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689
#688화
백상은 홀로 면경(面鏡)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천마후가 선물한 그것은 보통의 면경과는 달리 전신을 비출 만큼 컸고, 표면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다.
남만은 물론 중원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최상품.
하지만 백상이 면경을 바라보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 안에서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장장 사십여 년이다. 수도 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으며 이 자리까지 왔는데…… 지금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동요하고 있었다.
‘그만큼 끝에 다다랐다는 거겠지.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 온 이 대계가.’
백상이 마음속으로 뇌까리던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면경에 비친 호위장과 눈이 마주친 백상이 입을 열었다.
“모셔 왔나?”
사색에 잠겨 있던 주군의 뒷모습에, 순간 멈칫하던 호위장이 대답했다.
“오고 계십니다.”
“그럼 무슨 일로?”
“급보(急報)가 들어왔습니다.”
“급보라…….”
말꼬리를 흐린 백상이 손을 까딱였다. 손짓의 의미를 깨닫고 가까이 다가온 호위장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간밤에 삼백 리 밖 북쪽에서 거대한 화마가 확인되었습니다.”
“애뇌산이군.”
“예.”
“불을 지른 자는 진태경일 테고.”
“추가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가 유력합니다.”
“진태경이 맞을 것이다. 또다시 공적에 눈이 먼 부나방들이 달려든 모양이군.”
“애뇌산 인근의 중소 부족들이 힘을 합쳤다고 합니다. 전사 오백에 맹수 일백을 거느리고 그를 습격했지만…….”
백상은 손을 내저어 호위장의 말을 막았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진태경은 급하게 끌어모은 어중이떠중이 오백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네 글자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진태경은 명백히 논외에 속했다.
“결과는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진태경은 그 후 어찌 되었지?”
“전사들을 패퇴시킨 뒤, 홀로 애뇌산으로 향했다 합니다.”
“분명 목적이 있을 터. 혹 독혈지(毒血地)인가?”
“불길이 워낙 거센 탓에 거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초입부터 시작된 불길이 벌써 중턱까지 번졌습니다.”
“놈이 작정을 한 모양이군.”
애뇌산은 남만에서도 손꼽히는 절산(折算)이다.
험악한 산세와 깊은 계곡. 굽이굽이 늘어진 산줄기는 백 리나 뻗쳐 있으며 나이를 알 수 없는 거목으로 끝없이 뒤덮여 있다.
그런 애뇌산에 화마가 내려앉았으니, 아무리 빨라도 사흘 밤낮은 지나야 불길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일 것이다.
‘어쩌면…… 산 전체가 전소(全燒)되어 버릴지도 모르지.’
우연이라면 기막힌 우연이다. 애뇌산에 화마가 침범한 것은 장장 이백여 년 만이었고, 당시 산 전체를 장작 삼아 오독문을 멸문시켰던 이 또한 열화문의 인물이었으니.
‘남만은 그렇게 평화를 되찾았지.’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면경 속 자신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던 백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인근에 거주 중인 모든 부족민을 대피시키고, 쓸 만한 전사 삼천을 선별하여 애뇌산을 봉쇄해라.”
묵묵히 보고를 이어 가던 호위장의 얼굴에 동요가 스쳤다.
“남만 전역에 총동원령을 내린 상황에, 그것도 삼천 명씩이나 말입니까?”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놈의 발을 묶어야 한다.”
“하오나 주군, 그 병력으로도 애뇌산 전체를 포위하는 것은…….”
“애뇌산은 광활한 면적과는 달리 드나들 수 있는 입구가 적다. 감안하여 배치해라.”
잠시 생각하던 호위장이 고개를 숙였다.
“존명.”
“다른 부족장들의 동태는?”
“보고드렸다시피 부족장 다섯 명이 사라졌습니다. 앞서 척후대로 출발한 두 부족장 휘하의 전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현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백상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사라진 부족장들은 끝까지 말을 갈아타지 않은 이들이다.
야수묘왕을 향한 그들의 충성심은 굳건했고, 그중 몇몇은 회유하는 백상을 비웃으며 침을 뱉기까지 했다.
“주군, 놈들이 배반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추격대를 보내심이…….”
호위장의 권유에 백상은 고개를 내저었다.
“얼마 전 누가 내게 그러더군. 병든 나무가 있다 하여 숲이 병든 것은 아니라고. 그중 일부만 솎아 내면 그만이라고.”
“그 말씀은…….”
“지난 수백여 년간, 이 땅에는 서른두 개의 부족이 공존해 왔지. 하지만 나는 종종 어떤 의문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언제까지 이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
자신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뜬 호위장을 향해, 백상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서른둘이라는 숫자는 합심하여 뜻을 모으기에 너무 많았다. 지금부터는 병든 나무는 솎아 내고 숲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축출. 혹은 제거.
긴 시간 이 땅을 통치해 왔던 왕을 몰아내고, 새로이 왕좌에 오른 권력자의 뜻은 명백했다.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던 호위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떠난다면 내버려 두어라. 그들이 본거지로 돌아가 전사들을 규합한다면, 우리는 명분과 힘을 동시에 갖추게 된다.”
호위장 역시 알고 있었다. 이미 힘의 저울추는 오래전에 기울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가 우려되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였다.
“만약 궁주(宮主). 아니, 야율척이 그들과 합류한다면 쉽게 흘러가지 않을 겁니다.”
호위장을 가만히 응시하던 백상이 문득 입을 열었다.
“오래전 중원에 머무를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지.”
“주군?”
“돌에서 태어난 어느 원숭이의 이야기였다. 그 성정과 힘이 어찌나 폭급하고 강했던지, 중원의 승려들이 떠받드는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나서서 그에게 내기를 제안했다고 하더군. 자신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담담한 목소리가 호위장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원숭이는 코웃음을 치며 수락했고, 구름을 타고 날아가 세상의 끝에 놓인 기둥 다섯 개에 낙서까지 적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보았던 그 기둥들이 석가여래의 손가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백상은 면경을 향해 천천히 손을 펼쳤다.
거대한 궁주전이 그의 손바닥 안에 들어온 듯했다. 하늘과 강. 땅과 산. 설령 남만 전체를 비춘다 해도 그럴 터였다.
“야율척. 그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른 이상, 그는 결코 벗어나지 못해.”
“그 말씀은…….”
“그가 동쪽으로 향했다는 정보가 있다. 네가 직접 백족 전사 일천을 이끌고 야율척을 쫓아라.”
“존명.”
그 순간, 목례를 취한 호위장이 입술을 달싹였다.
– 송구하오나 상대는 야수묘왕입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백천대(白天隊)를 쓰심이.
하지만 백상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천대는 그가 지난 수십여 년간 비밀리에 갈아 온 검이다. 가장 필요할 때 뽑아 휘둘러야 한다.
“지시는 여기까지다. 귀빈이 오셨으니 이만 물러가거라.”
호위장을 향한 말이었지만, 처음부터 줄곧 면경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어느새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한 노인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이만.”
호위장이 궁주전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백상이 천천히 돌아섰다.
“오셨소, 대장로.”
무덤덤하게 건넨 인사.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그 더러운 주둥이 닥치지 못할까.”
쿵.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하고, 드러난 모든 살이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왔다.
진물이 흐르는 눈가에는 숨기지 못한 분노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천하의 몹쓸 놈 같으니.”
“보아하니 대화를 엿들으신 모양이구려.”
“노부가 네놈의 시커먼 속내를 모를까.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더냐?”
“대회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흉수를 구하고, 남만야수궁을 배반한 흉수 야율척에 관해서라면. 맞소.”
“이놈!”
휘익! 탁.
노인이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지팡이가 백상의 손에 붙잡혔다.
이렇다 할 힘도, 공력도 느껴지지 않는 일격. 가볍게 지팡이를 빼앗은 백상이 가볍게 소매를 흔들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노구(老軀)를 자리에 앉혔다.
“못 본 사이 많이 늙으셨소. 불같은 성미는 여전하신 것 같지만.”
노인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네놈이 이런 짓을 벌일 줄 알았다면, 진즉 이 손으로 때려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 야율척은 궁을 배신하고 도주했고, 묘족의 존망은 먼 옛날 과실주를 훔쳐먹다 걸려 당신에게 호된 꾸중을 듣던 한 어린아이에게 달렸소.”
“……!”
“이제는 케케묵은 과거를 뒤로하고 앞날을 생각해야 할 때요. 부족장과 소족장이 사라진 지금, 묘족의 대족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렸지.”
말없이 백상을 노려보던 노인, 묘족의 대장로가 무겁게 입술을 뗐다.
“기어코 남만을 손에 넣었구나. 그 추악한 탐욕으로.”
“뭐라 욕해도 상관없소.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으니까.”
“넌 이제 남만야수궁의 궁주다. 무엇을 더 바라느냐? 수왕석(嘼王石)이라도 얻어 신이 되고자 하느냐?”
백상은 고개를 저었다.
“입으로만 전해지는 옛 신물 따위에는 관심 없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앞으로의 일과, 대장로 당신의 현명한 선택이오.”
“노부가 기억하는 넌 이런 아이가 아니었다.”
“변했소.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궁주는 널 믿었어. 노부가 그토록 경계하라 했음에도 하나뿐인 의형제를 믿었지.”
“모든 믿음에 보답할 필요는 없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는 이미 오래전 강을 건넜소. 기호지세(騎虎之勢). 이제 대장로께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탈 차례요.”
으득.
한껏 힘이 들어간 주름진 주먹에서 뼈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노부더러…… 궁주를 배반하라는 뜻이냐?”
“그럴 리가.”
백상은 찻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대장로를 비롯한 묘족 모두가 그를 배반하길 바라오.”
“……!”
“흐름을 잘 읽어야 할 거요. 일만이 넘는 동족들을 구하고 싶다면.”
“네 이놈!”
“명심하시오.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이라는 것을.”
백상은 찻잔을 기울였고, 대장로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쉰 목소리가 짧은 적막을 깨트렸다.
“불가(不可).”
탁.
찻잔을 내려놓은 백상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장로를 응시했다.
“그 대답, 후회하지 않겠소?”
“차라리 날 죽여라. 묘족 누구에게 물어도 답은 같을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짧게 대답한 백상이 손가락을 튕겼다.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백족 전사들에게, 그가 명령했다.
“뇌옥에 가두어라. 대장로를 비롯한 묘족의 수뇌부 모두.”
목례를 취한 백족 전사들이 대장로를 좌우에서 붙들고 일으켰다.
죽을 날이 다가온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백상! 네 이놈!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서서히 멀어질 때쯤, 백상은 빈 찻잔을 내려다보며 뇌까렸다.
“더 이상 무엇이 두렵겠소. 나를 이곳까지 이끈 것 역시 하늘의 뜻일진대.”
분명 하늘을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정마대전이 막을 내린 뒤, 남만으로 돌아온 백상은 매일같이 취해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술을 들이켰고, 다음 날 잠을 깨우는 햇살에 절망했다.
‘도대체 왜 나를 살린 거요. 왜!’
죽음보다 고통스러웠던 나날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 몸부림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백상은 창밖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녕 이것이 당신의 뜻이오? 아니,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지켜본 적은 있소?’
그리고 언제나처럼, 하염없이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순간, 백상의 귓가를 파고든 누군가의 낯선 목소리를 제외한다면.
“저어, 차를 채워 드릴까요?”
백상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반쯤 열린 문 앞, 예쁘장한 용모의 시비가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 없다.”
“하지만 잔이 비었는걸요?”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
문득 흐려지는 말꼬리. 잠시 시비를 응시하던 백상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너라.”
가라앉은 한 마디에 시비를 제지하려던 전사들이 물러나고, 문이 굳게 닫혔다.
종종걸음으로 백상의 앞까지 다가온 시비는 손에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천천히 기울였다.
쪼르륵.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김과 함께 퍼져나가는 다향(茶香).
하지만 어째서일까, 독무를 들이킨 것처럼 욱신거리는 이 느낌은.
차오르는 찻잔을 말없이 지켜보던 백상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건 누구의 얼굴입니까, 마후(魔后).”
시비. 아니, 남천마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궁에서 일하던 어떤 아이. 아직 파릇파릇한 게 참 귀엽더라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죽였습니까?”
“어머.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건…….”
“재미있네. 이미 수백 명이 죽었는데 고작 시비 하나의 목숨에 신경 쓴다는 게.”
침묵하던 백상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싶어서 여쭈었을 뿐입니다. 내궁에서 벌어지는 일은 금세 발각되니까요.”
“아하. 뭐, 정 그렇다면야.”
새치름하게 웃은 남천마후가 찻잔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내궁이 아니라 애뇌산에서겠지.”
“애뇌산이라면, 혹시?”
“그래, 진태경. 그 아이가 일을 저질렀어.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해.”
잠시 생각하던 백상이 입을 열었다.
“덫이었습니까?”
“맞아. 궁을 빠져나간 늙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었지. 젊은 호랑이가 대신 걸려들 줄은 몰랐지만.”
딸칵.
찻잔을 내려놓은 남천마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젊은 호랑이가 덫을 부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것도 몰랐고.”
“마후께서 자신할 만큼 철저한 덫이었나 보군요.”
“초절정 고수 둘. 그중 하나는 흑수권마고, 다른 하나는…….”
말을 멈춘 남천마후가 백상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어쨌든 강했어. 그것도 흑수권마보다 월등하게.”
“……!”
“놀라운 일이야. 그 두 사람이라면 야수묘왕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천주(天主)께서 괜히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신 게 아니었던 거지.”
듣고 있는 백상으로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초절정 고수 둘을 단신으로 처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바로 그 천주마저 진태경에게 관심을 보인다니.
동시에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진태경.’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한 청년의 얼굴이 눈앞을 스친다.
백상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남천마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마후께서 직접 움직이시겠군요.”
초절정 고수는 강력한 전력이다. 백상은 그런 이들이 둘이나 죽었으니, 이제 남천마후가 나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음 순간 들려온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아니? 내가 왜?”
피식 실소를 흘린 남천마후가 말을 이었다.
“신경 쓸 시간도 없어. 대마(大馬)가 죽었다 해도 지금의 형세는 뒤집히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대계지.”
“그 말씀은 혹시?”
“이제 야수묘왕과 진태경은 상관없어. 내궁과 외궁의 방비를 철저히 해. 그리고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자리에서 일어난 남천마후가 마치 춤추듯 걸음을 옮겼다.
환희와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백상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흘. 늦어도 사흘 뒤야.”
“……!”
“준비해. 그날, 모든 게 시작되고 끝날 테니.”
쿵.
문이 열리고, 닫혔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백상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이 세상 그 누구보다 염원했던, 그러나 누구보다 두려워했던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