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29
#728화
사람이란 동물은 누구나 그렇다.
성공이 계속되면 자신감이 높아지고, 활짝 열어 두었던 눈과 귀를 슬그머니 닫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 팀장은 뛰어난 헌터이자 경영자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스스로 결정권을 쥐고 있음에도, 언제나 모두의 양해를 구한다는 부분에서 더더욱.
“……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나직한 한마디와 함께 최 팀장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잠시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한 몬스터 한 마리가 끼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몬스터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이 몸은 반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거절에 쏠리는 시선들.
그러나 스켈레톤 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 이유는 이 자리의 모두가 아는 그대로지. 과한 세력 확장은 경계를 사기 마련이고, 인간의 시기 질투는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으니까. 내 말이 틀렸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새끼 진짜 사람 다 됐네.
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젓자, 스켈레톤 킹의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렸다.
“더 이상의 주목은 이 몸도 피하고 싶군. 다른 인간들이 내 진짜 정체에 알게 되면 너희 역시 곤란해진다. 그러니 멍청한 소리는 이만 집어치우거라.”
준엄한 일갈과 함께 끝난 연설. 나를 비롯한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주목을 피하고 싶은 새끼가, 폰 생기자마자 SNS 계정부터 만들었냐?”
내 예리한 일침에 최 팀장과 임꺽정, 그리고 송송이가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태경 씨께서 하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것도 그러네. 난 그런 거 안 해서 잘 몰랐는데, 저 친구 은근히 유명한 것 같더라고.”
“은근히 유명한 정도가 아니에요.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팔로워 수가 10만이 넘었다고요.”
정곡을 찔려 주춤하던 스켈레톤 킹이 송송이의 말에 가슴을 쭉 폈다.
“오늘부로 12만이다.”
“그래?”
“당연하지. 광고 제의가 사방에서 빗발치고 있다.”
나는 뿌듯해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허허 웃었다.
“이 시벌놈 보게. 12만 개의 뼛조각으로 나뉘고 싶니?”
“…….”
“당장 계정 지워라. 마지막 경고다.”
내 으름장에, 잠시 머뭇거리던 스켈레톤 킹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다.”
“그나마 고분고분해서 다행이긴 한데, 설마 SNS에 이상한 헛소리 적어 놓은 건 아니겠지?”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기껏해야 전서구나 띄우는 무림과는 달리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이 동네 국룰 아닌가.
‘저놈이 똥이라도 싸 놨으면 골치 아픈데.’
그리고 내 근거 있는 우려에, 송송이가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불쑥 끼어들었다.
“다행히 별다른 건 없어.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한번 쭉 훑어봤는데, 그냥 지 얼굴 사진만 잔뜩 올려놨더라.”
“그래?”
“응. 그리고 팔로워 대다수가 해외 쪽이야.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들 비율이 압도적이고.”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도대체 왜 남자들이…… 아.”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나는 스켈레톤 킹의 저 잘생긴 얼굴이,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지 떠올렸다.
‘매직 존슨.’
세기의 대마도사. 그리고 세기의 게이.
두 개의 지팡이로 믿을 수 없는 마법을 부린다는, 바로 그 매직 존슨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것이 바로 현재의 스켈레톤 킹이다.
그냥 대충 봐도 잘생기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특정 분야에 속한 이들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켜 주는 얼굴과 체형인 것이다.
그렇게 모인 숫자가 무려 12만.
이 정도면 십만 마도가 다시 몰려와도 엉덩이를 걷어차 줄 수 있는 머릿수다. 물론 그들이 걷어차기만 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나저나 이거 대단한 놈이었네.’
이름도, 얼굴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단기간에 저만큼의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다니. 무림맹주도 저렇게는 못한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스켈레톤 킹이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차마 계정을 삭제할 엄두가 나지 않는군. 넌 세상 누구보다 간악하고 잔인한 인간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몬스터 새끼한테 잔인하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냐.”
“아아,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이 몸의 눈부신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어느 이름 모를 여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겠지.”
“…….”
“뭐냐, 그 이상한 표정은.”
“아냐. 모르는 게 나아.”
진실은 간혹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법.
눈빛 교환을 통해 송송이와의 암묵적 합의를 끝낸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다들 동의하시는 거죠?”
임꺽정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뭐, 태경이 너랑 최 팀장님이 그렇게 결정했으면 따라야지.”
“송이, 너는?”
“글쎄.”
송송이가 비스듬히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까 결국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싫다고 하면 나만 나쁜 년 되는 거 아냐?”
“아니지.”
“그래?”
“응. 원래도 그렇게 착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어머,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봐.”
싱긋 웃으며 중지를 치켜세운 송송이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참 스펙타클하네. 처음 최 팀장님한테 이적 제의받고 아레스 길드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차라리 그냥 거기 있지 그랬냐.”
“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러기에는 지부장이라는 새끼가 너무 변태였거든. 차라리 젊고 잘생긴 데다 돈까지 많은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 싶었지. 근데 첫날부터 감이 좀 안 좋더라?”
“첫날?”
“응. 변태 새끼 피해서 왔는데, 웬 이상한 새끼가 하나 있는 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고기는 죄다 태워 먹고, 갑자기 지 별자리가 황소자리래.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아하.”
피식 웃은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임꺽정과 송송이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존재한다. 평화 길드가 설립된 이래 그들이 원치 않았을 온갖 평지풍파를 겪어야 했으니까.
“음.”
“뭐야? 그 반응.”
“그냥.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
“뭐?”
“이번 일, 어쩌면 너나 꺽정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어.”
평소와는 달리 웃음기 쏙 뺀 목소리에, 송송이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어느 정도길래?”
“이제 국내 스케일은 벗어났다고 봐야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너나 최 팀장님 정도면 이미 오래전에 국내는 벗어났어.”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나는 중국에서 아크 리치를 때려잡은 후부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최 팀장은 아레스 길드의 새로운 성주이자 살아 있는 구세주의 후계자로 매스컴을 탔으니까.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아니, 오히려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을 말미암아 생겨난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누가 그러더라. 몸집이 커지면 뜯어먹을 것도 많아지는 법이라고.”
“그래서. 얼마나 뜯어먹히려고?”
“그럴 계획은 없는데. 앞으로도 쭉 그럴 거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송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뭘?”
“이미 발 빼기에는 한참 늦었다는 거. 여기 계신 꺽정 아저씨도, 나도.”
임꺽정이 조용한 목소리로 송송이의 말을 받았다.
“그전에 빠질 생각도 없지.”
“아저씨.”
“늦었고 아니고를 떠나서, 한번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거야. 먼저 떠난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
“안 그래, 최 팀장?”
임꺽정의 나직한 물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 방향을 향해 쏠렸다.
언제부턴가 말을 잃어버린 최 팀장은 누군가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기가 남아 있던, 이제는 무엇으로도 채워 넣을 수 없는 한 사람의 빈자리를.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묘비 옆에 누군가 글을 새겨 놨더군요. 와 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다음에 또 와 달라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최 팀장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해서 다음에는 모두 함께 그분을 뵈러 갔으면 합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리고 수십 년 뒤에도.”
그건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각오였다.
‘모두 함께’라는 네 글자에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수십 년 뒤라.’
그래, 그거면 됐다.
그때의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함께 가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최 팀장님.”
내 나직한 부름에,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작해 보죠.”
말하기에 앞서 이미 대강의 논의는 끝내 놓은 상태. 최 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첫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 달칵.
불과 세 번의 신호음이 울려 퍼지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된다. 숨 가쁜 정치 생활로 연마된 중후한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 전화 받았습니다. 백한성입니다.
백한성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에도 많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최 팀장이 가장 먼저 연락할 만한 백한성은, 단 한 사람뿐이다.
“네, 대통령님. 중요한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 하하, 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벌써부터 기분이 묘하네요. 기대도 되고, 한편으로는 불안해지기도 하고.
한 나라를 움직이는 거물의 등장에 임꺽정과 송송이는 입을 다물었고, 눈을 부릅뜬 스켈레톤 킹은 나를 향해 속삭였다.
“백한성 대통령이라면 혹시 그.”
“맞아. 우리나라 대통…….”
“안다. 천만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셀럽이 아니더냐.”
“…….”
“젠장. 인간 주제에 무려 이 몸의 백 배라니.”
나는 분통을 터트리는 스켈레톤 킹을 보며 생각했다.
‘제발 꼭 뒈졌으면…….’
생각해 보니 이미 뒈져 있긴 하다.
* * *
복도는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거대한 기운이 담긴 A급 마정석은 건물 전체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했고, 층층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의 업무로 바빴다.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어둠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파직. 쉬우우우.
전등에서 흘러나오던 불빛이 사그라지고, 모든 기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곳곳에서 튀어나온 당황한 외침들이 찰나의 침묵을 깨트리며 울려 퍼졌다.
“뭐야 이거?”
“어, 정전인 것 같은데요.”
“그걸 대답이라고 하냐? 아니, 씨바…… 그러니까 마정석 좀 미리 교체해 달라니까. 이십 년 넘게 빨대 꽂고 쪽쪽 빨아먹으니까 쟤도 차라리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거 아니냐고. 이거.”
“그러게요. A급 마정석이면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최소 삼십 년은 버틴다고 했는데.”
“그래서. 왜 마정석이 십 년 일찍 오링났는지가 중요하냐? 아주 궁금해서 미치겠어?”
“아, 아닙니다.”
“됐고, 다들 집중해! 2분 내로 보안팀이랑 기술팀 올 테니까 다들 손 하나 까딱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예비용 마나 랜턴 있는 놈들은 얼른 가져오고.”
그러나 부서장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채 1분도 되지 않아 사방이 환해졌다. 잠시 끊겼던 전력이 돌아온 것이다.
“젠장. 이건 뭐 똥개 훈련도 아니고…….”
투덜거린 부서장은 한발 늦게 도착한 보안팀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 보시다시피 다 괜찮아요. 그런데 갑자기 웬 정전이래?”
“안 그래도 저희 팀장님께 여쭤봤는데, 드물긴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있는 일이랍니다. 정확한 원인은 기술팀에서 확인해 봐야겠지만요.”
“하긴, 뭐. 그거야 그쪽 소관이니까.”
멋쩍게 웃은 보안팀 소속 헌터는 여러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정전되는 동안 분실된 물건은 없는지. 혹여 다친 이가 있는지. 이번 사태 중 느낀 수상한 점 등등.
하지만 간단한 절차에 불과했고, 고작해야 일 분 남짓한 정전에 신경과 성의를 쏟기에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저기 미안한데, 더 물어볼 거 있으면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지금 우리 사정이 좀 그러네.”
부서장의 말에 보안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려울 거 없죠. 그런데 평소보다 훨씬 바쁘신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위쪽에서 공문 내려왔어. 당장 오늘 중으로 큰 거 한 건 터진다고.”
“큰 거요?”
“어. 자세한 사항은 우리도 잘 모르는데 청와대 쪽에서 내려온 것 같더라고. 그거 때문에 다들 초긴장 상태야. 이대로면 칼퇴근도 글렀어.”
“아이고, 괜히 시간만 뺏었네요.”
“뭘 또 그렇게까지. 어차피 다 같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인데. 그럼 고생하고, 나중에 또 봅시다.”
“예, 고생하십시오.”
하지만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일 분도 되지 않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유령 같은 어떤 존재가 짙은 어둠을 타고 건물 곳곳을 누볐음을.
그리고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증거 보관실에서 한 가지 물건이 사라졌음을.
각자의 업무를 보던 수백여 명의 직원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보안팀의 헌터들도, 심지어는 경보 마법조차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모든 일을 손쉽게 끝마친 어느 존재는 유유히 건물 밖을 빠져나갔다.
저벅. 저벅.
누군가의 발걸음과 함께.
“세환이, 3층 체크했어?”
“예. 팀장님.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술팀 쪽은 뭐랍니까?”
“끽해야 십 분도 안 된 일인데, 벌써 원인이 밝혀졌겠냐.”
“그것도 그러네요. 그나저나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습니까?”
스륵.
상관을 향해 너스레를 떠는 보안팀 직원의 등 뒤로, 짙은 그림자가 작게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