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6
#755화
스켈레톤 킹의 존재는 마검(魔劍)과 같다.
어떤 것도 베어 낼 수 있을 만큼 예리한 날과 뛰어난 살상력을 지녔지만, 검집에 넣어 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꼭 필요할 때만 뽑아 휘둘러야 하는 마검.
그런 의미에서, 온 사방이 어둠에 잠식된 깊은 바닷속은 실로 최적의 장소였다.
솨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휘몰아치는 뼈의 파도.
수백,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축적되었을 해양 생물들의 사체가 한 존재의 부름을 받고 깨어난다.
눈을 뜸과 동시에 혼백(魂魄)을 사슬처럼 옭아맨 명령을 따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무수히 많은 뼈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득, 촤르르륵!
잇고, 뭉치고, 비로소 완성해 낸다.
심해의 입구를 틀어막은 거대한 뼈의 관문을. 일체의 숨결도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망령의 방패를.
그리고 이 경이로운 현상의 중심에, 해저 깊숙이 잠들어 있던 망령들을 일으켜 세운 왕이 있었다.
– 멈춰라.
화아아악.
거대한 기운이 부풀어 올랐다.
눈부신 금발이 물결을 따라 흔들린다. 훤히 드러난 이마 위로 희미한 은빛 광휘가 떠올라 하나의 형태를 갖추었다.
왕관.
그것은 스스로 왕좌에 오른 존재에게 허락된 징표였고, 마력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찬란히 빛나는 힘이었다.
– 어명(御名)이다.
위엄 어린 음성과 오만한 눈빛.
빛나는 금안(金眼)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 레비아탄은 감히 동족을 배신한 변절자의 진정한 정체를 깨달았다.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망령들의 왕.
마왕 아스모데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72군단의 주인 중 하나이자,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불사(不死)의 군단을 이끌며 인간들과 맞서 싸우다 소멸을 맞이한 존재.
그러나 놈은, 어느새 눈부신 왕관을 쓴 채 앞길을 막아선 저 변절자는 레비아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스켈레톤 킹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소멸이 있으면 탄생도 있는 법.
공석이 되어 버린 왕좌에 또 다른 누군가가 앉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나, 새롭게 즉위한 망령들의 왕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 어찌 그만한 마력을 지니고도 인간 따위의 편에 선단 말이냐!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괴성.
직경만 수백 미터에 이르는 레비아탄의 거체(巨體)가 빛살처럼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사방에서 회오리치는 거센 와류.
새하얀 뼈의 장벽을 향해 나아가는 레비아탄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니, 그 외에는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반드시 뚫어야 한다. 앞을 가로막은 저 벽을 넘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면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은 심해에서 처음 눈을 뜬 존재.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그 칠흑 같은 공간에서라면 충분히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적어도 레비아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찾아온 격통을 느끼기 전까지는.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 아직 정산도 안 끝났는데.”
퍼걱!
– 크아아아아!
순간, 빛살처럼 쏘아지던 레비아탄의 거체가 용틀임했다.
한 손으로 괴물의 미간 깊숙이 박아 넣은 창대를 단단히 틀어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검을 거대한 눈동자에 쑤셔 박은 진태경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한 명당 한 방으로 치면 3박 4일은 걸릴 테니까, 깔끔하게 천 명으로 계산하자.”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밝혀진 사상자만 무려 10만 이상.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들이었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레비아탄을 응시하는 진태경의 눈동자는 차가운 분노로 달구어져 있었다.
“핏값은 돌려받아야지, 안 그래?”
몬스터와 인간. 인간과 몬스터.
이것은 삼십여 년 전,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
한때 소년이었던 청년은 어느 날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자신의 아버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재앙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의 아픔도 함께.
‘인벤토리 오픈. 소환.’
창, 검, 도끼.
뭐든 상관없다.
틈날 때마다 인벤토리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수많은 무기들이 스치듯 손아귀에 잡혔고, 찰나의 순간 표적을 향해 내리꽂혔다.
푸푸푸푹! 퍼걱!
비늘이 박살 나고, 뼈와 살점이 으스러진다.
평소와 같은 세밀한 공력의 운용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평생 바다의 재앙으로 군림해 왔던 신화 속 괴물은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끔찍한 격통에 몸부림쳤다.
– 끄아아아아아!
구구구궁!
레비아탄을 중심으로 발산된 마력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파도에 휩쓸려 떠밀려 온 해양 생물들이 막강한 피어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고, 뒤이어 한 존재의 나직한 음성이 죽은 육신에 새로운 혼백을 불어넣었다.
– 일어나라.
서서히 가라앉던 대왕고래의 지느러미가 꿈틀거린다. 불과 몇 시간 전 괴물의 한 끼 식사로 몸뚱어리가 토막 났던 수십 마리의 철갑상어가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냈다.
– 구우우웅.
– 그그그극.
죽었으나, 죽지 않은 존재들.
비로소 하나의 군단으로 거듭난 무수한 해양 생물들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들을 깨운 망령들의 왕이 있었다.
– 군단이여!
콰드드득!
스켈레톤 킹의 부르짖음과 함께 뼈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아니,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물로 화하여 레비아탄을 향해 돌격했다.
콰아아아아!
온통 녹색 핏빛으로 물든 시야 너머, 자신을 향해 한몸이 되어 달려드는 스켈레톤 군단을 본 레비아탄이 울부짖었다.
– 감히! 이 잡스러운 것들 따위가!
고오오옹. 퍼엉!
깊은 수심 속, 압축된 바닷물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수백에 이르는 파동이 무수한 뼈를 부수고 깨트렸다.
그러나 바다의 재앙으로 군림하는 레비아탄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이 드넓은 대양은 오롯이 그의 것이되, 파도에 뒤섞여 흐르고 있는 무수한 죽음과 망령들은 오직 왕관의 주인을 따랐으니까.
– 눈을 떠라.
스켈레톤 킹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이 꿈틀거렸다.
휘몰아치는 와류 사이로 소멸해 가던 망령들이 고개를 들었다.
– 레이즈 스켈레톤(Raise Skeleton).
촤르르르륵!
레비아탄은 진태경에 의해 반쯤 뭉개진 눈을 크게 떴다.
– ……!
파동에 휩쓸려 사라졌던 뼈들이 다시금 모여든다.
부서진 뼈마디를 재조립하고, 또 다른 형태로 변모한 그것들이 레비아탄의 거체에 달라붙었다.
균열이 간 힘의 틈새로 스며들어 아직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은 괴물의 마력을 거머리처럼 빨아들였다.
스아아아악!
‘이런 미친……!’
레비아탄은 경악했다. 과거의 스켈레톤 킹조차 이토록 쉽고 빠르게 군단을 재구성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저 풍부한 마력은, 명백한 상위 몬스터인 자신을 공격하게끔 만드는 이 말도 안 되는 지배력은 뭐란 말인가.
게다가…….
‘내 마력에 의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몬스터 간의 관계는 오직 철저한 힘의 논리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스켈레톤 킹은, 새롭게 망령들의 왕좌에 오른 저 변절자는 달랐다.
비록 두려움은 품었을지언정 레비아탄의 마력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수심이 깊은 곳으로 들어오자 오히려 마음껏 날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약 레비아탄이 과거의 힘을 온전히 회복했거나, 혹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더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스켈레톤 킹이 지닌 힘이 일반적인 마력과 전혀 다른 성질을 띠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S급 몬스터 중에서도 네임드로 꼽히던 아크 리치와 베히모스를 쓰러트리며 상당한 마력을 흡수한 스켈레톤 킹의 격은, 자신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의 레비아탄은 달랐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지 불과 며칠 만에 큰 상처를 입고 지쳐 있던 신화 속 괴물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믿을 수 없이 혼란스럽게만 느껴졌다.
아주 잠깐이나마 자신에게 들이닥친 현실을 잊을 만큼.
그리고 레비아탄의 흐릿한 정신을 일깨운 것은, 뒤이어 찾아온 끔찍한 작열통(灼熱痛)이었다.
화륵. 치지지직!
레비아탄은 이미 절반이나 빠져 버린 이빨을 악물었다.
대격변 당시에도 헌터라 불리는 수많은 인간들과 전투를 치렀지만 이런 고통은 느껴 본 적 없었다.
오러가 서린 날붙이에 베여도 그저 미약한 통증에 그쳤고, 가장 큰 부상이라 해 봤자 다른 몬스터의 마력을 흡수하고 쉬면 금세 나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거대한 머리를 들쑤시며 살점과 뼈를 재로 만들고 있는 화염은, 저 자그마한 인간은 달랐다.
“오십. 오십일. 오십이. 오십삼…….”
푸푸푸푹!
지금껏 상대했던 인간들과는 질이 다르다. 아니, 격이 다르다.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무기를 곳곳에 박아 넣고 들쑤신다. 중얼거리는 말에서는 몬스터조차 범접할 수 없는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벌써 절반 왔다.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회원님, 한 세트만 더.”
“움직이지 말고 딱 대라. 뼈 나간다.”
“물론 안 움직여도 나간다. 지금보다 더 아프게 죽고 싶으면 지랄해 봐, 어디.”
그아아아아아!
레비아탄은 괴성을 내질렀다.
아니, 그것은 괴성이 아닌 비명이었다.
한때 다섯 개의 대양을 넘어 대륙의 해안까지 떨게 했던 피어(Fear)는, 말 그대로 공포가 되어 레비아탄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것도 그에 비해 한없이 작은 한 인간에 의해서.
‘죽어? 죽는다고? 내가?’
일평생 포식자로 살아오며 잊고 있던 생존 본능이 깨어난다.
이미 주위를 제대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뭉개진 눈동자와 시시각각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몸뚱어리.
그만큼 점점 무뎌지는 고통 속에서 레비아탄은 빠르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판단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려 놈들을 떼어 내고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다행히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다.
끈질긴 생명력과 아직 절반밖에 소모하지 않은 마력. 게다가 적들 역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특히 하루 전, 엄청난 위력의 일격으로 자신에게 극심한 타격을 안겼던 저 인간은 더더욱.
‘그때와 같은 힘을 보일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고도 남았겠지. 놈에게도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레비아탄은 높은 지능을 지닌 고등 몬스터였다. 교활할 만큼 그 판단은 정확했고, 목숨을 건 결단은 신속했다.
– 콰우우우우!
직경만 수백여 미터에 이르는 거체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마력을 발산한다. 거대한 기운이 부풀어 오르듯 뻗어 나가며 주위의 모든 것을 밀어 냈다.
콰아아아!
엄청난 수압(水壓)과 함께 생겨난 수십여 개의 회오리.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마력을 흡수하던 스켈레톤들을 단번에 떨쳐 낸 레비아탄은 한 방향을 향해 돌진했다.
후우우우웅!
거대한 몸뚱어리를 타고 흐른 물살이 거센 와류가 되어 휘몰아친다.
간발의 차로 레비아탄을 놓친 스켈레톤 킹이 비명처럼 외쳤다.
– 인간! 피해라!
이미 늦었다.
그 말을 속으로 삼킨 레비아탄은 온 힘을 다해 쏘아져 갔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해저 깊숙이 뿌리내린 절벽을 향해.
이 지긋지긋한 인간을 떼어 내기 위해.
그리고 다음 순간.
구구구구궁!
엄청난 파동이 충돌과 함께 바다를 뒤흔들었다.
* * *
피하려고 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전투의 열기에 휩쓸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어떤 종류의 힘에는, 유통 기한이 있다는 것을.
삐빅.
– [수상 구조대원]의 칭호 유지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 [수상 구조대원]의 칭호 효과가 사라집니다!
– [수상 구조대원의 물갈퀴]가 사라집니다!
– [수상 구조대원의 아가미]가 사라집니다!
– [6일 23시간 59초] 후 재발동이 가능합니다!
빌어먹을.
그 외마디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녹색 이끼와 해조류에 뒤덮인 거대한 바위가 내 등 뒤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콰드득!
“커헉!”
강렬한 충격. 그리고 통증이 전신을 쥐어짠다.
순간 새하얗게 물든 시야 속, 충돌의 여파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음에도 비틀거리며 수면 위로 도망치는 레비아탄의 뒷모습이 보였다.
반쯤 토막 난 상어를 타고 그 뒤를 쫓는 스켈레톤 킹의 모습도 함께.
촤르르륵!
본 바인딩(Bone Binding).
물살을 가로지르며 뻗어 나간 뼈의 그물이 거대한 동체를 가로막았지만, 필사(必死)의 의지를 담아 몸부림치는 괴물을 묶어 둘 수는 없었다.
콰직!
산산조각 나며 흩어지는 뼛조각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나는 전신을 짓누르는 수압을 이겨 내며 창대를 쥔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까드드득.
어둡고 차가운 바닷물이 입과 코를 향해 스며들었지만, 괜찮다.
날카롭게 벼려진 오감(五感)은 아직 표적을 향하고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투명한 창날에 서린 청백색의 겁화도. 올올히 피어 오른 근육도 저 멀리 도망치는 거대한 괴물의 몸뚱어리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스으으윽.
전신의 감각이 곤두선다.
하루 전과 같은 상황,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두 번은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필살(必殺)의 의지를 실어, 나는 온 힘을 다해 창을 쏘아 보냈다.
슈확!
바다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불꽃. 그 끝에, 기다리던 비명이 있었다.
– 그아아아아아!
사냥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