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8
#757화
28시간.
그것이 우리가 일본에 머물렀던 시간은 그게 전부였다.
아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인터뷰나 기자회견에 매번 응했더라면 28시간이 아니라 28일이었어도 부족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 설 생각도 딱히 없었다. 최 팀장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결국 마음을 돌렸다.
젊을 적부터 미친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관종 기질을 타고난 고이즈미 총리는 내 결정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리고, 기자 회견장에 들어선 나를 가장 처음 반긴 것은 사람들의 함성과 무수한 플래시 세례였다.
“와아아아아!”
파파파팡!
희한한 일이다.
일련의 상황이 벌어진 것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내게는 모든 것이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의 의지로 기자들 앞에 선 것도. 지금처럼 언론이 내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내게는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디선가는 또 다른 불길이 솟구치고 있을 테니까.
“빨리 끝냅시다.”
하지만 이 자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일본 언론은 만만치 않았다. 그것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진 사마! 부디 일본의 쇼군이 되어주십시오! 당신만이 이 열도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기자의 질문, 아니 외침에 내가 대답했다.
“끌어내세요.”
회견장 경호를 맡은 자위대가 기자의 양팔을 붙들었다.
질질 끌려 나가는 그의 손에서 툭 떨어진 마이크를 또 다른 일본 기자가 잽싸게 주워들었다.
“레루비아탄은 우리 일본 국민들로부터 스사노오라 불릴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태경 사마께서는 놈을 어렵지 않게 처치하셨지요.”
뭔 소리야. 존나 어려웠는데.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쉬운 싸움은 아니었지만, 레비아탄에 의해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아……!”
“이 자리를 빌어 유가족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개를 숙이자 많은 기자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른거린다. 눈가를 소매로 훔친 일본인 기자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래는 안 된다. 이 자리에서는 일문일답(一問一答)이 원칙이고, 나는 이 기자회견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앞서 좋은 질문을 한 눈앞의 기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씀하세요.”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를 아십니까?”
“예? 어디 테라스요?”
“진지하게 묻겠습니다. 스사노오를 쓰러트린 진태경 사마께서는, 혹시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의 환생입니까?”
“아니, 씨벌 진짜…….”
대기 중이던 자위대가 우르르 달려들어 기자의 입을 막고 마이크를 뺏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아있던 일본인 기자들이 정상적인 질문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좋아하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 개만 꼽아 주신다면…… 읍읍!”
국뽕도 좋지만 이 정도면 정말 미친 새끼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압 후 끌려 나가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빠른 정면 돌파를 택했다.
“평소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섬. 다음.”
“우리 일본은 대대로 평화와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로서…….”
“왜구,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강점기, 세계 2차대전. 다음.”
“본국의 S급 헌터 야마모토 겐지가 개인적인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만약 그와 합동 작전을 펼쳤다면 훨씬 쉽게 레루비아탄을 레이드할 수 있었을 거라 주장하던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럼 지가 늦지 않게 오든가. 다음.”
“아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건 야마모토 상에게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기자가…… 말대꾸?”
“……!”
나는 십만 대군 속 조자룡처럼 기자 회견장을 누볐다.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지 싶은 수준의 병신도 많았지만, 그에 비례해 날카로운 질문도 적지 않게 날아들었다.
이를테면 내가 아닌 스켈레톤 킹에 관하여.
그리고 레이드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폭발과 함께 사라진 레비아탄의 사체, 일본 정부에서 내어주었던 S급 마정석 두 개의 행방 등등이 그랬다.
만약 최 팀장이 이런 질문들을 예측해 두지 않았다면 약간 버벅거렸을지도 모른다.
“스켈, 아니 스톤 킹은 훌륭한 헌터이며 이번 레이드에서도 매우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피로로 인해 동석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레이드 과정은 기밀이라 밝힐 수 없습니다.”
“사체는 애석하게도 소멸했습니다. 레비아탄을 유인하는 미끼로 이용한 S급 마정석 역시 그 과정에서 소실되었고요. 이에 대하여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아…….”
“그런 일이…….”
상위 몬스터의 사체는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
레비아탄의 사체가 사라진 것도 크나큰 손실이지만, 일본 정부가 소유하고 있던 S급 마정석의 소실은 기자들의 탄식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저게 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탄식은 분노로 뒤바뀌겠지만.
‘최 팀장 저 양반은 이제 연기해도 되겠네.’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을 끝마친 최 팀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레비아탄의 사체? 마정석?
당연히 전부 다 챙겼다. 세상 어디보다 안전하고 은밀한 장소. 바로 내 인벤토리 안에.
항공모함으로 레비아탄의 사체를 이양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일어난 마력 폭발은 스켈레톤 킹의 솜씨였고, 나는 그 틈을 타 잽싸게 인벤토리에 모든 걸 쑤셔 넣었다.
그리고 해상 자위대의 선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망연자실했다.
‘살짝 미안하긴 한데…….’
뭐 어쩌겠나. 레비아탄의 사체는 원래 내 몫이고, 일본 정부 측에서 내어준 S급 마정석은 장기 대여한 셈쳐야지.
천하의 명검(名劍)도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식칼에 불과한 법. 지금은 양심을 팔아서라도 이렇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격변.’
대부분이 물음표로 가득한, 그래서 마음을 짓누르는 저 의문투성이의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 * *
대격변 당시에도, 그리고 종전 후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레비아탄이라는 괴물이 가진 상징성과 무게감은 엄청났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일본을 향해 모든 이목이 쏠릴 만큼.
그리고 서서히 빛바래 가던 젊은 영웅의 이름을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각인시킬 만큼.
[대마도사 매직 존슨, “나는 마법사지만, Jin은 마법 그 자체다.”] [펠릭스 왕자, “그가 지닌 고귀함은,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다.”] [S급 헌터 파이 첸, 홍콩 중심가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 진압 후 기자들을 향해, “Free Hong Kong, Great Jin.”] [그가 돌아왔다.] [수많은 비난에도 빛을 잃지 않은 아시아의 별. 아니 세계의 별.] [목숨을 건 바다에서의 사투. 희망이 재앙을 이기다.] [영웅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뒤바꾼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 공포에 사로잡혀 판단력을 상실했던 대중들.] [北美 최대 언론협회장, 거센 비난 여론에 마침내 입을 열다. “우린 항상 사실만을 전달했다. 진태경을 저격했다는 것은 악성 루머에 불과하다.”]전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언론 매체가 가장 먼저 자세를 고쳤다.
처음부터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던, 혹은 진태경을 지지하던 언론인들은 레비아탄의 죽음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지만, 이미 오딘 길드와 손잡은 이들은 쉽게 노선을 틀 수 없었다.
변덕스러운 대중들에 의해 단번에 뒤집힌 여론은 분명 경계할 만한 대상이었으나, 미카엘 실베르트는 경계를 넘어 두려운 존재였기에.
그러나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대중들은 서서히 언론의 선동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시몬. 왜 아직도 사무실에 남아 있지? 오늘 광장에 진태경 반대 시위 취재하러 간 것 아니었나?”
“그, 시위가 취소됐는데요.”
“뭐?”
“시위 참여자 대부분이 이탈했답니다. 기존에 예상했던 인원만 3만 명이었는데, 500명도 안 남게 되자 자연스럽게 해산됐어요.”
“아니, 그 정도 대규모 시위가 어떻게 그리 쉽게…… 젠장. 됐어. 그럼 시위 주도자는? 당장 한국에 폭탄이라도 던질 것처럼 굴던 놈 있잖아. 대니얼이랬나?”
“아, 다이스케요?”
“그래, 그놈한테 대대적으로 보도해 줄 테니까 당장 사람들 좀 끌어모으라고 전달-”
기자를 닦달하던 보도국장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다이스케는 또 누구야? 지금은 대니얼 얘기 중이잖나.”
“예. 대니얼 맞는데요. 대니얼 다이스케. 이번 시위 주도자 풀 네임이에요.”
“……설마?”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돼서 유감이지만, 바로 그 설마가 맞아요, 보스.”
짐짓 한숨을 내쉰 기자는 자신의 상관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다이스케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이번 시위 주도자는 일본계다.
둘째.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로를 싫어하는 건 만유인력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에 가깝다. 대니얼 다이스케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번 시위대를 조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셋째. 진태경이 일본을 구했고, 극진한 효자인 대니얼 다이스케의 어머니는 도쿄 출신 일본인이다.
“어머니의 고향을 구원한 영웅, 이를테면 뭐 그렇게 된 거죠.”
오직 팩트로만 이루어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에, 침묵을 지키던 보도국장은 짧은 단어로 답을 대신했다.
“Fuck.”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록 시위가 취소된 것이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약간의 편파 보도만으로 막대한 투자를 약속한 ‘익명의 후원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젠장. 경영진이 지랄하겠군.’
그리고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의 눈에, 무음으로 재생되고 있던 TV 화면이 들어왔다.
[속보) 베를린 마력 수치 폭등. 몬스터 웨이브 발생 유력.] [독일 정부, 2급 재난 경보 발령.] [마쿠스 독일 총리 긴급 발표. 한국에 정식 지원 요청.]또 몬스터 웨이브라니.
보도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기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당장 베를린으로 안 튀어 가고.”
* * *
“진태경 씨. 독일 정부 측에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최 팀장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겠습니다.”
채 가시지 않은 전투의 피로와 [망가진 신체]의 디버프가 아직 남아있지만,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바로 준비할게요.”
그리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 순간. 최 팀장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미카엘 실베르트에게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