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48
#747화
먹구름에 휩싸인 하늘 아래, 스기하라 교이쿠는 멍하니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한낱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한 그의 정신은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벌벌 떨리는 팔다리는 이미 주인의 의지를 벗어났고, 짠내 나는 바닷물을 한껏 들이킨 속은 구조 헬기의 거친 움직임을 버티지 못했다.
아니, 교이쿠가 진정 버틸 수 없었던 것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끔찍한 현실일지도 몰랐다.
“우욱, 쿠웨에엑!”
더러운 토사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일부는 교이쿠와 함께 구호용 그물에 실려 있던 다른 이들에게 닿았지만, 누구도 불평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혼이 나간 눈빛으로 발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볼 뿐.
콰드드드득!
부서지고, 함몰되며, 휩쓸린다.
수십 미터. 어쩌면 수백 미터에 이를지도 모르는 거대한 파도.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바다의 재앙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척의 선박이 드나들던 도쿄만의 항구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각각 수만 톤에 달하는 화물선은 스티로폼처럼 부서진 채 파도를 따라 가까운 공업 단지를 덮쳤다.
구궁, 꽈아아앙!
굉음과 동시에 맹렬하게 솟구친 화염이 사람들의 비명을 집어삼켰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경보음 아래, 개미 떼처럼 작게 보이는 자동차와 인파가 재앙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재앙을 피해.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들의 등 뒤로, 거대한 음영(陰影)이 드리워졌다.
콰아아아아!
“아, 아아…….”
상공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은 넋 나간 탄식을 흘렸다.
대격변 이후 수십 년간 피땀 흘려 복구했던 터전이, 찬란한 문명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늘 방파제에 가로막혀 흩어지던 새하얀 포말도, 푸르던 바닷물도 이제는 붉게 물들었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고 휩쓸며 나아가는 저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설령 파도가 가라앉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니까.
항구와 공업 단지를 집어삼킨 저 깊은 물결 아래에는, 그보다 더한 재앙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들의 맞은편에서 날아오는 수십여 대의 전투기들을 발견하고 피를 토하듯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오지 마!”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외침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소닉 붐(Sonic Boom)을 일으키며 하늘을 가로지른 전투기 편대에도,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전투기에 몸을 실은 일본의 정예 헌터들에게도.
그리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심해(深海)의 괴물에게도.
고오오오옹.
낮지만 거대한 울림이 사그라지던 파도를 일으켜 세웠다.
거세지던 바람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고, 어느샌가 하늘을 가린 수많은 먹구름 사이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구구구구궁.
살아 숨쉬는 근방의 모든 생명체가 석상처럼 굳은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뼛속 깊이 각인된 공포였고, 살아 있기 때문에 느끼는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힘.
자연이 가진 힘. 그러나 동시에 자연적이지 않은 힘.
“저게 도대체 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에게 하강 명령을 전달하려던 파일럿이 신음처럼 뇌까린 그 순간.
화아악!
하늘에서 내리꽂힌 수백, 수천 줄기의 뇌전(雷電)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었다.
* * *
긴급 소집된 일본 방위성(防衛省) 작전 통제실은 조용했다.
숨 막히는 침묵. 소리 없이 움직이는 목울대와 흐릿한 눈동자들.
수십여 명의 고위 관료와 장군들이 있음에도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혼이 빠져나간 눈빛으로 통제실 내부에 설치된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모두의 머릿속을 점령한 단 하나의 생각.
그만큼 그들이 확인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메울 만큼 강렬한 섬광.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 그들이 볼 수 있던 것은 지상으로 추락하는 수십여 대의 항공기들과 그것을 집어삼킨 파도뿐이었다.
“저, 전멸……입니다.”
눈치 없는 누군가의 보고가 힘없이 침묵을 깨트렸고, 그것은 모두가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니, 죽었다.
수백, 수천 줄기의 번개는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을 태우고 이동하던 구조 헬기들도, 항공 자위대가 자랑하는 전투 편대와 긴급 동원한 수백의 헌터들도 그렇게 끝장났다.
하지만 작전 통제실을 죽음 같은 침묵으로 몰아넣은 것은, 이미 열 개에 달하는 시(市)를 집어삼키고 수도마저 위협하는 저 쓰나미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괴물.
지금으로부터 수십여 년 전 사라졌던, 그렇기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괴물의 모습을 그들은 보았다.
“……스사노오(スサノオ).”
바다와 폭풍을 다스린다고 하여 붙여진 괴물의 별칭.
그러나 그 이름을 신음처럼 중얼거린 어느 장성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다음 순간 자신을 노려보는 방위대신(防衛大臣)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주둥이 닥치고 있게, 요시무라.”
다급히 변명하려는 목소리를 틀어막은 일본 방위대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장 대책을 내놓아야 할 그들 중 절반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남은 절반은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혹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이번 사태의 책임을 대신해 줄 유일한 희생양을 원하는 것처럼.
뿌득.
늙은 방위대신은 이를 갈았다.
이토록 많은 장성과 관료들이 있거늘,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멍청하고 겁 많은 총리대신은 일찌감치 벙커에 처박혔고,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극소수의 지휘관들은 이 방위성 통제실에 들어올 만큼 훌륭한 뒷배를 두지 못했으니까.
결국, 당장 총대를 짊어질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이런 무능력한 놈들!’
방위대신은 자신 역시 다이묘 출신인 선조 덕분에 출세한 것을 까맣게 잊고 내심 욕설을 퍼부었지만,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을 부정할 만큼 무지하지는 않았다.
“전력을, 전력을 다해 저놈을 막게. 자위대건, 헌터건 상관없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전부 동원하란 말이다!”
“네, 넵!”
“그리고…….”
쾅!
주름진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친 방위대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머릿속을 스치는 짧은 고민.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미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았고, 더욱 큰 재앙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가 누구보다 적격이었으니까.
“세계에 도움을 청하게. 특히 그자는 어떤 외교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불러야 해.”
“예?”
“그자라면…….”
브로콜리를 먹는 어린아이처럼 파르르 떨리는 입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방위대신은 피를 토하듯 외쳤다.
“그자! 그 조센징을 부르란 말이다! 진태겨엉!”
대 황국신민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 더 이상의 선택권은 없었다.
저 괴물은, 레비아탄(Leviathan)은 하늘이 내린 악마였으니까.
‘그 악몽을 다시 한번 반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실 곳곳에 설치된 크고 작은 홀로그램 TV에서 흘러나온 뉴스는, 진태경을 택한 방위대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 전 세계가 다시 한번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열흘 전, 사상 초유의 연쇄 테러를 일으킨 바 있던 이른바 ‘선지자’는 동영상을 통해 두 번째 연쇄 테러를 예고…….
– 속보입니다. 미국 맨해튼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초비상 사태에 진입…….
– 현재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국가에 한하여 입, 출국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도쿄를 지원하기 위한 헌터 임시 소집령이 일부 무산되었으며, 가장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한국만이 유일하게 지원 가능한 것으로 판단…….
* * *
– 일본 국방성이 외교부를 통해 정식으로 긴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백한성 대통령에게서 전달받은 그 소식은,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레스와 평화 길드가 선발대로 출발합니다. 최소 B급 이상, 자원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다섯 개 팀이 이미 대기 중입니다.”
최 팀장의 대처는 누구보다 빨랐다.
그는 도쿄의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순간부터 소집령을 내려놓은 상태였고, 백한성 대통령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공군을 준비시켰다.
“텔레포트 마법진은요?”
필요한 장비를 챙기며 건넨 물음에 최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흘 전 있었던 몬스터 웨이브로 도쿄 일대의 마력 분포도가 급격히 상승했는데, 벌써 세 배 이상의 수치를 기록 중이에요.”
“빌어먹을. 중국 생각나네.”
“예. 그때와 같은 상황입니다.”
마나와 마력은 서로에게 상극이다.
지금처럼 마력 분포도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불안정할 때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간, 몸이 단단한 쇳덩어리라 해도 1000피스짜리 퍼즐처럼 분해될 수도 있다.
“그럼 소요 시간은요?”
“인근 기상 악화를 고려해서 30분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30분…….”
물론 넓은 공항 활주로에 안전 착륙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이미 일본이 자랑하는 도쿄 국제공항은 개 박살 났을 확률이 90% 이상이니까.
‘남은 10%는 우리가 가는 길에 박살 날 확률이고.’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머릿속에서는 일본 국방성에서 보냈던 영상이 다시 한번 재생되고 있었다.
거대한 삼각파도에 휩쓸리는 해상 자위대와 수몰되는 육지.
일본 해안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던 광범위 방어 마법도 우습게 깨트린 그것은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무수한 벼락으로 남은 희망마저 잿더미로 만들었다.
아득한 신화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자신의 힘을 증명하듯이.
‘레비아탄.’
대격변 당시 해상을 지배했던 바다의 악마.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거느린 가장 강력한 S급 몬스터들 중 하나였으나, 그의 죽음과 함께 자취를 감춘 재앙.
누군가는 레비아탄이 마왕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놈이 살아남아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며 반박했지만 어떠한 증거나 입증도 없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레비아탄이라는 악몽이 되살아났다. 삼십여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바로 이 세상에.
‘놈이 나타난 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의도된 필연(必然)일까.
해결되지 않는 그 의문을 마음속으로 뇌까리며, 나는 모든 준비를 끝마친 채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과 항공기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희미한 피비린내가 섞여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