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34
#733화
언제부턴가 사흘 밤낮을 버텨도 멀쩡한 몸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개운하게 눈을 뜬 그곳이,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는 장소라면 더더욱.
“역시 집이 최고라니까.”
상쾌한 목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은 나를, 커다란 식탁 맞은편의 최 팀장이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여긴 제집입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해요?”
“사소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명의 문제인데.”
“이거 집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누가 들으면 정말 집도 돈도 없는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이제는 내 명의로 된 집도 있고, 돈도 썩어나게 많다.
하지만 계좌에 조 단위의 돈이 잠들어 있다 해도, 나와 가족들이 머무르기에 이보다 더 안전한 장소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만한 곳이 없지.’
겉보기에는 그저 거대한 저택이지만, 실상은 수많은 보호 마법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철옹성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대중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천태민의 저택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 상징성은 청와대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있으니 침입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고, 설령 S급 헌터가 쳐들어와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내게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다.
물론 뜬금없이 동거하게 된 최 팀장의 입장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까 좀 염치가 없긴 하네. 이번 달부터 월세라도 드려요?”
“주시면 받겠습니다. 인당 천만 원으로 계산해서, 한 달에 사천만 원 정도면 되겠군요.”
나는 햇빛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날씨 좋다.”
“…….”
“그나저나 뭐가 그렇게 비싸요. 이 와중에 심지어 계산도 틀렸는데?”
“제 계산은 늘 정확합니다.”
“뭔 소리야. 인당 천이면 사천이 아니라 삼천이어야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게 언젯적 일인데.”
“한 사람 더 있지 않습니까.”
최 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 끝에서 휘적휘적 걸어온 금발의 외국인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밥 줘.”
이 새끼도 양반은 못 되겠구나.
다른 건 둘째치고, 일어나서 얼굴 보자마자 처음으로 하는 말부터가 이미 훌륭한 상놈이다.
“알아서 처먹을래. 아니면 한 대 맞고 처먹을래.”
신중하게 고민하던 스켈레톤 킹이 대답했다.
“알아서 처먹도록 하지.”
“좋은 선택이야. 가는 김에 내 것도 가져오고.”
“……?”
“아, 특히 국은 꼭 챙겨 와. 깜빡하면 죽는다.”
이 저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조리실에 설치된 인공 지능이 언제나 따끈따끈한 음식을 준비 중이라는 거다.
잠시 후 스켈레톤 킹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몫의 식사를 챙겨 왔고, 최 팀장은 육개장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진태경 씨는 언제나 잘 드시는군요.”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먹어야 살죠.”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예, 오랜만에. 거의 눕자마자 쓰러졌을걸요?”
최 팀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전화를 못 받으신 모양입니다.”
“전화요?”
“간밤에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혹시 아직도 확인 안 해 보셨습니까?”
“어?”
나는 그제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하도 진동이 울리길래 무음으로 바꿔 놨었는데,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쌓인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백 통도 넘게 쌓여 있었다.
‘뭐야, 이거.’
대충 광고나 스팸으로 취급하기에는 중간중간 보이는 이름들이 제법 익숙하면서도 화려하다.
아크 리치 진압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된 영국의 필릭스 왕자. S급 헌터 파이 첸.
현대의 시간으로 불과 2주 전, 함께 테러 단체를 박살 냈었던 미국의 척 헤이글과 이제는 빠지면 섭섭한 이름인 매직 존슨까지.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백한성 대통령은 물론이고, 펜타곤 초청 당시 안면을 텄던 미국의 도람프 주니어 대통령과 샤오 양 중국 주석도 부재중 전화 목록에 한몫을 보탠 상황이었다.
“긴 밤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피곤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기울인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식이요?”
“네. 특히 샤오 양 주석이 제법 흥미로운 정보를 전해 주더군요.”
툭툭.
최 팀장이 길쭉한 손가락으로 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두드리자, 화면 위로 솟구친 홀로그램이 수십여 장의 이미지를 투영했다.
파앗.
“……이건.”
마침내 완성된 이미지를 확인한 나는 미간을 좁히며 수저를 내려놨다.
아무리 비위가 좋고 잔인한 것에 익숙한 나라고 해도, 이런 걸 보면서 식사를 이어 나갈 수는 없다.
“웬 시체들이에요?”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서 베이징 특별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던 죄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 중에는 진태경 씨께서 아는 얼굴도 있고요.”
“제가 아는 사람이라고요?”
슥.
최 팀장이 대답 대신 손을 내저었다. 수십여 장의 이미지가 흩날리듯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이미지가 확대된다.
“이제 알아보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이미지 파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평온하게 쓰러져 있는 중년인의 얼굴은 분명 낯이 익었고, 나보다 먼저 그의 이름을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스켈레톤 킹이었다.
“그 인간이로군. 이름이 아마, 어…… 우 쉐이밍? 뭐 그런 괴상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나와 최 팀장의 시선에 녀석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후후, 이 몸의 정보력을 무시하는군. 나는 게으른 너희와는 달리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스마트폰에 몰두했느니라.”
“못 잔 거겠지. 어차피 죽은 몸이니까.”
“…….”
내 일침에 시무룩해진 스켈레톤 킹이 육개장을 깨작거리던 그때, 고개를 끄덕인 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전(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이자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그리고…….”
비로소 우 쉐이밍에 관한 모든 것을 떠올린 내가 말을 받았다.
“이정룡과 합세해서 저를 죽이려고 했던 그놈, 우 헤이싱의 아버지죠.”
“맞습니다. 사실상 중국의 이 인자인 동시에 샤오 양 주석의 가장 큰 정적(政敵)이라 할 수 있는 태자당 일파의 우두머리였던, 바로 그 우 쉐이밍입니다.”
나 역시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다.
아크 리치 진압 이후, 우 쉐이밍이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나 역시 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으니까.
애초에 우 헤이싱이 온갖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놈의 친가인 우씨 일가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 쉐이밍 저 양반, 지금까지 비리 저지른 거 싹 다 밝혀져서 역풍 맞고 나가떨어지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뉴스 봤을 때는 재판 기다린다고 했었는데.”
“사실입니다. 샤오 양 주석이 틈을 놓치지 않았고, 우 쉐이밍을 비롯한 태자당 일파 대부분이 수감되었죠.”
“그런데 그런 우 쉐이밍이 갑자기 죽었다?”
“우 쉐이밍은 아직 중년의 나이고 건강을 위해 수십여 년간 포션을 물처럼 마셔 온 사람입니다. 사인은 심장 마비에 의한 급사(急死)지만, 그를 비롯한 일가친척 오십여 명이 한날한시에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죠.”
“일가친척이라고요? 그럼 아까 본 사진들이…….”
“샤오 주석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모두 우씨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
멸문지화(滅門之禍).
무림에서나 들어 볼 법한 그 네 글자와 함께 등골이 서늘해진다. 동시에 믿기 힘든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최 팀장님. 그럼 설마…….”
그러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최 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샤오 주석의 소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우 쉐이밍을 회유하고 싶었을 겁니다.”
회유. 회유라.
우 쉐이밍은 샤오 양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자.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이상 구태여 죽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살려 둘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회유인가. 우 쉐이밍은 무엇을 갖고 있었나.
이미 폭삭 주저앉은 태자당의 세력? 아니면 압류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막대한 재산?
나는 말 없이 회유라는 두 글자를 마음속으로 곱씹었고, 이내 정답을 깨달았다.
“……마나 연공법.”
신음처럼 흘러나온 한마디에 스켈레톤 킹은 눈을 깜빡거렸고, 최 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샤오 주석은 우 헤이싱을 S급 헌터로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마나 연공법을 얻기 위해 그를 회유하고 있었습니다.”
S급 헌터 정도의 강자라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고유의 수련법을 스스로 터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 헤이싱은 달랐다. 그는 이미 가문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마나 연공법을 익힌 상태였고, 나는 그의 죽음과 우 쉐이밍의 몰락 이후 그 사실에 더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 우 쉐이밍을 비롯한 일가친척 모두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건.’
샤오 양이 마나 연공법을 얻어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관심 없다.
중요한 것은 우씨 가문의 멸문지화로 회유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과,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느냐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오딘 길드군요.”
남의 것처럼 낯선, 메마른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최 팀장이 차갑게 식은 커피잔을 매만졌다.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
“샤오 양 주석이 말한 바에 의하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던 우 쉐이밍은 회유에 응할 생각이 있던 모양입니다. 마나 연공법을 넘기지 않으면 적어도 종신형, 혹은 사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문득 말꼬리를 흐린 최 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원치 않았을 겁니다.”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다.
놈들이 움직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르고, 잔인한 방법으로.
‘아무리 그래도 멸문지화라니.’
나는 아직 꺼지지 않은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여자, 아이, 노인. 그들 모두가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단지 우씨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라도 마나 연공법의 유출을 막겠다는 건가, 아니면…….’
어젯밤 일에 대한 답신인가.
여러 생각이 혀끝에서 맴돌다 흩어진다. 말없이 죽은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최 팀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시간 되시면 같이 커피나 한잔하러 가실래요?”
“저야 괜찮습니다만. 갑자기 어디로…….”
“글쎄요. 거기가 아마 파리였나?”
“네?”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최 팀장을 향해,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오딘 길드요. 거기 주인장 면상이나 한 번 보러 가고 싶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