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28
#627화
임시로 배정받은 처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비록 중원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정갈하면서도 나와 화룡각 대원들이 당분간 머무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음. 지금 내 젓가락에 끼워져 있는 게 뭔지 아는 사람?”
식사 도중 내가 출제한 깜짝 퀴즈에, 혁무진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어, 그래. 무진이. 대답해 봐.”
“정답! 벌레입니다!”
“맞아, 정확히는 지네지. 그런데 왜 이딴 게 음식 속에 있을까?”
“음. 남만 이민족들의 풍습이 아닐까요?”
80년 차 경력의 남만 이민족인 남호가 송충이 비슷한 것을 골라내며 중얼거렸다.
“난생처음 듣는 풍습인데……?”
차라리 메뚜기 구워 먹는 정도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살아 있는 벌레를 쏟아부은 수준이라 실드도 못 친다.
이 와중에도 열심히 접시에 코박죽을 시도하는 태산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사마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군.”
이래서야 식사가 될 리 없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송일섬이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천마표국 일 때문이겠지.”
동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율목이 직접 이런 일을 지시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소궁주씩이나 되는 녀석이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까.
‘결국 남만야수궁 내부의 다른 이민족들의 짓이다, 이건데.’
남만에 들어선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미움을 받다니. 미운 오리 새끼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하던 그때, 식사 전에 씻으러 간다며 이 층으로 올라갔던 주화란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어? 벌써 다 씻으셨어요?”
아니, 올라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논산 훈련소 54번 훈련병도 이 정도로 빨리 씻지는 못한다.
의문이 담긴 내 물음에 주화란이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네.”
“……?”
어째 안 좋은 느낌이 딱 온다.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잠시 망설이던 주화란이 입을 열었다.
“사실 그게…….”
전후사정을 모두 들으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 날씨에 펄펄 끓는 물을 줬다고요? 그것도 오물 비슷한 걸 섞어서?”
주화란이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씀 안 드리려고 했어요. 단순한 착오일 수도 있는데 혹시 이 일로 문제가 생길까 봐…….”
“단순한 착오 아닙니다. 그리고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그거 아니어도 다른 문제가 있으니까.”
그제야 식사 상황을 알아챈 주화란이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으.”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드실 건 아니죠?”
“네. 당연히.”
주화란이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하는 건 처음 본다. 작게 혀를 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장님. 어디 가세요?”
“깽판 치러.”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알고, 보자 보자 하면 보자기로 아는 게 세상 이치다.
아무래도 남만야수궁을 설득하러 온 입장이니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키겠지만, 한 번 정도는 지랄을 떨어 줘야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안 하지.
곧장 문을 열어젖히려던 나는, 문득 잊었던 말을 떠올리고 걸음을 멈췄다.
“아. 그리고.”
“예?”
“쟤 좀 그만 먹게 해라.”
내가 말한 ‘쟤’가 누구인지 되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중에서 형형색색의 벌레 볶음밥을 세 그릇째 처먹고 있는 건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사마표가 슬픈 눈으로 태산을 바라보았다.
“태산. 멈춰……!”
그래, 제발 좀 멈춰.
* * *
그건 지금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나무였다.
수십 명의 장정이 양팔을 펼친 채 감싸 안아야 할 것 같은 엄청난 둘레와 최소 수십 장에 달하는 까마득한 높이.
보자마자 내심 탄성이 흘러나왔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목적은 나무를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마. 내려와.”
푸스슥.
울창한 잎사귀가 흔들린다. 곧이어 나직한 맹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야율목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또 네놈이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물어보니까 알려 주던데. 너 여기 자주 온다고.”
“누구한테?”
“전각 관리하는 놈.”
“황개가?”
“황개인지 똥개인지.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족에게 그런 걸 알려 줄 자가 아닌데.”
“한족한테는 몰라도, 주먹한테는 잘 알려 주던데?”
“…….”
“내려와라. 목 아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목 아프다고 내려올 것 같지는 않아서, 친절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무 꺾어 버리기 전에.”
“이건 선조의 선조들께서 심은 나무다. 자그마치 천 년 전에 이 땅에 뿌리내렸단 말이다.”
“그럼 먼 훗날에 네 후손들이 그러겠지. 얘야, 여기에는 천 년 된 나무가 있었는데 어떤 한족 새끼가 와서 뿌리째 뽑아 버렸단다. 왜요, 엄마? 왜냐하면 우리 선조님이 좋은 말로 할 때 나무에서 안 내려왔거든.”
“…….”
“그러니까 내려와. 환경 파괴하기 전에.”
이번에도 거절하면 정말 뽑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야율목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녀석이었다.
스슥. 탁.
크르릉. 나뭇가지를 연달아 밟으며 부드럽게 착지한 백호(白虎)가 나를 향해 낮은 울음소리를 흘린다.
그런 백호의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 준 야율목이 나를 노려보았다.
“미친놈.”
“아이, 새삼스럽게 뭘.”
쑥스럽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내 모습에,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야율목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황개는 어찌 되었지?”
“아, 그 인간. 사지는 멀쩡해. 약간 겁먹긴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군. 도움을 청하러 와서 남만인을 핍박하다니.”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정말 털끝 하나 안 건드렸어. 그 대신 멱살은 좀 잡았지만.”
내가 무슨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중원에서도 그렇게 막 나간 적은 없었다.
항상 처음에는 부드럽게 말로 하다가 안 되니까 주먹을 쓴 거지. 그리고 이번에는 그럴 만한 사유도 충분했다.
“벌레 볶음밥. 목욕용 똥물.”
“뭐?”
“전통 풍습이 아니라면 남만야수궁의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네. 안 그래?”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야율목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군.”
“대충 알 것 같았으면 언질이라도 좀 해 놨어야지.”
“설마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일 줄은 예상 못 했…….”
뭐라 말을 이으려던 야율목이 문득 입을 다물더니, 나를 향해 이내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미안하다. 내 진심으로 사과하지.”
“……오.”
“뭐냐, 그 반응은?”
“별거 아냐.”
사실 조금 놀랐다.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존심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야율목이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잘못한 건 바로 인정하고, 뒤끝도 없는 뭐 그런 타입인가?’
잘못을 저지르는 건 쉽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남만야수궁의 젊은 소궁주는 생각보다 괜찮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돌아가는 대로 사람을 바꿔 주지. 황개는 물론이고 연관된 자들 모두. 앞으로 이번 같은 일은 일절 없을 거다.”
“뭐, 그렇게 해 준다면야.”
“내 실수였다. 다시 한번 사과할 테니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왜. 가끔 잘못하면 맞기도 하고 그러냐?”
야율목이 울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면 말고. 그냥 굳이 부탁까지 하는 걸 보면 사흘 밤낮 동안 처맞나 싶었지.”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내게 손 대신 적이 없다.”
사실 아버지가 야수묘왕이라면 손 안 대도 잘 자랄 것 같긴 하다.
저 덩치에 저 무위라면 아들은 물론이고 손자. 어쩌면 증손자까지 사춘기 프리 패스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잠시 머뭇거리던 야율목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괜찮겠지만 다른 이들은 예외지.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거다.”
“아.”
“아버지께서 환영하신 손님에게 푸대접을 했으니 너희 한족들이 항의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개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벌할 생각도 없어.”
“그 썅놈의 좆마표국 때문에 열 받았을 테니까?”
“……이름이 좀 틀린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이유 중 하나지.”
“이유 중 하나라. 다른 이유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한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야율목이 어느덧 얌전해진 백호의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정마대전(正魔大戰).”
“음?”
“우리는 중원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아버지의 주도하에 남만의 모든 부족이 힘을 모았고, 자그마치 일만에 달하는 전사가 전장으로 향했지만……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의 숫자는 그중 반의 반도 되지 않았지.”
그르릉.
조용히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들이던 백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본다.
복잡한 감정이 스며 있는 야율목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자식.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와 친인척들. 웃으며 전장으로 향한 그들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한참 후에 태어난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너도?”
“원래대로라면 난 소궁주가 될 수 없었겠지. 이게 아까 네가 했던 질문에 대한 진짜 대답이다.”
야수묘왕과 헤어진 직후 야율목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위로 형제가 있었군.”
“셋. 그중 한 명은 누이였지. 비록 어렸고 여인의 몸이었지만 여느 전사 못지않게 용맹했다고 들었다. 만약 정마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혼례를 치렀을 거다. 아버지와 백상 숙부는 의형제인 동시에 사돈이 되었을 테고.”
“잠깐. 그렇다면…….”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이 맞다. 정마대전이라 이름 붙인 한족들 간의 전쟁에서 아버지는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잃었고, 백상 숙부는 목숨처럼 아끼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
야율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황개를 너무 탓하지 마라. 그는 부모와 일가친척 모두를 잃었으니까.”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곳저곳에서 정마대전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남만이 이 정도까지 큰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만은 중원에서 수만 리나 떨어진 새외였고, 무림과는 동떨어진 완전한 별개의 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정마대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남만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 주기라도 한 것은 적천강을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 다들 묵은 감정이 있었겠지. 얼마 전 있었던 천마표국의 일은 그 발화점이었을 테고.’
종전 직후 무슨 보상을 받았건 간에, 그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아픈 상처다. 그런데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겨우 딱지가 생길 무렵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한족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는데, 이제는 우리 중 일부를 죽였지.”
차갑게 끓어오른 야율목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