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4
#753화
남자는 주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 좋은 날씨였다. 20여 시간 전만 하더라도 미친 듯이 요동치던 바다는 잠잠했고, 맑아진 하늘 위에는 갈매기가 무리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아름답군. 이것이 자연인가?’
남자가 지내던 장소는 이렇지 않았다. 멀고도 먼 어딘가에 있는 그곳은 언제나 밤처럼 어두컴컴했고 끔찍한 악취가 풍겼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악취 따위는 맡아 본 적도 없지만,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여하튼 남자는 이 세상이 좋았다.
지금껏 볼 수 없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썩 괜찮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
다시 생각해 보니 그중에서 한 놈. 아니, 두 놈은 빼야 할 것 같다.
남자, 스켈레톤 킹은 문득 몇 시간 전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무엇이든?’
‘어?’
‘뭐든 한다고 했다, 맞지?’
‘어어?’
‘세상에, 이토록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니. 본 대대장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희생정신? 무슨 희생정신?’
‘쉿. 그만. 알아. 네 마음 다 아니까 더 이상은 시치미 떼지 마.’
‘Holy Shit……?’
쎄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다른 인간을 바라봤지만, 그나마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그놈도 한통속인 건 마찬가지였다.
‘저기, 잘생기고 똑똑한 인간아…….’
‘말 걸지 마십시오. 지금은 가슴이 벅차올라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이 개 같은 인간아…….’
‘다시 봤습니다, 미스터 킹.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다니.’
‘아니, 희생한다는 말은 안 했는데 왜 아까부터 자꾸…….’
‘우리 모두 이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멈춰! 왜 다가오는 것이냐!’
이상함을 넘어 위기감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어느새 문을 가로막은 진태경이 한 뭉텅이의 밧줄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 볼래요.’
‘이상한 노래 부르지 마! 손에 든 밧줄 내려 놔!’
‘나 오늘부터 그대를 미끼 삼고 싶어요.’
‘세상에 그딴 가사를 가진 노래가 어디 있어! 개사하지 마!’
‘최 팀장님, 안 붙잡고 뭐 합니까. 나만 나쁜 놈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눈물을 닦느라 잠시.’
‘썩 꺼져어어엇!’
촤아아악! 투두둑!
저 멀리서 몰려온 파도가 작은 통통배의 선미에 부딪힌다.
얼굴에 시원하게 끼얹어진 바닷물로 인해 상념에서 깨어난 스켈레톤 킹이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당연하게도 반항은 무의미했다.
믿고 있던 인간 놈들은 그를 앞뒤로 에워쌌고, 만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진태경은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선언했다.
‘괜한 소란 피우지 마. 순순히 미끼가 된다면 유골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유혈사태 아닙니까?’
‘쟤는 피가 없잖아요.’
‘아.’
‘그래서, 어쩔래?’
어쩌긴 뭘 어쩌겠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건 타짜들에 의해 조작된 주사위였다.
레비아탄보다 먼저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은 스켈레톤 킹은 유골사태를 피하고 순순히 통통배에 올랐다.
사전에 일본 정부에서 제공한 S급 마정석 두 개와 함께.
‘이 거추장스러운 건 치워라. 어차피 나 혼자만으로도 놈이 군침을 흘릴 테니까.’
‘아니지. 넌 삼겹살 먹을 때 쌈장이랑 파채도 없이 먹냐?’
‘……이 몸이 레비아탄에게 먹히는 건 벌써 확정된 거냐?’
‘걱정하지 마. 쌈장에 찍을 때쯤에 구해 줄게.’
‘만약 한입에 삼키면?’
‘와, 진짜 맛있겠다.’
‘……구해 주는 거 맞지?’
‘갑자기 소주 땡기네. 안 그래요, 최 팀장님?’
‘저는 와인이 취향이긴 한데, 확실히 삼겹살에는 소주가 맞습니다.’
‘구해 주는 거…… 정말 확실하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 명의 S급 몬스터와 두 개의 S급 마정석을 실은 통통배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출발했고, 사전에 입력된 GPS를 따라 수백 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무인도 인근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쭉.
깊은 바닷물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대물(大物)이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며.
“이 개 같은 인간 놈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한 스켈레톤 킹은 있지도 않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진짜로 놈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스켈레톤 킹은 레비아탄과의 힘의 격차를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성(理性)조차 없었던 과거의 자신과 달리, 상대는 첫 탄생부터 강대한 마력을 부여받은 포식자. 소위 말해 근본부터가 달랐다.
마계에서는 이른바 ‘72군단장’이라 칭해지는 S급 몬스터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존재가 바로 레비아탄이었으니까.
비록 과거의 위명에 비해 그 힘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한번 마음에 내려앉은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제발 오지 마라…….’
스켈레톤 킹은 이 세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죽어 있는 자신과는 반대로 생기(生氣)를 머금은 자연. 화려하면서도 신기한 문물로 가득한 도시과 눈부신 미모의 인간 여자들.
간혹 어떤 인간들이 보이는 모습들에 환멸이 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괜찮았고, 처음에는 낯설었던 친구라는 단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있어서도 레비아탄에게 먹혀 영양분이 되는 건 사양이었다.
스켈레톤 킹은 한 끼 든든한 삼겹살 정식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아, 제발 같이 좀 살자!’
레비아탄이 나타날까 봐 크게 소리 내어 외칠 수도 없는 현실에 더 서글퍼졌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스켈레톤 킹은 목에 건 쌈장과 파채. 아니, S급 마정석 두 개를 매만지며 바다를 노려봤다.
‘그래,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인간들이 자주 쓰는 말을 마음속으로 뇌까리자,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모를 용기가 솟구쳤다.
심지어 인간들과 달리 자신은 진짜 죽기까지 했다. 남은 건 뼈밖에 없으니 몇 번 씹힌다고 해도 어찌어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빨에 끼기라도 하면 더 좋고.
“와라, 이 괴물아! 이 몸이 상대해 주마!”
그리고 스켈레톤 킹이 용맹한 외침을 토해 낸 바로 그 순간.
찌지지직. 철퍽.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무언가가 그의 정수리와 어깨를 뒤덮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끈적하면서도 새하얀 그것을 문지른 스켈레톤 킹이 인상을 구겼다.
똥.
그것도 따끈따끈한 새똥이었다.
“깃털을 죄다 뽑아 버릴 놈들 같으니.”
작게 으르렁거린 스켈레톤 킹은 고개를 쳐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부턴가 인간을 무료 급식소로 생각하고 통통배를 쫓아다니던 갈매기 무리가 그의 머리 위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똥오줌을 흩뿌리며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는 중이라고 해야 옳았겠지만.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
문득 말꼬리를 흐린 스켈레톤 킹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느새 크게 뜨인 그의 눈동자에, 반대편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날아오는 날짐승들이 보였다.
‘새라고? 저게 전부?’
스켈레톤 킹이 멍하니 입을 벌린 사이, 조류 학자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종이 뒤섞인 수천수만 마리의 새들은 그의 머리를 지나 이미 저 멀리 날아가는 갈매기 무리의 뒤를 쫓았다.
아니, 아니다.
저건…….
‘도망.’
순간 스켈레톤 킹의 뇌리를 가득 채운 그 두 글자와 함께. 고요하던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해저(海底)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울림.
그리고.
촤아아악!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솟구친 삼각파도와 그 안에서 일렁이는 거대한 그림자.
– 그아아아아아!
흉포한 괴성이 필리핀해를 떨어 울린다.
길이만 삼백여 미터에 달하는 신화 속 괴물이, 자그마한 통통배에 차려진 만찬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그 순간.
“23시간 만이다. 이 시벌 새끼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한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세찬 화염이 수분을 증발시키며 쏘아졌다.
퍼걱!
* * *
무림에는 귀식대법(龜息大法)이라는 무공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무공보다는 수법에 가깝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귀식대법으로 호흡과 심장박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체온마저 하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일정 시간 동안 생기(生氣)를 지우는, 괴이한 수법인 데다 뛰어난 공력과 무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림에서도 귀식대법을 익히는 이는 드물었다.
사실 무림인이라는 별종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초식 이름까지 외치며 싸우는 겉멋충들이 득실거리는 마당에 시체 코스프레라니.
그러니 땅이라도 나뒹구는 날에는 나려타곤(懶驢打滾)을 대성했다면서 수치 플레이를 당하는 그 바닥에서, 귀식대법을 익히는 부류는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사파. 낭인.
그리고…….
‘살수(殺手).’
앞서 나열한 두 직업군과 달리 살수라는 놈들은 살면서 한번 보기도 힘든 희귀종이다.
옷깃까지 스쳤다고 해도 살수인 걸 눈치채지 못하고, 만약 눈앞의 상대가 살수인 걸 알아차린다면 이미 어느 정도 좆 된 거다.
그러나 살수를 만나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특히 그 살수의 별호가 살성(殺星)일 경우에는 더더욱.
‘네놈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군. 그렇다고 화왕의 후인씩이나 되는 녀석에게 귀식대법 같은 것을 가르쳐 줄 순 없는 노릇…….’
‘와, 귀식대법!’
‘……?’
‘가르쳐 주세요! 살고 싶어요!’
‘……네놈, 정파 아니냐?’
‘정파는 칼 맞아도 안 뒈집니까?’
‘아니, 그래도 무공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귀식대법! 귀식대법! 생존! 태경그릴스!’
‘알았으니 제발 진정해라. 자꾸 이상한 헛소리 좀 하지 말고.’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
살수계의 리빙 레전드는 대치동 1타 강사 뺨치는 강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몸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지 잘하는 나는 스펀지처럼 그의 가르침을 흡수했으니까.
물론 그때 배운 귀식대법을 무림이 아닌 현대에서 먼저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적어도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퍼걱!
청백색의 화염을 머금은 한 자루의 창이 컴컴한 괴수의 아가리로 빨려 들어간다.
아니, 어느새 다시 자라난 놈의 이빨을 부수고 입천장에 틀어박혔다.
– 크아아아아!
콰드드득!
괴성과 함께 몸부림치는 거대한 동체에 통통배가 수수깡처럼 으스러졌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바라보는 스켈레톤 킹의 뒷덜미를 붙잡고, 침몰 직전의 배를 박차며 솟구쳤다.
쾅!
등 뒤에서 터져나간 파편이 어깨를 스쳤다. 거센 바람이 전신을 스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허공에 우뚝 섰다.
크르르륵.
거친 숨소리. 악어를 닮은 레비아탄의 거대한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진다.
– 네놈. 네놈이 어떻게…….
“아, 그거. 말하자면 길지.”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해 줄 생각도 없고.”
인벤토리 오픈. 소환.
말과 동시에 이루어진 생각과 함께, 나는 손에 들린 창을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