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12
#611화
“알라! 위대하신 알라시여!”
“처리해라, 사탄.”
“간악한 인간 잘 가고.”
나는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는 알 디아브를 스켈레톤 킹에게 맡긴 뒤 돌아섰다. 어차피 이후의 일은 내 영역이 아니니까.
그저 그런 테러 단체 수장이라면 볼 것도 없이 즉결 처형이지만,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마 매직 존슨이나 스켈레톤 킹이 방법을 찾아 잘 써먹겠지. 그게 마법이든, 권능이든.
‘섭혼술(攝魂術)을 배워 둘 걸 그랬나.’
살짝 아쉬움이 든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섭혼술은 사마외도의 한 갈래로 분류되는 무공이지만, 정파에서도 익힌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습을 바꾸는 역용술(易容術)은 말할 것도 없고.
물론 나는 둘 다 안 배웠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눈물의 똥꼬쇼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곳에 사마외도가 있긴 한데…….’
그놈이 섭혼술을 익혔을지는 잘 모르겠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 몇 가지 정도 배울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잠시 무림에서의 일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덧 거대한 개미굴과 같은 지하 은거지가 끝나고, 아득하게 펼쳐진 모래사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반짝이는 별 아래, 시가 연기를 뻑뻑 뿜어내고 있던 한 사람이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벌써 왔나?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알 디아브는 잡았고?」
나는 그의 주변에 널린 테러리스트들의 시신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예. 스켈레톤 킹에게 맡겨 뒀습니다.”
「알라의 충복이 몬스터의 손아귀에 떨어졌군. 좋아.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라고. 얼굴 한번 볼만했겠는데.」
“확실히 좋아하진 않더라고요. 아마 지금도 사탄이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척 헤이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흘 전에 스켈레톤 킹의 정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그는, 짧은 대화만으로 자신이 일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을 입증했다.
‘언데드라고?’
‘예.’
‘혹시 저 친구 성이 언데드라는 건가?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아까는 분명 스톤 킹이라고 들은 것 같았는데.’
‘아뇨. 걍 성별이 언데드예요. 아니, 성별 말고 종족.’
‘조지아주 출신이라면서?’
‘짠. 사실 마계 출신 스켈레톤 킹이었습니다.’
‘그럼 몬스터라는 거잖아.’
‘네.’
‘헤이, 머더 뻐커. 지금 장난해? 몬스터가 왜 여기 있…….’
‘정확히는 언데드 몬스터죠. 더 정확하게는 네임드 언데드 몬스터고.’
‘……다들 제정신인가? 도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들을 하는 거야?’
‘몬스터긴 한데, 소격변 때 아크 리치에게서 제 목숨을 구해 줬습니다.’
‘What?’
‘아. 그리고 한국에서 10회 이상의 변이 게이트 및 3회의 게이트 웨이브를 진압하기도 했고요.’
‘홀리 쓋. 그럼 참전 용사군. 어서 오게. 언데드 용사여.’
흑묘백묘(黑猫白猫).
쥐만 잘 잡으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상관없다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척 헤이글의 사고방식은 실로 비범한 수준이었다.
‘내 할아버지는 빌어먹을 훈장도 받은 인디언 학살자였지. 하지만 난 그런 거 좆도 신경 안 써. 퍽킹 테러리스트와 게이트를 처리하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만 있다면 피부색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척. 쟤는 피부가 없는데요.’
‘뼈 색도 상관없어.’
인종 차별을 넘어 종족 차별도 인정하는 척 헤이글의 한마디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심지어 그는 미합중국 국방장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포부까지 보여 주었다.
‘대통령에게는 함구하지.’
‘물론 척이 그러길 바란 건 사실인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안 물어봤잖아.’
‘아.’
‘그리고 원래 군대는 안 걸리면 그만이야. 군대라 쓰고 가라라고 읽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안 물어봤다는 이유로 입 다물고 있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척 헤이글이라서 할 수 있는 미친 짓이기도 했다. 엉클 척(Uncle Chuck)은 매직 존슨과 더불어 미합중국의 상징이었으니까. 대격변이 낳은 희대의 전쟁 영웅들에게는 엄청난 사랑과 애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미친 짓이긴 하지. 음.’
그러나 다행이었던 건, 척 헤이글은 지금까지 그런 미친 짓을 심심찮게 벌인 미친놈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훈훈하게 척 헤이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뭐야?」
“그냥. 척이 참 좋아서요.”
「혹시 존슨이랑 친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이걸 이렇게 받아들이시네. 그러고 보니 다른 두 사람은요?”
아까부터 주위 어디에도 최 팀장과 매직 존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물음에 척 헤이글이 시가를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게이트를 조사 중이야. 이놈들, 마정석 관련 비밀 실험실도 갖추고 있더군.」
비밀 실험실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어중간한 규모의 테러 단체라면 모를까, 알 카에다는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거대 테러 단체고 막대한 인, 물적 자원을 소유하고 있었으니까.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모되는 마정석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규모는요?”
「생각 이상으로 대규모야. 최와 존슨의 말에 의하면 지어진 지 십 년은 족히 된 것 같다더군.」
“십 년씩이나?”
「그래. 이곳에서 앞서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우려처럼 마정석을 이용한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제법 오랫동안 뭔가를 꾸미고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해 보여.」
“음.”
아무래도 마정석을 이용해서 살상을 일으킨다는 방식은 석고준이 최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근본부터 테러 단체이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성과는? 놈들이 이미 뭔가를 알아냈을까요?”
「글쎄. 테러리스트 연구원 놈들을 족쳐 봐야겠지만, 아마 성과가 있었다면 이미 더 큰 사건이 터지고도 남았겠지.」
“그것도 그러네요.”
「최소한 이번에 텍사스 등지에서 벌어진 테러는 알 카에다와 별 상관이 없어. 놈들이라면 이미 인체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었을 텐데, 이번과 같은 병신 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설령 테러가 성공했다면 모를까, 알 카에다가 굳이 아까운 헌터와 마정석을 버려 가며 병신 인증 자살 쇼를 보여 줄 이유는 없었다. 무슨 반자이 돌격이나 카미카제도 아니고.
‘어그로만 실컷 끌고 두드려 맞겠지.’
내심 중얼거리던 그때, 척 헤이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아마 이놈들을 뿌리 뽑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오늘따라 유난히 힘이 없어 보이는 그가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내게 건넸다.
“전 담배 안 피우는데요.”
「그건 나도 알아.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미국 군용 시가가 놈들의 품에 있었다는 거지.」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부의 협력자가 있다?”
「시가뿐이었다면 말도 안 했을 거야. 하지만…… 아주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군. 식량, 실험 및 의료기기, 첨단 미사일에 아티팩트까지. 국방부 허가 없이는 해외 유출이 불가능한 물품이 대다수야.」
허탈하게 뇌까리는 그의 어깨를, 나는 힘주어 두드렸다.
“힘내요, 척. 어차피 처음도 아니잖습니까.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허. 그것참 위로가 되는군.」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수십 개가 넘는 테러 단체를 박살 내며 우리가 본 것은 시체와 핏물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적나라하게 본 건 세상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누구에게 그 많은 것들을 얻었을까.’
군 관계자? 고위 정치인? 아니면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는 밀매업자들? 어쩌면 그들 모두?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잡초에 누군가가 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
「빌어먹을 새끼들.」
텁텁하게 뇌까린 척 헤이글이 시가를 저 멀리 내던졌다. 서서히 타들어 가던 희미한 불꽃은, 싸늘한 추위가 내려앉은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그는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크레이지 코리안. 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갑작스러운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미 며칠 전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였다.
“돌아갈 생각입니다.”
「사우스 코리아로? 하긴, 노스 코리아일 리는 없으니 그게 맞겠군.」
“글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하지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내 모습에 척 헤이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계속 이 우스꽝스러운 복면을 뒤집어쓴 채 정의의 자경단 활동을 할 수는 없겠지.」
“음. 딱히 우스꽝스럽지는 않을걸요.”
「진심이야? 사우스 코리아식 패션 감각. 뭐 그런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한테 말고요.”
「응?」
“반군 세력이나 테러리스트들. 그놈들 입장에선 어떻겠습니까.”
「……!」
척 헤이글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명칭도 모르는 숱한 별자리로 채워진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자헤딘. 알 카에다. IS 시리아 지부…….”
지난 일주일 동안 수장과 본거지를 괴멸시킨 거대 테러 집단. 그리고 아예 뿌리째 뽑은 중소 테러 단체의 명칭을 하나씩 읊었다.
“비록 모든 걸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놈들에게는 확실한 경고가 됐을 겁니다.”
이름과 나이, 심지어는 국적과 생김새도 모른다.
복면을 뒤집어쓴 우리는 매직 존슨의 마법으로 감시를 피했고, 무기과 전투 방식을 바꿔 가며 싸웠다. 그리고…….
“정체를 모르는 적만큼 두려운 상대도 없죠.”
불과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테러 단체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막대한 현상금으로도 잡을 수 없고, 정체를 모르니 그들의 특기이자 장기인 보복성 테러도 무소용이었다.
게다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 테러 단체의 수장 여럿도 이미 우리의 손에 죽거나 조종당하여 내분을 일으킨 상황.
“같은 꼴을 당하기 싫다면, 납작 엎드려 웅크릴 겁니다.”
미약한 억제는 반발을 부르지만, 압도적인 힘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우리에 의해 자유를 되찾은 포로들은 이미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보고 겪은 일과 참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국제 사회는 또 한번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중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죠.”
악의(惡意)라는 잡초는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악의를 품은 사람은 악행(惡行)을 저지른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마음에서 자라나는 잡초를 완전히 뽑아낼 수는 없어도, 눈에 보이는 잡초를 뽑아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얼마나 많은 잡초를 뽑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잡초를 뽑는지가 중요한 거죠. 척과 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는 하나. 누구는 둘. 혹은 셋.
그렇게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 잡초는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 작지만 큰 깨달음을 얼마 전에야 얻었다.
“뭐,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
내가 너무 혼자 떠들었나?
슬그머니 입을 닫자,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척 헤이글이 불쑥 입을 열었다.
「헤이.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뭐든지.”
「아까는 대답을 못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는 거야? 방금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최소 바티칸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말씀드리긴 애매한데, 여기랑 비슷한 곳이요.”
「어디. 아프가니스탄?」
“그보다 더 먼 곳. 훨씬 더.”
「……훨씬 더?」
어리둥절한 척 헤이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짙어졌다.
맞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다. 마지막까지 미뤄 둔 일을 처리한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