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59
#758화
“동시에…… 미카엘 실베르트에게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최 팀장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이름.
미카엘 실베르트.
순간 멈칫했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사방에 손을 뻗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지금의 독일 정부는 곧 들이닥칠 재앙을 감지했고, 자신들을 구해 줄 최고의 안전 요원을 목놓아 불렀을 뿐이다.
나, 그리고 미카엘 실베르트를.
“그 칙칙하고 불쾌한 인간 놈 말이냐?”
스켈레톤 킹이 께름칙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놈이랑 마주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은데.”
“이 자리에 그러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어.”
내 대꾸에 녀석은 입맛을 다셨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 인간은 정말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느낌이 영……. 아니, 됐다. 여하튼 그놈들보다는 우리가 일찍 도착해야겠군.”
이건 누가 더 많은 인명을 구하는지 겨루는 스포츠 따위가 아니었지만, 스켈레톤 킹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누구도 놈을 막지 못해.’
철저하게 조작된 이 재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가 뭐라 해도 미카엘 실베르트다.
오딘 길드는 첫 테러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10회가 넘는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했고, 미카엘 실베르트는 그중 대부분의 전투에서 S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엄청난 전공을 세워 환호를 받았다.
잠시나마 사람들로부터 천태민이라는 이름을 잊게 할 정도로.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어떻게든.’
나는 미카엘 실베르트가 원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런 괴물이 이대로 무소불위의 명성과 권력을 손에 넣는다면, 천태민과 같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반열에 도달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재앙이 일어나리라는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최 팀장님.”
내 부름의 의미를 이해한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파일럿들이 대기 중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
나와 최 팀장, 그리고 스켈레톤 킹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항공기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현재 독일 쪽 상황은요?”
“뮌헨을 중심으로 2급 재난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독일 정부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늦어도 다섯 시간 안에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겁니다.”
“정부가 말하는 맥시멈이 다섯 시간이라는 건…….”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죠.”
불행 앞에서 희망 회로를 돌리는 건 만국 공통이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정부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당장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정부가 “우린 좆 됐습니다.”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뮌헨이라는 대도시가 단숨에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릴 테니까.
“빌어먹을.”
“다행히도 지금까지의 대처는 훌륭한 편입니다. 파리 지부 테러 사건 이후로 전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2급 재난 경보 발령 이후 지금까지 삼천 명이 넘는 헌터가 뮌헨에 집결했습니다. 저희 아레스 길드도 그중 하나고요.”
“그나마 낫군. 그럼 오딘, 아니 그 인간은?”
스켈레톤 킹의 물음에 최 팀장이 대답했다.
“물론 뮌헨에도 오딘 길드 지부의 헌터들이 대기 중이지만…… 미카엘 실베르트가 이끄는 핵심 전력은 현재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아프리카?”
“예.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남아공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하고 있다더군요. 그곳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즉시 뮌헨으로 향할 겁니다.”
“팔자 좋은 인간이군. 우선 여기저기 일을 벌여 놓고 차례대로 수습하겠다 이건가?”
스켈레톤 킹이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냐.”
“응?”
“애초에 계산에 들어 있던 거라면 지금쯤 뮌헨으로 출발했겠지. 그러니까 적어도 뮌헨에서의 일은, 놈의 손이 닿은 테러가 아니었던 거야.”
“맞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거고요.”
“그게 왜 더 위험하지? 놈의 의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흐려지는 말꼬리.
나와 최 팀장이 주고받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던 스켈레톤 킹의 얼굴이 굳었다.
“아.”
녀석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다.
이번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얼마나 거대한 위험과 불안감을 품고 있는지.
‘이제는 인위적인 테러가 아니어도, 몬스터 웨이브가 자연히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평화가 찾아온 이후에도 몬스터 웨이브 현상은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점은, ‘아주 가끔’이었던 재앙의 빈도가 ‘종종’ 혹은 ‘자주’라는 단어로 교체될 만한 수준에 다다랐다는 사실이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핏물이 강이 되어 흐르던 그 시절을 인류로 하여금 떠올리게 할 만큼.
대격변(大激變).
인류는 그 참혹했던 과거를 저 세 글자에 담아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부터 시작될,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 새로운 재앙의 시대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그리고…….
내게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 준 이 시스템은, 도대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퀘스트창 오픈.’
띠링.
퀘스트
[격변]어느덧 새로운 시대는 눈앞까지 다가왔고, 이 길고도 치열한 이야기의 마지막 단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희망. 혹은 절망.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펜을 쥔 유일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무운(武運)을 빕니다.
등급 : 메인 퀘스트
제한 : 진태경
임무 : ???
보상 : ???
실패 : ???
정확한 답이 없는 퀘스트 설명과 물음표로 채워진 임무.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바로 퀘스트 등급에 적힌 짤막한 한 줄이었다.
아프도록 눈을 파고드는 저 다섯 글자.
‘메인 퀘스트(Main Quest).’
나는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퀘스트를 받았다.
가장 쉬운 삼류부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초절정에 이르기까지. 난이도에 따라 등급도 달랐고 돌발 퀘스트와 같은 종류도 있었다.
하지만…… 메인 퀘스트는 처음이다.
정확히는, 처음으로 무림이라는 낯선 세상에서 눈을 떴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날 이후로.
‘이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임무가 뭔지는 모른다. 곧 다가올 새로운 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아니, 내심 짐작하면서도 애써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 부정하고 있다.
두려우니까.
시스템이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 펜을 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사이다로 가득한 웹소설을 보며 낄낄거렸던 것은 이미 오랜 과거의 일. 이제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펜으로. 창으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와 죽음으로.
“……간. 인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 있던 정신을 일깨웠다.
눈을 깜빡이며 둘러본 주위는 새로운 얼굴들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 중인 프로펠러. 전투기의 창 너머로 보이는 파일럿들의 긴장한 얼굴.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몬스터.
“진태경 씨, 괜찮으십니까?”
“간악한 인간이여. 잘 봐라. 지금 내가 편 손가락이 몇 개지?”
나는 코앞에서 천천히 손을 흔드는 스켈레톤 킹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안 보이는데.”
“틀렸다. 하나다. 이거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
“아, 지금 흔들고 있는 손가락은 곧 내가 뽑아 버릴 거라서 일부러 안 센 건데.”
“…….”
“아직도 흔들고 있네. 좋게 말할 때 손가락 접어라.”
신나게 중지를 흔들어 대던 스켈레톤 킹이 조용히 손가락을 접는 사이, 최 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휴식 후 이동하겠습니다. 어떤 S급 몬스터가 출현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지에도 그에 대응할 만한 병력이 있으니…….”
“아닙니다. 괜찮아요.”
나는 단호하게 최 팀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비록 정신적인 피로에 [망가진 신체]의 디버프 효과로 몸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피해가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임무는 재앙을 막는 것이다.
뮌헨에서 일어날 재앙.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집어삼킬 재앙을.
“출발하죠. 더 늦기 전에.”
나는 짤막한 말과 함께 전투기에 올랐다.
재앙의 중심에 있는 한 사람의 이름. 곧 다시 마주할 적을 떠올리며.
‘미카엘 실베르트.’
와라, 뮌헨으로.
놈에게 닿지 않을 그 중얼거림이 입 안을 맴돌다 흩어졌다.
* * *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흔히들 남아공이라 부르는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고도화된 산업국이자, 게이트가 적어 대격변부터 지금까지 몬스터에 의한 피해가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였다.
적어도 반나절 전까지는.
쿠구구궁!
화염을 동반한 매연이 쾌청한 하늘을 가린다.
전 세계의 부호와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남아공의 수도, 케이프 타운(Cape Town)은 현재 비명과 죽음, 그리고 몬스터가 내지르는 괴성으로 가득했다.
퍼걱! 콰직!
“크아아아아!”
“커헉!”
도로를 점거하며 달려든 트롤 무리가 손에 쥔 곤봉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대형 몬스터 특유의 강력한 힘이 실린 강철 곤봉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던 사람들이 단말마와 함께 쓰러졌다.
우지지직!
– 크워어어어!
쓰러진 시신의 머리통을 밟아 터트린 우두머리가 흉포한 괴성을 내질렀다. 오랜만에 인간의 피 맛을 본 휘하의 몬스터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콰드드득!
달려가던 자동차를 잡아 그대로 땅에 메다꽂고,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 크고 작은 건물들을 부수어 무너트린다. 수없이 많은 폭발이 일어났으나 질긴 피부와 트롤 특유의 엄청난 재생력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콰앙!
폭발과 함께 맹렬하게 솟구치는 화염.
조금의 상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상한 가죽을 순식간에 재생시킨 우두머리가 흡족하게 웃었다.
우두머리의 크고 두꺼운 발 앞에는, 사지가 뒤틀리거나 몸통이 반으로 갈라진 헌터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 크르륵.
쉽다. 너무나 쉬웠다.
얼마 전이었다면 게이트를 넘어 자신의 영역에 쳐들어오는 인간들을 상대로 이토록 손쉽게 처리할 수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 그. 하. 하. 하!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육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강력한 마력이 충만했고, 인간들은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변모했던 인간들은…… 다시금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 모. 조. 리. 죽. 여. 주. 마!!
기나긴 억압의 세월.
영역마저 침범당하며 인간들에게 사냥당했던 과거의 분노가 포효가 되어 터져 나온 그 순간이었다.
쐐액, 퍼엉!
시야가 깜깜하게 물들었다. 아니, 머리가 사라졌다.
그래도 우두머리는 놀라지 않았다.
머리가 날아간다 해도 살아남는 것이 트롤이다. 몸뚱어리를 분쇄하지 않는 한, 막대한 재생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
쉬쉬쉬쉭, 퍼퍼펑!
파공성과 함께 우두머리의 의식이 끊겼다.
가공할 재생력도,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육신도 이 순간만큼은 무용지물이었다.
스륵, 쿵!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몸뚱어리가 무릎을 꿇었다.
우두머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침묵.
– 크워?
그리고 의문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는 트롤 무리의 귓가로, 담담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빨리 끝내지.”
저벅.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과 함께, 거대한 기운이 사방을 짓눌렀다.
“친구가 날 기다리고 있거든.”