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09
#608화
나는 눈앞의 중년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널드 도람프 주니어.
수조 원의 재산과 그룹을 소유한 재벌이자, 과거 미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에 이어 미합중국 역사상 역대 세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마치 영국 신사처럼 멀끔한 인상의 그는 실제 나이에 비해 20년은 젊어 보였고, 우리를 향한 웃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모두.」
우리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도람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다.
TV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만 보던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실물을 보면서도 신기한 마음이다.
「하하, 그런 눈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신기하니까요. 말로만 듣던 두 분을 오늘에서야 뵙게 되는군요.」
최 팀장이 유창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한국에서 합동 국가장이 치러졌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불의에 의하여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들. 그리고 전 평화 길드장이셨던 미스터 킴의 명복을 빕니다.」
도람프 대통령은 외모뿐만 아니라 태도도 신사적이었다.
합동 국가장에 주한미국대사와 외교부 장관을 보내어 도리를 지켰음에도, 이렇게 잊지 않고 따로 인사를 건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외교부 장관과는 이미 구면이겠군요. 안 그래요, 제시?」
도널드 대통령의 부름에 오각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 외교부 장관이 빙긋 웃으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는 그제야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미합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지탱하는 주축 인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 군부와 정계의 핵심 인사들.’
정장을 입은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지난 합동 국가장 참석으로 일면식이 있는 외교부 장관이 그중 한 사람인 것으로 보아, 아마 정장을 입은 이들 대부분이 장관급이거나 그에 준하는 신분일 것이다.
그리고 군부는…….
‘더럽게 많네.’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다.
반백이 되었거나 온통 흰머리로 가득한 중, 노년의 장군들이 정복(正服)에 반짝이는 휘장과 별을 단 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알아차린 도람프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자, 여러분. 이쪽은 평화 길드와 아레스 길드를 맡은 미스터 최. 또 모두가 아시는 미스터 진입니다. 그리고 이쪽에 계신 분들은…….」
잭. 필립. 조이. 리암. 이사벨라.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한 번씩은 들어 본 이름과 직책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평소에도 모르는 게 없는 최 팀장은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뭐 이렇게 부서나 직책들이 많아.’
그나마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 있었다면 CIA와 FBI의 국장 정도다. 아마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특수 조직이라 그런 거겠지만.
「소개도 끝났으니, 이제 두 분을 갑작스럽게 모신 이유에 대해 알려 드려야겠군요.」
딱. 파앗!
도람프 대통령이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긴 순간. 잠시 사라졌던 홀로그램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건.’
지도다. 그것도 지구 전체가 아닌 특정 지역을 세밀하게 표현한 지도.
수많은 건물과 각종 지형 위에는 좌표가 적혀 있었고,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는 의미불명의 표시가 보였다.
‘아.’
홀로그램 지도에 적혀 있는 지명과 사막이 산재한 지형.
그리고 막 도착했을 무렵 도람프 대통령이 하던 말을 떠올린 나는 깨달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중동?”
「테러 단체의 위치를 표시한 전술 지도군요. 저 반짝거리는 표식은 게이트나 본거지일 테고.」
입을 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흘러나온 나와 최 팀장의 말에, 도람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모두 정답입니다. 다만 미스터 최의 대답이 훨씬 더 자세하고 정답에 가까웠어요. 저 빛은 테러 단체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장소들을 표시해 놓은 겁니다. 홀로그램 축소.」
슈우웅.
명령어를 따라 커진 홀로그램이 지구본의 형상으로 줄어든다.
도람프 대통령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회전하는 지구 곳곳에 크고 작은 빛이 서려 있었다.
“저게 다 테러 단체라고요?”
「제 선친께서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이슬람계 테러 조직의 숫자만 100개가 넘었습니다. 물론 대격변 이후에는 무서울 정도로 증식했고요.」
이건 처음 알았네.
이슬람계 테러 조직만 따져도 100개. 그것도 대격변 이전의 숫자이니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저 중에는 동아리 수준의 소규모 테러 집단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놈들이 무슨 만화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 살상을 목표로 한 테러 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 뭐 이렇게 많아.’
세상에 미친놈들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라앉은 눈빛으로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 곳곳에 산재한 반군 세력은 제외한 겁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미스터 최. 하지만 다행히 반군 역시 포함되어 있는 숫자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천만다행이군요. 그리고 저희를 굳이 초청하신 이유 역시 알 것 같습니다.」
최 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도…… 테러 단체를 토벌할 생각이시겠죠.」
「맞습니다.」
도람프 대통령은 부정하지 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미합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그만큼의 견제를 받습니다. 그렇기에 군사적, 외교적으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지요.」
미국이 아무리 유서 깊은 국제 깡패라고 해도 전 세계의 모든 나라를 씹어먹을 정도는 아니다.
대격변을 겪으며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암약하는 테러 단체와 반군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두 분 모두 잘 아실 테고요.」
알다마다.
매직 존슨도 언급했던 것처럼, 테러 단체와 아프리카 반군은 게이트와 마정석을 이용한 실험에 착수했다.
그들이 실험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며, 성공과 실패할지의 유무를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마치 핵실험처럼.’
북한이 미사일 실험만 해도 전 세계의 시선이 주목된다.
물론 한국인들이야 저 새끼들 또 지랄이네, 하면서 각자 할 일을 하지만 그건 결국 저놈들이 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 집단은 북한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미친놈들이었다.
「미스터 존슨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당장 오늘만 해도 테러 집단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텍사스. 이 세 곳에서 동시에 같은 짓을 벌었죠. 그리고 이건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스윽.
도람프 대통령이 부드럽게 홀로그램 사이를 휘젓자, 지구본 형상이 사라지고 수십여 개에 달하는 작은 홀로그램 창들이 떠올랐다.
– 투항하라!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다면……!
– 신은 위대하시다!
– 피, 피해!
– 콰아아앙!
시스템을 통해 해석되는 수십 개의 언어가 시끄럽게 뒤섞였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그들은 폭발을 피해 도망치거나, 사방으로 튄 인간의 뼈와 살을 뒤집어쓴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오늘 하루만 32회의 테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뉴스에 보도된 텍사스 사태처럼 아직 피해는 미미하지만, 테러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게이트와 마정석을 이용해 실험을 끝마친다면…….」
척 헤이글이 시가를 만지작거리며 거칠게 끼어들었다.
「Fuck. 말할 것도 없이 다 좆 되는 거야. 이번 사우스 코리아에서 벌어진 사건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겠지.」
매직 존슨 역시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반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그놈들도 테러 집단만큼이나 위험해. 아이들까지 잡아다가 세뇌시키고 병사로 쓰는 놈들이니까.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만, 수십만이 죽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걸?”」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도, 가장 악랄한 것도 인간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동시에 불과 몇 주 전 눈앞에서 죽어 간 이들의 시신과 비명이 다시 한번 떠올라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음.”
나는 침음성과 함께 최 팀장을 곁눈질했다.
얼마 전 곁을 떠나간 누군가를 떠올리는 그의 시선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돼.’
모르겠다. 사람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고 다쳐야 이 미친 쳇바퀴가 멈출지.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이 쳇바퀴를 잠시나마 멈출 만한 힘이 있으니까.
설령 멈출 수 없다면…….
‘부숴 버려야지.’
마음속에서 이미 결정을 끝낸 나는 도람프 대통령을 응시하며 불쑥 입을 열었다.
“토벌 작전은 언제쯤 시작합니까?”
내 물음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도람프 대통령의 눈짓에 오각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일어났다.
「UN 상임 이사회 전부가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가 끝나기까지 빠르면 두 달. 길면 반년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빠르면 두 달?”
느리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나는 작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위험성을 말씀하신 것치고는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은데요.”
「국제법상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자국 동의 없이 병력을 투입하는 건 명백한 주권 침해입니다.」
“현대 역사 교과서 보니까 중동 지역에서는 잘만 싸웠던데, 뭘. 예전에 오일머니 관련 비판 다큐도 봤어요.”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내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정부 핵심 인사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그건 911사태 때문이었고, 지금은 대격변 이후 새로 맺은 국제 협약에 따라.」
“그럼 됐고. 어쨌든 정말 빨라야 두 달 정도라는 거죠?”
「크흐흠. 예.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다시 도람프 대통령을 향해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 혹시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뭐 예를 들어서 정체불명의 괴한이 아프리카 반군이나 중동 테러 집단을 쓸어버린다. 그러면 그것도 국제법 위반이에요?”
「예?」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뭐 그런 거요. 우선 대답 전에 목소리 줄이시고.”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멍한 표정을 짓던 도람프 대통령이 간신히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그러니까 지금. 미스터 진이 정체를 숨기고 테러 집단을 토벌하겠다는……?」
“제가요? 제가 왜요?”
「아니. 방금 하신 말씀을 해석하자면…….」
“그런 적 없는데? 그냥 예시를 든 건데?”
「자, 잠깐만요. 미스터 진.」
“이 아저씨 큰일 낼 사람이네. 제가 혼자서 왜 그런 짓을 해요? 아레스 길드 본사에 혼자 쳐들어가는 미친놈이라면 모를까.”
「……!」
순간 흐르는 숨 막히는 정적.
미친놈 보듯이 나를 바라보던 도람프 대통령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제가 오해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그렇죠?”
「예, 그럼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에서 끝마치겠습니다. 홀로그램 전술 지도 자료는 실수로 놓고 갈 예정이고요.」
“아하, 그렇죠. 실수.”
「예. 기밀 중의 기밀이니까 절대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반군 위치가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어서요.」
“그리고 또. 뭐 없어요?”
「필요한 건 전부 자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미스터 진은 그 자료를 입수할 일도 없고, 곧장 한국으로 향하시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미스터 존슨?」
상황 파악을 끝낸 매직 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대통령. 그런데 진이 여행을 좋아하던데. 며칠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리를 비워도 될지 모르겠소.」
「아, 그렇습니까? 혹시 좋아하시는 지역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아프리카랑 중동이요. 특히 사막 보면 환장합니다. 오아시스에 오줌싸고 스핑크스한테 츄르 주는 게 로망이고요.”
최 팀장이 침착한 어조로 덧붙였다.
「전 여름에 태어나서 더운 곳을 좋아합니다.」
“허어. 이런 우연이.”
「준비됐어. 최?」
「물론입니다. 존슨…… 아니, 이거 좀 이상한데요.」
혼란스러우면서도 매끄럽게 진행되는 대화 속, 척 헤이글이 시가를 배어 물며 종지부를 찍었다.
「미친놈들을 죽이러 미친놈이 가는군.」
맞다. 미친놈들은 미친놈에게 죽어야 하는 법이다.
* * *
평범한 하루였다. 외국인 포로를 심문하고, 깝죽거리는 부하 한 명을 죽인 다음 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이슬람 무장 테러 집단의 수장. 무함마드 살라디르 앗 딘은 겉옷을 벗기도 전에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과 마주했다.
“똑바로 서라. 핫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