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5
#754화
콰아아아!
초고온의 열기가 공기를 태우고 수분을 증발시키며 나아간다.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한 줄기의 불꽃. 눈을 부릅뜬 레비아탄은 앞서 찾아온 고통조차 잊은 채 몸뚱어리를 비틀었다.
서걱!
뜨겁다. 미사일도 우습게 막아 내는 비늘을 단번에 가르고 들어간 창날은 단순히 스친 것만으로도 수십 킬로그램의 살점을 베어 냈다.
아니, 불살랐다.
치지지지직!
엄습하는 작열통(灼熱痛)에 레비아탄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처음 눈을 뜬 그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바다의 재앙으로 군림한 이 신화 속 괴수에게 있어 불에 의한 통증은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빛살처럼 쾌속한 속도로 자신을 공격해 오는 저 인간만큼이나.
쉬쉬쉬쉭!
언제, 어떻게 쏘아 보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다섯 줄기의 화염이 쏘아졌고, 레비아탄의 머릿속에는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위험!’
고통으로 굳어 있던 거대한 몸뚱어리가 황급히 뒤틀렸다.
아슬아슬하게 화염이 서린 창들을 피해 낸 레비아탄이 마력을 일으켰다.
구구궁!
사방을 짓누르는 강대한 힘.
비록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나, 마력의 질과 양은 하루 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력을 한껏 머금은 채 솟구친 파도가 레비아탄의 의지에 응하여 바람 없이도 나아갔다.
감히 바다의 지배자에게 덤벼든 한 인간을 향해.
그리고 하찮은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 동족마저 공격하는 변절자를 향해.
콰아아아아!
반경 수백 미터를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희미한 빛조차 스며들지 않은 어두컴컴한 파도 속에서 마력이 회오리쳤다.
“젠장, 나 맛없다니까…….”
스켈레톤 킹이 아연히 중얼거린 그 순간.
“꺼져라.”
다물어진 잇새 사이로 흘러나온 나지막한 음성. 그와 동시에 인간은, 진태경은 화염에 휩싸인 주먹을 뻗었다.
퍼엉!
멸염신권(滅炎神拳).
허공을 격하고 터져 나온 청백색의 화염이 파도의 중심을 찢어발겼다.
힘없이 허물어지는 물보라 사이를 뚫고 쇄도하는 자그마한 인영(人影)에, 레비아탄은 분노 어린 괴성을 토해 냈다.
– 노오오옴!
촤아아악!
사방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진태경의 전신을 향해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항공모함을 꿰뚫고도 남을 위력. 한낱 인간이라면 말할 가치조차 없다.
상대가 정말 한낱 인간이라면.
쉬릭.
공기가 사라졌다. 바람이 갈라졌다.
앞서 레비아탄을 향해 쏘아 보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은빛 창날의 끝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륵, 서걱!
검은 바다 위로 그어진 푸른 선.
마치 용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나아간 청백색의 불꽃이 송곳처럼 들이닥친 물줄기를 불살랐다.
다시 한번 허공을 밟으며 속도를 더한 진태경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이…….’
평소와 다르다.
오늘따라 손발이 무거웠고, 속도도 예전만 못했으며, 공력의 소모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빨랐다.
‘빌어먹을 디버프.’
[망가진 신체]가 전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대폭 하락하면서 커다란 공백이 생긴 신체가 머리에서 전달된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흔들리는 신형. 그러나 진태경은 신음을 삼키며 뒤이어 날아든 공격을 피했다.
퍼퍼퍼펑!
시야를 뒤덮으며 쇄도해 오는, 수백여 개에 달하는 물의 구(球).
마법사들이 워터 볼(Water Ball)이라 이름 붙인 공격 마법과 닮았지만, 저것들에 담긴 위력은 워터 볼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쯤은 진태경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물러서는 순간, 다시 한번 눈앞의 괴물을 놓칠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함께.
후우웅.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창신(槍身)이 몸을 떨었다. 사그라질 듯하던 화염이 거칠게 솟아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한껏 뒤로 젖혀진 신병이기를, 진태경은 비스듬히 내리그었다.
화룡신창 이 초식.
천격(天格).
화아아악!
눈부신 섬광이 어느덧 근방을 뒤덮은 어둠을 밝힌다.
사방에 가득한 물의 구를 증발시키며 떨어져 내리는 겁화가 괴물의 거대한 눈동자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였다.
–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레비아탄은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그그그긍.
바다가 요동치고 머리 위로 드리운 먹구름이 울음소리를 토해 낸다.
레비아탄의 몸뚱어리를 방패처럼 감싼 마력의 막(膜)과 창날이 맞닿은 그 순간. 검게 물든 하늘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뜩였다.
감히 신화에 맞선 한 인간을 향해.
화악!
느려진 세상 속, 수십 줄기의 낙뢰(落雷)가 아득한 상공으로부터 내리꽂혔다.
나올 때는 수십이었으나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로 뭉쳐진 그 파괴적인 자연의 힘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한 곳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츠츠츠츠!
“끄아아아아악!”
순간 바다를 물들인 무수한 섬광과 끔찍한 고통에 찬 비명.
전력을 다한 마력으로 창날을 막아 내고 있던 레비아탄의 마음에 환희가 차올랐다.
‘역시!’
무려 수십억 볼트에 이르는 전압(電壓)이다.
상대가 제아무리 강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로 뭉쳐진 저 낙뢰의 기둥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할 수는 없었…….
‘뭐지?’
레비아탄의 거대한 눈동자가 깜빡였다.
서서히 사그라지는 섬광 너머, 지금쯤 낙뢰에 직격당하여 살이 타오르고 뼈가 바스러졌어야 할 인간이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이 와중에도 약간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말까지 건넨다.
“그, 쟤가 원래 겁이 많아.”
– ……?
“야, 그만 좀 해라. 너 그걸로는 안 죽어.”
뭐?
레비아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진태경의 어깨너머,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한 존재가 괴물의 동공에 비쳤다.
“끄아아아아…….”
서서히 볼륨이 줄어드는 비명.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신의 몸을 슬쩍 둘러본 스켈레톤 킹이 머쓱한 얼굴로 들고 있던 검을 내렸다.
“아, 맞네. 나 해골이지.”
“타이밍 좋았다. 피뢰침 전략 굿.”
“이건 그냥 도와주려고 뽑은…… 아니, 역시 내 전략을 정확히 파악했군. 제법이야.”
– ……!
도대체 뭐지 이 새끼들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레비아탄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그 찰나의 방심은, 물 샐 틈 없이 견고하던 마력의 흐름을 헝클어트리기에 충분했다.
콰직!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균열.
그러나 그것은 진태경이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틈이었고, 창날에 깃든 화염은 흔들리는 마력을 부수며 목표를 향해 내리꽂혔다.
푸푹!
창날의 끝에서 비늘이 산산이 부서진다. 살과 뼈가 타오르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레비아탄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 크아아아아아!
쿠궁. 콰아아아아!
미친 듯이 요동치는 거체.
하지만 진태경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괴물의 피부 곳곳에 난 작은 뿔들을 붙잡은 채,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쥔 창에 힘을 더했다.
푸우우욱!
자그마치 2m에 달하는 창신이 레비아탄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거대한 머리 덕에 죽음은 피할 수 있었으나 지금껏 겪어 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던 격통에 몸과 정신을 지배당한 신화 속 괴물은 괴성을 내질렀다.
– 노오오오옴!
스아아아아!
끔찍하리만치 강력한 피어(Fear)가 레비아탄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깊은 수심에서 웅크리고 있던 해양 생물들이 눈깔을 까뒤집으며 떠올랐고, 곧 들이닥칠 위험을 예견하고 저 멀리 도망치던 무수히 많은 새가 추락했다.
지금 이 순간, 레비아탄은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죽인다. 반드시!’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 준 저 인간 놈과 동족을 배신한 변절자에게 가장 처참한 죽음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레비아탄을 지배하고 있는 고통과 분노라는 감정 속에서,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루 전 자신에게 이토록 큰 상처를 입힌 것으로도 모자라, 이목마저 속여 가며 함정으로 끌어들인 놈들이다.
특히 저 인간, 감히 자신의 머리에 무기를 박아 넣은 저 작은 생물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강하다. 내가 지금껏 봐 왔던 어느 인간보다.’
대격변 당시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레비아탄은 다섯 개의 대양을 누비며 수많은 목숨을 바다 깊숙이 수장시켰고,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인간들조차 그를 사냥하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했으니까.
아니, 사냥하는 쪽은 언제나 레비아탄이었다.
그는 지배자로 태어났고 포식자로 살았다.
이 드넓은 바다에서 그는 언제나 포식자였고, 인간은 한 입거리도 되지 않는 사냥감이었다.
아득한 생애를 반추해도, 레비아탄을 굴복시킨 것은 한 존재뿐이었다.
그가 충성을 맹세한 주인.
마왕 아스모데우스.
– ……!
순간, 고통과 분노에 물들어 있던 레비아탄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설마, 이놈이?’
분명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토록 강대했던 자신의 주인에게 대적한 어느 인간에 대해서.
비록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그 인간은 무수히 많은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자신의 힘을 입증했었다. 마왕 아스모데우스라는 거대한 이름을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정말 이 인간이…….’
틀림없다. 이토록 강한 인간이 둘일 리가 없다.
레비아탄은 오해는 두려움이 되어 부풀어 올랐다.
어느샌가 분노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최대한 멀리. 이놈을 피해서!’
분노? 투쟁심(鬪爭心)?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주인으로 섬겼던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쓰러트렸다면, 자신의 운명 역시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 그어어어어!
레비아탄은 크게 울부짖으며 몸을 털었다.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변한 그것은 어느 때보다 격렬했으나, 거대한 몸뚱어리에 이미 둥지를 튼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닥쳐. 닥쳐. 안 닥쳐?”
빡! 빡! 빡!
피가 튀고 살이 뭉개졌다. 엄청난 악력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비늘이 배추처럼 뽑혀 나갔고, 주먹 끝에 실린 화염은 살과 뼈를 으스러트렸다.
퍽, 콰직!
– 커헉. 컥.
연이어 들이닥치는 고통에 레비아탄은 까무러칠 것 같았다.
도무지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힘. 결국 그에게 남은 길은 한 곳밖에 없었다.
심해(深海).
레비아탄이 처음으로 눈을 뜬 그곳. 그리고 어떤 적도 침범할 수 없었던 바다 깊숙한 미지의 영역.
그곳에 다다르면, 이 끈질기고 무서운 인간도 떨어져 나가리라.
콰륵!
물보라가 솟구친다. 얕은 수심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간 레비아탄은 깊숙이 헤엄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웃고 있는 인간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짐작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제야 좀 같이 싸우겠네.”
뭐?
한 줄기 의문이 뇌리를 스친 그때.
솨아아아악!
무저갱처럼 컴컴한 바닷물 깊숙한 곳에서, 무수히 많은 무언가가 하나로 뭉쳐 레비아탄의 앞을 가로막았다.
뼈.
그것은 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