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04
#603화
‘끝났군.’
툭.
봉황 의자의 주인, 백한성 대통령은 씁쓸하게 웃으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국정원장이 직접 제출한 이 보고서에는 바로 어제 최민우의 행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국가장 직후 열린 기자 회견, 그리고 긴급회의가 열린 아레스 길드 내의 분위기.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최민우의 출생 신분에 관한 비밀은 이미 그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토록 절묘한 시기에, 모두의 앞에서 밝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는 아레스 길드의 중역들이 이렇게 쉽게 새로운 성주를 받들어 모실 줄 몰랐다고 해야 옳았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지. 천태민의 핏줄이 가지는 의미가.’
천태민은 인류 전체를 상징하는 영웅이다.
아무리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아레스 길드에 온갖 오물이 묻었어도, 천태민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은 여전했다.
감히 어떤 언론이나 유명인도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영역에 닿아 있는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민우가 지금의 평화 길드를 만들고, 아레스 길드 중역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진태경.’
거침없고, 친근하며, 헌신적인 젊은 영웅.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천태민의 위명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그가 최민우의 옆에 있는 한, 그 무엇도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설 수 없을 것이다.
국내에 존재하는 유력 정치인, 재벌 기업, 거대 길드가 합심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저, 각하.”
비서실장의 부름에 백한성 대통령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길드 협회에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나왔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0대 길드가 속한 협회는 석고준 사건 직후부터 호시탐탐 아레스 길드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이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이유는 사회 정화나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침내 허물어진 성의 잔해와 보물들을 빼 가기 위해서다.
‘그렇게 되었겠지. 최민우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최민우는 젊고 유능하며 정통성까지 갖춘 새로운 성주다.
이대로 그가 부길드장직에 오르면 아레스 길드는 재건될 것이고. 최민우와 진태경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로 오물을 벗어 낼 수 있었다.
그러니 길드 협회의 반발은 예상했던 바였다.
문제는 그들이 논공행상(論功行賞)과 품앗이의 대가를 요구하는 대상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백한성 대통령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다들 양반은 못 되는군.”
“예?”
“아닙니다. 그리고 길드 협회에 관한 문제 말인데, 우선은 보류하세요.”
“각하.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계속해서 끊임없는 요청이…….”
“보류라고 했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에 멈칫한 비서실장이 목례를 취하고 돌아섰다.
문이 닫히자 백한성 대통령은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연이은 문제들로 몸과 정신이 무척이나 피로했다.
심지어는 당선 직후부터 끊었던 담배 생각까지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니코틴이나 타르가 아니라 해결책이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엉키고 설킨 문제들을 풀어낼 해결책.
그리고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나.’
백한성 대통령은 무거운 마음으로 의자 밑에 부착된 버튼을 눌렀다.
불과 십여 초 만에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잠깐 바람 좀 쐴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경호처장이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각하. 혹 정해 놓으신 행선지가 있으십니까?”
행선지라.
백한성 대통령이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평화 길드. 평화 길드로 갑시다.”
* * *
오늘따라 길드 내부가 왜 이렇게 조용한가 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 팀장의 호출에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온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셨군요, 진태경 헌터.”
“……아니, 왜 또 오셨어요?”
진심이 담긴 물음에 백한성 대통령이 피곤한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좋네요.”
“예, 뭐.”
불과 보름 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를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만지작거리는 백한성 대통령에게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 금연 구역입니다.”
“압니다. 담배도 이미 일 년 전에 끊었고요.”
백한성 대통령이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가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피울까 말까 고민이 되는군요.”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못 본 사이에 십 년은 늙은 것 같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그건 알겠는데, 여긴 금연 구역이라니까요.”
“…….”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내 질문은 단순한 확인절차에 불과했다.
눈앞의 중년인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국가 원수가 무슨 빵집 아저씨도 아니고, 여기까지 직접 찾아올 만한 이유는 극히 적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아니나 다를까, 백한성 대통령은 실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두 분 모두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최 팀장이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길드 협회의 반발이 심한 모양이군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길드 협회뿐만이 아닙니다. 다만 정, 재계 인사들은 한발 물러서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움직이겠죠.”
“맞습니다. 결국 이번 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길드 업계니까요.”
백한성 대통령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들은 제2의 아레스 길드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레스 길드는 명실상부한 포식자다. 특히 국내에서는 설립 이래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청와대 이상의 힘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길드 협회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니까요. 이번 사건을 통해 아레스 길드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 보상으로 일부 이권을 넘겨받길 원합니다.”
“…….”
“그런데 최 팀장님이 기자 회견을 열고 아레스 길드의 수뇌부와 접선했으니…….”
“부담이 크시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성화가 보통이 아니에요.”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나는 불쑥 입을 열었다.
“더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은데.”
“그 말씀은…….”
“대통령님도 걱정되시잖습니까. 제2의 아레스. 아니, 이정룡을.”
“……!”
“우리 평화 길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레스 길드에서까지 최 팀장을 받들어 모신다? 그럼 완전히 게임 끝이지.”
기업의 힘은 규모와 자본에서 나오고, 길드의 힘은 헌터 그 자체에서 나오는 법.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재의 평화 길드는 국내 10대 길드를 훌쩍 뛰어넘는 위상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나. 그리고 천태민의 유일한 핏줄인 최 팀장이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아레스 길드까지 합쳐진다면?’
최 팀장은 그야말로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된다.
아레스 길드를 끌어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對抗馬)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대마(大馬)가 되는 것이다.
“……음.”
침음성을 흘리는 백한성 대통령을 향해,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탁, 화륵.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만들어 낸 불꽃이 일렁인다.
놀란 눈으로 불꽃을 바라보는 백한성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내 의도를 알아차린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치직. 후우.
호흡과 함께 새하얀 담배 연기가 뿜어진다. 오랜만의 흡연 때문인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문득 입술을 뗐다.
“진태경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 난 제2의 아레스 길드보다, 제2의 이정룡을 걱정하고 있어요.”
최 팀장이 담배 연기를 손으로 훑으며 대꾸했다.
“유감이군요. 대통령님께서 저를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는데.”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법입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죠.”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군요. 길드 협회와의 회동도 보류하시고.”
“…….”
“이유가 뭡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백한성 대통령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믿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두 분은 다를 거라고.”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와 최 팀장을 응시하며, 그가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기의 강도나 예리함이 아니라 무기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커터칼도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무기고, 만년한철로 만든 명검도 숙수의 손에 들리면 식칼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최 팀장은…… 유능하며 현명한 인물이다. 결코 손에 쥔 무기를 허투루 휘두르지 않을, 그런 사람.
“그럼 제가 대통령님의 우려를 덜어 드릴 수 있겠군요.”
최 팀장의 나직한 한 마디에, 백한성 대통령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 말씀은…….”
“믿으십시오. 제가 가진 영향력과 힘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사용할 것이며, 길드 협회를 잠재울 만큼의 이권도 일부 넘겨드리겠습니다. 원한다면 문서로도 작성해 드리지요.”
“……!”
“단, 대통령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을 들려 드렸으니 저 역시 한 가지를 약속받고 싶습니다.”
파격적인 약속에 눈을 깜빡이던 백한성 대통령이 다급히 물었다.
“뭡니까?”
“앞으로의 제 행보에 더 이상의 잡음은 없었으면 합니다. 길드 협회와의 문제, 그리고 아레스 길드 본사에서 진행 중인 현장 조사를 멈춰 주십시오.”
이건 믿음을 바탕으로 한 동맹 제의인 동시에 거래다. 노련한 정치인인 백한성 대통령은 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말씀하신 사안을 지켜 주신다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 해결됐군요. 깔끔하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힘차게 악수를 나누려던 그때, 백한성 대통령이 나를 바라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진태경 헌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저한테요? 뭐, 안 될 건 없죠.”
“아레스 길드에서 진행 중인 현장 조사를 멈춰 달라는 요청…… 얼마 전 특별 구치소에서 있었던 접견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아하.”
내심 그에게 보고가 들어갈 것이라는 짐작은 했는데, 역시다.
순간 시선이 마주친 최 팀장의 눈동자에서 긍정의 빛을 읽어 낸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예. 맞아요.”
“허. 조사팀이 찾아내지 못한 뭔가가 있던 모양이군요.”
“왜요.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보시게요?”
“글쎄요. 고세원이 숨긴 사실이 뭔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 정도로 멍청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정치인답게 대답한 백한성 대통령이 미소 띤 얼굴로 최 팀장의 손을 맞잡았다.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모쪼록.”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
새롭게 탄생한 초거대 길드와 정부가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아레스 길드로 향하는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 * *
– 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천. 태자에 민자. 천태민. 그것이 제 외조부님의 성함입니다.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 국가장이 치러지던 날, 취재를 끝마치고 복귀하려던 취재진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 폭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던 극소수의 인물들을 제외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천태민. 지난 이십여 년간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던 불멸의 영웅.
아레스 길드를 덮친 파도 속에서도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유일한 핏줄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의 언론이 일시에 포문을 연 것은 당연했다.
[평화 길드 최민우 팀장, “내 외조부는 천태민.”] [충격에 휩싸인 기자 회견장. 10초간의 정적.] [외신 떠들썩. 살아 있는 전설의 핏줄. Choi는 누구인가?] [거짓인가, 진실인가. 최민우의 충격 발언을 둘러싼 진실 공방.] [평화 길드 대변인, “평화 길드의 새로운 길드장으로 최민우 확정.”] [아레스 길드 관계자, “최민우 관련 공식 이사회 소집. 신임 부길드장 취임 유력.”] [평화 길드의 새로운 선장, 그리고 아레스 길드의 러브콜?]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독자 똘*스, 모 소설 599화에 댓글. “최민우는 대깨백. 잼난 기간트 라이더나 볼 것.” 작가 반응. “?”]국내 4대 조간신문은 물론 외신에서도 최민우에 관련된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하다못해 웹소설 연재 플랫폼에서까지 헛소리가 난무했으니 그 파장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관하여 잠시나마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금세 수그러들었다.
누구보다 아레스 길드 내부 사정에 밝은 고세원, 그리고 매직 존슨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前경호팀장 고세원, “최민우의 발언은 진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그는 지난 20여 년간 아레스 길드 내에서 배제되었던 존재.”] [美 대마도사 매직 존슨, “그는 천태민의 외손자가 확실하며, 평화 길드를 지금까지 성장시킨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Kanghee Lee는 지금 어디 있나? 샤워 중인가?”] [美 전 대통령 조셉 바이든. “기억상 그랬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소식을 접한 英 펠릭스 왕자, “What The Fu*k…….” 왕실에서 직접 인터뷰 중단 요청.]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최민우의 신분을 증명하는 청와대의 발표와 지지 선언, 그리고 이튿날 소집된 아레스 길드의 공식 이사회 결과였다.
[아레스 길드, 신임 부길드장으로 최민우(現평화 길드장) 선출. “이사회 표결은 만장일치.”] [양대 길드를 손에 넣은 젊은 권력자. 최민우.] [길드 협회, 반발할 것이라는 전문가 예상과 달리 “진심으로 축하.”] [그러나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불멸의 영웅.] [해외 반응. “슬레이어(Slayer)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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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경 씨?”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나는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뗐다. 기사 속 사진에 수없이 등장하는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수많은 박수갈채와 호응 속에 아레스 길드의 새로운 선장이 된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묻는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최 팀장님 관련 기사요. 아니, 이제는 길드장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부길드장? 두 길드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서 헷갈리네.”
“뭐든 괜찮으니 편하신 대로 부르면 됩니다.”
“음, 그럴까. 민우야?”
“아…… 편하게 최민우 길드장이라고 부르십시오.”
“영 불편한데. 그냥 앞으로도 팀장님이라고 부를게요.”
사람들의 시선이나 맡은 직책을 생각하면 길드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만, 최 팀장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민우야, 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찝찝한 표정으로 대답한 최 팀장의 시선이 주위를 훑는다.
확실한 조사 진행을 위해 일부러 복구되지 않은, 초토화된 넓은 공간. 바로 아레스 길드 본사에 숨겨진 A구역이다.
‘이제는 숨겨졌던, 이라고 해야겠지만.’
나는 내심 중얼거리며 눈에 익은 복도를 가로질렀다.
변이를 일으킨 석고준과 한바탕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곳이라 그런지, 시선과 발걸음이 향하는 곳마다 온갖 잔해가 가득하다.
‘다시 보니까 우라지게 넓네.’
무슨 과수원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확인한 면적만 천 평이 훌쩍 넘을 것 같다.
문제는 나와 최 팀장, 두 사람이 이 공간을 이 잡듯 뒤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단둘은 아니다. 단지 또 다른 멤버가 사람이 아닐 뿐이지.
“나와, 인마.”
스윽.
사람은 아닌데, 사람같이 생긴 놈이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와 중얼거렸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분명히 클럽에 데려다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미녀들이랑 술 게임도 시켜 준다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스켈레톤 킹을 향해, 나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여기서 보물찾기 게임 할 거야.”
“…….”
“빨리 찾으면 진짜 클럽 데려다준다. 혁무진 불알을 걸고.”
“……간악한 인간 같으니.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 본다. 그런데 혁무진이라는 놈은 도대체 누구길래 자꾸 불알을 거는 것이냐?”
나는 스켈레톤 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뒤, 최 팀장에게 손짓했다.
“팀장님은 저쪽으로 가요. 나는 이쪽. 골골이는 저어기 저쪽 맡을게.”
“제가 맡은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습니다만.”
“아니, 팀장님 말 섭섭하게 하시네. 싫으면 때려치우시든가. 우리 할아버집니까? 니네 할아버지지.”
“바로 납득이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역할 분담을 끝마친 우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세 시간 뒤, 한자리에 모여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쉬이벌…… 못 해 먹겠네.”
“어찌 된 일인지 마나 탐지기가 작동을 안 합니다. 이거 소더비 경매에서 산 진짜 명품인데.”
“인간. 보물찾기 게임 개노잼이다.”
이정룡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생각하면 비밀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괜히 정부 조사팀이 허탕만 치고 돌아간 것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집무실에도 반응이 없어. 설마 정보가 틀린 건가?’
하지만 고세원은 현재 아레스 길드의 비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이정룡과 송천우. 석고준까지 죽은 지금, 그의 말을 믿는 것이 유일한…….
“어?”
순간, 머릿속을 스친 어떤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뜨인다.
그런 내 반응에 마나 탐지기를 주먹으로 두들기던 최 팀장과 스켈레톤 킹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 물 좋은 클럽이 생각났나?”
“아니, 잠깐만. 짐작 가는 곳이 있어서 그래.”
나는 빠르게 A구역에서의 기억을 되짚었다. 석고준과의 전투와 1차 승리.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놈은 도망치고 있었지.’
그때, 인간과 괴물이 뒤섞인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 석고준은 분명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느냐다.
‘그곳이다. 그곳에 내가 발견하지 못한 뭔가가 있어.’
타닥, 쉬이이익!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바람처럼 쏘아지는 내 뒤를 최 팀장과 스켈레톤 킹이 황급히 뒤따른다.
이미 앞서 여러 번이나 찾아봤던 장소였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스윽.
끝이 막혀 있는 복도와 여러 개의 방. 속도를 늦춘 나는 벽면에 바짝 기댄 채로 기감을 끌어올렸다.
띠링, 하는 시스템 알림과 함께 나를 중심으로 푸른 원이 퍼져 나간다.
하지만 복도와 방을 샅샅이 수색해도 뭔가를 발견했다는 알림은 뜨지 않았다.
솨아아악.
[기감]의 범위는 시스템에 의해 정해져 있고,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딱 거기까지다.그러나, 그러나 정말 이것뿐일까.
‘더 멀리. 더 넓게.’
나는 침착하게 호흡했다. 주위의 소리가 멀어지고 단전에서 솟아오른 공력이 기감에 힘을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중단전(中丹田)이 반응한 그 순간.
쏴아아아악!
멈춰 있던 푸른 원이 뻗어 나갔다. 눈에 보이는 공간 너머, 은밀히 숨겨진 또 다른 공간을 향해.
그 끝에, 기다리던 알림이 있었다.
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