주시오.”
“소가주의 명을 받듭니다.”
위팽과 살아남은 중진 십여 명이 일장로를 넓게 포위했다.
“다른 이들은 나를 따라 길을 뚫어라! 대장로를 치러 간다!”
수십의 호위 병력과 함께 이동하려던 진위경은 문득 일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최후가 다가왔음에도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장로.”
“할 말이 남았나?”
진위경은 한마디를 툭 던졌다.
“태원진가 소가주의 권한으로 당신을 파문한다.”
“허허, 허허허!”
일장로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진위경은 전장을 향해 질주했다.
수십의 흑의인들이 그를 저지하려 했으나 전세는 이미 기운 지 오래. 그들은 사방에서 몰려든 무인들에 의해 난자당해 죽었다.
“길을 뚫어라!”
“소가주님이시다! 막아서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라!”
촌각에 불과한 시간. 그러나 진위경에게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태경아, 부디, 부디…….’
차마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끌어안고 얼마나 달렸을까, 이내 목적지에 도착한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게 무슨…….’
그만큼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 * *
레이드(Raid).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에서나 통용되던 단어다.
그러나 마왕의 등장과 대격변이 시작되자 레이드는 헌터들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엔 수많은 실전과 희생이 있었고, 그걸 기반 삼아 마침내 오늘날의 레이드 방식이 정립되었다.
‘탱커, 딜러, 힐러.’
탱커는 막고, 딜러는 때리고, 힐러는 치료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정식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분량의 레이드 교본을 학습하고 실전 경험을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
‘헌터 훈련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
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딘 덕분에 나는 헌터로 거듭났고, 7년 차 베테랑이 된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맞는 포지션과 대응책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야, 흙 뿌려! 계속 뿌려!”
그동안 배운 모든 것들이 쥐뿔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탱커? 힐러?
씨바…….
근접 딜러 열 명으로 레이드를 생각한 내가 병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