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30
#729화
나는 살면서 낚시를 해 본 적도 없고, 하는 법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는 안다.
‘떡밥.’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사방으로 중대 발표에 대한 떡밥을 뿌리고, 더 많은 물고기. 아니,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
물론 그 과정에서는 약간의 설득 역시 필요했다.
나와 최 팀장이 이번 낚시로 바라는 건 가져온 양동이를 가득 채우는 수준이 아니라, 넘쳐 흐를 정도의 만선(滿船)이었으니까.
그러나 만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훌륭한 선원들이 필요했고, 최 팀장이 가장 처음으로 연락한 백한성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예?”
불과 마흔을 갓 넘은 나이로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는 마나 연공법이라는 단어에 눈을 부릅떴고, 뒤이어 흘러나온 한 사람의 이름에 커피를 엎질렀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정말 그분께서?”
“예. 제 외조부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겁니다. 이 마나 연공법을 모두와 함께 나누시길 원하시더군요.”
“이, 이럴 수가.”
천태민이 누구인가.
살아 있는 구세주이자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업적을 이룬 영웅.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쓰러트림으로써 대격변을 종식한 슬레이어(Slayer)의 이름 앞에서는 모두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마나 연공법 제목이 싱글벙글……?”
“……잘못 꺼냈군요. 지금 보신 건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창안자로 알려진다면 마나 연공법 제목이 싱글벙글이건, 앗살라말라이쿰이건 상관없다.
하지만 천태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싱글벙글 마나 연공법]이라는 제목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와 최 팀장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겁니다, 제 외조부께서 창안하신 마나 연공법이.”
최 팀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은 깔끔하게 제본된 책자였고, 겉면에는 마나 연공법의 새로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천지심법(天地心法)…….”
“천지심법은 최하급 헌터도 익힐 수 있을 만큼 범용성이 넓고, 안정성 역시 매우 뛰어난 마나 연공법입니다. 익히는 즉시 엄청난 효과를 보기에는 어렵겠지만, 헌터들에게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라고 만든 건데.
물론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새로운 이름 역시 내가 지은 거다.
나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한마디를 보탰다.
“한마디로, 개 지리는 마나 연공법이라는 거죠.”
최 팀장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줬지만, 백한성 대통령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그는 홀린 듯이 천지심법의 묘리가 담긴 책자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물건을 굳이 제게…….”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봉황 의자는 오이마켓에서 중고 거래로 산 게 아니다.
백한성 대통령은 나와 최 팀장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곧장 알아차렸다.
“방파제를 원하시는군요.”
“단지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거대 길드가 나선다 해도, 그분께서 계시는 한은 어려울 텐데요.”
정확한 판단이다.
단,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지.’
최대한 외부의 견제를 피한다.
그것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는 천태민의 이름까지 팔아서 싱글벙글, 아니 천지심법을 공개하려는 이유였고, 최 팀장은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백한성 대통령에게도 진실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 역시 결국 정치인이었으니까.
“저는 물론, 외조부님께서는 어떤 충돌이나 잡음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고요.”
“그 말씀은, 이 마나 연공법의 존재에 관하여 청와대에서 직접 발표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최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양측 간의 협력이 있었고, 이틀 뒤 중대 발표가 있으리라는 것 정도면 충분할 듯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이 쏠릴 테니까요.”
“바람잡이라…….”
“이번 마나 연공법 발표는 일종의 국책(國策) 사업이라고 알려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위상이 올라가겠지요.”
“음.”
지금껏 유례없었던 마나 연공법의 공공화. 그리고 이 역사적인 사건에 항상 따라붙을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와 대통령의 업적.
잠시 후, 백한성 대통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따라, 저 태극기가 참 보기 좋군요.”
누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은 국뽕이라고.
펄-럭.
* * *
천태민. 마나 연공법 공공화. 국책 사업.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숯불 위의 가마솥처럼 끓어올랐고, 그 발화점(發火點)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한 가지 중대 발표를 위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백한성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긴급 청와대 공식 회견으로 보여 주었다.
외신을 포함한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은 TV로 생중계됐고, 이내 전 세계로 송출되면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마나 연공법 공공화. 사상 초유!] [인류의 구세주, 다시 한번 세상을 구하다!] [살아 있는 전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나?]오랫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천태민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도 충분히 기삿거리인데, 그가 창안한 마나 연공법이 전 세계에 공개된다니.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니, 언론은 이미 폭발해 버렸다.
“야! 박 기자! 평화 길드! 평화 길드 연락해 봐!”
“그, 그게. 저도 당연히 연락해 봤는데 찔러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그럼 아레스는? 거기에 줄 대놓은 거 없어? 그쪽에서 몇 번 소스 얻어 온 적 있잖아!”
“그 사람 지금 구치소에 있는데요. 그 왜, 얼마 전에 석고준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미치겠네. 최민우 쪽은?”
“어휴. 말도 마세요. 선 대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고, 거긴 찔러 봤자 피 한 방울 안 나옵니다.”
“그럼 진태경은?”
“……걔는 건드리면 제가 피 보죠. 국장님. 저 맞아 죽는 거 보고 싶으세요?”
누가 흘렸는지 모를 소스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데, 먼저 접선해 오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다.
미치고 팔짝 뛰기 직전인 언론은 그저 어뷰징 기사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고, 인터넷 안에서의 상황은 그보다 더했다.
현재 상황 세줄 요약
1. 천태민이 마나 연공법 만듦.
2. 외손자랑 개쩌는 후배가 공공화 추진. 정부가 숟가락 얹음.
3. 애초에 마나 연공법이 뭔지도 모르는 헌터들도 있었을 텐데, 천태민이 만든 건 범용성이 지려서 최하급 헌터도 익힐 수 있음.
와! 다 함께 레벨 업!
4. 세줄 요약 아님.
└ (작성자) 뭔 개소리야. 깔끔하게 정리해 놨는데.
└ 카카오페이지 뷰어로 보면 세줄 요약 아님.
└ (작성자) 미친 새끼네 이거.
마나 연공법 공공화 ㄷㄷ
└ 글쓴이 천태민 ㄷㄷㄷ
└ 엮은이 진태경 ㄷㄷㄷㄷ
└ 엮은이는 김경식 아니냐.
└ ? 김경식은 누구.
└ 여기도 지진 났네ㅋㅋㅋㅋㅋㅋ
└ 이건 지진 나도 ㅆㅇㅈ. 청와대 공식 회견 보면서 우리 길드 사람들 다 지렸음.
일반인이라서 잘 모르는데, 마나 연공법이 정확히 뭐예요?
└ 쉽게 말하면 극소수만 익힐 수 있는 비전 같은 거임. 무협 소설에 나오는 자하신공이나 열화신공 같은 거. 그런 거 원래 지들끼리만 아는 건데, 그런 거 쌩 까고 걍 전체 공개하겠다는 거 ㅇㅇ
└ 무협 소설 안 봐서 몰라요.
└ ㅇㅋ그럼 음식 레시피 같은 거라고 이해하면 쉬움. 미슐랭 식당 같은 곳에서만 파는 음식들이 다 특정 레시피가 있잖아.
└ 미슐랭이 뭐예요?
└ ㅋㅋ….그럼 어머니들이 꼭 하나씩 갖고 있는 요리 비법 같은 거.
└ 우리 엄마 요리 엄청 못해요. 맛없게 만드는 비법만 아는 것 같아요.
└ 야. 너 몇 살이냐?
└ 아홉 살이요.
└ ㅅㅂ 속 시원하게 욕도 못 하겠네.
└ 팩트) 아홉 살짜리한테 매우 시원하게 욕 갈김.
└ 꺼져ㅅㅂ
└ 나 무협 애독잔데 열화신공은 뭐냐. 자하신공은 앎.
└ ?로그인 무림 안 봄?
└ 제로빅 어서 오고.
└ 걔 작년 추석 때 쉬었더라. 제로빅이 아니라 호로빅임.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뉘어 갑론을박으로 잠잠할 틈이 없던 누리꾼들이었지만, 마나 연공법 공공화에 관련된 기사에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찬사를 보냈다.
남들은 갖고 있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숨기는 비전을, 그것도 아무런 제약도 없이 공개한다고 한다.
단지 모두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있어 마나 연공법 공공화는 헌터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헌터들이 강해진다면 최근 들어 잇따라 벌어지는 불안한 사건들을 더욱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고, 이는 곧 일반인들이 훨씬 더 안전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 역시 있었다.
“음.”
“저희에게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레스 길드.
급변하는 내부 상황 속에도 살아남은 내부 임원들의 조심스러운 항의에, 최민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보가 흘러나가기 전에 빨리 처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젊고 능력 있는 신임 부 길드장의 사과에, 임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저쪽에서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니 명분은 갖춰줬다. 두 번 다시 독단할 수 없도록 어느 정도 기를 죽여야 하는 타이밍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 젊다 못해 새파란 부길드장이 가진 무시무시한 정통성에 있었다.
‘그분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난 얼굴조차 한 번도 못 뵀는데.’
‘외손자를 그만큼 아끼신다는 건가?’
천태민은 그만큼 오랜 기간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외부에서 영입된 몇몇 임원은 아레스 길드에 입사한 이후에도 길드장인 그를 마주한 적이 없었고, 상당한 연차의 임원들 역시 이정룡의 장례식 이후 어렴풋이 의심을 품고 있었다.
‘길드장님께 문제가 생겼다.’
합리적인 의심.
의형제나 다름없던 이정룡의 장례식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천태민이다.
당신의 외손자가 이정룡에 의해 사실상 유배나 다름없이 해외 지사를 전전할 때도 나서지 않던 분이 아니었나.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남아 있다 해도 티를 내는 건 멍청하기 그지없는 짓이다.
그들에게 있어 천태민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경의(敬意) 그 자체였고, 저 새파란 부길드장이 가진 필승 카드는 자신의 외조부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다들 조용하시네.”
정적을 깨트리는 나직한 목소리.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던 진태경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뭐라고 사과를 하면, 뭐라고 대답들을 하셔야 맞는 건데.”
“……!”
“안 그래요?”
파르르 떨리는 수십 쌍의 눈동자와 일렁이는 목울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임원들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