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45
#644화
띠링. 띠링. 띠링.
– 퀘스트, [부족 대회의]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부족 대회의]당신은 남만야수궁 역사 최초로 부족 대회의에 참석할 자격을 얻은 외지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열화문의 오 대 문주조차 이루지 못했던 업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오독문을 멸문시키고 떠났거든요!
남만의 대소사가 결정되는 이 중대한 회의에서, 당신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합니다!
등급 : 초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남만야수궁의 입맹(入盟) (미완료)
보상 : ???
실패 : ???
나는 퀘스트 창을 바라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나를 향한 여론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남만야수궁을 입맹시키라니. 초절정이라는 퀘스트 등급만큼이나 빡센 임무다.
‘그 와중에 오 대 문주 무엇…….’
역시 열화문이라고 해야 하나?
일인전승(一人傳承)으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깡패 문파답다.
열화문의 역대 문주 중에서는 초야에 묻혀 장수한 이도, 무림에 나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단명한 이도 있었지만 늘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신위를 지닌 괴물들이었다고 들었으니까.
‘아마 내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겠지.’
무려 이백여 년 전의 일이라고는 해도 남만야수궁과 열화문은 제법 밀접한 관계가 있다.
K-무림식 해석으로는 단군 할아버지 절친이 세운 문파, 뭐 그쯤 되겠지.
문제는 내가 사람 패는 데에는 재주가 있어도, 설득하는 것에는 영 재능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봐야지.’
허리를 곧게 편 나는 탁자를 중심으로 자리한 서른두 명의 부족장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상석에는 야수묘왕. 그의 좌우로는 대족장인 백상과 요희, 흑웅이 차례대로 앉아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세력 순에 상관없이 자리를 배정받은 듯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게는 수백 이상, 많게는 수만의 부족민을 거느린 부족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자리는 남만,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면면을 훑던 그때, 상석에 자리한 야수묘왕이 짧은 침묵을 깨트렸다.
“자, 그럼.”
진중한 표정과 위엄 어린 눈빛. 마침내 입을 연 그의 모습에 장내의 공기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다.
남만야수궁의 주인다운 카리스마를 흘린 야수묘왕이, 근엄한 목소리로 대회의를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다들 식사는 하고 왔나?”
“……?”
“요새 안 좋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지. 특히 장 족장은 작년에 비해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
역사적이긴 시부럴 거.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생각지도 못했던 첫 마디에 귀를 의심하고 있던 그때. 조금 전 내게 가장 먼저 포권을 취했던 장 족장이 대답했다.
“역시 궁주님 눈썰미는 못 속이겠군요. 사실 조금 빠졌습니다.”
아니. 이걸 받아 준다고?
“그럴 줄 알았네. 하지만 부족장이라는 사람이 그래서야 쓰나. 부족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스스로 몸을 보살펴야지. 그런데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환갑입니다.”
“창창하군. 앞으로 더 먹게.”
“존명.”
이제는 환청까지 왔는지, 존명이 좆망으로 들린다.
‘남만 좆망.’
이게 내가 생각했던 부족 대회의가 맞나.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서른두 명의 부족장들을 바라봤다.
남만 전체를 대표하는 그들은, 야수묘왕의 첫 마디를 신호탄 삼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촐해지는 대화를 곳곳에서 주고받는 중이었다.
“갈 족장, 소식 들었어. 여섯째가 성인식을 치렀다며?”
“일곱째일세.”
“내가 헷갈렸군. 자네가 자식을 한둘 낳았어야지. 아무리 기운이 좋아도 열다섯 명이나 낳는 게 말이 되나?”
“열일곱 명일세.”
“……작년 대회의 때는 분명히 열다섯이었는데?”
“둘 더 낳았네. 쌍둥이로.”
“아.”
한쪽에서는 남만 축구 리그 창설을 노리는 게 아닌가 의심되는 슈퍼 정자맨의 대화가.
“구 족장. 얼마 전에 훔쳐 간 가축 돌려놔.”
“뭔 놈의 가축?”
“목초지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젖소 쉰두 마리. 자네 부족민들 짓인 거 모를 줄 알았나?”
“그런 적 없네.”
“네놈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지금 좋게 말할 때 돌려놔.”
“아, 진짜! 그런 적 없다니까!”
“좋게 말할 때 젖소 내놓으라고! 이 젖소 젖 같은 새끼야!”
다른 한쪽에서는 그 많던 젖소는 누가 다 훔쳐 갔을까에 관한 격렬한 고성이.
“마치 어제의 기억처럼 떠오르는군. 네놈들이 우리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던 그 날이.”
“아, 이 인간은 매년 이 지랄이네. 아직 불혹밖에 안 된 주제에 팔십 년 전 일을 왜 자꾸 들먹여?”
“나는 선조들의 혼을 물려받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땅 내놔.”
“그게 말이 되나? 선대에서 마무리된 일을 왜 자꾸 끌어오냐고!”
“땅 내놔.”
“아니 진짜…….”
“땅 내놔.”
또 다른 구석에서는 환생설을 주장하는 땅귀신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황당하게 바라보던 내 귓가에 한 사람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 웃긴 표정이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전음의 주인을 찾았다.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요희와 눈이 마주쳤다.
– 부족 대회의는 늘 이래. 뭐, 남만 곳곳에 흩어져 있다가 일 년에 단 한 번 모이니까 당연하기도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 그걸 감안해도 너무 개판인데.
– 부족 대회의는 남만 전체의 대소사(大小事)를 다루는 자리야. 말 그대로 작은 일 역시 회의 내용에 포함된다는 뜻이지.
– ……그 일이 작아도 너무 작은데?
– 서른두 개나 되는 부족이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가겠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하나씩 결정짓는 거지. 그렇게 앙금을 푸는 거고.
콰당!
“야, 이 개샛끼야!”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네가 그렇게 무공이 강해? 입 닥치고 따라 나와.”
젖소에 관해 격론을 벌이다가 마침내 멱살을 움켜잡은 두 족장을 바라본 요희가 덧붙였다.
– 물론 예외도 있지.
– …….
– 금방 정리될 거야. 진짜 대회의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지.
“아. 땅 줘. 땅 달라고.”
“허어어. 이 천년지주 같은 새끼.”
“그러고 보니까 천 년 전에 우리 조상님들께서…….”
“그만! 그마아아안!”
금방 정리된다라.
음. 아닐 것 같은데.
‘진짜 야만인 새끼들인가……?’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심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때, 요희의 말처럼 혼란스럽던 주위 상황이 하나둘씩 빠르게 정리되더니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맹수 토벌에서 만족 전사 서른 명이 부상을 입고, 스물둘이 죽었습니다. 근래 들어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하니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내궁에서 나서 주시길 요청하는…….”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목초지를 비롯한 인근 가호(家戶) 오십여 채가 물에 잠겼고…….”
“황족과 둥족의 분쟁이 종결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보고드립니다. 양 측은 합의에 따라 공식 서안을 작성했으며, 향후 십 년간 평화를…….”
맹수 토벌에 관한 상황. 재난 재해와 분쟁.
전채 요리가 끝나자 슬슬 메인 디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들 중에는 제법 신경 써야 할 정보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북동쪽에서 괴인(怪人)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괴인?
내 의문과 동시에, 지금껏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만 끄덕이던 야수묘왕이 자세를 바로 세우며 입을 열었다.
“괴인이라.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듯한데.”
“저어. 그것이…….”
맨 처음 괴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부족장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정보의 출처가 어딘가?”
“사흘 전, 북동쪽의 경계를 넘어온 한족 하나를 붙잡았는데 그자가 알려 주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 모를 괴인이 귀주(貴州)에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더군요.”
귀주성은 사천, 광서와 함께 남만과 맞닿아 있는 접경지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귀주에서 괴인이 나타나? 이렇게 갑자기?’
찜찜하다. 아니, 찜찜하다 못해 거슬릴 정도다. 그리고 괴인의 정체만큼이나 알 수 없는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더 자세히.”
눈살을 찌푸린 야수묘왕의 모습에 부족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괴인의 이름도, 나이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중원의 승려들처럼 민머리에 한 자루 선장(禪杖)을 들고 다니며 지금껏 귀주성에서만 기백 명을 쳐 죽였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혈승(血僧)이라는 별호로 불린다고 합니다.”
“혈승?”
“예. 제가 붙잡은 그 한족도 제법 뛰어난 무림인으로 보였지만, 혈승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에는 두려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혈승이라는 살벌한 별호도 그렇지만, 실로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귀주도 엄연히 정파의 영역. 무림맹이 손 놓고 있을 리는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백 명을 쳐 죽이며 악명을 떨치다니. 최소 초절정의 무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놈이 나타난 장소가 하필 남만과 인접한 귀주성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기묘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인. 정파의 영역인 귀주성을 단신으로 휩쓸 만큼의 무위.
나로서는 암천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남천마후와 같은 급의 거물이 아니더라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혈주와 서천마군 역시 음양쌍귀(陰陽雙鬼)나 기련삼괴(祁連三怪)와 같은 초절정 고수들을 휘하에 두었으니까.
‘그리고 그 혈승이라는 놈의 목적이 남만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내가 부족장을 향해 처음으로 입을 뗐다.
“그 혈승이라는 자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본인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알 방도가 없소.”
“그게 무슨…….”
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은 부족장이 대답했다.
“그가 죽었소.”
“예?”
“더 물어볼 것도 없이 죽어 버렸단 말이오. 애당초 상당한 부상을 입고 있었던데다가,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소. 때마침 내린 폭우로 홍수가 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조치도 취하지 못했지.”
“……!”
혈승의 등장.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유일했던 증인의 사망.
정적이 좌중에 내려앉은 그때. 대회의가 시작된 직후부터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던 한 사람이 불쑥 입을 열었다.
“부상과 풍토병. 그리고 죽음이라. 종종 있는 일이지.”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해 쏠린다.
백상. 바로 그였다.
“중원에서 살성(殺星)이 나타난 것 역시 마찬가지요. 한족들은 늘 그랬지. 그들은 한 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고 죽이며 지금의 천하를 유지시켜 왔소. 한 마디로…….”
담담한 어조. 그리고 담담하기 그지없는 표정. 백상의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원의 일에 하등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뜻이오. 적어도 우리 남만은.”
지금 든 이 생각이 단순한 착각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이야기가 내게는 묘하면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남만에서 둘째가는 세력과 부족민을 지닌 백족의 대족장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무시하려 하다니.
그리고 그런 백상을 말없이 응시하던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만약 혈승이 남하하고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내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챈 부족장들은 눈을 크게 떴고, 백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귀주와 맞닿아 있는 것은 이곳 남만뿐이 아니다. 광서(廣西)를 지나면 드넓은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순풍을 타고 바다로 열흘을 나아가면 해남(海南)에 이를 수 있지.”
“말인즉슨, 혈승이 남만을 침범할 가능성은 낮다?”
“놈이 구태여 이곳까지 올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독물과 맹수, 그리고 수많은 남만의 전사들을 상대하느니 광서를 통해 바다로…….”
“있습니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그런데…….”
이어지려는 목소리를 힘주어 끊어 낸 나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백상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참 희한하게도, 혼자만 그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네요.”
“뭐라?”
“아니면…… 마치 처음부터 모르는 척하기로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한 겁니까?”
그 순간.
화륵. 훅.
위태롭게 흔들리던 횃불이 사라진다.
그리고 드넓은 대전에 내려앉은 암전(暗轉) 속,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를 내뿜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네놈이 기어이, 선을 넘는구나.”
솨아아아악!
“글쎄.”
사방에서 전신을 옥죄어 오는 거대한 기파를 느끼며, 나는 담담하게 뇌까렸다.
“선은 그쪽이 넘으시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