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2
#751화
정신 나간 제국주의자인 방위대신과 달리, 새롭게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일본 총리는 의외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방위대신을 끌어내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진 상을 포함한 한국인 여러분들께는 독립 작전권을 드리도록 하겠소.”
“방위성을 통해 각종 물자 및 군사적 지원도 확답해 주십시오. 우리는 협력하고자 귀국의 요청에 응한 것이지, 희생하고자 온 것이 아닙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최 팀장의 말에, 일본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내 권한 내에서 최대한 힘써 보리다.”
마음 같아서는 방위성의 병신들을 방사능 온천에 담가 버려도 부족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한데 이미 도망친 괴물을 어떻게 처치할 셈이오?”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대답. 광오한 눈빛으로 일본 총리를 바라보는 스켈레톤 킹을 향해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움찔한 녀석이 슬쩍 말을 고쳤다.
“방법이 있다요.”
족보에도 없는 존댓말이었지만, 이미 주옥 같은 어록으로 유명한 일본 총리는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호의적인 눈빛으로 스켈레톤 킹을 응시했다.
“오, 스토무-킹. 그대에 대한 소문은 내 익히 들었소.”
“나를. 아니, 저를?”
“물론이오. 이번 일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몇몇 변이 게이트를 진압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
자경단 사건이 밝혀지기 전에도 이미 알음알음 대중들 사이에 알려져 있던 스켈레톤 킹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던 최상위 헌터의 등장에 잠시 여론이 집중됐으나 금방 묻혔다.
그만큼 매직 존슨의 신분 세탁이 완벽하기도 했고, 워낙 터무니없는 일이다 보니 몬스터라는 의심은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 혼자 하도 욕을 처먹어서 그렇다.
“이리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구려. 스토무-킹.”
일국의 총리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사실에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켈레톤 킹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반갑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니 제 이름은 스톤 킹이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부르고 있지 않소. 스토무-킹.”
“스톤 킹이라니까. 자. 천천히 따라해 보시라. 스. 톤. 킹.”
“스. 톤. 킹.”
“이번엔 좀 길게. 스톤. 킹.”
“스톤. 킹.”
“매우 훌륭하구나요! 이제 이어서 해 보십시오.”
“스토무-킹.”
“맙소사. 정말 돌아 버리시겠다. 저는 믿을 수 없다! 당신의 혓바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으신 건가!”
저주받은 열도의 발음 체계와 마계산 왈도체의 환상 콜라보.
참담한 상황을 보다 못해 눈을 질끈 감은 최 팀장을 대신해 내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만합시다. 스톤 킹이건 스토무 킹이건. 스토킹이건 그게 뭔 상관이라고.”
“매우 상관있다! 이 진상 같은 놈아!”
“곧 네 두개골에 금이 가는 것보다?”
“음, 다시 생각해 보니 별 상관은 없을 것 같군.”
“그렇지?”
“물론이다. 그냥 편할 대로 부르면 그게 이름이지.”
“좋은 자세야, 퍽킹. 이제 레비아탄을 추적할 방법을 말해 봐.”
새로 부여받은 이름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작게 욕설을 중얼거린 스켈레톤 킹이 입을 열었다.
“우선 전제부터가 틀렸다. 우리는 레비아탄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놈을 육지와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유인?”
“그래. 저 바다는 온전히 놈의 영역이다. 괜히 어쭙잖은 방법으로 추적했다간 오히려 영영 놓치게 돼.”
“그 말은…….”
“도망치기에는 너무 극심한 부상이었지. 레비아탄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최 팀장이 의문을 제시했다.
“비록 진태경 씨 덕분에 레비아탄이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정제되지 않은 S급 마정석을 손에 넣은 것으로 압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상처를 회복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회복?”
작게 코웃음 친 스켈레톤 킹이 말을 이었다.
“레비아탄이라면 마력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흡수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마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해도 부상을 완전히 치유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음.”
“그 정도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 지금쯤 놈도 그 사실을 깨달았을 테고.”
현직 몬스터가 내놓은 의견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더군다나 일섬은 시전자의 몸마저 망가트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필살(必殺)의 일격.
레비아탄이라는 이름답게 마지막 순간 몸을 틀었지만, 그렇다고 단기간에 나을 수 있는 상처는 아니다.
‘유인. 유인이라.’
그 단어를 곱씹던 내가 문득 입을 열었다.
“빠르게 형세를 판단하고 원하는 것만 얻어 도망칠 만큼 영악한 놈이, 과연 함정에 걸려들까?”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걸려들 거다. 조건만 맞는다면.”
“알면서도 들어올 수밖에 없는 함정을 파라?”
“레비아탄을 굶주리고 상처 입은 짐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놈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도 그와 같지.”
최 팀장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엄청난 미끼를 준비해야겠군요.”
“그래, 레비아탄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레비아탄을 끌어들일 만한 미끼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기, 총리님?”
내 은근한 목소리에, 흐리멍덩한 눈으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고이즈미 총리가 대답했다.
“아, 말씀하시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일본에 그거 몇 개 있어요?”
“그거라니, 뭘 말하는 거요?”
“모른 척하시긴. S급 마정석이요.”
“……에?”
“잠깐 좀 빌립시다.”
“……에에?”
“어허. 뭘 그렇게 놀라시고 그래. 레비아탄 잡고 돌려드릴게요. 자, 약속.”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총리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아, 따서 갚으면 되잖아. 따서.
* * *
현대에서 S급 마정석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보물이다.
대도시 하나를 굴릴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원이기 이전에 전 세계를 통틀어 백여 개 정도밖에 없는 엄청난 희귀성.
그래서인지 적극 협조를 약속한 일본 총리도 처음에는 기겁했다. 물론 마지막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가져 왔소.”
딸칵.
보안 마법의 해제와 함께 부드러운 벨벳으로 만든 상자가 열린다.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형형한 빛을 흩뿌리는 두 개의 마정석이었다.
“흠, 겨우 두 개?”
내 눈빛을 본 일본 총리가 황급히 대답했다.
“우리 일본 정부가 소유한 S급 마정석은 이게 전부요.”
“정말입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오! 내가 내각 의원들과 천황 폐하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만약에 뒤져서 나오면 S급 마정석 하나당…….”
“……진태경 씨?”
“아, 죄송합니다. 이게 하도 습관이 되어 가지고.”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니까.
최 팀장의 만류에 뒤통수를 긁적이는 내 모습에, 아까부터 슬슬 뒷걸음질 치던 일본 총리가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 꼭 무사히 돌려줘야 한다는 신신당부와 함께.
하지만 우리만 남은 방 안의 공기는 영 미적지근했다.
“음. 두 개라…….”
“이걸로는 좀 부족한데.”
“이 몸의 생각도 같다. 아직도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지만, 레비아탄을 유인할 만큼은 아니야.”
S급 마정석이 몇 개가 있느냐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마정석에 남아 있는 마력의 양과 질이었다.
‘원래대로면 정제되어 있는 게 당연하긴 한데…… 이번에는 용도가 다르니까.’
눈앞에 S급 마정석이 두 개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끼다. 레비아탄이 함정임을 알면서도 달려들 수밖에 없는 먹음직스러운 미끼.
놈이 가져간 것과 같은, 거대하고도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
‘이 두 개를 함께 미끼로 사용해 봤자, 어차피 정제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 혼자만이 떠올린 생각이 아니었다.
우리가 엇비슷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스켈레톤 킹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 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들로는 무리다. 차라리 더 가져오는 게 어떤가?”
“더 가져오자는 게 무슨…… 아.”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머릿속을 스친다.
아레스 길드 본사에 숨겨져 있던 A구역. 베일에 싸여 있던 그곳에는 천문학적인 현찰과 예술품, 그리고 마정석들로 가득했고 그중에는 무려 다섯 개의 S급 마정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정제된 거잖아.”
“그건…… 그렇지.”
입맛을 다신 스켈레톤 킹이 아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
당연히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
하지만 다섯 개가 더해진다고 한들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본래 마정석이란 물건은 더 완벽히 정제되어 있을수록 값어치가 높고, 이정룡과 석고준이 A구역에 꿍쳐두었던 S급 마정석은 말 그대로 최고급이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최종 결정권은 소유주에게 있다.
“애초에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입수했을 물건입니다. 세상에 알려지면 언론만 신이 나겠죠.”
그래,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아주 개지랄이 나겠지. 조금만 틈이 나면 카메라 들고 달려들 하이에나들이 지천에 깔렸다.
최 팀장의 단언에 잠시 생각하던 스켈레톤 킹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아예 정제되지 않은 마정석들을 끌어모으는 건? 당장 인근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조리 끌어모아서 이곳으로 조달하면…….”
나는 활짝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축하드립니다. 국제법 위반으로 종신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런 염병할!”
“싱글벙글 21세기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 의외로 존나 살기 힘들어.”
으득.
이를 악문 스켈레톤 킹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저 마정석들을 미끼로 쓰거나, 아니면 최정예만 선별한 레이드 팀으로 직접 놈을 추적하여 죽이는 수밖에.”
“이야, 세상 참 좋아졌다. 몬스터가 몬스터를 레이드 하자고 주장하는 날이 올 줄이야.”
“방법이 없지 않나!”
방법이라, 글쎄.
나는 최 팀장과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성을 내는 스켈레톤 킹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말문을 뗐다.
“없다고는 안 했는데.”
“뭐?”
“방법이 하나 있긴 해.”
스켈레톤 킹이 반색하며 물었다.
“그게 어떤 방법이지?”
“말하기에 앞서 하나만 알려 줄게. 만약 레이드 팀이 조직되면…… 넌 빠진다.”
“나를 뺀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어지간히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어. 지금으로서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녀석이 아니다. 스켈레톤 킹이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만약 이 몸의 힘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레비아탄과의 전투에서 빼놓겠다?”
“잘 아네.”
“이런 미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쾅! 우직!
고함과 함께 내리친 주먹이 테이블을 산산조각 낸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한 쌍의 눈동자에서 실망과 분노가 읽혔다.
“간악한 인간이여. 내가 널 잘못 본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상관없잖아. 넌 몬스터니까.”
“……뭐?”
“레비아탄을 잡아도, 네 정체가 밝혀지면 끝장이야. 그걸 피하려는 것뿐이고.”
우드득.
스켈레톤 킹의 주먹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상관없다! 저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재앙을 일으킨 레비아탄을……!”
“무엇이든?”
“어?”
됐다. 걸렸다.
난 흐뭇하게 웃으며 스켈레톤 킹을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한다고 했다.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