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31
#730화
똑. 똑.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노크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문을 향해 쏠렸다.
회의실에 수뇌부 모두가 모여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아레스 길드의 청소부도 아는 사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는 것은 딱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거나, 혹은 이미 사표를 써 놨거나.
그리고 우선 쌍욕부터 뱉고 봤을 석고준과 달리 그들의 새로운 성주는 자신에게 유리한 흐름을 방해받았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달칵.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서 실장이라는 직함을 지닌 그는 곧장 최민우를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부길드장님.”
최민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요.”
비서 실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눈앞의 고용주가 신상필벌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덧붙여 불과 1분 전 로비의 보안팀으로부터 올라온 보고가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 역시도.
“중요한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슥.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내밀어지는 손.
비서 실장이 건넨 무언가를 바라보는 최민우의 눈동자가 깊숙이 가라앉았다.
‘이건.’
깨달음과 동시에 뇌리를 스치는 여러 가지 생각들.
그러나 망설임은 짧았고, 최민우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직 로비에…….”
“제 개인 집무실로 안내해 드리세요. 곧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비서 실장이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최민우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임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장 급했던 이야기는 얼추 끝난 듯싶은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예?”
“부길드장님, 혹시 그 말씀은…….”
“여러분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끝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몇몇 임원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최민우를 바라보았다.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한 처사다.
아무리 중요한 손님이 왔어도 그렇지, 해외 지부장들까지 전부 모인 회의를 이런 식으로 끝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드르륵.
“부길드장님!”
용기를 낸 임원 하나가 벌떡 일어난 그 순간.
쾅!
갑작스러운 굉음이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손바닥 자국을 새겨 넣은 진태경이 중얼거렸다.
“아니, 알이라도 깠나. 뭔 놈의 벌레 새끼들이 자꾸 날아다녀. 회의실 다시 한번 싹 갈아 엎어야 하나.”
“……!”
“아, 죄송합니다. 하시려던 말씀 계속하세요. 부길드장님, 그다음에 뭐라고요?”
진태경의 물음에 홀로 일어난 임원이 굳은 얼굴로 최민우를 바라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긴 목소리에 몇몇 임원들이 눈을 번뜩였고, 최민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십시오.”
“그럼 일찍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
“사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다른 임원들이 짜게 식은 눈빛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삼 년 전에 이혼한 돌싱이었다.
* * *
내가 아는 최 팀장은 퍽 합리적인 사람이다.
설령 상대를 찍어 누를 힘이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날 줄 알고, 최대한 침착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는 했다.
말인즉슨, 어지간한 일로는 수십여 명의 임원들을 말 몇 마디로 돌려보낼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는 손님의 정체가.
띵.
“그 사람 때문이죠? 중요한 손님이라는.”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입을 연 내게, 최 팀장이 대답했다.
“반반입니다. 임원들을 불러 모은 건 다독이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말썽이 일어날 만한 소지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하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임원들은 대부분 우호적이긴 하죠.”
“설령 불만을 품은 자가 있더라도 이번 공공화 건은 길드 차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천태……. 아니, 최 팀장님 외조부께서 아직 건재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네. 지금껏 아레스 길드의 위상이 예전만큼 못했던 이유는 외조부님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분의 명성을 이용하자는 진태경 씨의 제안이 우리 모두에게 최선이었던 셈이죠.”
확실히 이 세상에서 천태민이라는 사람의 존재는 치트키나 다름없다.
그는 이름 석 자만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어딘가에 숨어 빈틈을 노리고 있을 승냥이들을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거인이니까.
마치…….
‘그래, 무신(武神)처럼.’
문득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혀끝을 맴돌다 흩어진 그때.
최 팀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레스 길드의 임원들과는 달리, 다른 누군가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을 겁니다.”
“다른 누군가라면…….”
최 팀장이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건넸다.
“이 명함의 주인이죠.”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는 이미 지시에 따라 텅 비워진 복도를 가로지르며 대화를 이어 갔다.
“명함? 이게요?”
나는 미간을 좁힌 채 막 받아 든 물건을 바라보았다.
크기나 형태는 딱 명함이긴 한데, 이걸 정말 명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백금색으로 번쩍이는 그것에는 이름이나 직책, 심지어는 번호조차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명함의 소유자가 엄청난 대부호라는 것 정도였다.
“이거, 생각보다 묵직한 걸 보니까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백금 같은데. 혹시 상대가 중동 왕족이에요?”
“그랬다면 회의를 끝마치고 왔을 겁니다.”
“그럼?”
“명함 끄트머리 부분을 잘 살펴보십시오.”
나는 최 팀장의 말을 따라 다시 한번 명함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제야 앞뒷면으로 두 마리의 새가 음각(陰刻)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어떤 종류의 새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글쎄요.”
“까마귀입니다.”
“까마귀?”
“정확한 이름은 후긴(Huginn)과 무닌(Muninn)이죠.”
“아니, 무슨 까마귀가 이름이 있어요? 까마귀면 까마귀인 거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니까요.”
“신화?”
“예, 고대 북유럽 신화 말입니다.”
저벅. 저벅.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 서서히 가까워지는 집무실 문을 바라보며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후긴과 무닌. 이 두 까마귀는 바로 그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어느 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게 누군데요?”
“오딘(Odin).”
“……!”
“많이 들어 본 이름이죠. 아닙니까?”
잠시 침묵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긴과 무닌이라는 이름은 오늘 처음 들어 봤지만, 오딘은 다르다.
‘그래, 아주 다르지.’
단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큼 유명한 신이라서, 혹은 어릴 적 재미있게 봤던 히어로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여서가 아니다.
오딘이라는 두 글자는 전 세계를 막론하고 누구나 아는 이름이었다.
바로 그 오딘이야말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길드(Guild)니까.
저벅.
어느덧 찾아온 마지막 발걸음.
우리 앞을 가로막은 문 너머에서 정갈하게 갈무리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최 팀장의 담담한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 위를 미끄러졌다.
“갑시다.”
달칵.
마침내 문이 열리고.
벽난로 앞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돌아섰다.
* * *
처음에는 모두가 사소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바빴고, 당장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로 정신이 없었으며, ‘그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고 끝났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증거 보관실에서 근무하던 막내 직원이었다.
“저어, 과장님. 증거품이 비는 것 같은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지금 막 수량 체크를 해 보니까 하나가 비는 것 같아서…….”
“인마, 헛소리할 시간에 다시 체크해. 일주일 넘게 보관실에서 물건 뺀 적도 없는데 무슨.”
눈살을 찌푸린 과장은 다리를 꼰 채 주식 창을 훑어봤다.
불과 삼십 분 후, 뒤통수를 긁적이며 사라졌던 막내 직원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과장님, 정말 비는 것 같습니다. 석고준 관련 품목에서 하나가 사라졌어요.”
“야, 아까 내가 말했지. 일주일 동안 보관실 잠겨 있었다고. 가뜩이나 하한가라 열 받는데 자꾸 헛소…….”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던 과장이 문득 말을 멈췄다.
“지금 뭐라고?”
막내 직원이 주눅 든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진짜 사라졌다니까요.”
“아니, 그거 말고. 바로 뒤에, 뭐라고?”
“네? 아, 석고준 관련 품목이요?”
“……!”
다시 한번 막내 직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 석 자에, 과장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석고준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석고준 사건 관련 증거품이 사라졌다니.
“야, 문. 문! 보관실 당장 열어! 애들도 당장, 아니다. 아직은 부르지 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과장은 증거 보관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막내 직원과 함께 몇 시간에 걸쳐 보관실을 이 잡듯이 뒤진 후, 비로소 깨달았다.
‘이런 씨바…….’
없다.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저 어리바리한 막내 직원의 보고는 단순한 헛소리가 아니었고, 엊그제 자신이 샀던 주식이 하한가를 치는 것 따위는 이제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인생 자체가 하한가를 쳐 버릴 테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넋이 반쯤 나간 과장은 멍한 얼굴로 증거 보관실을 둘러보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품목을 체크했던 것이 불과 지난주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간 누구도 드나들지 않았던 보관실에서 물건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증거품 하나하나에 설치된 도난 방지 마법과 보관실 전체에 걸린 경보 마법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석고준 관련 증거라니.’
증거품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이미 시말서를 써야 할 일이지만, 석고준에 관련된 증거품이 사라졌다면 어지간한 징계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미 중요한 것들은 상부에서 수거해 갔다고는 해도 워낙에 큰 사건이었으니.
“……돌겠네, 진짜.”
과장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무원 명줄이 아무리 길어도 쇠심줄이 아닌 이상 잘리기 마련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호랑이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생각하니 도무지 이 사실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묻자. 지금 당장은 묻고 상황을 살펴보는 거야.’
아직 뭣도 모르는 막내 직원만 잘 구슬리면 나중에라도 수를 낼 수 있다.
마음을 굳힌 과장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목소리로 넓은 보관실 어딘가에 있을 막내 직원을 불렀다.
“거기 있니?”
“아, 예. 방금 왔어요.”
“어디 다녀왔구나. 그래, 일단 이리 좀 와 봐. 내가 너한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리고 돌아선 그 순간, 과장은 볼 수 있었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막내 직원과 그의 뒤에서 철탑처럼 서 있는 보안팀장을.
“뭡니까?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
“김 과장님?”
시발, 좆 됐다.
간신히 욕설을 삼킨 과장이 절망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라졌습니다.”
“예?”
“석고준의 유품으로 들어왔던 목걸이. 그게 사라졌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