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4
#73화
띠링. 띠링. 띠링.
밀려드는 시스템 알림에 귀가 아플 정도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눈앞을 가득 채운 메시지창을 지워 나갔다.
‘뭔 보상이 이렇게 많아?’
두 번의 레벨 업과 모든 능력치 상승, 거기에 더해 업적 달성으로 새로운 스킬이 주어졌다.
‘비급 제작?’
띠링.
스킬창
[비급 제작]등급 : 無
경지 : 일 성
설명 : 대성한 무공에 한해 비급을 제작할 수 있다.
제작 가능한 비급 : 진가창법, 진가보법
설명을 읽어 보니 내가 짐작한 그대로다.
‘일단 스킬이니까 없는 것보다는 낫긴 한데…….’
지금으로써는 딱히 큰 효용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생산직 스킬도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한 정도?
‘이럴 때는 확실히 게임 같단 말이지.’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모든 것들이 생소하고 비현실적이다. 지금까지도 무림이 게임인지, 또 다른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딱!
“아.”
얼얼한 뒤통수를 붙잡고 돌아섰다. 반 토막 난 목검을 든 진무경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집중 안 하지?”
“거, 진짜. 기분 나쁘게 자꾸 머리만 때리고 그래.”
“이 자식 또 자연스럽게 말 놓네.”
진무경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제는 별로 무섭지도 않다.
‘한두 번 맞아 보나.’
지옥 훈련이 시작된 지 오늘로 열흘째.
나는 시작과 동시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존댓말 써도 맞는다!’
정말 오지게 맞았다. 겨우 이틀 차에 [맷집] 능력치가 생겼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어차피 어떻게 하든 결과는 두들겨 맞을 텐데, 기왕이면 반말 쓰고 맞는 게 정신 승리에 도움이 된다.
따닥!
“이 정도야 간지럽지.”
괜히 맷집 능력치가 생긴 게 아니다.
꽃이 햇빛과 물을 받으며 자라는 것처럼, 내 능력치는 가혹한 폭력과 지옥 훈련으로 쑥쑥 성장했다.
빡!
“아, 잠깐만. 뼈 맞았어, 뼈.”
“비무 아직 안 끝났다.”
퍼버벅!
요령 있게 급소를 타격해 오는 목검을 맞아 가며, 나도 창을 휘둘렀다.
쉬쉬쉭! 타닥!
열흘간의 지옥 훈련.
마침내 대성에 이른 진가창법과 진가보법이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띠링.
제한 시간 : 2시간 22분
띠링.
제한 시간 : 2시간 22분
“……?”
뭐야, 왜 두 번 울려.
* * *
쉬쉬쉭!
캉!
압박해 들어오는 창을 막아 내며 진무경은 새어 나오려는 헛웃음을 삼켰다.
‘이놈 봐라.’
열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러나 그게 일류 무공을 대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지난 열흘간 수십 번도 넘게 든 생각이다. 진태경의 성장 속도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아는 것과 체득하는 것은 다르니까.’
무공을 대성(大成)했다는 말은 그 무공을 완벽히 이해하고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진태경은 일류 무공 두 개를 단 열흘 만에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이건 엄청난 성과다.
‘이게 되네.’
진무경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 예상치가 어느 정도였더라?
확실한 건 처음 목표를 훨씬 초월했다는 것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손발 나가는 버릇 고치고, 기본기나 확실히 잡아 주려고 한 건데…….’
막상 시작해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기본기? 진무경은 알 길이 없는 일이지만 진태경은 칠 년간 끊임없이 수련해 왔다. 강해지기 위한 수련,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손바닥 가죽이 수십 번 찢어지고 아물수록 그의 창도 빠르고 강해졌다. 그 때문에 진태경의 기본기는 약간의 자세 교정을 제외하면 흠잡을 곳이 없다.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고.’
마보(馬步) 수련 역시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근력, 체력, 민첩. 그의 모든 신체 능력은 동급의 무인들을 훌쩍 상회하고, 매우 균형감 있게 발달해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마냥 운 때문만은 아니었군.’
껑충하게 큰 키와 길쭉한 팔다리. 날렵하고 옹골찬 근육을 보라. 삼 년 전, 기녀들한테 잘 보이겠다고 복근을 만들던 말라깽이가 맞나 싶을 정도다.
‘염병, 무슨 천무지체(天武肢體)도 아니고.’
진무경이 다시 한번 황당함을 느낀 그때였다.
쐐애애액!
강맹한 기세로 찔러 들어오는 창.
진무경은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지만 진태경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쉭! 쉬쉬쉭!
같은 무공이라도 누가,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수, 한 수에 그가 가진 기질과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것이다.
지금 펼쳐지는 진무경의 진가창법도 마찬가지였다.
‘진가창법이 이런 무공이었나?’
무인과 낭인. 어딘지 모르게 삐걱대고 불안하던 움직임이 서서히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벌써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거지.’
열흘 전의 진태경은 반쪽짜리였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진무경은 아우의 성취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뱃속이 뜨거워졌다.
‘이건.’
과거,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한 번 느꼈던 감정이다. 그 대상이 진태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질투. 그리고 호승심.’
진무경은 그 자리에 우뚝 굳어 버렸다. 그 찰나의 빈틈을 향해 진가창법의 마지막 초식, 천관일이 쏘아졌다.
“합!”
콰아아아-!
창을 중심으로 휘몰아친 바람이 진태경의 기합을 집어삼켰다. 금방이라도 가슴이 꿰뚫릴 것 같은 그 순간, 진무경의 손이 검자루를 잡았다.
푸화악!
허리춤에서 솟구친 섬광이 바람을 갈랐다. 그 끝에, 진태경이 있었다.
* * *
쉭!
짧은 바람 소리와 함께 상반신이 시원해진다. 오른쪽 허리춤부터 시작해서 왼쪽 어깨까지. 깔끔하게 잘려 나간 무복 사이로 지하 연무장의 싸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그나저나 갑자기 검기라니.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미친. 검기는 안 쓴다더니.”
“……그걸 곧이곧대로 믿은 놈이 멍청한 거지.”
영 석연치 않은 얼굴로 대답한 진무경이 검을 집어넣었다.
“수련은 여기서 마친다.”
띠링.
– [진무경]이 수련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 남아 있는 [제한 시간]이 소멸합니다.
– [진무경]의 평가에 따라 퀘스트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내 기대감 어린 눈빛을 받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한참 멀었어.”
“아.”
“열흘 동안 고작 이 정도밖에 못 따라오다니. 내 시간이 아깝…….”
진무경이 말하다 말고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뭐지?”
“응? 뭐가.”
“지금 짓고 있는 해괴망측한 표정 말이다!”
“아닌데?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진무경의 말이 맞았다.
나는 자꾸만 솟구치는 입꼬리를 감추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허공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띠링.
– 퀘스트 성공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 [수련? 시련!]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레벨 업!
– 퀘스트 완료 보상이 인벤토리로 이동합니다!
– 훌륭한 성과입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음.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로구나.”
정직한 청년. 진무경.
“이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냐, 넘어가. 스물셋이면 한창 수줍을 때지.”
“이 새끼가?”
눈깔이 뒤집힌 진무경이 내게 달려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지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웬 하인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Lv.12 장칠득]“저어, 공자님들?”
한 사흘인가? 그쯤 전에 꼬박꼬박 식사를 가져다주던 하인이다.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은 멍투성이고 이빨이 네댓 개 부러졌다.
그가 새어 나가는 발음으로 말을 이었다.
“소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젠장.”
나와 칠득이를 번갈아 보던 진무경이 아쉬운 얼굴로 주먹을 내렸다.
* * *
우리는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진무경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뚱한 얼굴로 땅만 쳐다보며 걸었고, 칠득이는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올라오는지 자꾸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 어이쿠. 으헉.”
“…….”
거 더럽게 신경 쓰이네.
“어쩌다가 다쳤어요?”
“그, 사소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사소한 오해치고는 제법 중한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
현실에서야 포션이 있으니 못 고칠 병이 없다지만 무림은 다르다. 나는 칠득이의 부러진 이빨을 보며 혀를 찼다.
“많이 아프시겠네.”
“괜찮습니다.”
칠득이가 의연하게 가슴을 쭉 폈다.
“태원진가의 무인이라면 이 정도는 견뎌야죠.”
“…….”
방금까지만 해도 아파 죽으려고 하더니.
그런데 이 사람, 하인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옷이 바뀌었네.’
그는 태원진가 소속 무인들이 입는 짙은 남색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전에는 하인들이 입는 옷을 입었던 것 같은데.
내 시선을 알아차린 그가 수줍게 웃었다.
“아. 며칠 전에 정식으로 무인이 됐습니다.”
“무인?”
뒤에서 말없이 걷고 있던 진무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어디 소속인가?”
내가 근래 들어서 아무리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지만 진무경만큼은 아니다. 칠득이가 황송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소가주님 직속입니다.”
“큰형님 직속은 본가 내에서도 선별된 무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진무경이 칠득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깔보는 눈빛이라기보다는 상대의 경지를 가늠하는 관찰에 가까웠다.
“근골은 제법이지만 딱히 무공을 배운 것 같지는 않은데?”
“예에. 사실 저도 얼떨떨합니다. 무공이라고는 일초 반식도 제대로 펼쳐 본 적이 없어서요.”
[기감]으로 파악한 칠득이의 레벨은 12. 음식이나 나르던 하인치고는 높지만 무인으로 치면 삼류다.‘진위경 직속 일류 고수들은 최소 40레벨이 넘던데.’
뭐지? 배경이 빵빵한가?
진무경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뒷배가 좋나 보군. 춘부장께서 무슨 일을 하시나?”
칠득이가 송아지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였다.
“십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
“…….”
“유명한 약초꾼이셨는데, 호환(虎患)을 당하셔서 그만.”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절정 고수답게 가장 먼저 평정심을 되찾은 진무경이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후, 훌륭한 분이셨군.”
“지금 생각해도 참 순박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와 금슬도 좋으셨고요.”
“그럼 어머니께서는, 혹시? 아니지?”
“잘 계십니다.”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칠득이가 아련한 눈빛으로 먼 산을 응시했다.
“아버지 곁에 묻어 드렸으니 두 분 모두 잘 계실 겁니다.”
“…….”
“…….”
그 후는 죽음의 행진이었다. 당장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칠득이의 혼잣말을 듣고 포기했다.
“아, 저 꽃 오랜만에 보네요.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면 참 많이 보였는데.”
“…….”
“…….”
일각만 더 함께 걸었다면 진무경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섯 시간 같은 5분이 흐른 뒤, 우리는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왔느냐!”
전각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위경을 보자 눈물이 날 것 같다. 우리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혀엉!”
“형님!”
칠득이는 어색하게 포권을 취했다.
“분부대로 공자님들을 모셔 왔습니다.”
나와 진무경을 향해 한걸음에 달려오던 진위경이 멈칫하더니 칠득이를 껴안았다.
“인의예지를 갖춘 장칠득! 우리 장 무인 왔는가!”
“옛! 소가주님.”
“아주 큰 임무를 완수했네! 이만 가서 쉬도록 하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나와 진무경이 얼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전음이 있었다.
– 그, 내가 이 친구랑 사소한 오해가 좀 있어서…….
“…….”
어쩐지 칠득이의 뒷배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