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0
#749화
레비아탄은 바다의 재앙인 동시에 왕이다.
이는 마계에서도, 지구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바다는 레비아탄이 태어난 고향이자 무패(無敗)의 전장이었고, 탄생과 함께 부여받은 이 광대한 영토 안에서 왕의 감시를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분명 그랬을 터였다.
화아아아악!
찰나의 순간.
먹잇감을 앞에 두고 탐욕에 물들어 있던 괴물의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오랜 굶주림으로 마비되어 있던 레비아탄의 감각이 깨어났다.
‘이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깨달음과 함께 느려진 세상 속에서 레비아탄은 똑똑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벼락처럼 빠르고, 태양과도 같은 열기를 품고 있는 강대한 기운을.
푸른 수면을 집어삼키며 내리꽂히는 그 화염이 바로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촤악!
더 이상 망설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먹이를 삼키기 위해 벌렸던 거대한 아가리가 수중에서 급히 선회했다.
곧이어 어느새 코앞까지 들이닥친 화염을, 레비아탄은 마력을 머금은 수백 개의 이빨로 씹어 부수었다.
아니,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콰득!
화염과 이빨이 닿은 그 순간, 머리를 뒤흔들 만큼 강렬한 충격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콰드드드득!
– ……!
뭐라고?
레비아탄의 거대한 눈동자가 고통과 충격으로 부릅떠졌다.
대격변 당시 수십 척의 항공모함을 침몰시킨 자신의 이빨이, 그토록 날카롭고 파괴적인 무기가 단 일격을 견디지 못해 박살 난 것이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레비아탄이 해결되지 않는 의문으로 덜컥 굳어 버린 그때.
충돌의 여파로 일어난 무수한 기포(氣泡)가 흩어지며 이 모든 의문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
그것은 한 자루의 창이었다.
고오오옹.
물과 파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화염을 두른 은빛 창은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듯이. 자신을 쥔 주인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듯이.
그리고 그 창의 주인에게는, 레비아탄이 수없이 죽여 왔던 어느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어떻게 인간 따위가……!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담긴 신화 속 괴수의 부르짖음에, 작고 하찮은 인간은 입술을 달싹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일섬(一殲).
아득한 섬광이, 바다를 물들였다.
* * *
주위에서 흔히들 말한다. 원래 인생은 한 방이라고.
동의한다. 한 방을 노리다가, 바로 그 한 방에 인생을 날려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구구구궁!
하늘이, 아니 바다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
동시에 터져 나온 거대한 충격파가 모든 힘을 소진한 몸뚱어리를 날려 보낸다.
회오리치는 급류(急流)에 휘말린 나는, 아득해진 시야 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경고음을 들을 수 있었다.
삐빅. 삐비빅!
– 당신은 모든 공력과 기력을 소진했습니다!
– 당신의 신체가 [일섬]의 반동을 견디지 못합니다!
– 상태 이상, [공력 소진]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탈진]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빈혈]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근육 파열]이 부여됩니다!
– 상태 이상, [내상]이 부여됩니다!
– 경고! 경고!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 과도한 힘의 남용은 스스로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 특수 디버프, [망가진 신체]가 부여됩니다!
– 회복 전까지 모든 전투 관련 능력치가 50씩 하락합니다! 회복 과정과 결과에 따라 일부 능력치를 영구 상실할 수 있습니다!
– [근력]이 일시적으로 50 하락합니다!
– [민첩]이…….
.
.
.
하이 리스크(High Risk), 하이 리턴(High Return).
그 말 그대로다.
내가 강해지는 것에 비례하여 일섬의 위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무림에서는 천무지체(天武肢體)로 오해받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이 육체조차 더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빌어먹을.’
어지럽다. 숨이 가쁘다.
이미 지친 수준을 넘어 망가져 버린 육체는 비명을 내지르고, 사막처럼 메마른 단전은 내게 그만 멈춰 줄 것을 호소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여파.
하지만 이런 상황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면, 대뜸 일섬부터 날리는 미친 짓은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생각과 동시에 시스템에 적용된 명령어가 작동한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불쑥 나타난 실루엣과 함께, 누군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꼴이 말이 아니군. 네놈에게 딱 어울리는 모습이야.
저 싸가지 없는 말투가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히죽 웃는 나를 보며 혀를 찬 스켈레톤 킹이, 작은 크리스털 병을 입에 쑤셔 박았다.
오직 이 세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
최상급 포션이라 불리는 바로 그 보물을.
꿀꺽.
그리고 힘겹게 목울대를 넘긴 순간, 청량한 기운이 신체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띠링.
– [최상급 포션]을 사용하셨습니다!
–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텅 비었던 단전이 가득 차오른다. 끊어졌던 근육이 이어지고, 흐릿하던 시야는 맑고 또렷해졌다.
레벨 업에 버금가는 엄청난 치유력.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경고음은 나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삐빅!
– 특수 디버프, [망가진 신체]가 효력을 거부합니다!
– 해당 디버프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 [망가진 신체]의 디버프 효과가 유지됩니다!
‘……이게 무슨.’
처음 겪는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저 경고음의 의미를 곱씹어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직 이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어어어어어어!
수중에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는 포효.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무수한 잔해와 시신들로도 가리지 못한 레비아탄의 거대한 동체는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콰과과광!
상당한 거리였지만 레비아탄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끔찍했다.
과거 한 입으로 항공모함을 토막 냈다던 아가리가 한쪽 눈과 함께 절반이나 뜯겨 나갔고, 가죽과 뼈가 사라진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녹색 핏물은 반경 수백 미터를 잠식한 상황.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놈에게는 천운이었다.
만약 마지막 순간 놈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곳이 수중이 아니라 육지였다면 이미 진작 최후를 맞이했을 테니까.
‘일격으로 끝냈어야 했는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레비아탄.
똥개도 앞마당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데, 바다에서 태어나 지배자로 군림해온 놈을 물속에서 상대하는 것은 아크 리치 때보다 몇 배나 까다로웠다.
하지만…….
‘죽인다. 반드시.’
촤아아악!
나와 스켈레톤 킹은 동시에 쏘아졌다. 거센 물살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했다.
나는 투명한 물갈퀴가 달린 손으로 창대를 굳게 말아쥐었다.
몇 달 전, 동정호에서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수상 구조대원]의 칭호 효과.
한번 발동 시 24시간 동안만 유지 가능한데다 내가 익힌 [열양지기]의 상성으로 인해 모든 위력이 20퍼센트나 감소 되는 막대한 패널티가 있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쐐애애액!
마치 육지에서 경신법을 펼친 것과 같은 속도.
고통으로 울부짖던 레비아탄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우리를 발견하고 포효했다.
– 그아아아아!
놈이 반쯤 뜯겨 나간 아가리를 한껏 벌린 그 순간.
콰륵, 콰르르륵!
물살의 흐름이 바뀌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수중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모든 것이 토네이도에 휩쓸린 것처럼 놈의 아가리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야말로 재해(災害)와도 같은 한 장면.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근처의 잔해를 밟고 박차듯 속도를 높였다.
신화 속 괴물을 향해. 그곳에서 꿈틀거리는 강대한 마력을 향해.
그리고 다음 순간.
고오옹.
레비아탄을 중심으로 몰려들던 물살과 잔해가, 거대한 파동과 함께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과거 존재했다던 드래곤의 브레스(Breath)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엄청난 마력을 머금은 물의 파동은 막아서는 모든 것을 지우며 쏘아졌다.
– 간악한 인간이여!
등 뒤에서 들려오는 스켈레톤 킹의 다급한 외침.
하지만 나는 녀석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충만하게 차오른 하단전의 공력을 끌어올려 백염의 창날에 꺼지지 않는 화염을 심었다.
치이이익!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뜨거운 열기.
휘몰아치던 급류와 압력이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바다가 품고 있던 냉기 대신 용암과도 같은 기운이 주위를 지배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은 나만의 것이었다.
다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벤다.’
머릿속을 지배한 그 일념(一念)과 함께, 나는 창날을 내리그었다.
뱀처럼 뻗어 나간 청백색의 화염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거대한 파동을 후려쳤다.
아니, 베었다.
서걱!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파동이 양옆으로 흩어진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경악으로 부릅뜬 레비아탄의 눈동자를.
그리고 저 멀리에서 오싹한 기운을 흩뿌리는 무언가를 향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헤엄쳐 가는 거대한 동체를.
‘마정석!’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장장 수십여 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괴물이 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무엇이 놈을 이 열도까지 이끌었는지.
– 막아!
스켈레톤 킹이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손을 뻗었다.
나무가 자라듯 솟구친 뼈마디가 내 발끝을 힘차게 밀어 냈다.
퍼엉!
먹먹한 파공음과 함께 쏘아지는 신형. 거센 물살을 가르며 놈을 향해 다가가던 그때.
그아아아. 콰지직!
악어를 닮은 아가리가 커다란 잔해를 집어삼켰다.
한때 화물선이었던 철골과 무너진 건물의 콘크리트 더미. 그리고 그에 비하면 한없이 작지만, 그 무엇보다 위험한 기운을 간직한 어떤 것도 함께.
으적.
모든 것을 한입에 씹어 삼킨 레비아탄이 고개를 돌렸다.
두려움과 비웃음이 뒤섞인 눈동자로 가까워지는 날 응시하던 놈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 나아갔다.
나나 스켈레톤 킹을 향해서가 아닌, 자신이 왔던 넓은 바다를 향해.
– 기운을 흡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놈을 죽여!
나는 스켈레톤의 외침을 들으며 백염을 역수(逆手)로 쥐었다.
놈과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 백여 미터.
그러나 [수상 구조대원]의 칭호 효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레비아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한 번. 단 한 번만.’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창날에 실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낸다.’
온 정신을 집중했다. 물의 흐름을 느끼고, 호흡을 가라앉혔다. 모든 신경과 근육이 올올이 살아나 손끝과 어깨를 향해 실리는 듯한 기분.
꾸구구국.
그리고 전신의 핏줄이 도드라진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는 것처럼, 나는 한 자루의 창을 온 힘을 다해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아아!
깊은 수심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화염.
그러나 그 끝에, 괴수의 비명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