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72
#671화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곳, 무림에는 현대가 보유한 눈부신 과학 문명도, 기계 공학도, 더불어 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에도 마법 못지않은 특별함이 곳곳에 녹아 있다.
공력을 축적하여 헌터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무림인. 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무공과 신묘하고도 기괴망측한 영물과 영약들.
그리고…… 추종향(追蹤香)도 그중 하나다.
띠링.
돌발 퀘스트, [요희의 추종향]이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 / N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시스템 알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퀘스트
[요희의 추종향]추격을 피해 도주하는 당신의 앞에 나타난 새로운 길.
이제 당신은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 놓인 이 두 갈래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며, 오직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등급 : 초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이동할 방향을 선택 (미완료)
보상 : 연계 퀘스트
???
실패 : ???
빌어먹을. 이건 또 뭐야.
허공을 가득 메운 홀로그램 창.
동시에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억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친다.
‘한 판 제대로 붙은 모양이군.’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소. 요서부에 남아 있던 것은 피와 시체. 그리고…… 저것들뿐이었지.’
그날의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건 홀연히 사라진 흑웅과 요희, 두 대족장이 남긴 유일한 단서였으니까.
‘흑웅은 손목이 잘렸고, 요희는…….’
그래, 향낭(香囊)을 남겼었지.
그러나 막 요서부에 도착한 상태였던 나는 향낭보다 흑웅이 남긴 손목에 집중했다.
잘려 나간 손목의 단면에 남은 상흔(傷痕)을 파악한다면 상대의 무공과 그 수준을 대략이나마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요희의 향낭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향낭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고, 길게 찢어진 틈새로 향이 빠져나간 터라 무취(無臭)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나는 몰랐다. 아니, 뒤이어 연달아 벌어진 일들에 그 누구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요서부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였으며, 누군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요희가 남겨 놓은 추종향이라는 것을.
‘향이 빠져나간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그랬던 것뿐이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추종향은 뜻 그대로 누군가를 자취를 쫓기 위해 만들어진 기물(奇物).
결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용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파에서 예를 들자면, 하오문과 개방이라던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엄청난 규모를 지닌 개방의 후개와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건, 내게 있어 뜻하지 않은 행운이다.
‘추종향이라. 효과는 확실하지만 엄청나게 귀하지. 제조법도 워낙 은밀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무림에 몇 없어.’
‘만리추종향(萬里追蹤香). 뭐 그런 것처럼?’
‘만리추종향이라. 흠, 꼴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군.’
‘잠시 후면 네 이빨이 다섯 개쯤 떨어질 것 같은데. 그것도 주워 줘?’
‘앗. 아아…….’
‘입이나 마저 털어 봐.’
‘크흠. 사실 만리추종향은 나도 본 적 없다. 사실 말이 좋아서 만 리지. 그 긴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향이 남아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고.’
‘뭐야, 결국 사기였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태경 네가 귀동냥으로 들은 만리추종향만큼은 아니더라도, 실제로 무림에서 쓰이는 추종향의 종류는 상당해. 그중에서도 최상급을 흔히들 천리추종향(千里追蹤香)이라고 부르지.’
‘천리추종향?’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제조 방식이 더럽게 까다롭다. 둘째, 제조 비용이 더럽게 비싸다. 셋째, 그렇게 제조된 천리추종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더럽게 많은 황금이 필요하다.’
‘누가 거지새끼 아니랄까 봐, 말 사이사이에도 더럽다는 건 꼭 끼워 넣네.’
‘내가 아무리 더러워도 네 인성만큼은…… 미안하다. 실언을 했군. 어쨌든 그 정도 되는 최상급 추종향은 같은 무게의 황금에 비교해도 수십 배가 넘는 값어치를 지녔다. 물론 그만큼 효능도 확실하지.’
‘예를 들자면?’
‘확인되지 않은 만리추종향과 달리 정말 천 리 정도는 향이 남아 있고,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일부 짐승들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무취(無臭)에 가깝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뭐야. 그럼 추종향 한 번 바르면 만사형통 아니냐?’
‘대신 추종향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칠주야 정도다. 만약 표적이 옷을 태워 버린다거나, 전신을 물에 품 담그는 등의 특수한 상황이라면 향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시간은 더 단축될 테고.’
‘그래도 우선 추종향에 당했다는 걸 알아야 그런 시도라도 할 것 같은데. 어지간한 짐승들도 냄새를 제대로 못 맡는다면서?’
‘맞다. 하지만 영물(靈物)이라면 다르지.’
‘아.’
‘그래서 추종향으로 표적을 쫓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고도의 추종술(追蹤術)을 익힌 자가 있거나, 추종향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영물을 앞세우거나.’
언젠가 궁기방과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린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녀석이 했던 말들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그르릉. 킁킁.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닿은 축축한 코가 연신 움찔거린다.
나는 약간 쓰라릴 만큼 까슬까슬한 혓바닥으로 내 손가락을 핥고 있는 백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있었지.”
추종향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영물.
궁기방이 알려 준 그대로다. 심지어 이 백호, 무야호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교감할 만큼 엄청난 지능을 지닌 영물이었다.
‘영물다운 지능과 평범한 맹수를 뛰어넘는 날카로운 감각.’
무취에 가까웠던 향낭 역시 지금 생각해 보면 천리추종향이었던 것 같다.
표적과의 거리가 천 리 이하라면,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칠주야 동안 지속 된다는 최상급 추종향.
이는 무야호와 달리 멀뚱멀뚱 서서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크르릉. 크릉.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는 무야호가 내게 묻는 듯하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가야 할 길을 정해 달라고.
눈처럼 새하얀 털로 뒤덮인 녀석의 커다란 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방향을 향해 번갈아 움직이고 있었다.
한 곳은 척후대가 향한 북서쪽. 그리고 다른 한쪽은.
‘……남동쪽.’
우득.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태산이 퉁방울만 한 눈동자를 껌뻑거렸다.
“각주. 왜 그러나?”
나는 태산에게 대답해 주고 싶었다. 별일 아니라고. 아무 일도 아니니까 마저 가던 길을 가자고.
하지만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런 씨발.’
미처 토해 내지 못한 욕설이 입속에서 맴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길은 이미 정해졌고, 맹수들의 이동 속도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신속했다.
설령 날이 밝은 직후 천라지망(天羅蜘網)이 펼쳐진다 해도 지금의 몸 상태라면 어떻게든 남만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이들과 함께 함께 남만을 떠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마음속으로 스스로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백호의 등에 올라탄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설령 내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때는 이미 늦어 있겠지.’
최대한 신속하게 전력으로 추격대를 따돌리고, 백상의 주도하에 펼쳐진 천라지망을 벗어난다 해도 며칠.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칠 주야다.
그때까지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나섰던 이들이 남아 있을까.
아니, 이번 일로 야수묘왕까지 위태로워졌다면 암천이 더 이상 흉계(凶計)를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죽겠지.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감을 때도, 뜰 때도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고 동은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발. 훈련소 막 입소했을 때가 이랬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피식,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훈련소 때가 가장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나는 무슨 똥을 싸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죽음의 위기도 수도 없이 겪었고, 죽어 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적도 있다.
며칠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병신처럼 질질 짜면서, 두 번 다시는 내 사람들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시스템을 얻었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책임질 것이 많아졌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내 탓 같았고, 그 과정에서 죄없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하지만 지금은 헛웃음만 나온다.
내가 했던 그 생각들이 전부 가식과 위선이고, 영웅의 껍데기를 닮고자 했던 코스프레인 것만 같아서.
그래. 나는 협객도, 히어로 무비 속에 등장하는 영웅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 도주하는 내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이들은 진짜 협객이고, 영웅이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소.’
‘그럼. 그저 남만이 당신에게 진 빚을 갚은 것뿐이지.’
‘애뇌산에 제 형이 있었습니다. 은공 덕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소궁주를 부탁하오.’
어둠 속을 스치는 수십여 명의 얼굴. 그들 중에는 젊은 청년도 있고 늙수그레한 중년인도 있었다.
그들의 실력? 만약 내가 작정하고 손을 쓴다면 촌각 안에 모조리 쓰러트릴 수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대단한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남은 것이니까.
이 모든 것이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 해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바위에 몸을 부딪치고, 끝내는 산산이 부서진다 하여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을 남기고 떠났다. 남은 자들의 최후를 직감하면서도 다시 돌아오리라는 헛된 다짐과 함께.
후우.
후텁지근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심호흡 한 번에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놈의 남만은 참 좆 같은 땅이다. 지금 내 기분만큼이나.
– 퀘스트 임무를 선택하십시오.
허공에 떠 있는 홀로그램 창을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이내 불쑥 입을 열었다.
“태산아.”
“응?”
“지금부터…….”
뒤이어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태산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노인은 불현듯 눈을 떴다.
얼마나 의식을 잃었던 걸까. 뼈마디 곳곳이 쑤셨고, 거대한 맹수의 등에 묶인 몸은 쉼 없이 들썩이고 있었다.
‘호랑이?’
파파팟.
주위를 둘러보던 노인, 남호는 야율목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왜. 왜 그놈이 없지?”
의문이 담긴 늙수그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태산이 반응했다.
“남호. 일어났나?”
그러나 남호는 대답 대신 물었다. 불길한 직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디 있느냐.”
“……남호.”
“어디 있느냐고, 진태경 그놈!”
어스름히 밝아지는 동쪽 하늘과 달리 어두워지는 태산의 표정을 보며, 남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느꼈던 불길함이, 결코 헛된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